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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밤에 만난 여수의 진남관

여행은 그냥 떠나는 것이다. 누군가와 계획을 잡고 주저하다 보면 그냥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그러다 보면 1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온도는 쉽사리 내려가지 않는 듯하다. 이날 여행지 여수에 도착하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여수 이순신의 흔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여수 좌수영다리
▲ 좌수영 다리 여수 좌수영다리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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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좌수영 다리라는 곳이 만들어져 있다. 밤에도 야경이 괜찮은 거리이면서 여수의 벽화거리로 통할 수 있는 길목 중 하나다. 여수를 여러 번 온 것 같은데 매번 새로운 느낌이 드는 도시가 여수다. 어딘가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미지의 장소가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여수의 기억
▲ 돌담골목 여수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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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관 주변으로는 돌로 세워진 벽이 있어서 분위기가 남다르다. 여수 진남관은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에 속하였던 군사 건물로서 1599년(선조 32) 처음으로 축조되었으나, 그 뒤 1716년(숙종 42)에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중건하였다. 현재 정면 1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건물. 국보 제304호로 지정되어 있는 진남관은 해체 복원 예정에 있다.

진남관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2층 규모의 건축물이다. 400여 년간 수군의 본거지였던 진남관은 조선시대의 남해바다를 지키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공간이다. 문화재청과 여수시는 총 사업비 150억 원을 들여 2019년까지 본래 모습으로의 복원 계획이 세워져 있다.

광장
▲ 이순신광장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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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한반도의 고대국가까지 모든 광장은 도시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의 의견을 받는 곳이기도 했다. 여수 중앙동의 이순신광장은 여수 역사 문화 관광벨트의 시발점이다. 매년 이곳을 중심으로 거북선 축제가 열리는데 이순신광장 바로 앞에 있는 거북선이 있던 자리는 전라좌수영 선소가 있던 곳이다. 이순신 광장 한쪽 편에는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가 담긴 벽화가 있다.

두 번째. 여수의 푸른 밤

필자에게 여수의 밤의 색깔을 정의하라면 푸른색이라고 말하고 싶다. 바로 앞에 바다도 푸른색이고 드 넓은 공간이 사람들을 품어준다. 차가 워보이는 푸른색이지만 여수의 푸른색은 따뜻하게 느껴진다. 크지 않는 나라 한국에는 수많은 도시가 있고 도시다 도시 색이 있다. '여수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포장마차촌
▲ 여수밤거리 포장마차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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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여수의 길에서 만나는 여수적인 느낌들은 야경 속에 숨겨진 적막감 그리고 떠들썩함과 맛이다. 자주 오는 곳은 아니지만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도시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야경
▲ 여수야경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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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 수평선에는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했던 여러 종류의 조명들이 있다. 어떤 목적에 의해 조명을 설계했는지 모르지만 저 건너편은 우리가 모르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불편하다. 그러나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이곳에는 버스킹 공연이 열리고 있어서 음악 선율이 함께 해주고 있어 쓸쓸하지는 않다. 비 내리는 여수 밤바다의 광장을 걷는 걷는 경험은 다른 어느 날과도 같지 않다.

네덜란드 남자 하멜

하멜의 흔적
▲ 하멜등대 하멜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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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 조선에 와서 생고생을 하다가 떠난 남자 하멜의 이야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자신의 고향에 도착해서 쓴 하멜 표류기는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예전에 강진에 갔다가 하멜의 흔적을 따라가 본 기억이 나는데 그 흔적이 여수에도 이어져 있다. 압송 도중에 여수에 잠깐 이감되었다. 그래서 여수에는 하멜등대가 만들어져 있다.

중국시장 개척의 교두보로 활용하기 위해 조선과 직교역을 시도했던 하멜은 일본으로 가려고 했지만 조선에 좌초당한 후 억류당해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13년 동안 묶여 있게 된다.

1630년 네덜란드의 호르큄에서 태어난 헨드릭 하멜은 거대 무역회사 동인도 회사에 1651년에 입사한 뒤 서기로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근무하게 된다. 제주도에 좌초된 하멜 일행은 제주 목사 이원진에게 체포당했다.

등대
▲ 하멜등대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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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의 시간 동안 여러 번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가 거듭되면서 하멜의 동료들은 한 명씩 한 명씩 죽어나가게 된다. 하멜 일행에게 기회가 된 것은 바로 이곳 여수로 이감이 되었을 때이다. 잠시 경비가 느슨한 틈을 타 여수의 해안을 벗어나 탈출에 성공한다.

하멜은 잠시 일본에 억류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간 뒤 자신의 경험을 보고서로 내놓는다. 그것이 하멜 표류기이다. 청나라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했던 인조의 유지를 받아들여 효종은 청나라를 꼭 정벌하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효종의 과욕으로 인해 하멜은 조선에 억류되었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많이 되지는 못했다. 청나라의 문물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조선과 달리 서구 열강의 세계체제 속에 난학과 양학을 섭렵한 일본은 근대국가로 자리 잡는다.

바다 위를 달리다

배에서 바라본 풍경
▲ 섬으로 가는배 배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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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물 위를 달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미래에 색다른 기술이 만들어진다면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배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물 위를 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날 금오도로 가기 위해 금오 페리호를 이용했다. 차를 이용하는 경우 비용이 더 들겠지만 20~30분 정도 가는 배에 타는 금액은 5,000원이다. (돌산도 -> 금오_여천)

출발시간 10분 전까지 승선하고 조금 기다리자 배가 조그마한 항구를 떠나기 위해 물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모든 도서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 금오도로 가는 배편은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 중앙동, 백야도, 돌산에서 가는 방법이 있는데 돌산에서 가는 시간이 가장 짧다.

바다를 가르는 물살
▲ 하얀물살 바다를 가르는 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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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바다에는 섬이 365개가 떠 있다. 바다 위를 달리며 여유롭게 섬들과 양식장을 구경해본다. 여수의 밤바다는 푸른색이라고 했는데 여수의 바다 역시 푸른색이다. 금오도는 여수에서 두 번째로 큰 섬으로 도로로 이어진 돌산도를 제외하면 배로 갈 수 있는 가장 큰 섬이라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금오도를 숲이 우거져 있어서 거 무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바다를 보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카메라를 꺼낸다. 뷰파인더로 보는 바다와 실제 눈으로 보는 바다는 느낌이 다르다. 스마트폰으로 항상 연결이 되어 있는 지금은 혼자 오롯이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뷰파인더로 멀어지는 돌산을 바라보며 잠시 자신의 흔적을 놓아보기로 한다.

여수 돌산도가 이제 많이 멀어졌다. 여수 밤바다를 본 것이 불과 10시간 전인데 이제 잊혀가는 잔향처럼 기억 속에 아물거리는 것 같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나는 왜 이 배위에 서 있는 걸까."

갈매기
▲ 자유로운 새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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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여수 바다를 나르는 갈매기는 자유로운 존재일까. 우리는 바다 위를 달리고 있지만 갈매기는  어느 때고 바다 위를 날 수 있다. 새는 시베리아 지방을 비롯하여 한국과 일본에서 중요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옛날 사람들은 새를 사람과 하늘을 이어주는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먼 샤먼의 신앙까지 기원이 올라가는 솟대는 마을의 하당 신, 상당 신, 주신으로 모셔지기도 했었다. 지금도 지방에 가면 않은 솟대를 발견할 수 있다.  일 년 동안이나 힘들게 여수를 지켜주던 갈매기들이 다시 하늘로 돌아가서 여수를 내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섬과 섬 사이의 공간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는 한반도에는 다양한 배가 관광객을 나른다. 여수에도 수많은 크고 작은 배가 있는데 대부분 차를 실어 나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배는 많지 않다. 오랫동안 항해를 해야 하는 대형 유람선과 달리 이 곳의 배는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을 제공한다.

구명정을 살펴보는 일행
▲ 구명정 구명정을 살펴보는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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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간 일행 중 한 명이 비상시 탈출할 수 있는 팽창식 구명뗏목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팽창식 구명뗏목은 안전핀을 빼고 투하용 레버를 강하게 당겨서 투하한 다음 펼쳐진 뗏목을 본선에 가까이 당겨서 승선 장치를 사용하여 탑승할 수 있다. 사람들이 승선하고 난 후에 뗏목에 비치된 나이프로 연결줄을 자르면 된다.

뷰파인더로 바라보는 일행
▲ 사진찍는 사람 뷰파인더로 바라보는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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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에 사뿐히 앉아 있는 갈매기를 찍기 위해 열심히 뷰파인더를 통해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갈매기가 이런 말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헤이. 이봐! 카메라를 가져온 친구. 나를 찍어보라고.. 나를 말이야."

대형버스까지 태울 수 있는 이 배는 매일 적지 않은 차량들과 사람을 섬에서 섬으로 나른다. 배위에 정차되어 있는 차량들도 바다 위를 달리는 듯한 착각에 빠지고 있을까. 그냥 이대로 계속 가면 금오도를 넘어 남해안의 제주도에 도착할지도 모르겠다.

최근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라는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운전하는 차량들은 기사라고 하지 장을 붙이지 않는다. 기차를 운전하는 차장, 비행기를 운전하는 기장, 배를 운전하는 선장은 모두 책임감이 막중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손에 승객들의 안전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모든 승객을 내리게 하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내린 설리처럼 책임감이 있는 사람만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여행도 그 순간에는 일상이 된다. 조금은 다른 일상이 지속되는 평범한 날들의 여행을 떠나는 하루는 행복이 된다. 여행을 쉽게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안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여행은 안정되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고 피곤한 여정의 연속으로만 느껴질 수 있다. 여행은 아주 조그마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금오도의 심연 속으로

도착한 금오도
▲ 금오도 도착한 금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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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무섬 혹은 거마 도라고 불렸던 금오도는 신석기시대에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있지만 이곳에 나는 소나무 때문에 출입이 통제되면서 실제 사람이 살았던 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고종 때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금오도는 최근 가파른 벼랑을 연결한 '비렁길' 5개 코스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금오도 산행
▲ 여행길 금오도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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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서쪽 함구미 마을에서 출발하는 비렁길 코스는 해안과 절벽이 이어지는 공간으로 인기 있는 코스라고 한다. 비렁길의 '비렁'은 벼랑을 의미하는 이곳 사투리로 금오도에 살던 사람들이 나무와 낚시를 하러 가던 길을 관광코스로 개발한 것이다.

지형적인 특성 덕분에 이곳에는 동백나무가 상당히 많이 서식하고 있다. 금오도의 심연은 녹색이다. 빼곡히 심어져 있는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불편함을 야기했지만 금오도의 속살을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해안의 비렁길
▲ 금오도해안 해안의 비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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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널방이라는 곳으로 뷰포인트가 좋은 곳이다. 바위 절벽의 꼭대기가 미역을 널어 말려도 될 만큼 터가 상당히 넓은 편이다. 이곳저곳에 시가 적혀 있어서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여유를 선사해주고 있었다. 일상에 찌들어 가을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바다 풍경이 아름다운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금오도는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출구를 살짝 열어 주었다.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 벼랑 끝에 서보니 아찔한 느낌보다 속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전망대 아래에는 적지 않은 소나무들이 서식하고 있었고 바다의 색깔은 애메랄드 빛으로 역시 남해바다는 다르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송광사터
▲ 송광사터 송광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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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를 닮았다는 금오도의 비렁길은 보조국사 지눌이 수행을 하던 길이기도 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송광사 뒤편의 바위산 생김새가 남다르다. 보조국사 지눌이 좋은 절터를 찾기 위해 나무로 조각한 새 한 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여수 금오도에 내려앉았다고 한다. 전남 순천의 송광사는 번성하면서 지금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금오도의 송광사는 사라지고 흔적과 분위기만 남아 있다.

금오도에는 명성왕후에 의해 사슴목장도 운영이 되었다고 하는데 조선의 맥이 끊기면서 금오도의 사슴 목장의 적도 사라지고 그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상태이다.

수산물의 보고였던 금오도에는 바다의 바람과 염기를 먹고 자란 해송이 있어 중요한 재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금오도의 아름다운 마을과 멀리 바다를 보면서 잠시 사색에 잠겨본다.

사람이 반가운 개
▲ 금오도의 개 사람이 반가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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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도에서 살고 있는 개들은 사람들의 손길이 그리운지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와서 아는 체를 한다. 금오도는 다양한 코스가 있는데 모두 비렁길이 그 중심에 있다.

1코스 5km(2시간 소요) 함구미-미역 터널-송광사 절터-신선대-두포
2코스 3.5km(2시간 소요) 두포-굴 등전 망대-촛대바위-직포
3코스 3.5km(1시간 소요) 직포-갈바람 통전 망대-매봉 전망대-학동
4코스 3.2km(1시간 소요) 학동-사다리 통전 망대-온금동 전망대-심포
5코스3.3km(1시간소요)심포-막포전망대-숲구지전망대-장지

아직도 기억나는 맛

금오도에도 대형식당들이 여러 곳 있지만 금오도 주민들이 먹는 식단은 그 어떤 맛보다 매력이 더 있다.

백반
▲ 현지인들의 상차림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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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 도하면 방풍나물이 대표적인 특산품이다. 금오도 어느 곳을 돌아다녀도 방풍나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방풍나물을 비롯하여 취나물, 목이버섯, 비자나무, 참가시나무 등 희귀 식물 들도 적지 않은 곳이 금오도다.

1박 2일이나 삼시 세끼 덕분에 바닷가 사람들이 아니면 맛보기 힘든 해물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대량생산이 되지 않아 육지에서 만나는 것은 어렵지만 이렇게 직접 오면 먹어볼 수 있다.

쫄깃한 문어와 어울리는 양념이 자꾸 손이 가게 만든다.

제주도에 가면 제주도에서 유명한 갈치로 만든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이렇게 잘은 갈치로 국을 내도 맛이 법 좋은 것 같다. 호박이 큼지막하게 썰어져서 들어가 있고 작은 갈치라고 해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갈치라 그 국물의 시원하기가 남다르다.

안도 여행길
▲ 안도 안도 여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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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 세끼를 먹어야 하는 우리의 마지막 종착지는 여수에서 서남쪽으로 34km 떨어진 안도이다. 섬이 생김새가 기러기를 담았다 하여 기러기 안(雁) 자를 써서 안도라 부르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살기가 편하다는 의미의 편안할 안(安) 자를 사용하고 있다. 이곳은 현재 어촌체험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그냥 앞에서 잡힌 생선과 해산물로 저녁상을 준비했는데 그 구성이 남다르다. 쉽게 볼 수 없는 특산품과 자연산 참돔과 전복 등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풍요로운 식사
▲ 푸짐한 한상 풍요로운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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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음직스러운 한 상이 차려지고 상앞에 앉은 사람들의 젓가락이 매우 바빠졌다. 음식 하나하나를 먹으면서 탄성이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왔다.

잡힌 지 얼마 안 된 생선은 고추장과 각종 양념으로 맛을 낸 매운탕보다 지리가 제격이다. 신선한 물고기의 향과 맛이 맑은 국물에 배어 나와 본질의 맛이 그대로 혀에 전달이 된다.

도시에 살면 적지 않은 전복죽집을 볼 수 있는데 아주 잘게 썰은 전복만이 그 안에 있을 뿐 실제 전복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색깔뿐이지만 이곳의 전복죽은 큼직큼직하게 썰어져서 들어간 전복이 그 안에 담겨 있어 그냥 육안으로 보아도 제대로 된 전복죽이라는 말할 수 있다.
전복죽과 반찬
▲ 전복죽 전복죽과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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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맛은 어떨까.
양도 양이지만 지금까지 먹어본 전복죽 중에 세 손가락에 들어갈만한 맛이다.
안도는 '2016 대한민국 국토경관디자인대전'에서 '동고지 명품마을 조성사업'으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여수 하면 돌산갓김치이고 갓김치 하면 여수이다. 알싸하고 쌉싸름한 맛 덕분에 전국적으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돌산갓김치 공장이 여수에 적지 않게 만들어져 있는데 그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한식뷔페가 일정에 포함이 되어 있었다.

여수의 한식뷔페
▲ 한식뷔페 여수의 한식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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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한식뷔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비싼 갓김치와 여수 특산물을 양껏 먹을 수 있는 것으로 특히 여수의 유명한 돌게장은 나오기가 바쁘게 비워질 만큼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남해의 해풍을 맞아가면서 키워낸 돌산 갓김치는 부드럽고 아삭 거리는 맛이 좋고 방풍나물은 독특한 향취가 입맛을 자극한다. 여수에서 잡히는 돌게로 만든 돌게장과 발효시킨 막걸리로 만든 서대회 무침의 공통점은 한 번 맛보면 다시 여수를 찾을 수밖에 없는 기억 속에 새겨지는 맛이라는 것이다.

매듭을 풀어가며

낚시 마니아를 제외하고 낚싯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여수 금오도는 낚시꾼들에게는 바다낚시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이 곳에서 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실 낚시를 위해 매듭을 풀어야 한다.

고기를 잡는 사람들
▲ 금오도의 낚시터 고기를 잡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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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이 얕지 않은 곳이기에 이곳에서 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구명조끼 착용을 권하고 있었다. 바다를 흘낏 쳐다보니 물 반 고기반 정도는 아니지만 적지 않은 고기들이 이곳 밑으로 떼 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이곳에는 물 위에 떠 있는 부교 같은 형태로 가두리 양식장 같은 형태가 아니라 낚시를 하기 쉬운 공간을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바늘이 두 개가 달린 줄낚시를 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었다. 바늘에는 새우를 끼어 물고기를 유혹한다. 먹이가 먹이니만큼 크기가 있는 광어나 참돔 같은 물고기는 잡기 힘들지만  치어 정도는 잡을 수 있다. 자어(仔魚)는 갓 부화했거나 부화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물고기를 말하지만 치어(稚魚)는 모든 지느러미의 밑바탕이 마련된 시기부터 몸의 생김새가 어미와 같다.

금오도의 주변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어류는 농어목이고 쏨뱅이목과 청어목이 주로 많이 잡힌다. 생태조사에 의해 금오도 주변에서 채집된 어류는 총 10목 30과 47종으로 무려 1237마리에 이른다.


잡힌 고등어
▲ 고등어 잡힌 고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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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여수에는 금오도에서 화태도까지 고등어 조황이 대박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잡힌다. 이제 곧 갈치를 잡을 수 있는 시기가 온다며 이곳을 운영하시는 분이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화려한 바늘을 4~5개씩 연결한 낚싯대를 이용한 사람들의 낚싯대에는 고등어가 주렁주렁 달려 나올 정도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낚싯줄의 매듭을 풀었다가 다시 돌돌 말아 올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먹이만 살짝 먹고 가는 물고기와 너무나 에너지가 넘쳐서 잡혀 나오다가 다시 바늘에서 빠져나오는 물고기까지 낚시를 사람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물고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 낚시 물고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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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곳의 낚시 체험을 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낚시꾼이다. 한 손에는 과자를 들고 바다의 세찬 바람을 맞아가면서 의연하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


낚시는 기다림이라고 했던가. 물고기들이 누구에게 잡혀주기로 마음을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에서의 낚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또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는 않은 것 같다. 조용하게 낚싯바늘의 느낌을 받기 위해 손가락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어 본다.


고등어
▲ 잡힌 고등어 고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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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낚시꾼이 잡은 고등어이다. 고등어 대부분이 입을 벌리고 있다. 이렇게 작은 고등어는 김장김치를 묵혀 만든 묵은지에 고등어만 넣어서 물을 자작하게 부은 후 찜해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섬이라는 프레임 속의 여유


편안하다는 한자 안을 사용하는 안도의 동리지 마을은 국무총리 상을 받을 정도로 어촌체험을 할만한 좋은 공간이다. 예전에 개봉했던 영화 동막골 사람들과 비교할  없을 정도로 동리지 마을 사람들의 인심은 남다르다.


마을입구
▲ 동고지마을 마을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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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어촌체험마을에는 백금포 모래 해수욕장, 몽돌해수욕장을 비롯하여 낚시인들이 주로 찾는다는 갯바위 낚시터와 슬로푸드 체험, 바다목장 전시관 등 다른 섬과 달리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안도의 일주는 도보로 1시간에서 2시간, 선박으로는 30분~1시간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다. 가끔 다니는 주민들의 자동차 엔진 소리 외에는 아주 조용한 곳이다.


이곳에 오면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어지는 것 같다. 누구나 그러듯이 가끔은 무겠도 하지 않은 채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안도의 어촌체험마을은 인생의 잠깐 멈춤(Pause)을 누를 수 있는 곳으로 가끔씩 부는 바람을 제외하고 시간도 바다의 움직임마저 멈춘 듯한 고요한 오후가 이어지고 있다.


체험마을탐방
▲ 어촌체험마을 체험마을탐방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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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일 첫날이 시작될 때 여수의 끝자락에 자리한 안도의 어촌 체험마을에 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정해지지 않은 미래로 인해 인생에는 예기치 않은 극적 요소가 등장하기도 한다. 어촌체험마을의 작은 집의 대청마루에서 쳐다본 바다는 계속 밀려드는 파도로 인해 기분 좋은 리듬감의 소리만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이렇게 기분이 좋다니 안도의 여행 경험은 인생의 힐링이다. 어촌체험마을은 어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어업외에 소득을 올리기 위해 2001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하여 전국에 106개 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특히 전남에는 전국 섬의 65%나 있어서 적지 않은 프로그램이 있다. 안도 어촌체험마을은 그중에서 숙박 소득이 가장 높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곳에 오면 알 수 있다.


그리움을 뒤로한 여행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바로 여수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는 여수 향일암이었다. 여수에서 바다가 보이는 해안도로의 끝에 도달하면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4대 관음기도처 향일암을 만나게 된다.


향일암일주문
▲ 향일암 입구 향일암일주문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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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라서 그런지 엄청난 인파가 이곳 향일암을 찾아왔다.  신라의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향일암으로 불리게 된 것은 조선시대 때 인 묵대 사가 개창하면서부터이다. 기암절벽을 대로 활용하여 만든 향일암은 한 사람식 통과해야 되는 공간이 적지 않다.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보고 싶어도 기다려야 하고 빨리 내려가고 싶어도 기다려야 한다.



향일암에 있는 건물로는 원통보전, 삼성각, 관음전, 용왕전, 종각, 해수관음상 등이다. 두 개의 관음전 중 위쪽에 자리한 상관 음전은 원효대사가 수도하며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곳이다. 향일암을 찾아온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스마트폰과 카메라로 풍광과 사찰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향일암을 찾은 사람들
▲ 향일암의 사람들 향일암을 찾은 사람들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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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상관 음전과 이곳 좌선대는 두 번째로 만나는 기억의 공간이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평일이어서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엄청난 인파와 함께 하니 향일암의 인기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를 향한 암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향일암(向日庵)에는 임진왜란 때 왜적에 항전하기 위해 승려들이 이 몰려들기도 했다.


바다의 수평선
▲ 향일암에서 바라본 바다 바다의 수평선
ⓒ 최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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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수, 금오도, 돌산, 안도에서는 열 가지의 기억을 필자에게 남겨주었다. 열 가지의 억은 역사, 야경, 흔적, 바람, 배, 길, 풍경, 맛, 경험, 사람이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좋은 추억을 뒤로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마음속에는 필자를 다독거린다. "자 다시 여행을 시작해볼까."


금오도로 가는 여객선은 돌산에서 여천항 구간에 하루 7차례 왕복하고 여천항에서는 1코스 함구미까지는 약 4km 정도이다. 금오도의 택시는 딱 두 대가 운행되는데 기본요금은 1만 원이고 삼시 세끼를 먹으며 묵었던 안도까지는 2만 원을 받는다. 편도 뱃삯은 승객 5000원, 차량은 1만 5천 원이다.


태그:#여수, #금오도, #안도, #남해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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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쓰는 남자입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음식을 좋아하며, 역사이야기를 써내려갑니다. 다양한 관점과 균형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은 열심이 사는 사람입니다. 소설 사형수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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