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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보이는 딸
 지쳐보이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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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3등급으로 구성된 장기요양등급체계가 2014년 7월 5개 등급으로 확대되면서, 경증 치매 환자(4∼5등급, 65세 미만 치매 노인들도 포함)중 서비스 혜택을 받는 노인이 늘고 있다.

2015년 6월에 발표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치매특별등급 요양서비스를 받은 노인은 1만 6295명. 장기요양보험법에 치매특별등급 신설 내용이 추가된 데는 치매 조기 진단과 치료로 중증 치매 환자수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됐다.

기존의 요양서비스와는 다르게 인지 활동형 프로그램을 반드시 이용하도록 한 이유도 중증 치매 환주 수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당초 의도와는 달리 노인복지실천 현장에선 여러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특히 갈등의 양상이 성별화된 모습으로 나타나 변화하는 성 의식에 맞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는 치매특별등급 노인을 둘러싼 갈등 문제를 취재했다.

배려하려는 모습 VS 대접 받으려는 모습

치매 할아버지의 머리속
 치매 할아버지의 머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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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음식까지 빼앗아 개걸스럽게 먹거나 자기 신발을 챙기며 누가 가져가기라도 할 것처럼 으르렁 거리는 할머니. 드라마나 영화에선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자기밖에 모르는 노인의 모습으로 그린다. 실제로 대부분의 여성 치매 노인은 괴팍할까?

드라마에선 주로 치매 환자가 인간성이 말살된 괴팍한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실제 모든 치매 환자가 그런 건 아니다. 특히 치매특별등급 4∼5등급을 받은 노인들은 단기 기억력은 5초도 안 되지만 판단력이나 인지력은 괜찮은 편이다.

<치매 노인 여성의 체험연구>에 따르면 치매 노인 여성들은 치매에 걸리더라도 변치 않는 어미로서의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자식에게 부담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죽는 날까지 자식을 위해 하나라도 더 보태주고 싶어 한다. 이런 마음 때문에 치매 노인 여성들은 치매 진단 이후에도 엄마로서의 예전의 역할을 유지하고자 계속 노력한다. 그러나 그 마음을 가족들에게 표현하진 못한다. 말없이 혼자 감내할 뿐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주간보호센터(이하 주간보호센터)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여성 치매 노인이 괴팍하다는 건 남성 중심적 사회가 만들어 낸 허구"라고 말했다. 이들은 오히려 "남성 노인이 여성 노인보다 더 돌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특히 퇴직 전에 공무원이나 군인이었던 노인은 대접 받으려는 의식이 더 강하다. 익명을 요구한 주간보호센터 요양보호사는 "잔존능력을 계속 유지시켜야 남은 인생을 건강하게 사실 수 있는데, 다 챙겨주길 바라고 대접 받으려는 의식이 강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주간보호센터 관계자 A씨는 "나이가 들면 신체 기능이 떨어져서 소변을 보면 뒤처리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며 "앉아서 볼일을 보시라고 해도 서서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모습에서 남자라는 걸 드러내고 싶은 할아버지들의 마음이 읽혀진다"고 말했다.

A씨는 "기억을 잃어가지만 남성이란 우월의식이 내면에 뿌리깊이 남아 있는 할아버지들을 볼 때 안쓰럽지만 한편으론 씁쓸하다"고 했다. 이어 "주간보호센터도 사회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생활을 잘 해야 재밌고 본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남성 노인들은 과거의 직업을 내려놓지 못해 여성 노인들보다 경계를 허물지 못한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과 친밀성을 잘 형성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대접 받으려는 모습, 가족 안에서도 갈등 일으켜

포기할 수 없는 남성의 상징?
 포기할 수 없는 남성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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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성 치매 노인들때문에 가족들은 괴롭다.

익명을 요구한 치매 환자 보호자는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며 치매 시아버지를 모셨는데 너무 당당한 태도로 이것저것 요구하셔서 상처를 받았다. 원하는 대로 안 해 드리면 화를 내시는데, 기억을 못해 일상생활이 안 되는 것 보다 전혀 미안한 마음이 없는 태도가 용납이 안 됐다"고 말했다

A씨는 이에 대해서 "배우자가 있으면 끝까지 환자를 돌보려고 노력을 하지만 배우자가 없으면 감당하려는 사람이 없다"며 "자녀의 경우 증세가 심해지면 요양병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치매 어르신 관리 현황(2015)을 조사한 결과를 봐도 그렇다. 치매 노인을 주로 돌보고 있는 가족은 배우자가 39%로 가장 높다. 이어서 딸(23.6%), 아들(14.6%), 며느리(12.9%)순이었다. 가족수발자의 대부분이 배우자이고, 딸이 모시는 경우가 뒤를 이었다. A씨도 "자녀가 치매 부모를 모실 경우, 아들 보다 딸이 모시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치매 부모를 아들 보다 딸이 더 많이 모신다는 사실은 변화된 사회상을 보여준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 치매 환자 보호자는 "엄마를 올케에게 맡기기 보다 내가 모시는 게 낫겠다 싶어 엄마와 함께 지내고 있다. 엄마를 보면 딸인 나도 화가 나는데 며느리야 오죽하겠냐"고 말했다. 주간보호센터에 가실 때 마다 화장을 안 했다고 생각해서 얼굴이 떡칠이 되도록 화장을 또 하고 또 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속이 터지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모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그는 "남편도 크게 불편해 하지 않아 남동생 집에 보내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A씨도 요즘은 아들보다 딸이 치매 노인을 모시는 경우가 더 많다고 덧붙였다.

한편,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최은희 연구위원은 "자녀들이 더 이상 치매부모를 모시는 일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특히 주된 돌봄자였던 여성들의 성 의식이 바뀐 만큼 보수적인 치매 노인 세대와 충돌하지 않도록 성 인지적 감수성을 가지고 치매노인 정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태그:#치매, #치매노인, #주간보호센터, #치매노인특성, #치매노인성별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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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밥 대표이자 구술생애사 작가.호주아이오와콜롬바대학 겸임교수, (사)대전여민회 전 이사 전 여성부 위민넷 웹피디. 전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전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여성권익상담센터 실장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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