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성공했다고 느낄 때가 언제인가요?"

김제동이 진행하던 SBS <힐링캠프>(2015년 8월 25일 198회 분)에 게스트로 나온 정형돈에게, 방송 끝무렵 방청객으로부터 나온 질문이다.

"정형돈씨가 성공했다고 보세요?" MC 김제동이, 이 여성 방청객에게 역으로 질문했을 때 그 방청객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네"라고 대답한다.

 정형돈은 작년 8월 <힐링캠프>에 나와 자신의 고민을 토로했다.

정형돈은 작년 8월 <힐링캠프>에 나와 자신의 고민을 토로했다. ⓒ SBS


정형돈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시청자는 질문을 한 여성과 같은 시각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무한도전>에서 '미친 존재감'으로 매 에피소드마다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디. 정형돈은 JTBC <냉장고를 부탁해>, MBC에브리원 <주간아이돌>, KBS <우리동네 예체능> 등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을 가리지 않고 엠시로 활약했다. 어느 순간 <무한도전> 안에서 하하가 장난처럼 던진 '4대 천왕'이란 타이틀이, 장난이 아닌 실제 그에게 맞는 옷이 되어 버릴 정도로.

최고의 주가를 향해 달리는 그였기에 그 질문에 나올 답은 분명 '예스(yes)'여야 했다. 그러나 정형돈은 의외의 대답을 한다.

"좋아서 하던 일이 잘해서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당시 그의 심적 상태를 정확히 읽어 볼 순 없으나, 적어도 그가 '마냥 행복하지는 않구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정형돈은 톱클래스의 예능인이 되기까지 쉽지 않은 결정을 해가며 현재의 자리에 올랐다. "난 아직 내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이어지는 그의 말에, 그가 지금의 모습 외에 또 다른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직장을 포기했다

삼성전자라는 한국 최고의 기업에서 근무하던 그가 자신이 원하는 개그맨이 되고자 과감히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일념 때문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꽤나 안정적인 직장에서 꽤나 안정적인 월급을 포기하고, 될 지 안될지도 모를 개그맨 시험을 보기 위해 그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건.

머리 깎을 돈도 없이 대학로에서 호객행위를 하면서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해보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당시 정형돈에게는 아니 정형돈 아닌 그 누구라도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결정이었을 터이다. 그런데도 그는 삼성전자 시절보다 호객 행위를 했던 대학로의 그때가 더 행복했다고 한다.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였단다.

 내가 아는 정형돈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정형돈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 SBS


사회인이라면 정형돈의 이와 같은 결정이 좋게 말해 얼마나 용기 있는 결정인지, 좀 과하게 표현하면 그래서 얼마나 무모한 결정을 내린 것인지 공감하리라 본다. 지나가는 직장인 열을 세워 놓고 현재 직업에 만족하는지 그래서 행복한지 물어본다면 '만족한다', '행복하다'고 답하는 직장인이 몇이나 될까? 과한 업무, 직장 내 인간관계, 업무적 압박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 게다가 조금만 나이 들고 뒤처지면 언제 인사팀으로부터 해고 통지서를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함. 우리 직장인들의 삶은 지칠 대로 지쳐 있다.

그래서 우리의 직장인들은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때려치고 만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막상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어깨에 책임져야 할 짐들이 너무 많은 이유에 불확실한 미래에 현재의 안정을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만일 내가 그때 정형돈의 직장선배였고 정형돈이 개그맨에 꿈을 키우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겠다며 고민상담을 해 왔다면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야! 헛소리 말고 술이나 마셔. 누군 회사 좋아서 이러고 사는 줄 알아?' 혹은 '개그맨이 아무나 되는 줄 아냐? 너처럼 해서 개그맨이면 대한민국 개그맨 아닌 인간 하나도 없다.'

정형돈이 회사를 그만두고 개그맨이 되겠다고 대학로 극단에 찾아갔을 때, 극단 선배 개그맨이 정형돈에게 "야, 너 지금 회사에서 얼마 벌어? 네가 나보다 훨씬 많이 벌어, 왜 개그맨이 되려고 해. 회사나 열심히 다녀"라며 돌려보내려 했단다.

강단이 있는 사람이었는지 그래도 정형돈은 열심히 꿈을 키워나갔고 결국 KBS 공채 개그맨이 된다. 그리고 당시 인기 절정이던 <개그콘서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갤러리 정'으로 승승장구한다. 개그콘서트 200회 특집(2003년 8월 31일) 총 13개 코너에서 정형돈이 맡은 코너가 6~7개 였다는 사실은 정형돈이 당시 개그콘서트 대세 개그맨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어진 정형돈의 다음 결정

그리고 그는 또 한 번 중대한 '결정'을 한다. 개그콘서트를 나와 쑈버라이어티로 활동무대를 옮기겠다는 '결정'. 이 또한 현재의 안정을 뒤로 한 채 불확실한 무엇인가에 올인을 하는 다소 무모한 결정이었다. 대선배인 개그맨 이경규는 <힐링캠프>에서 정형돈에게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버라이어티로 넘어와서 잘 안 풀린 케이스도 너무 많고 다시 개그콘서트로 돌아갈 수도 없고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이었을 텐데 후회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는 고민을 거쳐 어렵게 MBC <브레인 서바이벌>이라는 버라이어티에 진출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간 프로그램은 6주만에 폐지된다. 요즘 일부 팬들이 이야기하는 '배신'이나 '배반' 같은 여론의 경험을 그는 이때 처음 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개그콘서트에서 인기를 끌고 다른 프로그램 혹은 방송사로 옮기는 개그맨들에게 여론이 보내는 시선이란 그런 것이었을 테니까.

 <무한도전> 2016 무한상사 편에 등장했던 정형돈. 이 한 장면 덕분에 그의 <무한도전> 복귀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이 커졌었다.

<무한도전> 2016 무한상사 편에 등장했던 정형돈. 이 한 장면 덕분에 그의 <무한도전> 복귀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이 컸다. ⓒ MBC


욕심이 많은 건지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어쩔줄 몰라하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이런 그의 행적은 무모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이 나이가 되도록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게 부러움과 작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누군가 내게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정형돈처럼 "좋아서 하던 일이 잘해서 하고 있다"는 답변도 못할 것 같다.

그리고 그는 "내가 이렇게 했다고 해서 이 방법을 누구에게 권하거나 조언하고 싶지 않다. 각자 나름의 방식이 있고 내가 이렇게 해서 잘 풀렸다고 그것이 곧 정답은 아니다"고 이야기한다.

시나리오 작가 정형돈, 그가 곧 '무한도전'이다

건강 상의 이유로 진행하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잠시 내려온 정형돈은 쉬는 기간 또 다른 고민을 한 것 같다. 그리고 결정한 것 같다. 그 중에서 <무한도전>을 나오겠다는 결정을 내린 게 가장 커 보인다. 그리고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대로 쓰는 재미(시나리오나 작사)를 본격적인 일로 시작하려는 듯 보인다. 노랫말 작사야 그간 '형돈이와 대준이'에서 해온 일과 관련된 것처럼 보이지만 시나리오 작가라니 또 한 번의 무모한 도전이 아닐까 싶다.

'MBC 방송연예대상' 무한도전은 무한해! '무한도전'의 정준하, 하하, 유재석, 박명수, 정형돈이 지난 2014년 12월 29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린 'MBC 방송연예대상' 레드카펫에서 포즈를취하고 있다.

<무한도전>에 정형돈이 없다는 사실은 서운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응원한다. ⓒ 이정민


사실 정형돈의 <무한도전> 하차는 팬으로서 참으로 안타깝고 서운한 일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정형돈이 빠진 요즘 <무한도전>을 보고 있노라면 프로그램에서 정형돈의 부재가 이토록 컸나 싶을 정도로 그의 빈자리가 너무나 아쉽다. 지난 토요일에 방송된 '아수라 특집'만 하더라도 정형돈이 있었다면 볼거리를 훨씬 더 풍성하게 만들었을텐데 싶다. 같은 마음으로 노홍철도 있었다면 추격전이 훨씬 더 기대가 될 텐데 싶어 그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이 '배신' 행위로 표출되는 건 분명 옳지 않다. 특히 "등 따시고 배부르니 자신을 키워준 '무도'를 배신한다"는 식의 공격. 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향해 새로운 출발을 하는 이에게 해서는 안 될 공격이다.

유재석이나 김태호 피디 등에 따르면 정형돈은 마지막까지 <무한도전>을 놓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무한상사'가 기획되고 있을 당시 정형돈 자신이 무한상사로의 복귀를 적극적으로 원했다고 하니 그의 <무한도전> 최종 하차 선언은 단순히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서'가 아닌 듯 싶다.

여하튼 그는 <무한도전>을 떠나기로 했다. 앞서 노홍철이 그랬듯 그리고 길이 그랬듯 최종하차 선언을 번복하고 그가 다시 <무한도전>에 합류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나는 <무한도전> 속의 미친 존재감 정형돈이 아닌 예능인 정형돈을 응원하고 싶다. 순탄한 길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정형돈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이제는 <무한도전>의 후광이 없기에, 그가 <무한도전>을 붙잡고 있을 때 보다 그의 행보에 언론의 관심도 많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부정적 시각을 이겨내며 '정형돈'이란 브랜드 자체로 우뚝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냐?"는 부정적 시각을 보란 듯이 이겨내고 지금의 정형돈이 됐고, <무한도전> 초창기 "웃기는 것 빼고 다 잘하는"이라는 캐릭터를 이겨내고 그는 <무한도전>의 중심으로 '미친 존재감'으로 섰다.

앞으로 정형돈이 그려 나갈 모습에 응원을 보낸다.

#정형돈 #형돈이와 대준이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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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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