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밀정>

이정출(송강호 분)은 일제 치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갈팡질팡 한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김지운 감독의 <밀정>이 추석 극장가를 강타하면서 11일만에 누적 관객 수 500만 명을 넘었다. 추석 연휴 내내 <밀정>의 예매율은 50%를 넘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풍경이고, 감정의 베일을 벗기고 나면 <밀정>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다.

<밀정>은 송강호, 이병헌, 공유, 한지민, 박희순, 신성록 등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특히 일제 강점기 스파이 역할을 했던 '밀정(密偵)'의 색출, 변절과 전향, 그리고 의열단원들의 독립운동 등 긴장감과 처연함이 돋보인다. <밀정>은 일제 치하라는 안개 속에 그림자처럼 살아야 했던 인물들의 절망과 희망을 아우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영어 제목은 '그림자들의 시대(The Age of Shadows)'다. 아울러, 김지운 감독만의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미장센은 추석 명절을 맞아 극장가를 찾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디테일한 볼거리 역시 풍부하다.

영화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조선이 독립될 것 같은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은 결국 개인의 문제인 사상 전향으로 직결된다. 개인들의 의지가 모여 한 사회를 구성하고, 그 의지들의 집합은 시대의 비극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왜 이정출은 임시정부 통역관에서 조선 경무국 이경부로 전향했다가, 또다시 의열단을 돕는 일을 하게 되었을까?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 분)이 지적하듯 마음의 변화야 말로 가장 무서운 무기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정출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는 의열단과 일본 경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흔들리는 마음을 탁월하게 소화했다. 제국주의가 짙게 깔린 1920년대에 그림자처럼 숨죽이고 살 수밖에 없었던 이정출이다.

조선의 독립 가능성과 개인의 사상 전향

하지만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왜 일까. 만약 <밀정>이 대중성을 배제하고 정말 김지운 감독만의(다운) 지독하고, 냉혹한 감성을 객관적으로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아쉽게도 <밀정>은 상업영화로서의 흥행공식을 일부 차용하다보니 전개상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아마 관객들은 그러한 지점을 슬그머니 흘려버릴 정도로 친일과 반일이라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을 것이다.

 영화 <밀정>

▲ 하시모토(염태구 분)와 이정출(송강호 분) <밀정>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내용 전개상 어색한 부분이 많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밀정>은 역사적 배경이라는 장막을 잠시 걷어내면 뭔가 어색하다. 우선 독립운동과 의열단원들의 희생, 이 둘 사이에서 방황하는 한 개인의 비극을 차치해보자. 그리고 이정출과 김우진(공유 분)의 재회 장면을 보자. 한 의열단원의 배신인 줄 모르고 함정에 빠진 이정출. 그는 김우진을 외진 오두막에서 만난다. 이정출은 정채산을 만났을 때도, 기차에서 헤어질 때도 나중에 김우진을 다시 만나면 본인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른다고 피력했다. 특히 기차에서 하시모토(엄태구 분)를 죽이고 헤어질 때는 다음에 만나면 둘 중 한 명을 죽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런 그가 급박한 상황 속에서 김우진의 신분증을 다시 만들어서 오두막에 갔다. 여기까지는 그래, 이해한다고 치자. 그런데 거기서 폭탄을 숨기라는 김우진의 설득을 당하는 지점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영화의 끝부분에 가서야 이 장면은 회고된다. 죽음을 각오한 김우진의 설득에 이정출은 아무 말을 하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이 장면은 너무 급하게 지나간다. 이정출의 마음이 완전히 기울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장면이 금방 지나 가버렸다. (여기서 다시, 친일과 반일 그리고 독립운동이라는 안개를 걷어 내보자) 뭔가 어색하다. 더욱이, 그 많은 폭탄을 숨겨달라는 김우진의 부탁은 손쉽게 해결된다. 폭탄은 어디로 갔다가 나중에 다시 이정출의 집에서 드러난 것일까.

김지운 감독이 핵심이라고 언급했던 기차에서의 숨바꼭질 장면은 더더욱 어색하다. 연계순(한지민 분)을 찾으려고 혈안이 돼 있던 하시모토는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 담배를 피우고 가슴골을 드러낸다고 연계순이 다른 사람이 되는가. 김우진이 열차 칸에 들어왔을 때도 머리를 숙이고 아기 똥 기저귀를 갈고 있는 남자를 보자 그냥 지나친다. 얼굴이라도 한 번 확인해야 하는 게 아닌가. 악독한 경찰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영화 전개상 어색하다. 아마도 관객들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김우진과 연계순이 발각되지 않기를 원했을 것이다.

영화의 전개에만 주목해보면 어색한 장면들

이정출이 왜 임정에서 일하다가, 일본 경찰이 되었고, 다시 의열단을 돕는 독립운동을 하게 되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영화는 이 미스터리한 사람의 마음을 정말 잘 표현했다. 일본강점기를 다루는 영화들이 대부분 대의(大義)에 짓눌린 개인의 비극을 다루었지만, <밀정>은 그 안에서 변모하는 인물에게 초점을 맞춰, 새로운 색깔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밀정>이 흥행하는 이유이고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덕분이다.

그런데도 여러 장면이 연결되는 흐름은 어색하다. 김지운 감독의 가장 큰 무기이자 장점이기도 했던 매끄러운 내용 전개와 플롯 설정은 <밀정>에서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게 편집의 문제이든, 인물의 내면 변화에 무게 중심을 두었던 이유이든 영화가 기본적으로 염두에 둬야 하는 부분이다.

밀정 김지운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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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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