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부 경무부 경부 이정출 이정출(송강호 분)은 경무부장의 밀명을 받고 의열단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 총독부 경무부 경부 이정출 이정출(송강호 분)은 경무부장의 밀명을 받고 의열단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당신은 이름을 어느 쪽에 올릴 것인가.'

영화 '밀정'에서 총독부 경무부장은 경부인 이정출(송강호 분)에게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에게 요구되는 삶은 '복종' 아니면 '죽음'이라는 말을 한다.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 분)은 밀정으로 온 이정출을 만나 '사람은 이름을 어느 쪽에 올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가 온다', '당신은 어느 쪽에 이름을 올릴 것이냐'며 스스로 선택하라고 말한다.

어떤 삶을 살 것이냐는 결국 생존이자 선택의 문제다. 일제강점기에 노골적인 친일행위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죽음 속으로 몰아넣었던 삶과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삶들. 또한 불분명한 경계에 선 수많은 사람들, 그러나 삶이란 결과로 드러난 행동으로 평가 받을 수밖에 없다.

일제강점기의 이름들

여기 여러 이름들이 있다. 일명 황만동으로 불리기도 하는 황옥. 그는 1920년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하다 경기도경찰부 경부로 근무하던 중 의열단 단원인 김시현을 만나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결의한 뒤, 톈진[天津]에서 의열단 단장 김원봉을 만나 항일 독립운동에 가담할 것을 서약하고, 김원봉으로부터 지령을 받는다. 이어 폭탄 36개와 권총 5정을 받아 단원들과 함께 신의주를 거쳐 서울까지 운반하였다.

그러나 의열단원 김재진이 일본 경찰에 밀고함으로써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황옥은 단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 사건을 가리켜 일명 '황옥경부사건'이라 일컫는다. 그러나 이 거사가 실패로 끝난 것은 황옥이 의열단에 접근해 돕는 척하며 일제의 밀정 역할을 했다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다.

거사 모의 거사를 모의하는 의열단원 김우진(공유 분), 조회령(신성록 분). 의열단원들 속에 '밀정'이 있었다.

▲ 거사 모의 거사를 모의하는 의열단원 김우진(공유 분), 조회령(신성록 분). 의열단원들 속에 '밀정'이 있었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황옥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당시 조선총독부 경무국장도 하나의 공작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것은 종로경찰서를 폭파한 김상옥 사건을 비롯한 배후단체 의열단의 정체를 규명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자는 안으로 유능한 수사관을 의열단의 본거지에 밀파하기로 하였다. 그 수사관으로 선발된 자가 황옥이었다.

1923년 2월 5일 황옥은 중국으로 파견되었다. 한편 의열단원 김시현은 지연을 이용하여 황옥에 접근하였고 황옥 또한 김시현의 접근을 받아들여 거짓으로 경찰관을 사직하였으니 돈벌이나 하자고 가장하고 아편밀수에 합의하여 의열단에의 접근을 의도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울역에서 봉천행 열차를 탔다.

의열단에서는 3.1운동 4주년을 기념하여 일제의 주요 기관을 폭파함으로써 침체된 대일 항전의욕을 각성 촉구시키려는 데 공작 목표를 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공작에 사용할 장비를 안전하게 국내로 운반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젯거리였는데 이런 때에 나타난 자가 황옥이었으므로 김원봉은 황옥을 포섭하여 안둥에서부터 신의주까지의 수송을 부탁하게 되었던 것이다.

황옥은 1924년 경성지방법원에서 1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장결핵과 폐렴으로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1925년 12월 가출옥, 1928년 5월 재수감되었다가 1929년 2월 다시 가출옥하였는데 그 이후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그가 그 뒤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와 의열단으로부터 동시에 버림 받고 은둔했을 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볼 뿐이다.

두 사람 일제의 공작으로 밀파되는 이정출(송강호 분)과 하시모토(엄태구 분). 이정출과 하시모토는 일제강점기의 삶의 태도를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 두 사람 일제의 공작으로 밀파되는 이정출(송강호 분)과 하시모토(엄태구 분). 이정출과 하시모토는 일제강점기의 삶의 태도를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처단하지 못한 이름들

1948년 국회 특별위원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통과시켰다. 광복 직후 친일파를 척결하고 민족정기를 회복하는 일은 국민적인 관심사였다. 그러나 미군정은 일제강점기의 통치체제를 부활시키고 친일파를 다시 등용하였다. 이승만 정권 역시 미군정의 통치구조를 그대로 이어받아 정권장악과 유지에 친일파를 이용하였으며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하고 무력화시켰다.

이 법에 의하면 국권피탈에 적극 협력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 일제가 준 작위를 받거나 제국의회의원이 된 자, 독립운동가 및 그 가족을 살상·박해한 자는 최고 무기징역 최하 5년 이상의 징역, 직·간접으로 일제에 협력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재산몰수에 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반민특위가 무력화되면서 실제 사형집행은 1명도 없었다.

그중 일제때 독립운동가를 체포하여 온갖 잔인한 고문을 일삼다가 월남한 친일 경찰 노덕술은 친일파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에 의해 수사과장에 기용되었고 오히려 반민특위 관계자들 암살을 모의하다 사전에 발각되어 구속·기소되기도 했지만 이승만은 그를 '반공투사'라 두둔하며 석방을 원했을 정도였다.

이후 노덕술은 경기도 경찰부 보안주임으로 영전, 헌병 중령으로 변신하여 육군 본부 범죄수사단장, 서울 15범죄수사대 대장을 지내다 1955년 부산 제2육군범죄수사단 대장으로 재임시 뇌물수뢰 혐의로 그 해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징역 6개월을 언도받으면서 파면되었다.

의열단원 연계순 의열단의 핵심 인물인 연계순(한지민 분)은 일제에 붙잡혀 극악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 의열단원 연계순 의열단의 핵심 인물인 연계순(한지민 분)은 일제에 붙잡혀 극악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실패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분명 우리는 일제강점기 친일파를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친일경찰 노덕술이 암살하고자 했던 대상 가운데는 반민특위 특별재판부장이었던 김병로, 검찰총장 권승렬, 국회의장 신익희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일설에는 의열단 단장이었던 김원봉도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무차별 폭력을 당하고 충격을 받아 며칠간 통곡하며 식음을 전폐하다 이후 월북했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 <밀정>에서 일제의 극악한 고문을 받다 스스로 곡기를 끊고 자결한 연계순(한지민 분)의 사체를 보고 이정출은 고통의 눈물을 흘린다. 정채산 단장은 실패로 끝난 거사에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우리는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이정출에게 전한다.

영화 '암살'에서도 '염석진'은 마땅히 '암살'되어야 할 '밀정'이었다. '밀정'에서도 변절한 단원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어떤 인생이든 역사 앞에서는 평가를 받는다. 그 평가의 기준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악행은 반드시 처벌 받아야 한다. 반민족적 독재자들이 무산시키고 역사가 이행하지 못한 처단을 우리는 비로소 영화를 통해 당위적 진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김지운 감독은 사실을 토대로 한 서사의 재구성, 박진감 있는 근접 액션과 배우들의 섬세한 내면 연기들을 통해서 일제강점기 의열단의 비장한 삶과 생존과 대의 사이 경계인으로 고뇌하는 '밀정'의 삶을 성공적으로 그려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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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리뷰어. 2013년 계간 <문학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명왕성 소녀>(2023), <물 위의 현>(2015), 캘리그래피에세이 <캘리그래피 논어>(2018), <캘리그래피 노자와 장자>, <사랑으로 왔으니 사랑으로 흘러가라>(2016)를 펴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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