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뉴스나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데 주된 의의가 있는 영상매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걸까? 그건 아마도 영화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보다, 작가의 관점과 상상력을 더해 사실을 재구성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영화 <밀정>은 일제강점기라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을 다루는 영화일수록 후대 사람들의 평가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은데,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라면 그 정도가 얼마나 더 하겠는가? 애국이라는 말의 절대적 당위성 때문에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지,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된다.

이 영화에서 송강호가 분한 이정출이란 사람도 그가 의열단원이든 아니든 간에 수많은 독립 운동가를 잡아들인 공으로 출세했다는 사실에서만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만큼 역사적 평가는 냉혹한 것이다. 아무리 좋게 평가하더라도 이정출이라는 사람은 박쥐처럼 이리 붙었다가 저리 붙었다가 하는 박쥐 같은 인물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황옥에 대한 평가

 송강호 주연 <밀정>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런데 왜 하필 이런 사람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든 걸까? 후대에서 바라본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 경험한 현실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의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 하지만 대의명분을 떠나, 한 인간의 심리적 갈등도 일면 이해가 간다. 적어도 나처럼 나약한 인간에게는,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영웅은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공감의 대상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1920년대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 그야말로 암흑과 같은 시기였다고 한다. 3·1 항일운동 이후 독립투사에 대한 감시와 핍박은 점점 심해졌고,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언 이후로 외국과의 외교를 통해 독립을 이루려 했던 사람들도 별다른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럴 때 나라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정말 폭탄이라도 있다면 던지고 싶은 심정이 들지 않을까? 아니면, 정말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그런다고 독립이 되겠어?' 하고 불의한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고 출세를 꿈꾸게 되진 않을까? 아마도 이 두 극단의 감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될 것 같다. 하루에도 수백 번을.

혼란의 시대를 산, 한 인간의 고뇌

 <밀정>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누군가 내게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를 묻는다면, 그건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도, 어떤 교훈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독립투사의 이야기는 아니니까.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 이정출과 그의 실제 모델인 황옥 사이에는 실제로 엄청난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어떤 마음을 품고 의열단의 폭탄 반입을 도운 건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계속된 감시와 폭압 속에서 언제 누구에게 배신당할지 모르는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은 불의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고민해볼 기회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고민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고민과 너무나 닮았다.

우리는 매일 무얼 먹을까, 무얼 마실까를 걱정하며 사는 존재다. 커피전문점에만 가도 어떤 커피를 시켜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고, 시럽은 넣어야 할지 아니면 말지를 수없이 고민하게 되는 갈대 같은 존재다. 하지만, 우리 삶에 정말 중요한 문제에 관해서 우리는 얼마만큼의 선택권을 가지고 살까?

어쩌면, 우리 삶에 관해서 우리가 진짜 할 수 있는 선택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절망 속에서도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건 우리 선조들이 그런 조건 속에 살면서도 수없이 많은 무모한 도전을 했다는 것이고, 그들이 비록 삶은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더라도 뜻 있는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일 것이다. 비록 우리가 그들과 같은 죽음을 택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의 빚은 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밀정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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