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밀정>은 팩션 영화이다.

영화 <밀정>은 팩션 영화이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영화 <밀정>은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팩션이란 사실에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것이다. 황옥은 일제 식민 지배 당시 경찰이었다. 1923년 어느 날, 의열단원 김시현이 일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자 상해에서 폭탄을 제조했다. 이후 친일파의 밀고로 이 폭탄이 황옥에 의해 국내 반입된 사실이 탄로 난다.

당시 황옥의 상관은 의열단을 일망타진하고자 황옥을 침투시켰다고 증언했다. 황옥도 의심을 사지 않도록 의열단원이 모두 경성으로 모인 뒤 일망타진해 공을 세우려 했던 것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몇몇 독립운동가들은 다르게 말한다. 일제가 가족을 볼모로 협박해 황옥이 거짓 진술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증언도 있고,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도 독립군 생도들에게 황옥이 의열단원이었고 불행히 체포됐을 뿐이라고 소개했다.

황옥이 1920년에 김상옥을, 1922년에 김지섭을 도왔다는 기록도 있다. 진실에 대한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해방 후 황옥이 납북되면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도 영영 사라졌다. 학계는 자료 부족 등을 이유로 황옥이 친일파였을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싣는다.

'위장 친일파'와 '위장 의열단' 사이

반면 영화 <밀정>은 황옥이 위장 친일파였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분법적 공식 자체를 거부한다. 영화는 황옥을 형상화 한 이정출 경부(송강호 분)를 통해 질문을 던진다. 현실의 인간은 과연 대의에 따라 움직일까. 아니면 매 순간 선택의 기로 앞에서 갈등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인간에 가까울까.

영화는 군자금을 마련하던 의열단원 김장옥(박희순 분)이 발각되고 포위된 김장옥을 이정출이 설득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옛 친구였던 김장옥에게 이정출은 "너는 이 나라가 독립될 것 같냐, 어차피 기울어진 배"라고 설득한다. 그러자 김장옥은 "기울어진 배에 쥐들이 가장 먼저 빠져나가지, 사람이 어떻게 쥐와 함께할 수 있겠나"라고 말하고 자결한다.

김장옥의 죽음은 의열단 내부 정보가 샜기 때문이고, 이를 알게 된 의열단은 뒤숭숭해진다.  사실 의열단은 이정출이 밀정이라는 것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오히려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은 <손자병법>의 '반간계'를 제시해 김우진을 설득한다. 이정출을 이중 스파이로 만들자는 뜻이다. 끊임없는 설득으로 이정출을 이중 스파이로 포섭하지만 이정출은 "다시 만날 때는 내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장담 못 한다"며 변심의 가능성을 내비친다. 그럼에도 이정출은 의열단을 돕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단점은 큰 줄거리 상 반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흑백논리 역사 해석을 거부하는 <밀정>은 나름의 독립적인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단점을 장점으로 변모시키고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는 '현실적인 인간'들을 재조명한다. <밀정>에서 인물이 임무를 완수하는 방식이 '불신'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이정출은 조선인 출신으로 경찰 고위직까지 올랐지만 일제의 필요에 의해서일 뿐 일제는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형식상 동료일 뿐인 하시모토(엄태구)를 그의 곁에 붙였다는 게 증거다. 하시모토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이정출을 감시한다.

영화의 백미는 바로 상해에서 폭탄을 싣고 경성으로 가는 기차 내부 신이다. 이정출은 의열단이 폭탄을 경성으로 옮긴다는 정보가 샜음을 김우진에게 알리고, 이후 하시모토와 이정출, 김우진 간 두뇌싸움이 진행된다. 이정출의 정체를 눈치 챈 하시모토가 분노하고 이윽고 열차 내부에서 총격전이 벌어진다. 특히나 김우진이 이정출에게 "지금!"이라 외치며 하시모토를 처단할 기회를 주는 장면이 뇌리에 콕 박힌다.

허구적 상상력이 반영된 결과지만 공유의 "지금"이라는 대사는 선택의 기로에 선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체 상영시간 중에서는 매우 짧게 묘사되지만 그 중요도는 절대 가볍지 않다.

실제 역사에서 황옥이 이 순간 이후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알 수 없다. 황옥도 인간이라면 자신의 전체 삶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 순간'에 직면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순간은 그 자체로 진리가 아니고 무엇이랴, 또 누구든 '이 순간'에 직면하지 않을까.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밀정>은 미덕을 갖춘 영화다. 하지만 완벽한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정출의 내적 갈등만큼은 아니어도 변심하는 의열단원인 조회령(신성록)의 갈등도 중요해 보이는데 충분히 묘사되지 못해 아쉬웠다. 러닝타임의 압박으로 통편집한 부분이 있다지만 아쉬원 건 사실이다. 연기나 연출, 음악적 측면에서 즐길 거리는 풍성하다. 송강호, 공유 등의 표정 연기나 액션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카메오의 등장도 흥미로웠다.

이 영화로 엄태구라는 배우를 재발견했다. 영화 한편에 송강호와 공유의 정서적 연기 호흡이 존재한다면 다른 편엔 송강호와 엄태구의 불신과 수 싸움의 호흡이 존재했다. 결정적 순간마다 등장인물들의 선택을 재촉하는 듯 '째깍째깍' 들리는 적절한 배경 음악도 몰입도를 높였다.

메시지의 측면에서 결말은 훌륭하지만, 불가피하게 감점 요소가 있다. 실제 역사도 영화처럼 의열단원이 모두 체포되며 이정출도 마찬가지다. 법정에서 이정출은 "일본 경찰로서 임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역사에서 황옥의 본심은 그 자신만 알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끝까지 이정출에 대한 가능성을 놓지 않으며 허구적 상상력을 제시한다.

체포 직전 김우진은 이정출에게 폭탄을 넘기고, 이정출은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자 숨겨뒀던 폭탄으로 일제 고위 관료들의 연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며 의열단의 임무를 마무리한다. 폭파 전, 자신의 옛 친구였던 김장옥의 '사망' 문서를 상관인 히가시 부장에게 전달하고, 히가시 부장이 당황하자 부장에게 먼발치에서 건배를 청하면서.

이로써 선택의 기로에 선 인간에게 어떤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면 거창한 대의가 아니라 우정이나 사랑과 같은 기본적인 관계에서 비롯된 이타성에 찾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또한 의열단장 정채산의 "실패해도 그 실패를 딛고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도 전하면서, 대의에 대한 인간의 비장함 역시 가능성을 열어둔다.


영화가 아무리 현실의 이분법에서 독립을 선언해도 그 자체로 완벽한 현실로 존재할 수는 없다. 영화는 어쨌든 현실의 인간에서 비롯된다. 황옥의 본심은 그 자신만이 안다. 그렇다면 이정출에게 적용한 논리가 친일파 후손들에게 악용될(많은 이들이 자신의 선조가 '위장 친일파'였다고 주장한다) 수도 있다. 혼란스러운 것은 혼란스러운 대로 남겨두는 것도 인간적이지 않을까.

물론 <밀정>의 결말은 관객과의 타협일 수도 있다. <밀정>은 소위 관객을 취하게 하는 '국뽕(국가+히로뽕)' 영화라기 보다는 생각을 유도하는 영화다. 끝까지 혼란을 남겨뒀다면, 분명한 정답과 선악 구분을 원하는 대중의 호응을 끌어내는데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다. 대중이 얼마나 혼란을 견딜 사유의 힘이 있는지도 중요하다. 따라서 <밀정>이 과연 어떤 호응을 끌어내는지 여부도 주목할 만하다.

몇몇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밀정>은 추천한다. 순간과 선택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밀정 송강호 공유 이병헌 한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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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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