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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기 군수 일행이 안면읍 대야도 인근의 서재문씨 양식어장을 둘러보고 있다. 서씨의 어장에서는 오전과 오후 계속해서 폐사된 우럭이 떠오르고 있다.
 한상기 군수 일행이 안면읍 대야도 인근의 서재문씨 양식어장을 둘러보고 있다. 서씨의 어장에서는 오전과 오후 계속해서 폐사된 우럭이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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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 출하하려고 지난 3년간 자식처럼 정성껏 키웠는데…. 내 영혼도, 돈도 모두 갖고 죽어버렸다. 재해 지역으로 선포가 되더라도 1등급이 최고 5000만 원까지 밖에 지원이 안 된다. 피해를 회복할 생각만 하면 막막하다. 재해등급의 승격으로 추가 지원금이 절실하다."

충남 태안군 안면읍 대야도 인근 어장인 천수만 일원에 80개 규모의 수조를 갖고 우럭 양식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서재문(태안양식 제155호)씨는 망연자실했다. 3년 전 우럭 치어를 사와 올해 추석 출하를 기대했던 그였다. 3년 동안 매일 어장에 나와 정성껏 사료를 주면서 출하날만 손꼽아 기다려왔던 그였다.

하지만, 추석을 한 달 여 앞두고 서씨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출하 직전이라 살이 통통하게 오른 우럭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더니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지난 10일부터는 집단 폐사한 채 물 위에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높아진 수온 때문이었다.

서씨는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보상의 길이 있을까 해서 우럭 폐사가 시작된 10일부터 매일 폐사 우럭 양을 확인해 수첩에 적었다. 사진도 근거로 남겼다. 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수온은 더 높아졌다. 서씨의 우럭어장은 폐사 우럭 사체들로 썩은내가 진동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고수온으로 인해 천수만 일대 가두리양식장에서 키우던 우럭이 집단폐사했다. 뒷쪽으로는 폐사된 우럭을 양식장 직원들이 뜰채로 걷어내고 있다.
▲ 자식같이 키운 우럭 집단폐사에 어민 망연자실 고수온으로 인해 천수만 일대 가두리양식장에서 키우던 우럭이 집단폐사했다. 뒷쪽으로는 폐사된 우럭을 양식장 직원들이 뜰채로 걷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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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는 아침에 어장에 나가 그동안 자식처럼 키워온 폐사 우럭을 건져냈다. 오후가 되면 오전에 건진 만큼 폐사된 우럭을 물 밖으로 빼냈다. 한 수조 수면을 가득 덮을 정도였다. 서씨의 한숨은 날로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씨는 "수온이 30℃를 넘는 날이 지속되다 보니 물고기들이 탈진해서 견디다 다 죽어버렸다"라면서 "광복절부터 폐사 우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5일에 1만7500마리(미), 16일에 6만7500마리가 순식간에 죽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특히 17일은 백중사리로 바닷물이 많이 차가워질 시기임에도 수온 변화가 없었다"라면서 "우리는 파산했다, 다시 양식을 하려면 해양수산부가 재해구역으로 지정해 정책자금 300억 원을 피해 어민들에게 지원해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보험 가입은 82어가 중 7어가 수준... 재난기금에 의존할 수밖에

지난 17일 고남면 탄개항 최풍우씨 양식어장을 찾은 한상기 군수가 폐사된 우럭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 폐사된 우력을 유심히 보고 있는 한상기 태안군수 지난 17일 고남면 탄개항 최풍우씨 양식어장을 찾은 한상기 군수가 폐사된 우럭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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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은 비단 서씨만의 일이 아니다. 서씨의 양식어장에서 배로 20여 분 떨어진 고남면 탄개항도 마찬가지였다. 탄개항 인근에서 8ha 면적에 1766만여 마리의 조피볼락(우럭)을 양식하고 있는 최풍우씨도 급작스러운 집단 폐사에 넋을 잃고 말았다.

매일 뜰채로 죽은 우럭을 건져내고 있지만 우럭 사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다. 기자가 양식장을 방문한 지난 17일 오후에도 최씨의 가두리 양식장에는 산소공급기가 가동되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죽은 우럭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폐사 우럭 때문에 양식장은 썩은내가 진동했다. 최씨가 지난 17일까지 폐사한 우럭을 집계한 결과, 200만 마리 이상으로 파악됐다.

특히, 최씨는 행정기관의 재난특구지역 지정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최씨는 태풍 등에만 적용되는 풍해보험만 가입해 이번처럼 수온 상승으로 인한 수해보험 발생시에는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최씨처럼 자연 재해로 인한 피해를 입었지만 실제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어가는 소수다. 태안 지역 피해 어가 82곳 중 고작 7곳에 그친다. 전적으로 재난피해보상에 매달려야 하는 실정이지만, 이조차도 쉽지 않다. 재해등급 1등급으로 판정을 받더라도 최대 5000만 원까지 밖에 보상이 안 돼 양식 어가들은 파산 직전의 상황에 놓이게 됐다.

긴급대책회의 개최... 보상대책 등 피해어가·태안군 머리 맞댔다

태안군의회 의원들이 지난 17일 집단폐사된 양식어가를 방문, 피해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용희 의장은 "폭염으로 피해를 본 천수만 일대 어민들의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군과 협력하여 의회 차원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태안군의회 의원들이 지난 17일 집단폐사된 양식어가를 방문, 피해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용희 의장은 "폭염으로 피해를 본 천수만 일대 어민들의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군과 협력하여 의회 차원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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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지역 가두리 양식 어가들의 피해가 확산되자 국립수산과학원이 조사에 나섰다. 또한 해양수산부, 충남도, 태안군까지 나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지난 17일 한상기 태안군수를 비롯해 태안군의회 의원 등은 현장을 방문해 피해 어가를 위로한 뒤 안면읍사무소에 모여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이날 대책회의에서는 '집단 폐사한 폐사어 처리 문제'를 비롯해 '보상대책' '사후대책' 등이 논의됐다.

어류 집단폐사의 피해 규모는 아직 공식적으로 집계·발표되지 않았다. 피해 어가들이 자체적으로 폐사 개채수를 파악해 보고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태안군은 이번 집단 폐사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폭염'으로 짚었다. 태안군은 최근 폭염이 지속됨에 따라 7월 말부터 수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어체 면역 기능 및 활성이 저하돼 집단 폐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중 8월 10일부터 16일까지는 고수온 현상으로 인한 폐사 피해가 더 심각했다고 분석했다. 현장조사 결과, 사육 밀도가 높은 양식장일수록 폐사 피해가 컸다고 파악했다. 조만간 국립수산과학원의 공식 발표가 나오면 보다 정확한 집단 폐사 원인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폐사어 처리와 관련해서는, 해상 투여나 육지 매립 등도 거론됐지만, 결국 어민들이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김우식 안면도해산어양식협회장은 "폐사어를 육지로 올려 처리하는 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어민들이 자체적으로 처리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상기 태안군수는 "향후 문제가 되지 않도록 사과농장 등과 협조하는 등 잘 처리해달라"고 답했다.

보상 대책과 관련해서는 태안군과 충남도, 수협, 어촌계 대표, 면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반을 구성해 피해 상황을 일보식으로 집계한 뒤 재난구역 선포시 재난기금을 지원받을 것인지 보험금을 수령할 것인지를 어민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부분 피해 어가가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상황으로,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라 재난기금을 지원받아야 하는 현편이다. 1등급 판명시 최대 5000만 원까지밖에 지원이 안 돼 제도 개선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김우식 안면도해산어양식협회장이 재해법을 개정해 재난지원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재난지원금 상향해야 김우식 안면도해산어양식협회장이 재해법을 개정해 재난지원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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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식 안면도해산어양식협회장은 "재해법에 따르면 1등급이 5000만 원까지밖에 지원이 안 돼 수협중앙회를 통해 보험도 들고 있다, 현재도 손해사정사가 나와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라면서도 "그런데 보험에 가입할 때는 다 보상될 것처럼 설명해놓고, 막상 사고가 터지면 어민들과 싸우면서 피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재해법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라면서 "재난등급을 올려서 지원금을 올려주는 방안이 절실하다"라고 강조했다.

천수만 일대 양식어가에서 집단폐사가 확산되자 한상기 태안군수를 필두로 지난 17일 안면읍사무소에서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 머리 맞댄 태안군과 양식어가들 천수만 일대 양식어가에서 집단폐사가 확산되자 한상기 태안군수를 필두로 지난 17일 안면읍사무소에서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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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기 태안군수도 "국가 정책에 문제가 있지만 제도를 개선하려면 시일이 오래 걸린다"라면서 "보험과 재해지원금의 중복 지원은 없어 둘 중 보상이 많은 쪽을 선택해야 하는데 군에서 어민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자료를 준비해 손해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치어 구입 근거라든가 판매증명서 등 입증서류를 보험사에 제출해 인정받을 수 있도록 자료를 잘 준비하고, 자연 재해로 인한 피해이기 때문에 너무 상심하지 말고 지혜를 모아서 대책을 마련해보자"라고 말했다.

이번에 천수만 일대 가두리 양식장에서 집단 폐사한 조피볼락의 성장적정수온은 15~18℃다. 수온이 25℃ 이상으로 상승하면 생리기능이 떨어지고, 고수온 상태에서 장기간 있을 때 폐사율이 높아진다(국립수산과학원 조피볼락양식 표준지침서(2007)에 근거).

천수만 일대 수온은 지난 8월 1일 28℃를 시작으로 꾸준히 28℃ 이상을 유지하다가 집단 폐사 조짐이 감지되기 시작한 10일에는 29℃, 11일 30℃를 넘어섰다. 12일에는 31.484℃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6일 측정한 결과 29.765℃를 기록해 수온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달 말까지 고수온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어민들의 근심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태안신문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태그:#우럭 폐사, #천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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