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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5시 광화문에서 진행된 '일하다 숨진 하청노동자를 기억하는 시민추모문화제'에서 편지 한 통이 낭독됐습니다. 지난 6월 23일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 수리기사를 추모하며 삼성전자서비스 고양센터 수리기사 윤종선씨가 쓴 편지입니다. [편집자말]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 수리기사를 추모하며

당신의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누가 갔어도 죽었다'. 모든 동료기사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불과 얼마 전 구의역에서 목숨을 잃은 하청노동자의 추모제에 다녀왔는데…, 너무나 억울하고 분합니다. 하청 노동자가 얼마나 더 죽어야 합니까?

사측은 "안전장비를 지급했으니 책임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고인에 대한 애도보다 책임 회피가 우선이었던 그는 노동자를 과연 무엇이라 생각했던 걸까요? 고인이 사경을 헤매던 순간에도 실적압박 문자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삼성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더 일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성수기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땀 뻘뻘 흘리며 숨 가쁘게 밀려드는 일을 처리하고 있을 때에도 어김없이 문자가 옵니다.

'한 건이라도 더 빨리 처리해라. 늦은 시간이라도 더 처리해라. 비 온다고 내일로 넘기지 말아라.' 정신없이 수리하는 와중에도 빨리 처리하라는 문자를 보면 '헉' 하고 숨이 막힙니다.

추모 편지를 읽고 있는 윤종선씨.
 추모 편지를 읽고 있는 윤종선씨.
ⓒ 안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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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올라가 수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공포감! 여기서 떨어지면 죽겠지?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갑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죽음을 생각하며 실외기를 고칩니다. 누가 떨어져서 죽고 싶겠습니까? 우리는 안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안전고리를 걸 수조차 없고 스카이차를 부를 수 없는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이 타면 안 되는 사다리차를 타는 것조차 사치였습니다. 스카이차를 부르기 위해서는 고객의 클레임과 사측의 실적 압박을 견뎌야 합니다. 또 건당 수수료 체계 때문에 몇 시간동안 돈을 벌지 못합니다.

수리기사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우리는 죄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삼성은 모든 책임은 수리기사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삼성의 옷을 입고 삼성에서 지급한 장비를 들고 삼성 제품만 고쳤는데 자신들과 상관없다고 합니다. 위험한 작업은 떠넘기고 안전에 관해선 "우리는 돈만 주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삼성은 목숨값이라며 위험수당 5000원을 쥐어줬습니다. 한 센터 사장은 "떨어질 때 잘 떨어져라, 내장이라도 터지면 폐기물 처리비용이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건당 수수료 때문에 죽을 힘을 다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픕니다. 저도 얼마 전 허리를 다쳐 쉬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해야만 했습니다. 한 건이라도 더 해야 우리 막내딸이 좋아하는 자장면 한 그릇이라도 사줄 수 있고, 한 건이라도 더 해야 큰 아이 학원을 보낼 수 있습니다. 비수기 때 생활고로 받은 대출금 이자도 갚을 수 있습니다.

개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참으로 오랜 세월을 참고 견뎌왔습니다. 고인의 자녀가 장례식장에 적어 놓은 포스트잇에 눈물이 쏟아집니다.

장례식장에 비치한 추모 공간에 고인의 딸이 남긴 포스트잇.
▲ 추모 포스트잇 장례식장에 비치한 추모 공간에 고인의 딸이 남긴 포스트잇.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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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고생 많았어요. 그리고 고마웠어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그리고 거기서는 일하지 마세요."

이대로는 안 됩니다. 남은 자의 몫을 다 하겠습니다. 남은 우리는 당신의 죽음을 받아 안고 사람답게 살기위해 싸우겠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를 멈춰야만 합니다. 안전은 비용이 아닙니다.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영면하소서.

일하다 숨진 하청노동자를 기억하는 시민추모문화제에서 삼성전자서비스 고양센터 수리기사 드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함께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그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함께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그림.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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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삼성전자서비스지회, #수리기사,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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