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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어촌 마을 풍경
 작은 어촌 마을 풍경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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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려는 거야~?"

내가 빽 소리를 질렀다. 필리핀 청년이 나를 힐끗 돌아봤다. 무표정한 눈빛으로. 그는 다시 바다에 떠 있는 방카(필리핀 전통 보트)를 향해 팔을 휘저었다. 이 남잔 왜 나를 배에 태우려는 거지? 설마, 납치?

팔라완 남부 끄트머리의 항구 도시 리오 투바(Rio Tuba). 나는 오늘 아침 푸에르토프린세사에서 로컬버스를 타고, 남부 끝에 있는 항구 도시인 이곳까지 곧장 내려왔다. 닭, 개, 짐 보따리, 승객들로 버스 지붕 위에까지 꽉꽉 들어찬 낡은 버스에 실려 장장 8시간 동안. 다리가 저려 쥐가 오르도록. (외국인 승객은 나뿐이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이람.

나는 무슨 똥배짱으로 혼자 여기까지 내려왔지? 무슬림 위험지역이라고 알려진 곳이라 여행자들의 발길이 뜸한 곳인데. 이지상 여행작가의 <언제나 여행처럼>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왜 우리는 이렇게 위험한 지역, 위험한 인생을 스스로 택하는 걸까? 만용 때문일까? 남에게 잘난 체하고 싶어서일까? 물론, 유치한 소영웅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험심은 우리 속에 깃든 본능이다. 그것은 더 큰 자아를 찾고자 하는 성스러운 충동이며 통과의례이다.' 

그랬다. 모험심, 만용, 그리고 호기심까지, 이 여행을 감행하도록 나를 부추겼을 게다. 게다가 나는 이 여행 중에 결코 불행한 변고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미신 같은 믿음도 까닭 없이 강했다.  

내 가방을 메고 나를 배에 태우려는 낯선 남자

어쨌든 머리 가죽을 태워버릴 듯이 뜨거운 열대 오후의 햇살 속에서, 뭔가 잘못 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거였다. 한기처럼 엄습해오는 두려움에 질려 덜덜덜 떨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선 온통 납치, 살인, 강도, 몸값, 무슬림, 반군... 같은 단어들이 날뛰었다. 수상가옥촌의 끄트머리인 나무판자길 위에 위태롭게 서서.    

"당신, 누구야! 이봇이야? 빙빙이야?"

나는 다시 악을 쓰듯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청년은 영어를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지 아니,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건지, '예스, 노'처럼 간단한 대답조차 주지 않았다. 방카를 향해 바쁘게 팔을 휘저을 뿐. 나는 계속해서 '너 누구야? 날 어디로 데려 가려는 거야?' 비명을 지르듯 악을 써댔다. 그대로 당장 도망치고 싶었지만, 내 배낭이 그 키 큰 청년의 등에 단단히 메어 있었다.

내 비명 소리를 들었는지 수상가옥에서 주민 서너 명이 몰려나왔다.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영어할 줄 아는 사람 있어요? 도와주세요!"

하지만 그들은 까맣고 커다란 눈망울로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 젠장! 배낭을 버리고 도망쳐야하나?  

"무슨 일인가요?"

그때, 삐쩍 마른 한 노인이 영어로 물으며 다가왔다. 나는 잽싸게 노인에게 붙어 섰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지푸라기를 움켜지는 심정이 이럴까. 그리고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흥분해 횡설수설...

"... 이봇이나 빙빙이라는 사람이 마중 나온다고 했어요. 푸에르토프린세사에 사는 내 친구가 연락했다고... 체 라징 하우스라는 숙소로 나를 안내해줄 거라고 했는데... 이 사람이 버스에 올라와 내 배낭을 둘러메고 따라오라고 손짓해서... 날 마중 나온 사람인줄 알았죠. 그런데 누구냐고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요. 왜 나를 여기로 데려와 방카에 태우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

"나는 한국 사람이랑 친구예요. 미스터 박 알아요? 미스터 유는? 다 내 친구예요. 내가 도와줄게요."

나는 노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는 미스터 박이나 미스터 유가 누군지 모르지만. 여하튼 아군이 나타났다 싶으니 용기가 솟았다. 다짜고짜 사납게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내 배낭을 그의 등에서 벗겨내 낚아채 왔다. 배낭을 뺏긴 청년은 입술을 삐죽이더니, 곧바로 수상가옥촌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노인의 뒤에 바짝 붙어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덜덜덜 떨리는 다리로.

노인이 숙소를 찾아주었다. 안 사장이 일러준 숙소는 수상가옥촌의 지척에 있는 항구 마을에 있었다. 150패소짜리(약 4천 원) 숙소치곤 깨끗했다. 나는 곧바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 위로 쓰러졌다. 일사병에 걸려 쓰러진 개처럼 헐떡거리며. 놀란 가슴이 벌렁벌렁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떨었던지 빙빙이라는 사람이 올 때까지 지켜주겠다며, 노인이 자진해서 방문 앞에 앉아 보초를 서주고 있는데도.

정말이지 심장이 콩알만하게 졸아들었다. 그러니 이제 막 시작한 팔라완 남부 여행을 앞으로 어떻게 하지? 그 남잔 정말 누구였을까? 인상은 선해 보였는데... 나를 왜 방카에 태우려고 했을까? 정말 나를 납치하려고? 밖에 나가면 누가 또 나를? 빙빙은 왜 버스가 도착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머릿속에서 벌떼처럼 일어나 아우성인 질문들.

나는 배가 몹시 고팠지만 밥을 사먹으러 밖으로 나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팔라완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졸기는 처음이었다. 빙빙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5월 28일, 팔라완 여행 28일째였다.

하늘을 찌를 것 같던 내 자만심이 무너졌다

니켈 광산에서 항구까지 붉은 흙을 실어나르는 트럭. 안전모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도로를 쓸고 있다.
▲ 리오투바. 니켈 광산에서 항구까지 붉은 흙을 실어나르는 트럭. 안전모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도로를 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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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좁은 팔라완 섬은 주도인 푸에르토프린세사를 중심으로 남부 지역과 북부지역으로 나눠져 있었다. 그동안 내가 한 달 가까이 여행한 북쪽 지역은 관광지역이였다. 특히 유럽에서 온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현지인들은 거의 가톨릭 교도이고, 어딜 가나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렵지 않았다.

남부지역은 그런 북부지역과 딴판이었다. 남부는 산업지역이라고 했다. 필리핀에서 소요 되는 수산물의 40퍼센트가 팔라완에서 잡히는 물고기라니. 해안선 안쪽으론 정글이 우거진 험준한 산악지대였다. 현지인은 거의 무슬림들이고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놀랐던 심장이 좀 진정되자 리오 투바 시내부터 이 항구 마을까지 오는 동안 버스차창으로 내다봤던 풍경들이 떠올랐다. 리오 투바는 온통 빨간색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집도 지붕도 도로도 빨갰다. 빨랫줄에 걸린 빨래도 빨갰다. 코코넛 나무 이파리도 빨갰다. 붉은 도로를 비질하고 있는 사람들이 100여 미터마다 도로가에 나타났다. 안전모와 방진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주변이 그토록 붉은 이유를 나는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일이 분에 한 대씩 지나가는 트럭 때문이었다. 적재함에 황토를 가득 싣고, 붉은 흙먼지를 펄펄 날리며, 끊임없이 항구로 달려가는 2톤 트럭들. 리오 투바는 일본기업에서 니켈을 채굴하는 광산지로 유명했다. 그런데 십 수 년 동안 트럭이 저렇게 내달렸나? 천막으로라도 적재함을 덮으면 흙먼지가 덜 날릴 텐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 낯선 풍경들을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수상가옥촌 쓰레기...
 수상가옥촌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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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떠오른 풍경은 '쓰레기'였다. 버스터미널 구석구석, 길가 곳곳에 동산처럼 쌓여 방치되고 있는 쓰레기들. 수상가옥 촌 아래 탁한 바닷물에도 페트병이나 비닐 쪼가리 같은 산업쓰레기들이 둥둥 떠 있었다. 악취가 진동하는 것만 같았다.

팔라완 북쪽 지역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페트병 하나, 담배꽁초 하나 버리는 것도 철저히 감시하고 있으니. 팔라완 남부지역은 '개발'이 안 된 청정지역이 아니라, 오히려 '관리'가 안 된 오염지역처럼 보였다. 게다가 숙소를 들어서기 전에 '말라리아 위험 경고판'이 서 있는 것도 봤다. 말하자면, 인류 역사상 인간의 생명을 가장 많이 빼앗은 위험한 생명체 1위, 2위가 이곳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모기와 인간.'  

아, 젠장! 첫인상이 이렇게 실망스럽다니. 으, 어쩌지? 남쪽 여행은 접고, 팔라완 여행을 그만 끝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후 5시께 마침내 빙빙이 도착했다. 빙빙은 건장한 체격의 30대 후반의 여자였다. 수인사를 나누자마자 나는 배가 고프다며 배를 틀어잡고 죽는 시늉을 했다. 간단하게 뭐라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겠냐며.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를 보냈는데..."

버스터미널 옆의 작은 식당에서 밥과 닭고기 아도보를 먹었다. 모래알을 씹는 것 마냥 입맛이 까칠했다. 기운을 차리려면 그래도 먹어둬야 했다. 빙빙은 아직 식사 때가 아니라며, 내 앞에 앉아 물만 마셨다. 나는 밥을 다 먹은 후, 오늘 왜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았는지, 그녀에게 따져 물으려다 관뒀다. 그 대신 내가 오늘 겪은 얘기를 했다. 내가 눈 돌아가게 얼마나 식겁한 일을 당했는지.

"내 남동생이에요. 갑자기 일이 생겨 늦을 것 같아서 남편과 나 대신 내보냈어요."

나를 납치하려고 했던 청년이 빙빙의 동생이라고? 헐! 이럴 수가! 나는 냉수를 한 모금 급하게 들이켜고 다시 물었다.

"왜 숙소를 찾아주지 않고... 방카를 태우려고 했죠?"
"내 말을 잘못 들었나... 아마 동생이 우리 집으로 데려오려고 했던 것 같네요. 그리고 동생은 영어를 전혀 못해요."

내가 혼이 반쯤 나간 사람마냥 악을 써가며,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벗어났던 그 '납치 사건'의 전말이 그랬다니? '오해'였다니? 귀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날 밤 곰곰 생각해보니, 나의 그 '오해'는 내 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었던 두려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니까 팔라완 남부지역은 여행위험지역으로 한국 뉴스에 자주 떴다. 이유는 무슬림들이 사는 곳이기에. (물론 필리핀에서 악명 높은 한인 살인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과는 바다 건너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다.) 어쨌든 나는 푸에르토프린세사에서 몇 년 혹은 몇 십 년 거주하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여행정보를 얻으려고 시도해봤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위험하다기에 남쪽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다고들 했다.

그 정도 분위기면 나도 이 여행을 접어야 했을까? 반면, 필리핀 사람들은 남쪽 지역이 위험하냐는 내 질문에 모두 세게 도리질을 쳤다. 무슨 그런 황당한 얘기를 하냐며. 사람 사는 곳이 어디나 그렇듯 동네 깡패도 있고, 사건사고도 가끔 일어나지만, 이 이상은 아니라며. 팔라완의 무슬림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착한 사람들이라며. 나는 전적으로 현지인들의 말을 신뢰하기 때문에, 이 여행을 단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무섭지 않았다. 자신 있었다.

그래도 한국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안 사장님의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안 사장은 리오 투바에서 수산업을 하고 있는 50대 한국인이었다. 푸에르토프린세사에서 필리핀 아내랑 딸이랑 살고 있었다. 그는 내가 거기로 가는 날, 현지인들이 마중 나와 도와주도록 연락해 놓겠다고 했다. 그 '친절'을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렇게 '돌다리도 두들겨보며 건너왔건만', 결국 내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불안감이 그 난리를 쳤던 것이다. 겉으론 아닌 척했지만, 위험지역이라고 하도 떠들어대니 나도 속으론 좀 두려웠겠지. 나라고 별 수 있겠나? 무쇠 심장이 아닌데.

어니스트 베커의 글이 떠올랐다. '동물들은 생존하기 위해 공포의 반응이 필요했다.' 그런데 나의 그 반응이 너무 과했던 것이다. 위험을 감지하는 직관이 너무 과하게 작동했다.

어촌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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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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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빙빙이 자기 집에 가자며 나를 데리러 왔다. 작은 방카를 타고 남쪽 바다를 향해 달렸다.(어제 그 청년이 태우려고 했던 방카...) 뭉게구름이 뭉게뭉게 흐르는 맑은 날이었다. 잔잔한 바다를 20여분 달려 '비야비야'라는 어촌 마을에 도착했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니파 헛' 집들이 해안가에 10여 채 모여 있었다. 마을 앞엔 커다란 맹그로브 나무가 바다물속에서 높이 솟아 있고, 아이들이 그 주변에서 신나게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해안가 덕장에선 멸치와 작은 은빛 물고기들이 반짝반짝 말라가고 있었다.

거기, 그 청년이 있었다. 어제 나를 '납치(?)'하려고 했던 청년. 나는 얼굴을 붉히며 멋쩍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청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미소를 짓는 듯 했다. 그리고는 금세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그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를 찾아 동네를 헤매고 다녔다.

"빠쎈씨아 뽀!(미안해요!)" 
   
어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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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팔라완, #배낭여행, #리오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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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2017년도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출간. 유튜브 <은경씨 놀다>. 네이버블로그 '강누나의깡여행'. 2019년부터 '강가한옥펜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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