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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3살 늦깎이 중국 유학생입니다. 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올해 7월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기자 말

기세 높은 말 동상 뒤로 구름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윈난은 구름이 아름다운 도시였다.
 기세 높은 말 동상 뒤로 구름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윈난은 구름이 아름다운 도시였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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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졸업을 위한 논문발표까지 마무리했다. 이대로 귀국하기엔 아쉬웠다. 시간 여유도 있어 여행지를 물색했다. 지난 국경절 쓰촨성을 찾았을 때 저렴한 여행사를 이용했지만, 또 찾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오십만 원에 못 미치는 가격으로, 10일 동안 즐거운 추억을 쌓고 왔기 때문이다. 비록 가이드가 외국인 주머니를 털려다가 미수에 그친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웃으며 되새길 수 있는 추억이 됐다.

기껏 몇 번 경험으로 기고만장해진 탓일까. 다시 싼 여행사를 찾았다. 이번 윈난(云南, 운남)여행은 즐거움을 넘어 감동을 남긴 채 진저우로 돌아오리라 마음먹었다.

아름다운 윈난으로 떠나자!

푸다춰(普?措)국립공원 비경.
 푸다춰(普?措)국립공원 비경.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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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은 진저우에서 멀어 엄두를 내지 못하던 곳이었다. 중국 남서쪽에 위치한, 대륙에서 네 번째로 큰 성(省)이다. 리장고성, 호도협, 샹그릴라 등 인터넷으로 검색한 윈난 풍경은 나를 순식간에 매혹시켰다.

목적지를 정한 동시에 여행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중국은 지역이 넓어 대표 여행사에서 패키지 상품을 결제하면, 스케줄에 맞춰 알아서 여러 여행사를 연계시킨다. 지역이 큰 탓인지 한 번에 유명지 모두를 관광하는 상품은 찾을 수 없었다.

습관처럼 저렴한 가격 중심으로 검색한지 삼 일 쯤. 마음에 쏙 드는 상품이 눈에 들어왔다. 그 동안 조건에 맞아도 윈난여행에 외국인은 받지 않는다는 여행사가 많았기에, 가슴을 졸이며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외국인도 상관없단 말에 바로 입금하고 여행을 준비했다.

충격! 관광버스보다 못한 저가 비행기

여행 첫 날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덜렁 배낭만 메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탓이었다. 짐을 화물로 부치지 않아 샴푸며 세면도구 따위를 빼앗겼다. 동행한 친구도 액체류 몇 가지를 압수당했다. 꼼꼼히 준비 못한 걸 자책해도 이미 늦었다. 베이징에서 윈난 성도(省都) 쿤밍(昆明)까지만 5시간이 소요되기에, 무거운 마음을 재빨리 털기로 했다.

저가 비행기야 한국-중국을 오갈 때도 많이 이용했다. 그래도 국제선이라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여도 기본 요깃거리와 음료는 제공됐었다. 그러나 탑승한 비행기는 대박세일 초저가였던 것 같다.

항공권 포함 싼 가격일 때 눈치 챘어야 했다. 기내에선 물 한 잔 허락되지 않았다. 물 포함 모든 음식은 돈을 내고 사 먹어야 했다. 기내식 먹을 생각에 쫄쫄 굶었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5시간을 버티려니 배가 꺼질 듯 했다.

비행기 또한 가관이었다. 경비행기를 겨우 벗어난 크기였고, 의자도 고정돼 있었다. 비행기 좌석이 시내버스 마냥 움직이지 않는다. 덕분에 장시간 허리를 꼿꼿이 세워야 했다. 위생상태도 최악, 시트를 비롯한 곳곳에서 절은 냄새가 올라왔다. 다음부터 절대 싸구려 여행사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얼마나 되풀이했던지.

소매치기 당한 핸드폰, 악재는 끊이지 않고...

2위엔을 내고 입장한 카페에서 찍은 리장고성(?江古城).
 2위엔을 내고 입장한 카페에서 찍은 리장고성(?江古城).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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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면 몇 시간을 현지 기념품판매장에 가둬 놓는다. 살 마음도 없는 특산품 설명을 옹기종기 모여 들어야 한다. 가이드 주머니를 채우는 중요한 수단이기에 어쩔 수 없다. 쇼핑센터에 끌려 다닐 뿐 아니라 강매를 당하기도 한다.

맛없는 식사나 턱없이 부족한 관광시간, 실망스러운 옵션상품도 부록처럼 딸려 온다. 하지만 자연이 빚어낸 장관을 마주하면 단점들이 상쇄되어 기억을 미화시킨다. 세 번이나 여행사를 통해 추억을 남겼지만 그 지역 자체에 넌더리 난 경우는 없었다.

이런저런 단점들을 무던히 넘기고 있을 때쯤 리장고성(丽江古城)에 도착했다. 여러 TV프로그램에서 다룰 만큼 역사가 깊고, 동양미를 담뿍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TV에서 본 장면과 실제 가서 받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경관 자체는 빼어나지만, 관광객이 넘쳐 떠밀려 다니면 온전히 즐길 수만은 없다.

석림(石林)을 보기 위해 모여든 인파. 줄을 서서 관람할 정도로 사람이 많다.
 석림(石林)을 보기 위해 모여든 인파. 줄을 서서 관람할 정도로 사람이 많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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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리장고성 전경을 보고자 높은 곳을 찾자 가이드가 팁을 알려줬다. 정상에 위치한 전망대를 이용하면 5~60위엔(약 9000~1만1000원)을 지불해야 하지만, 근처 카페에서 2위안(약 400원)만 내면 비슷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고 했다. 조언대로 싼 가격에 즐겁게 사진을 찍고 사람들을 헤치며 내려왔다.

평소 따로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고, 핸드폰으로 모든 사진을 찍는다. 내려올 때 핸드폰은 가방에 곱게 넣었다. 그것이 화근이었을까. 내려와 가방을 확인하니 감쪽같이 핸드폰이 사라졌다.

"꺄악~!"

비명은 수백이 넘는 사람들 물결에 묻히고 말았다. 인파를 헤치고 도둑을 찾을 방도는 없었다. 전화를 걸어도 꺼졌다는 음성 뿐이다. 기계보다 찍었던 사진과 저장된 정보가 아까웠다. 나쁜 생각이지만, 핸드폰을 찾지 못할 바에는 폭발해버렸으면 좋겠다고 되뇌었다.

경찰이 가이드를 체포한 까닭은?

호도협. 사람들이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호도협. 사람들이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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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성에서 처음 만난 여자 가이드는 친절하고 재밌었다. 지루한 이동시간을 이용해 현지 사람들 특징이나 이런저런 사연을 알려줬다. 이 곳 소수민족은 성격이 호기로워 자극하면 칼을 맞을 수도 있다고 겁을 주면서 되도록 현지인과 싸우지 말 것을 당부했다.

반신반의하며 눈을 굴리자 가이드는 말을 이었다. 대학교 근처에서 배가 고파 구걸하던 거지를 어느 학생이 딱하게 여겨 빵을 사줬다고 한다. 며칠 안 돼 학교 내 칼부림이 났는데, 범인은 다름 아닌 그 거지였다.

평소 자기를 무시하던 학생들에게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현장에는 거지를 도와줬던 학생이 있었는데, 유일하게 멀쩡했다고 한다. 그 학생은 몇 백 원에 목숨을 구했다며 푼돈을 아끼지 말라며 말을 마쳤다. 곧 잊어버릴 그런 이야기였다.

다양한 관광 상품을 이용했기에 여러 가이드를 만난다. 그 중 샹그릴라 푸다춰(普达措) 국립공원을 안내한 가이드는 최악이었다. 시작부터 고객과 실랑이를 벌였다. 중국인이 불만을 내비치자 따라 내리라며 윽박질렀다. 그 관광객이 다른 팀과 합류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푸다춰(普?措)국립공원의 비경.
 푸다춰(普?措)국립공원의 비경.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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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다춰 국립공원에 도착하기 직전 고산이라 호흡에 무리가 올 것이라며, 산소스프레이를 사길 강요했다. 이미 구채구나 낙산대불, 아미산을 간 적이 있기에 그 곳보다 고도가 낮은 푸다춰에 입장하기 위해 따로 구입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가격 또한 터무니 없었다. 안 산다니 데려갈 수 없다며 차에서 내리게 했다.

황당했다. 이유를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허망하게 길거리에 서서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불만을 토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이드는 다시 돌아왔다. 여행사의 연락이 닿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길가에 차를 거칠게 대더니 눈을 희번덕대며 걸어온다. 여자 가이드가 해준 소수민족 성격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라 다리가 저려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 살아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경찰이 그를 불러 세우더니 냅다 경찰차에 태운다. 알고 보니 가이드가 불법주차를 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우리 가이드인데 어떻게 되나요?"
"교통법규를 위반했기 때문에 차는 견인될 거고 경찰서에 가야 합니다."

긴장이 풀렸다. 경찰에게 사정을 호소하자 택시를 잡게 도와준다. 무사히 푸다춰 국립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간담이 서늘해진 순간이었다. 한동안 머릿속에 '칼부림'이란 단어가 둥둥 떠다녔다.

빼어난 경관임에도 윈난이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이유

아침밥을 분주히 준비하는 윈난성 노점상들. 중국 다른 지방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아침밥을 분주히 준비하는 윈난성 노점상들. 중국 다른 지방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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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협 물살은 웅장했고, 샹그릴라 푸다춰 공원은 넋을 놓을 비경이었다. 리장의 밤 또한 매력적인 건 두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하지만 비행기에서 시작한 실망은 현지인들에 대한 서운함으로 이어졌다.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던 윈난은 두 번 다시 찾고 싶지 않은 최악의 여행지로 남았다. 그 곳에서 겪었던 불쾌함이 지역의 절경을 지워버리고 있었다.

윈난하면 떠오르는 것은 소매치기, 위협적인 가이드 등 부정적 이미지다. 값싼 여행사를 찾았다가 처참히 실패한 결과다. 내 과실이 큰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싼 게 비지떡'이란 옛말이 가슴을 후벼 파는 여행이었다.

내가 경험한 이 여행사보다는 낫겠지만, 저렴한 패키지상품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도 불쾌한 기억을 얻기 십상이다. 그들 또한 나와 같은 깨달음을 얻기를 바란다. 오로지 저렴한 가격으로, 만족할 만한 여행을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합리적 소비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태그:#중국유학, #중국여행, #윈난, #운남, #여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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