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피야에게 다가가는 플라토노프. 연극 <플라토노프>의 한 장면.

쏘피야에게 다가가는 플라토노프. 연극 <플라토노프>의 한 장면. ⓒ 극단 체


<플라토노프>는 체호프가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 타간로크에서 모스크바로 옮기기 전인 소년 시절에 집필한 작품이다. 잘 알려진 체호프의 작품들은 대부분 사실주의적 작품들인데 첫 번째 미완성인 이 희곡(1920년 발견)은 체호프가 풋풋한 시절에 썼던 것이기에 부제인 '스케치가 없는 도화지 위의 그림'처럼 미완성이라는 여백을 통해 상상력을 배가시킨다.

플라토노프(역 김은석)의 아내인 쌰샤(역 김희라)와 그의 주변을 맴도는 안나(역 권민중), 플라토노프의 첫사랑이자 현재는 세르게이(역 김동균)의 아내인 쏘피야(역 서지유). 이들은 세르게이와 쏘피야와의 결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만나 미묘하게 얽힌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여인이 플라토노프만을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남자들 또한 플라토노프를 견제한다. 그러나 이미 일상의 지루함에 빠져있는 플라토노프는 이런 시선들이 지겹게만 느껴진다. 플라토노프는 과연 새로운 사랑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체호프 작품의 특징은 수많은 인간 군상의 다양한 내면을 치밀하게 구성한다는 점이다. 남녀 간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질투와 견제, 이성과 감정의 갈등,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립 등 모든 복선을 깔아놓고 마치 폭풍전야처럼 갈등이 유기적으로 고조되다가 파국을 맞이한다.

장대한 스케일, 화려한 출연진, 역동적이며 섬세한 연출

 웃고있는 뻬뜨린(역 김응수). 연출을 맡은 강태식은 사람 중심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웃고있는 뻬뜨린(역 김응수). 연출을 맡은 강태식은 사람 중심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 극단 체


 열연중인 이바노비취(역 권성덕). 연극 <플라토노프>의 한 장면. <플라토노프>는 한 편의 종합 예술이다.

열연중인 이바노비취(역 권성덕). 연극 <플라토노프>의 한 장면. <플라토노프>는 한 편의 종합 예술이다. ⓒ 극단 체


연출을 맡은 강태식은 인간 내면에 중점을 두면서도 분석할 수 없는 사랑을 낭만주의적 감성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다.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과 가장 추한 부분까지 보여주는 체호프의 작품을 통해 누구나 가진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고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강태식 연출은 고전을 현대 무대에 옮겨놓을 때, 환경에 변화를 준다고 밝혔다. 그런 면에서 의상, 소품, 무대는 현대적 변형을 거쳐 새롭게 창조되었으며 그런 공간 위에서 배우들의 연기 또한 자연스러운 옷을 입은 듯 결말을 향해 녹아들었다.

특히 관능적인 미모와 목소리로 남성들의 시선을 끌었던 안나, 사랑의 고뇌와 갈등을 잘 표현해준 플라토노트와 쏘피야, 그리고 헌신적인 싸샤, 내면의 열등감을 잘 드러내준 니꼴라이(역 박정학), 중후한 톤으로 무대를 장악한 뻬뜨린(역 김응수), 시니컬한 그라골예프(역 최승일), 아직도 극장이 울리도록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퇴역 대령을 연기한 이바노비취 역의 권성덕, 깜찍하면서도 당찬 연기로 데뷔 무대를 장식한 뾰뜨르(역 김현주) 등 중견에서 원로까지 안정감 있는 호연에, 집시들의 매력적인 댄스와 변검의 마술 무대 밖 공간 활용까지 두루 볼거리가 풍성한 한 편의 초호화판 종합예술을 볼 수 있었다.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강 연출은 다음 작품으로 <세 자매>를 기획하고 있다 한다. 작품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운명이자 숙명, 그리고 소명"이라는 우직하지만 섬세한 강 연출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진다.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 그리고 연출가 강태식

 세르게이(역 김동균)를 놀리는 니꼴라이(역 박정학)연극 <플라토노트>의 한 장면.

세르게이(역 김동균)를 놀리는 니꼴라이(역 박정학)연극 <플라토노트>의 한 장면. ⓒ 극단 체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1860~1904)는 소년 시절부터 아버지의 파산으로 스스로 돈을 벌어 생계를 꾸리고 나아가 가족을 도와야 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훗날 체호프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체호프는 모스크바대학 의학부에 입학하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당시 유행하던 유머 잡지에 글을 싣기 시작했다.

체호프는 여러 필명을 이용해 인기 있는 유머 작가가 되었고, 대학을 졸업한 후 모스크바 근교에 병원을 개업해 시골 마을이나 소도시에 왕진을 다녔다. 그러면서도 젊고 유명한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었다. 그는 많은 작품을 집필하여 명성이 높아졌고, 의사의 길을 접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체호프는 초기에 잡문과 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그의 문학을 대표하는 장르는 희곡이었다. <갈매기>(1898), <바냐 아저씨>(1900), <세 자매>(1900), <벚꽃 동산>(1903) 등은 흔히 체호프의 후기 걸작으로 여겨진다. 그는 인간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와 등장인물에 대한 다각적인 조망을 특기로 했던 사실주의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기를 연출하는 강태식의 모습.

연기를 연출하는 강태식의 모습. ⓒ 극단 체


연출가 강태식은 안양예고를 졸업하고 뮤지컬배우로 활동하다 러시아에 유학하여 국립극장 배우로 활동하였으며 러시아 국립연극대학교 출신에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2013년 극단 '체'를 창단해 체호프의 <갈매기>를 직접 번역하고 연출하였으며 2014년에도 <이바노프>를 번역하고 연출한 체호프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이미 본 혹은 앞으로 볼 독자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오늘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뜬다. 지나온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가슴에 묻어둔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도 없다. 그러니 오늘 현재의 시간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라. 삶이 아무리 권태롭더라도!"


 체호프의 연극 <플라토노프>의 포스터. 15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상영된다.

체호프의 연극 <플라토노프>의 포스터. 15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상영된다. ⓒ 극단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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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리뷰어. 2013년 계간 <문학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명왕성 소녀>(2023), <물 위의 현>(2015), 캘리그래피에세이 <캘리그래피 논어>(2018), <캘리그래피 노자와 장자>, <사랑으로 왔으니 사랑으로 흘러가라>(2016)를 펴냈습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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