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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수저계급론'은 '헬조선'의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대결을 펼치는 최첨단의 대한민국은 아이러니하게도 물고 태어난 수저의 색깔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21세기판 '신분제 사회'다.

인간은 똑같은 조건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부모님의 직업과 소득, 사는 나라와 지역, 인종, 성별 등에서 인간은 본인의 자유의사와 무관하게 각자 다른 출발선에 서게 된다. 세상에 완벽한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태생적인 불평등 구조가 인간의 존엄성을 억압하지 않도록 통제, 완화하고 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하려는 사회적 노력이다.

'기회의 평등'은 경쟁 조건의 차이를 해소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있을 때 비로소 확보될 수 있다. 결국 분배의 불평등을 얼마만큼 상쇄할 수 있느냐에 따라 정의의 실현 여부가 판가름난다. '분배적 정의'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사회 진보다. 이런 사회에서라야 비로소 '흙수저'도 행복한 삶을 꿈 꿀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코리M. 에이브럼슨은 책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에서 "우리가 어떻게 늙을 것인지는 그리고 늙었을 때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흔히 우리가 부자인지 가난한지, 남성인지 여성인지, 흑인인지 백인인지에 달려 있다"며 "노년의 도전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와 대응 방안은 과거와 현재의 불평등 정도와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불평등은 노인의 삶을 어떻게 '계층화'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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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표지 .
ⓒ 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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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6개월 동안 미국 내 4개 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다양한 민족, 인종, 사회경제적 배경을 지닌 노인들을 심층 인터뷰 한 연구보고서인 이 책의 목적은 "사회계층화의 핵심 메커니즘인 건강 불균형, 구조적 불평등, 문화, 관계망 등이 어떻게 노년의 일상을 구조화하는지 보여주는 것"(13쪽)이다.

저자가 보기에 현대 사회에서 노화는 '생물학적 힘'과 '사회적 힘'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특히 태어나면서부터 우리의 삶을 구조화 하는 불평등은 사람들이 노년의 과제를 대처하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화는 '계층화'의 한 과정이다.

'노인들이 직면하는 인생 종반전은 부분적으로 불공정 경쟁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개인 뿐 아니라 지역 수준에서 작용하는 자원의 격차가 경기장 전체에 도사리고 있다...(중략)...사람은 늙어가면서 처하는 곤경에 대해 아파트 단지, 지역 노인복지관, 병원 같은 현실의 장소를 배경으로 대응한다. 이런 장소는 지역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게다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노년에 이르렀을 때 보유한 물질적 수준도 지역마다 그리고 같은 지역 안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67쪽)

사회보장서비스와 같은 복지 혜택에도 불구하고 불공정 경쟁의 정도는 완화되지 않는다. 예컨대 내가 살고 있는 시골 마을은 도시 지역에 비해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지 않고, 이동도 자유롭지 못하다. 노화로 인해 신체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이상이 생겼을 경우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넉넉하지 않다. 쉽게 말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기동성의 제한 없이 읍내에 있는 병원에 자유롭게 다니며 진료를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도시 지역 안에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가난하고 주변부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일수록 더 많은 의학적 문제를 안고 있고 평균 수명도 더 짧다. 노화에 따른 신체 능력 상실은 늙으면 누구나 겪는 공통의 과제이지만, 이에 대한 대처는 물질 경제적 자원의 보유 정도와 사회적 관계망의 긴밀함 여부에 따라서 현격하게 달라진다.

저자는 "늙으면 신체적 자원, 사회적 지위, 금전적 측면에서 일종의 하강 이동을 겪는다"며 "노년에도 우리의 삶은 우리가 어떤 행동 방침을 취할지 계층화 하는 지속적인 물질적 불평등으로 이루어진다"고(97쪽) 했다. 돈이 없고 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한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건강과 관련한 선택권이 적을 수밖에 없다.

물질적 불평등 뿐만 아니라 문화적 불평등도 노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늙으면 필연적으로 관계망의 변화를 겪는다. 지인의 죽음이나 시설 입소 등으로 인해 사회적 관계망이 축소되거나 단절되기도 한다.

관계망의 변화는 노년의 공통된 과제이지만 신체적, 물질적, 문화적 자원이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노인들에게 그 영향은 더 뚜렷하고 해롭게 나타난다. 노인 빈곤 못지 않게 노인의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 이유다. 특히 쪽방촌 노인의 나홀로 죽음에서도 볼 수 있듯 빈곤으로 인한 경제적 취약성과 사회적 관계망의 단절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관계망의 축소와 불평등은 노화가 진행될수록 더욱 악화된다.

인생 '종반전'의 공정성을 위해 고려해야 할 것들

저자는 "종반전을 이해하려면 늙는다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곤경을 안겨주지만 이러한 경기가 펼쳐지는 상황과 사람들의 대응방식은 노년까지 이어지는 물질적, 경제적 불평등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199쪽)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인생 종반전에서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고려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우선은 노년의 정책적 대응을 위해 미시적, 거시적 수준에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의 질을 높여야 한다. 저자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증거에 기반한 정확한 데이터'로 사회적 매커니즘이 현장에서 작용하는 방식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노년까지의 생존 여부와 상관없이 노인이 되는 시기가 불평등의 중요한 축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불평등을 인생 전체의 관점에서 살피고 해결해야 한다. 특히 노인들이 직면하는 실질적인 과제를 해결하려면 늙는다는 것이 실제로 생물학적 문제인지, 사회적 문제인지에 대한 좁은 학문적 토론을 뛰어넘는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자원의 접근성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저자는 "삶의 특정 단계에 특정 대상을 겨냥해 개입하는 것 외에도 대중교통 선택권을 늘리거나 모든 사람이 고품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좀 더 전반적으로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투자한다면 노인들에게 선택권을 주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211쪽)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코리M. 에이브럼슨 지음 / 에코리브르 펴냄 / 2015.12.)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코리 M. 에이브럼슨 지음, 박우정 옮김, 에코리브르(2015)


태그:#불평등, #계층화, #노인빈곤, #노인복지, #노인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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