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이들도 편히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 한길문고 내부 아이들도 편히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 김규영

관련사진보기


서울에서 나고 자라다 처음으로 지방 중소도시에서 살게 되었을 때, 동네 서점을 가보고 깜짝 놀랐다. 잡지와 유명한 베스트셀러 몇십 권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학생들 문제집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학교 앞 서점이라고 해도 너무하다. 이곳을 서점이라 할 수 있을까?

몇 년 후, 군산으로 이사를 왔다. 이곳도 마찬가지겠지 싶어서 인터넷 서점만 이용하고 있던 차에 소문을 들었다. 군산에는 '한길문고'가 있다고.

한길문고는 어엿한 서점이었다. 서울의 대형서점 만큼 크지는 않지만, 몸을 움직이기도 불편한 오밀조밀한 작은 책방도 아니었다. 제법 넓은 공간에 다양한 책들이 있었다. 물론 문제집들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지만, 많지 않다. 오히려 문제집 찾으러 온 손님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 지방 중소 도시에 이런 서점이 유지되고 있을까.

군산 시민의 한길문고

중앙벽에 전면 전시된 것은 군산에 관한 책들이다.
▲ 한길문고 중앙벽에 전면 전시된 것은 군산에 관한 책들이다.
ⓒ 김규영

관련사진보기


알고 보니 한길문고는 군산 시민의 힘으로 다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다. 2012년 여름, 심한 수해로 지하에 있던 서점이 모두 물에 잠겨 버렸다. 심지어 천장까지 무너졌다. 망연자실했을 한길문고를 도운 것은 군산 시민이었다. 물에 젖어 폐지가 된 책들을 꺼내고, 쓰러진 책장을 치우고, 계좌번호를 물어가며 지원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의 격려 덕분에 다시 매장을 열 수 있었다고 한다.

시민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던 이민우 사장님은 그 다음 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지금은 그 부인께서 서점을 운영하며 고인의 뜻을 지켜가고 있다. 저자 초청 강연이나 문화 행사 등을 꾸준히 열어 시민을 위한 서점이 될 것을 바란다는 유언을 말이다. 지금도 한길문고는 군산의 여러 시민단체와 함께 다양한 행사로 시민과 소통하고 있다.

시민과 함께하는 공간

북토큰 독후감대회 포스터가 걸려 있다
▲ 한길문고 북토큰 북토큰 독후감대회 포스터가 걸려 있다
ⓒ 김규영

관련사진보기


한길문고에는 작은 카페가 있어서 간소하게 먹고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서점 중앙에는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의자와 매트, 평상이 깔려 있다. 그림책과 육아 관련 책들이 모인 서점의 한 모퉁에는 책상과 의자들이 있다. 장소가 필요한 시민의 모임에 대여료도 받지 않고 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한길문고의 책들

한길문고에는 세월호 관련 서적들이 따로 전시되어 있다.
▲ 한길문고 세월호 한길문고에는 세월호 관련 서적들이 따로 전시되어 있다.
ⓒ 김규영

관련사진보기


일반 대형서점의 전면서가들 대부분에 베스트셀러가 전시돼 있는 것과 달리, 한길문고 벽면에는 다양한 책들이 배치되어 있다. 국민독서문화진흥회에서 마련한 청소년 북토큰 도서들은 어른들이 읽기에도 흥미로워 보이는 책들이 여럿 보인다.

군산에 대한 책들도 모여있다. 최근 많은 사람이 사진 포인트로, 먹거리 포인트로 군산을 찾아오고 있지만, 군산에 얽혀있는 사연들은 잘 모를 것이다. 사실, 군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동네 이야기는 우리부터 읽고 알아야 하겠다.

그리고 세월호.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문구와 함께 그에 관련된 여러 책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그동안 한길문고에서는 세월호를 위한 모금 운동을 했고 얼마 전에 안산의 치유 공간 '이웃'에 군산시 로컬푸드를 보내 격려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얼마 전 출간되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책,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가 서가들 사이에 따로 놓여 있다. 괴산의 숲속작은책방 주인이 쓴 국내 작은 책방에 관한 책인데, 이곳 한길문고의 이야기도 한 꼭지 실려 있다. 자랑스레 놓여있지만 '노력해서 더 멋진 서점이 되겠습니다'라는 문구는 참으로 겸손하다.

내가 살고 있는 군산에는 이렇게 특별한 서점이 있다고, 인터넷 동호회에 자랑을 했다. 그 자랑에 많은 사람들이 부럽다며 한길문고와 군산을 열렬히 응원해줬다.

"우와 좋네요. 그리고 부러워요. 이런 책방이 동네에 있으신 거잖아요. 한편의 드라마를 본 것 같아요." (ID prim a*****)

"동네 마트가, 동네 서점이, 동네의 얼굴이 되는 가게들이 행복하게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음 좋겠어요. 그러려면 정말 시민의식이 높아져야 겠네요. 부러워요, 그 동네." (ID 23re*****)

"부럽습니다. 무엇보다도 군산의 시민 의식이요. 이런 서점이 우리 동네에 있다면 저는 당연히 단골합니다." (ID sos*****)

"언젠가 군산에 가면 꼭 들러 봐야겠어요." (ID mi*****)

"한길서점, 저도 꼭 한 번 가 볼 거예요. 그리고 꼭 책 한 권은 사서 나오고 싶어요." (ID so*****)

"군산 사람들 멋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용해서 더 번창했으면 하네요. 일단 군산시민들이 수준높네요. 여느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온라인의 유혹을 뿌리치고 여기서 많이 구입하시길 바랍니다." (ID sob*****)

수준있는 서점

한길문고도 소개되어 있는 책 "작은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작은책방 한길문고도 소개되어 있는 책 "작은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김규영

관련사진보기


한길문고와 같은 서점이 가까이 있음을 부러워하며 번창을 기원하는 응원글에 속된 자랑의 마음은 사라지고 반성과 다짐의 마음이 생긴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이 서점을 이용했던가.

도서정가제가 실시되었지만 여전히 10%, 15%의 할인율에 인터넷 서점을 사용하고 싶어진다. 한길문고도 적립은 해주지만, 가끔 원하는 책이 없어서 주문하고 며칠을 기다려 다시 가서 구입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차를 타고 가자니 주차가 애매하고, 걸어가자니 조금 멀다. 신속하게 무료 배송까지 해주는 인터넷 서점이 자꾸 생각난다.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라는 말이 있다. 일면 반박부터 하고 싶어지는 표현이지만 부정할 수가 없다. 싸고 편한 것만 찾는 나같은 사람만 있다면 한길문고와 같은 높은 수준의 서점은 곧 사라질 것이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수준있는 서점을 지키려면 그만한 수준의 시민 의식을 갖춰야 한다. 바로 오늘부터 시작이다. 

한길문고 도장이 찍혀 있는 구입 책들
▲ 한길문고 한길문고 도장이 찍혀 있는 구입 책들
ⓒ 김규영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길문고, #군산, #서점, #책방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