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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에 '의사니까 괜찮아-'진료인가? 추행인가'라는 제목의 방송 보셨나요? 이번에 발표할 사례자가 그 방송의 주인공입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한의원에 치료 받으러 갔는데, 보호자가 함께 갈 때는 일반 치료를 해주고 보호자가 없을 때는 수기치료라는 이름으로 옷을 벗기고 음부를 만졌다고 하네요. 어이없는 것은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났다는 점이에요."

지난 12일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환자단체연합회(아래 환연)에서 주최한 제16회 '환자샤우팅카페'가 진행됐다. 진행자는 최현정 아나운서. 그는 이제까지 변함없이 사례자들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환자샤우팅카페'를 매끄럽게 진행했다. 그런데 이 날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사례자를 배려하는 모습이 좀 더 신중했다. 16세 청소년이었고, 사례자가 전할 사연은 성희롱에 대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친구가 무죄 판결을 받고 나서 더 많이 상처를 입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은 법이 내편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어 절망하고요. 또 어느 날은 정말 그 한의사가 잘못이 없는데, 내가 괜히 문제를 일으켜 그 아저씨 인생을 잘못되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 자해를 한 적도 여러 번이라고 해요. 그런데 마음을 다 잡게 된 것은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 속에 살지 잘 알기 때문에 용기를 냈다고 합니다. 그럼 다음 사례자 민서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청중 앞으로 나온 사례자 민서. 담담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했다. 하지만 한 번씩 고통이 떠오르는지 한 템포씩 말을 끊어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을 보였다. 최 아나운서는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사례자의 발표가 끝난 후, 단상으로 나온 최 아나운서는 민서의 어깨를 쓰다듬어줬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사례자를 바라보던 최 아나운서는 사례자 발표가 끝나자 어깨를 쓰다듬어줬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사례자를 바라보던 최 아나운서는 사례자 발표가 끝나자 어깨를 쓰다듬어줬다.
ⓒ 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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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은 공론의 장으로 꺼내서 말하기가 힘든데, 용기를 내준 민서와 민서 부모님께 고맙다는 말을 우선 전하고 싶네요. 민서 얘기를 들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저는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책임감도 느껴지네요."

말을 잇다가 울컥 했는지 최 아나운서도 잠시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 어린 친구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환연에서 법제정을 위한 운동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아직 얼개가 모두 짜진 것은 아니지만 오늘부터 시작한다고 하니까 이 시간 우리부터 문자청원을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준비되셨나요? 휴대폰 문자 이제 보내 주세요."

이 날 최현정 아나운서는 관중들의 문자청원 운동까지 이끌어내며 깔끔하게 진행을 마무리했다. 베테랑다운 모습이었다. 이제 '환자샤우팅카페'의 마스코트나 다름없어 보일 정도였다.

환자샤우팅카페로 인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

현재 '환자샤우팅카페'의 안방마님이 된 최현정 아나운서. 그가 환연과 인연이 된 때는 2012년 6월쯤이었다.

"MBC 파업으로 마음이 혼란하던 시기에 기자 선배의 권유가 계기가 됐어요. 당시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로 인해 사망한 종현이 이야기를 취재하던 중에 선배가 환자단체연합회와 인연이 돼서, '이런 단체가 있는데 네가 가서 사회를 볼 수 있겠냐?'고 의향을 물어오더라고요."

제안을 받았을 당시 그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사회를 보는 일이라니까, 좋은 일이라니까, 도움이 필요하다니까'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제1회 환자샤우팅카페의 첫 번째 사례자 종현의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충격에 빠졌다.

▲ 제1회 환자샤우팅카페 진행 모습
ⓒ 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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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현의 엄마도 병원에서 보상금을 줄 테니 합의를 하자고 그랬는데, 이런 일이 또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세상 밖으로 나와 종현의 얘기를 하고 또 한 거잖아요. 이런 부분이 존경되는 부분이에요. 보통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하는 것도 힘든데, 그것도 자식 이야기라면 더 어려운 법인데 그 고통을 견뎌내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거든요. 저 같으면 못했을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자신을 반성하게 되기도 한다는 최씨. 아나운서라는 직업 때문에 늘 객관성을 유지하려 했다고. 종현의 엄마를 소개할 때도 '의료사고일지도 모르는, 혹은 의료사고로 추정되는' 사례자라고 소개한 것이 두고두고 창피하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환연과 함께 종현이법인 '환자안전법' 제정에 동참하고 환자가족들의 억울함을 듣다보니 이제는 환연의 일원이 된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제1회 환자샤우팅카페에서 종현이를 위해 법제정이 가능할 것 같다고 했을 때도 설마했어요. 그런데 딱 2년 6개월 만에 법이 만들어지니까 영화 같다는 생각이 되더라고요. 의료 환경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게 하는데 미약하지만 힘을 보태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드니까 가슴이 쿵쿵 뛸 때도 있었어요."

'환자샤우팅카페'는 최 아나운서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선은 까다로운 환자가 됐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의사가 처방해준 대로 '네'하고 나오는 환자였다면 '이 약은 뭐죠? 왜 그렇게 되는 거죠?'라고 꼬치꼬치 묻는 환자 말이다.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당연히 직업상 늘 뉴스를 훑어본다. 깊이 알지는 못하더라도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늘 체크했다. 하지만 환자샤우팅카페 이후로 자신이 사회 문제에 대해 깊이 알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은 이슈라도 적극 참여하면 변화한다는 점도 종현이법 제정을 통해 각인됐다.

지난 2월 최 아나운서는 '환연의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가족끼리 쑥스러운 일이지만 환연에서 자신의 직책이 생긴 것 같아서 굉장히 기뻤다고 마음을 전했다. 환자샤우팅카페가 냉소적 심장을 데워주고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곳이어서 낯간지러움도 있었지만 남다른 의미 때문에 더 책임감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부분도 있었다고 언급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자리라고 덧붙여 말했다.

환자샤우팅카페가 냉소적 심장을 데워주고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곳이어서 남다른 의미 때문에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환자샤우팅카페가 냉소적 심장을 데워주고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곳이어서 남다른 의미 때문에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 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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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보듬어 주는 방송인으로 성장할 터

이제 최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라기보다는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방송인이 됐다. 아쉬움도 남지만 또 다른 포부를 키우느라고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환자샤우팅카페를 하면서 사례자들에게 위로를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안타까웠어요. 그렇지 않아도 사회가 각박해지다 보니 사람들이 마음을 많이 다치는데 어루만져 주는 사람도 많지 않고요. 저는 위로가 되는 방송을 하고 싶어요. 전문성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상담심리 공부도 시작했답니다."

▲ 지난 12일, 제16회 환자샤우팅카페 진행하는 모습
ⓒ 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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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아나운서는 이날 민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 마음을 확고하게 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우울증 이야기를 하면서 반 친구들 앞에서 민서에게 '괜찮니?' 물어봤다는 얘기를 들으며 경악했기 때문이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배려가 없는 말이 공감의 부재 때문에 나왔다고 봐요. 물론 저 혼자 힘으로 타인과 공감하는 사회를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래도 방송을 통해, 환자샤우팅카페를 통해 공감하는 법을 말하고 얘기하다 보면 분명 다른 이들을 보듬을 줄 아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종현의 엄마가 환자안전법을 만든 것처럼 말이에요."

○ 편집ㅣ박순옥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연희 시민기자는 환자단체연합회 활동 중인 객원기자 입니다.



태그:#최현정, #환자샤우팅카페, #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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