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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센터 광장
 교도소 센터 광장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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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행운아죠. 지금까지 살아 있고, 기다리는 식구들이 있고...  2년 후면 형량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살아 있는 당신은 행운아지만, 당신이 죽인 사람은요? 그의 가족은요?"

내가 너무 양심을 후벼 파는 직설적인 질문을 던졌나?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잠시 후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 기도합니다."

39살의 필리핀 남자 쥬엔. 그는 한 마닐라 갱단의 멤버였다. 갱단끼리 붙은 싸움 중에 살인을 저질렀다. 18살 때라고 했다. 그때부터 그는 21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팔라완의 이와힉 교도소로 온 지는 8년 됐다. 지금은 출소를 2년 앞둔 모범수.

보통 체격에 미남형이었다. 인상이 선했다. 붉게 충혈된 눈자위 때문인가. 눈빛은 좀 불안해 보였다.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다. 검은색 모자를 쓰고 브라운 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왼쪽 가슴에 'MINIMUN SECURITY INMATE'라는 글자가 박힌 죄수복.

"그럼, 교도소 구경을 시작할까요?"

교도소 정문 앞 간판에 적힌 'WELCOME'

의자에서 일어나며 내가 말했다. 따라오라며 그가 앞장섰다. 나는 관광지라는 소문만 듣고, 이와힉 교도소를 찾아왔다. 교도소가 관광지라니? 내 호기심을 부추길만 했다. 전날 나는 사방비치에서 푸에르토 프린세사(Puerto Princess)로 돌아와, 지난번 사무엘과 같이 묵었던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는 간밤, 팔라완의 주도인 푸에르토 프린세사를 둘러보는 여행 계획을 짰다. 혼다 베이, 악어 농장, 박물관, 재래시장 구경 등을 다 제쳐 두고, 끌린 곳이 이와힉 교도소였다. 그래서 그 다음날 아침 8시 30분께 버스터미널에서 지프니를 타고, 남쪽으로 30여 분 달려왔다. 관광지라는 말 외에, 다른 정보는 더 들은 바 없이.  

'WELCOME. IWAHIG PRISON & PENAL FARM(환영. 이와힉 교도소와 형벌 농장)'

교도소 정문 앞 간판의 'WELCOME'이라는 글자가 눈에 확 띄었다. 설마 범죄자들을 환영한다는 말일까? 방문객에게 던지는 말이겠지. 아무튼 그 글자는 교도소라는 특수한 공간에 대한 나의 고정 관념을 깨는 듯, 강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와힉 교도소 정문 앞. 정의의 여신상이 서 있다.
 이와힉 교도소 정문 앞. 정의의 여신상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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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앞쪽에 '정의의 여신상'이 서 있었다. 눈가리개를 하고 왼손에는 저울을, 오른손에는 칼이나 법전 대신 해머 비슷하게 생긴 걸 들고 있었다. 열대의 햇살 아래 여신의 흰 드레스가 눈부셨다.

그리스·로마 시대 이래 세계 각국의 대법원 청사나 변호사 회관 같은 곳에 모셔진 정의의 여신상을 교도소 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뭐, 완전히 생뚱맞다고 할 수는 없겠다. 교도소가 법의 정의나 법의 공평성 등과 밀접하게 연관된 곳이라 볼 수 있으니. 

정문 안으로 들어가자 가드가 방명록을 내밀었다. 이름, 나이, 국적 등을 간단히 적었다. 가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을 뗐다. 그늘 한 점 떨어지지 않는 비포장 도로로. 여느 시골 풍경처럼 평화로운 들판, 저 멀리 보이는 건물들, 아스라이 둥글게 들판을 두르고 있는 숲, 그 너머 산맥들을 둘러보며 걸었다.

이와힉 교도소 형벌 농장 풍경. 벌판에서 벼 수확 중인 수감자들.
 이와힉 교도소 형벌 농장 풍경. 벌판에서 벼 수확 중인 수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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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쯤 걸었나. 지나가던 오토바이가 내 앞에 멈춰 섰다. 걷기엔 멀다며 타라고, 필리핀 청년이 말했다. 그렇잖아도 햇살이 너무 뜨거웠다. 나는 냉큼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라탔다.

M16 총을 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 앞을 지났다. 바로 그 앞 들판에서 벼를 수확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푸른 계통의 티셔츠를 입은 수십 명의 수감자들. 이곳이 형벌 농장이라는 게 실감 나는 풍경이었다. 뜨거운 햇살 때문인지, 긴장감 때문인지, 갑자기 목이 탔다. 

오토바이 청년이 나를 내려준 곳은 교도소 센터 사무실 앞이었다. 사무실 앞쪽 광장에는 국기 게양대가 피뢰침처럼 뾰족하게 서 있었다. 광장 건너편에는 '호세리살 동상'이 서 있었고, 광장을 휘두르고 뜨문뜨문 서 있는 건물들이 보였다.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 안내서나 약도 같은 것이 있는지 문의했다. 어디로 가서 뭘 봐야 되냐, 사진 촬영은 해도 되냐, 등등 질문을 퍼부었다. 그러자 특별히 안내인을 붙여주겠다며 직원이 누군가를 호출했다. 안내인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이와힉 교도소를 소개한 얇은 책자를 받아 훑어봤다.    

'필리핀의 팔라완 섬에 있는 이와힉 교도소와 형벌 농장은 형벌 격리지구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열린 교도소다. 북쪽엔 발사한(Balsahan) 강이 흐르고, 남쪽으론 비누안 천(Binuan Creek), 동쪽으로는 프에르토 프린세사 만, 서쪽으로는 이름 없는 산들이 이어진다. 1904년 미국 정부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 정치범들을 추방하기 위한 교도소였다. 팔라완 섬은 미국 점령기 당시 유배지였다.'

<론니 플래닛>도 뽑은 세계적 여행지 팔라완

그러고 보니 팔라완은 '필리핀 최후의 개척지'라는 말을 듣는 곳이었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약 586km 떨어진 외딴 섬 팔라완.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팔라완은 필리핀에서 오지 중에 오지였단다. 토박이들만 살고 있을 뿐, 외지인들의 왕래가 거의 없던 곳.

살아 있는 생태계의 자연 환경과 비경이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몰려오기 시작한 지도 고작 5, 6년쯤 됐다고. 2014년 <론니 플래닛>에서 뽑은 '꼭 가봐야 할 세계 여행지 10곳'에 팔라완이 포함되기도 했다.

팔라완이 오랫동안 오지로 남았던 가장 큰 이유는 '말라리아' 때문이었다. 팔라완은 말라리아 위험 지역이다. 그러니 말라리아 예방 백신이 발견되기 전에는, 목숨을 걸어야만 올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때문인지 팔라완엔 4개의 교도소가 있고, 식민지 시절 정치범들의 유배지였다. 

안내문을 몇 줄 더 읽어 내려가는데, 쥬엔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를 안내할 사람이라면서. 우리는 서로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했다. 그가 이 교도소의 수감자이며 살인자라는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교도소 사무실 풍경
 교도소 사무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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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교도소'라지만, 관광객에게 가이드로 '살인자'를 붙여주다니. 장딴지에 전갈 문신이 있는 남자를. 정말이지 범죄자, 교도소, 형벌 등에 대한 나의 고정 관념이 깨지고 말 판이었다.

몇 마디 더 말을 주고 받다가, 쥬엔이 활짝 웃는 얼굴로 자기는 행운아라는 말을 했을 때, "당신이 죽인 사람은요?"라고 내가 물었던 것이다. 매일 기도를 한다고 대답하며, 그가 덧붙여 말했다.

"그의 가족에게 사과 편지를 몇 번 보냈습니다. 미안함과 죄책감은 말로도 글로도 다 표현할 수 없지만... 답장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쯤해서 대화를 접고, 그를 채근해 교도소 관광에 나섰다. 광장을 죽 가로질러 갔다. 레크리에이션 홀이라는 건물로 들어갔다.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그때 관광객은 나뿐이었다. 건물은 지어진 지 100년은 족히 넘어 보였다. 서부 영화에서 본듯한 낡은 목재 건물.

그 안에 진열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모자, 열쇠 고리, 부채, 목각 인형, 액세서리, 장신구, 지팡이... 온갖 종류의 기념품이 진열돼 있었다. 수감자들이 직접 만들었단다. 물건들을 구경했다. 진열대 앞에 대기하고 있던, 대 여섯 명의 남자들이 내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삭발 머리에 브라운색 티셔츠를 입은 수감자들이었다. 그들은 물건에 대해 열심히 내게 설명해 줬다.  

사실, 나는 어느 여행지에서든 기념품 같은 것에 별 흥미를 못 느낀다. 갖고 싶은 게 없다. 나중에 처치 곤란한 짐이 되거나 쓰레기가 될 물건들. 그래도 여기선 뭐라도 사야 할 것 같은데... 난처했다. 은빛 물고기 문양이 박힌 나무젓가락 한 쌍을 어렵게 골랐다.

관광객이 방문하는 레크레이션 홀 건물
 관광객이 방문하는 레크레이션 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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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려오는 싸이의 노래

안 쪽 홀에서 음악이 터져 나왔다. 싸이의 <젠틀맨>이었다.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10여 명의 남자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관광객을 위한 공연이었다. 혼신을 다해 춤을 추는 수감자들의 흥겨운 표정, 흥겨운 몸놀림...

내가 춤을 좀 추는 사람이라면, 어울려 같이 춰도 좋으련만. 그런데 그들의 춤을 바라보며, 마음 한편이 또 애잔해졌다. 그 이면의 삶들이 눈물겨워 보였나. 춤이 끝나자 나는 멋진 공연이었다며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기부함 박스에 돈을 조금 넣었다.

다시 쥬엔을 따라 그곳에서 나왔다. 뒤쪽 길로 들어섰다. 높은 콘크리트 벽 위에 철조망을 친 건물 앞에 가 섰다.

싸이의 <젠틀맨> 춤을 추고 있는 수감자들.
 싸이의 <젠틀맨> 춤을 추고 있는 수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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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맥시멈(maximum) 죄수들이 감금돼 있는 곳입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 안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다.

"이와힉 교도소엔 형량이 최소 3년 이상인 사람부터 살인자까지, 다양한 범죄자들이 수감돼 있습니다. 사형수나 여성 수감자는 없습니다. 수감자들은 세 단계로 나누어집니다. 규칙이나 규율을 어기는 수감자들은 '맥시멈'이라고 불리고, 감시가 엄중한 이 건물(maximum security guardhouse)에 감금됩니다.

오렌지 색깔의 티셔츠를 입습니다. 물론, 이곳에서 다시 '재지도'를 받고 나올 수 있습니다. 중간 단계는 미디엄(medium)이라 불리고, 푸른색 티셔츠가 죄수복입니다. 현재 1300여 명이 미디엄입니다. 마호가니 가구나 공예품들을 만들고, 농장 일을 합니다.

나처럼 브라운 색 티셔츠를 입은 수감자들이 미니멈(minimum)입니다. 모범수이거나 곧 출소를 앞둔 사람들이죠. 현재 100여명의 죄수들이 미니멈이고, 사무실 일을 돕습니다. 여가 시간에 용돈벌이도 하죠. 농장 일을 하거나 낚시, 수공업, 가구제작 등.

모범수들은 '준경찰'로 훈련되어 이곳의 안전과 평화, 질서 유지를 돕습니다. 우리는 흩어져 있는 작업장이나 캠프에서 자유인처럼 살고 일합니다. 최소한의 감시 상태에서... 이 교도소엔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무장한 감시병들이 없습니다."

레크레이션 홀 안의 기념품 판매대. 수감자들이 만든 물건을 판매한다.
 레크레이션 홀 안의 기념품 판매대. 수감자들이 만든 물건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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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하는 사람들은 없나요?"
"탈출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바보 같은 짓입니다."

믿어지지 않았다. 경비가 삼엄해 보이지도 않는데.

그를 따라 나무 그늘이 우거진 길을 걷고 있었다. 브라운 색 티셔츠를 입은 수감자들이 오고 갔고, 길가엔 벼가 널려 있었다. 곳곳에 보이는 집들은, 교도소 관리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거나, 미니멈들이 사는 집이라고 했다. 사리사리(구멍 가게)도 있었다. 이 형벌 농장은 전형적인 필리핀 시골 마을의 공동체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네,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미니멈들도 많습니다. 나는 아직 미혼이라 혼자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며 개인 주택에서 살고 있죠. 엄마가 갖다준 강아지인데... 두 달 전 내 목숨을 구해줬어요. 코브라에 물릴 뻔했는데..."

그때 줄 맞춰 다가오는 수십 명의 수감자들과 마주쳤다. 자기들끼리 자유롭게 떠들며 걸어오는 남자들. 청년이고 노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활짝 웃으며 내게 거수 경례를 붙이는 거였다. 나는 당황해 좀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농장에서 돌아오는 수감자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들어올 때 벌판에서 벼를 수확하고 있던 사람들 같았다. 푸른색 티셔츠를 입은 수감자들. 노동 끝이라 안색이 피곤해 보였지만, 분위기는 명랑한 노동자들이었다. 이와힉 교도소 안내문의 설명을 덧붙인다.

'3만 4295헥타르의 전체 대지에, 약 300헥타르의 저지대 벼농사 농장이 있다. 쌀 생산량은 매년 격리지구의 평균 인구인 2~3천 명을 먹여 살린다. 코코넛, 옥수수, 과일, 야채, 뿌리 작물들도 키운다.'

나는 걷다말고 사리사리로 들어갔다. 할로할로(필리핀식 빙수)를 두 잔 주문했다. 날도 뜨겁고 목도 타, 쥬엔을 끌어 앉혔다. 할로할로를 먹으며 이곳 생활에 대한 얘기를 더 들었다. 안내문에 적혀있는 내용과 같은 얘기들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 가톨릭 성당과 작은 교회들이 있다. 이곳은 필리핀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category III) 3 교도소 중 한 곳이다. 교도소장이 지휘 관리한다. 교도소장이 바뀔 때마다 분위기가 달라진다. 

새로 도착하는 수감자들은 한동안 '열린' 교도소의 생활에서 적성, 태도, 작업 기술 등을 고양한다. 그 기간이 끝나면 인력이 필요하거나, 그들의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구역이나 프로젝트에 보내진다.'

할로할로를 사먹은 구멍가게
 할로할로를 사먹은 구멍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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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할로를 다 먹자 입안이 얼음동굴처럼 차가워졌다. 땀이 좀 식었다. 다시 길을 나섰다. 중간단계인 미디엄 수감자들의 '감방'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마침 점심 식사를 끝냈는지, 커다란 냄비와 양동이 등 배식 식기들이 철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철창 위로 안이 들여다보였다. 사진 촬영은 할 수 없었다.

흰색과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ㄷ자 건물. 중앙에 농구대가 있는 작은 마당. 점심 후 휴식 시간이었다. 건물 그늘에 누워있는 사람들, 농구대에서 농구를 하고 있는 사람들... 수감자들의 표정은 그리 어둡거나 험악하지 않았다.

맥씨멈 수감자들이 감금되어 있는 건물.
 맥씨멈 수감자들이 감금되어 있는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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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를 해준 쥬엔과 마을길을 걷다. 수감자와 관리인 가족들이 함께 사는 마을.
 가이드를 해준 쥬엔과 마을길을 걷다. 수감자와 관리인 가족들이 함께 사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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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소 후 여행 가이드로 일하고 싶어요"

쥬엔과 다시 나무 그늘로 들어가 앉았다. 정오를 넘어서는 살인적인 햇살을 피해서.

"출소하면 여행 가이드로 일하고 싶어요. 그래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수감자들의 반이 문맹인데, 여기서 글을 배우죠. 글뿐 아니라 공동체 생활, 시민 훈련, 위생 같은 교육도 받습니다. 목공업, 트랙터 운전, 자동 기계나 전기 다루는 기술 등을 배우는 사람들도 있고요.

여기 사는 아이들 교육이요? 초등학교가 있어요. 한 교실에서 직원들의 자녀와 죄수들의 자녀가 함께 공부하죠. 부모가 범죄자라고 아이들까지 범죄자 취급하며 격리하지 않습니다. 당연하잖아요?"

나는 그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방학 중이었다. 

오후 1시가 넘었다. 그를 보내줘야 할 것 같았다. 더 늦기 전에 점심을 먹어야 할 테고. 팁이라며 페소 몇 푼을 그에게 건네 주었다. 그가 깊이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고맙다는 말을 서너 번 되뇌었다. 내가 사무실 근처에서 멀티 캡을 타고 떠날 때까지, 그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손을 흔들어줬다.

벼를 널어 말리고 있는 마을 길 풍경
 벼를 널어 말리고 있는 마을 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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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힉 교도소를 떠나면서, 뭔가 묵직하고 뭉클한 감동이 일었다. 머릿속에선 질문들이 쏟아졌다. 내가 오늘 보고 들은 게 다 사실일까? 물론 불미스러운 일들이나, 시행 착오도 있겠지? '개방 교도소', 한국에서도 가능한 시스템일까? 범죄자 아이들과 관리인 아이들이 한 마을에서 살며, 한 교실에서 공부를 한다니,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다면, 그 이유가 뭘까? 등등.

안내서를 다시 읽어보았다. 

'범법자들을 벌하기보다는 감화, 중화, 그리고 갱생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수감자들은 결국엔 책임감 있고, 존경받을 수 있는 시민이 되어 사회에 돌아갈 수 있도록, 삶의 여러 측면에서 훈련을 받습니다. 올바른 감시와 보호 아래서, 그들은 그들의 교육과 문화, 직업적인 기술과 사회적, 도덕적, 시민적 인성을 높이기 위한 인간적인 관리와 처우를 받습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다른 세상을 보고 온 것 같았다. 살맛 나게 만드는 세상을.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팔라완, #이와힉 교도소, #배낭여행,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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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2017년도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출간. 유튜브 <은경씨 놀다>. 네이버블로그 '강누나의깡여행'. 2019년부터 '강가한옥펜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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