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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알람은 동틀 무렵의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엔 역부족이다. 서로 미루다가 결국 늦잠을 자고만 아침은 으레 그러하듯 전쟁의 시작이다.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아이들을 땅꾼처럼 능숙하게 끌어낸다. 아침을 먹이고 옷을 갈아 입혀 유치원 버스에 태우기까지의 과정은 출근 준비와 동시진행 되는 고난도의 기상 미션이다. 그 정도 내공이 없다면 육아와 직장을 병행할 수 없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 집도 여느 가정과 다를 게 없다. 철저한 분업화로 그나마 시간은 좀 줄였지만, 아침마다 부산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다시 출근 준비에 매달리는 아내. 주말이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공룡과 곤충 박물관을 찾아 헤매고, 과학관에 미술관까지 섭렵해야 하는 아내. 한때 나를 설레게 했던 여인의 향기는 점차 희미해져 엄마라는 이름의 억척스러움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결혼 전 처음으로 1박 여행을 갔던 부산

아내와의 부산 데이트. 해운대 바닷가에서.
▲ 다시 썸 타자 말할까 아내와의 부산 데이트. 해운대 바닷가에서.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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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6년 차의 아내는 연년생 아들을 낳고, 키우고, 직장을 다니며, 흰머리가 늘었다. 철없는 남편의 뒷바라지는 주름이 되어 흔적으로 남았다. 아내가 읽는 책은 주로 육아와 교육에 관한 것이었고, 철이 바뀔 때마다 집으로 날아오는 택배 속에는 아이들의 옷만 가득했다. 연극반에서 만난 아내와 신혼 때만 해도 공연을 찾아다닐 정도였으나, 애 키우는 동안 문화적 정서는 가뭄 맞은 논바닥처럼 말라 갔다. 안쓰럽고 안타까웠지만, 어찌할 방법을 몰랐다.

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도 생긴다. 그녀가 좋아하는 김동률의 콘서트 티켓을 지인이 예매해 준 것이다. 더구나, 장소는 결혼 전에 처음으로 1박 여행을 갔던 부산이었다. 일단, 세미나를 핑계로 본가의 부모님들께 아이들을 맡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한 달간을 애타게 기다리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1부가 끝나고 쉬는 시간동안 스태프들을 소개하는 동영상 시청 중.
▲ 2014 김동률 콘서트 동행 1부가 끝나고 쉬는 시간동안 스태프들을 소개하는 동영상 시청 중.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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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풀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곰장어 집이다. 곰장어와 얽힌 추억들.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얼마 후, 부산으로의 1박 2일 여행을 계획했다. 남자가 계획하는 1박 여행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도가 분명하다. 배가 끊기는 섬이 아니면 돌아오기 어려울 만큼 먼 곳. 물론 광활한 바다와 탁 트인 하늘 등의 몇몇 수식어구를 활용하면 여자들 대부분은 그 불순한 의도보다 여행의 설렘에 눈멀게 마련이다.

그때에 자갈치 시장에서 처음 곰장어를 맛본 아내는 나보다 더 반해 버렸고, 우리는 곰장어와 더불어 낮술에 젖어들게 되었다. 반주 삼아 시작한 소주 한 병이 두 병, 세 병이 되고... 그만큼 곰장어는 술을 부르는 화신이었다. 그때 바다를 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2차와 3차를, 해운대와 광안리로 옮겨가며 마신 술은 나 자신조차 여행의 목적과 방향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연인은 만취한 상태로 서로를 부축해가며 간신히 숙소로 돌아왔고, 마치 동아리 엠티처럼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만다. 그리고 여행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쓰린 속을 부여잡고 다음날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아내는 지금도 그때 먹었던 곰장어 맛을 잊을 수 없다고 종종 말하곤 한다. 나는 지금껏 그 여행의 목적은 곰장어가 아니었노라고 말하지 못했다.

자갈치 시장에서 처음 곰장어 맛본 아내, 그때 그 맛 잊을 수 없다고... 

살아있는 곰장어의 껍질을 벗기고 토막을 내어 갖은 양념과 야채와 함께 볶아주는 부산의 별미.
▲ 부산 산 곰장어 살아있는 곰장어의 껍질을 벗기고 토막을 내어 갖은 양념과 야채와 함께 볶아주는 부산의 별미.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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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곰장어를 그 자리에서 잡아 볶아주는 부산 곰장어의 맛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었다. 다만, 그 배경이 되었던 수줍던 낮술 속의 연인들은 밥까지 볶아먹고 배를 두드리고 있는 중년의 부부가 되었다. 살아있는 곰장어가 불쌍하다던 그 당시 아내의 눈빛도, 빨리 익어주기만 기다리는 맛집 탐방가의 시선으로 바뀌어 있을 뿐이었다.

든든하다 못해 역류하기 직전인 배를 부여잡고 콘서트장으로 향했다. 달달한 노래를 좋아하는 아내와 처절한 노래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김동률의 노래들. 몸통을 좋아하는 아내와 다리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태어난 오징어처럼 어느 하나 버릴 게 없었다. 처음 가본 김동률의 콘서트는 왜 그렇게 표가 빨리 매진되는지 이해하고도 남았다.

나와 아내의 젊은 시절에 울리던 노래들은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였다. 커튼 콜의 마지막 노래를 들으며 흘러내리는 아내의 눈물은 노래가 주는 감동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형에게 바친다는 그의 낮은 목소리에 나 또한 무너지고 말았다.

콘서트가 끝나고, 진한 감동의 여운에 흠뻑 취한 채로 우리는 팔짱을 끼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진작부터 회가 먹고 싶다고 몇 번인가 말했던 것 같은데, 무심한 남편은 귓등으로 들었나 보다. 좋은 안주에 늦게까지 술 마시고 돌아다니는 동안, 아내는 두 아들과의 사투 끝에 아이들 침대 한 켠에 모로 누워 잠들어 있었던 게다. 사실 회라는 게 혼자 가서 먹기는 어려운 음식 아닌가. 임신했을 때도 안 사다 주던 것들을 이제 와서 사다주기도 뭣하고. 처음 먹는 음식처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송구스럽기까지 하다.

멀리 건물들 위로 얼굴을 내민 달과 해변가의 풍경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 해운대 밤바다 멀리 건물들 위로 얼굴을 내민 달과 해변가의 풍경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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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가 있는 해운대로 옮겨 밤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학생 때는 새벽까지 나와 대작하던 전설 같은 아내였지만, 아이 둘 출산하고 나서는 맥주 한 캔에 취해 버린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맑은 밤하늘 구석에 반달보다 약간 살이 차오른 달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생각해 보니 아내의 독사진이 카메라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해운대 조명 아래 상기된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내겐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 나의 아내.

맘고생 심했을 아내, 꼭 안아 주니 쑥스럽다

결혼해서 출산 이후 아내의 독사진을 찍어본 기억이 가물하다. 사진 속 주인공은 늘 아이들이었고 아내는 늘 배경과도 같았기에.
▲ 해운대 밤바다, 그리고 아내 결혼해서 출산 이후 아내의 독사진을 찍어본 기억이 가물하다. 사진 속 주인공은 늘 아이들이었고 아내는 늘 배경과도 같았기에.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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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온 그날 저녁, 침대 맡에 나란히 누워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한다. 자신을 위해 준비한 데이트가 마음에 들었다는 신호다. 단란한 가정만큼이나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남편을 잘못 만나서, 맘고생이 심했을 아내를 꼭 안아준다. 내가 먼저 했어야 할 말을 들켜버린 듯한 쑥스러움 때문에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사는 게 바쁘다고, 아이들 키우기 힘들다고, 어느 순간 잊혀 갔던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들.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착한 여인이었고, 가장 멋진 오빠였던 서로를 위해 요즘 얼마만큼 관심을 가졌던가? 이제 우리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순 없겠지만, 예전의 뛰던 심장 소리를 듣고 그때의 촉촉했던 감정들을 다시 느껴 볼까? 여보, 그때로 돌아가서 나랑 썸 한번 타지 않겠어?

오랜만에 아내에게 좋은 추억을 선사해준 김동률의 새 앨범에 실린 노래의 제목들을 연결해 본다. '청춘'의 끝자락에서 만난 '내 사람', 그 날 함께 한 '그 노래'들과 더불어 인연의 '퍼즐'을 완성 시켰었지, '내 마음은' '고백'컨대 늘 당신과 함께 있어. '오늘'부터 삶의 끝까지 당신과 '동행'할 바로 그 한 사람, '그게 나야'...


태그:#김동률 동행콘서트, #부산곰장어, #해운대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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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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