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 대체 :31일 오전 1시]

엄마와 함께 증인석에 앉은 J학생(여,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자유롭게 하라는 질문에 그는 "이 사건이 좀 잘 마무리되고, 진실이 규명되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재판장은 "괜찮다"며 물을 한 잔 권했다.

29일 열 번째 증인으로 나선 J학생은 사고 당시 상황을 상세히 증언했다. 4층 선미 우현 쪽 다인실인 SP-3번방에 있던 그는 배가 급격히 왼쪽으로 기울면서 열려진 출입문을 통과해 맞은 편 50인 이상 들어가는 가장 큰 방인 SP-2번방 좌측 벽까지 쭉 굴러 떨어졌다. 이후 그곳에서 대기하다가 물이 차올랐고, 나무 캐비닛 위에 있던 그는 점점 떠올라 다시 우현 복도로 나올 수 있었다.

당시 상황을 그려보면, 넓은 4층 후미 다인실 2개를 말 그대로 횡단한 셈이다.

다음은 J학생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출입문을 통과해 맞은 편 방 벽까지 굴러떨어졌다"

[검찰 측 신문]

"배정받은 선실은 SP-3번방(4층 우현 선미 쪽 다인실)이었다. 사고 당일 아침에는 식사하고 나서 방에 돌아와 있었다. 밥 먹고 돌아온 시간은 기억 안 나고, 그냥 가만히 쉬고 있었다. 그때 배가 기울어져서 날아가서 SP-2번방 벽에 부딪쳤다.

"배가 SP-1번방(좌현)쪽으로 기울어서 내 방(SP-3)에 있던 애들 신발이랑 캐리어 등이 SP-2번방으로 떨어졌다. 짐들은 처음에 점점 쏟아지다가, 배가 기울면 더 쏟아지곤 했다. (기울던 배가) 한동안은 가만히 있었다. 그 시간은 어느 정도였는지 모른다. 또 배가 기울어질 때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냥 무거운 컨테이너, 철벽같은 게 부딪치는 소리. 밑(배 아래쪽)에서 들렸다."

"SP-2번방으로 날아간 다음에 '침착하고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서 대기하라'고 나왔다. 두 번째 방송에서 구명조끼를 입으라고 했다. 나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방송이 나오기도 했고, 주변 친구들이 입으라고 했다. 그리고 계속 대기했다. 내가 있던 곳은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올라갈 수 없었다."

"(검사가 제시한 도면을 보고) SP-2번방 좌현 선수 쪽에는 출입문이 없었다. 그냥 다 벽이었는데. 경사가 너무 가파르고, 캐비닛과 벽 사이에 거리가 있어서 (캐비닛을 밟고 출입문 쪽으로) 올라올 수도 없었다. (탈출 시도를) 할 수가 없었다. 선실에서 대기하면 선원이나 해경이 와서 구조해줄 것으로 생각했다."

"선실에 물이 차오르기 전에 앞쪽에 있던 캐비닛이 떨어지면서 벽으로 쏠려서 근처에 있던 애들은 (캐비닛에) 깔렸다. 나는 다른 캐비닛 안에 웅크리고 들어가 있어서 깔리진 않았다. 그 뒤로 헬기 오는 소리가 들려서 애들이 '살려 달라, 여기 깔렸다'고 소리쳤는데 구조대가 안 왔다.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나중에 물이 차니까 나무 캐비닛이라 깔렸던 애들도 빠져나왔다.

구명조끼를 입어서 물에 떠 있었는데, 나는 (물에 빠지기 전에) 캐비닛 위에 올라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그 캐비닛이 계속 (물에) 뜬 채로 출입문 쪽으로 흘러갔다. 다 나오기 전에 캐비닛도 좀 가라앉아서 명치 정도까지 물이 찼다. 그때 복도에 친구가 한 명 있어서 끌어 올려줬다. 그 뒤에 친구랑 같이 물을 타고 복도로 나왔다. (키즈룸 옆) 비상구 쪽에서 멀리 구조대원이 보였다. 좀 멀어서 '살려 달라'고 외쳤는데, 우리 목소리는 들리는데 어디 있는지 몰라서 두리번거리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끌어올려줬다. 이때엔 배가 90도 이상 기울어져 있었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이 일이, 이 사건이 발생한 것, 우리 학교 애들이, 거의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는 것, 그런 게…. 진실이 빨리 밝혀지고, 그 사람들이 다시는 그런 짓 못하게…, 못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이 사건이 좀 잘 마무리되고, 진실이 규명되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함)."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우리 학교 애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는 게..."

지난 28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세월호 참사 생존 단원고 학생들의 증인신문이 진행된 가운데 법정에 관련 서류들이 잔뜩 쌓여 있다.
 지난 28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세월호 참사 생존 단원고 학생들의 증인신문이 진행된 가운데 법정에 관련 서류들이 잔뜩 쌓여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변호인 측 신문]

"SP-2번방에 있던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는데…, 한 십여 명쯤이었다. 그중에 나온 사람은 아마 나밖에…. 방 안에서 해경을 기다렸다. 바닷물이 들어왔을 때에는 꽤 차가웠다."

[관련 기사]

[생존 학생 증언①] "비상구 문 열어준 사람은 해경이 아니라 친구였다"
[생존 학생 증언②] "왜 친구들이 그렇게 됐는지 근본적인 이유 알고 싶다"
[생존 학생 증언③] "파란바지 아저씨가 나를 끌어올렸다"
[생존 학생 증언④] "애들도 '가만히 있으라잖아' 하면서 대기했다"
[생존 학생 증언⑤] "4월 16일 9시 58분, 창문 밖은 바다 속이었다"
[생존 학생 증언⑥] "선원들 엄벌에 처하길 원하는가" - "네"
[생존 학생 증언⑦]"박지영 언니가 복도에서 로비로 훅 떨어졌다"
[생존 학생 증언⑧]"지금도 잠잘 때 가위에 눌린다"
[생존 학생 증언⑨]"올라가 헬기 타겠다고 손 들고 나왔다"
[생존 학생 증언⑪] '4층의 영웅' 남학생의 일갈 "선원들 1600년형도 부족하다"
[생존 학생 증언⑫] 물살과 사투를 벌인 끝에 살아남다
[생존 학생 증언⑬] "사고 후, 가만히 있어도 내가 90도로 휘는 것처럼 느껴"
[생존 학생 증언⑭] "나는 친구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렸으니까..."
[생존 학생 증언⑮] 끝내 터진 울음 "방송만 제대로 했다면, 많이 살았다"
[생존 학생 증언16] 꾹꾹 참아온 한 마디 "세월호 참사가 교통사고인가"
[생존 학생 증언17] "머리 감다가 물이 쏟아질 때, 숨이 턱 막혔다"
[생존 학생 증언18] "좌현 갑판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가만히 있었다"
[생존 학생 증언19] "물이 차올라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
[생존 학생 증언20] "박지영 누나말고는 도와준 사람이 없었다"
[생존 학생 증언21] "선원들, 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 가졌으면"
[생존 학생 증언22] "탈출하다가 두 번이나 빨려들어갈 뻔했다"


태그:#세월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