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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탁 탁"

6학년이었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 이런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아들이 책상 앞에 앉아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있었다.

"아들 왜 그래?"

깜짝 놀라서 아들의 손을 잡아챘는데, 아이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울먹였다.

"애들이 나보고 브래지어 차고 다니래."

아들의 등을 토닥이며 꼭 안아주었다. 아들은 한참을 내 품 안에서 울었다. 어려서부터 식성이 좋았던 아이는 자라는 내내 또래들보다 약간 통통한 편이었다. 유아 때부터 한 수영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만둔 게 화근이었다.

"브래지어 차고 다니라"는 놀림에 가슴 때리는 아들

그날도 수영을 가야할 시간에 집에 있어 화를 내는 나에게 아들이 속상해하며 말했다. "애들이 자꾸 여자 가슴이라고 놀려."
 그날도 수영을 가야할 시간에 집에 있어 화를 내는 나에게 아들이 속상해하며 말했다. "애들이 자꾸 여자 가슴이라고 놀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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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하고 있었는데, 하기 싫어하는 운동을 가라고 전화로 재촉하는데 한계를 느꼈다. 억지로 운동을 시키는 것보다 하고 싶을 때 시키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수영을 그만두게 했다. 그러나 다시 운동을 시작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후 아들의 체중이 많이 늘어났다.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놀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아들은 주로 책상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는 것으로 여유시간을 보냈다. 고도비만 상태에 가까워져서야 반 강제로 다시 수영을 시작했다. 그때가 4학년이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기에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기보다는 먼저 해왔던 수영을 하는 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들은 수영하러 가는 걸 꺼렸다. 그날도 수영을 가야할 시간에 집에 있어 화를 내는 나에게 아들이 속상해하며 말했다.

"애들이 자꾸 여자 가슴이라고 놀려."

살이 쪄서 그러니 그럴수록 더 열심히 수영을 해야 한다고 타일렀다. 아들은 마지못해 가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맘이 짠해 퇴근을 일찍 하고 수영장에 가보았다. 아들보다 더 살찐 아이들도 제법 있어 보였다. 

가슴이 나왔다고 놀림을 받았다고 하니 아이들 가슴을 자세히 보았다. 확실히 다른 아이들에 비해 아들의 가슴이 조금 더 나온 듯했다. 집에서야 비교해 볼 대상이 없으니 살 때문에 그런 것이겠거니 한 건데… 그냥 흘려 넘길 문제가 아닌 듯했다.

내 아들 가슴이 여성형 유방? 상상도 못했다

'여성형 유방' 진단을 받은 아들에게 그 후로 수영대신 옷을 벗지 않아도 되는 태권도와 검도를 차례로 보냈다. 아들도 운동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말에 적극적이지는 않아도 꾸준히 도장을 다녔다.
 '여성형 유방' 진단을 받은 아들에게 그 후로 수영대신 옷을 벗지 않아도 되는 태권도와 검도를 차례로 보냈다. 아들도 운동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말에 적극적이지는 않아도 꾸준히 도장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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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병원에 가서 상담을 했다. 의사는 '여성형 유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선 운동으로 살을 빼 비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대로면 성장이 다 끝난 뒤에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다.

여성형 유방의 원인
체내의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 간의 불균형이 생기거나 여성 호르몬에 대한 유선 조직의 반응이 민감해져, 남성의 유방에서 유선 조직의 증식이 일어나 여성의 유방처럼 발달하게 되는 증상을 말한다.

대부분 양쪽에 함께 생기지만 한쪽에만 발생할 수도 있다. 대부분 약제나 다른 동반 질환에 의한 것이므로 원인을 찾아 제거하거나 기저 질환을 치료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선 증식의 정도와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호르몬 자극의 기간과 강도, 개개 유선 조직의 감수성이다. 정상 성인 남성에서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 생성 비율은 약 100:1이며, 혈중 농도는 300:1이다. 이처럼 성인 남성에서는 남성 호르몬의 농도가 훨씬 높으므로 유방이 발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남성 호르몬이 감소되거나 여성 호르몬이 증가하면 유선 조직이 자극을 받아 증식하게 되어 여성형 유방이 된다. 사춘기의 여성형 유방, 약제에 의한 경우, 원인을 모르는 특발성인 경우가 가장 많다. - 서울대병원 정보 제공 발췌
처음 들어본 '여성형 유방'이란 말에 충격을 받았다. 남자에게 여자의 유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이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고, 그저 운동 하라고만 채근한 것 같아서. 그 후로 수영 대신 옷을 벗지 않아도 되는 태권도와 검도를 차례로 보냈다.

아들도 운동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말에 적극적이지는 않아도 꾸준히 도장을 다녔다. 그러나 아이는 커가면서 자꾸 어깨를 움츠리고 상의를 크게 입으려 했다.

그날도 체육을 하고 아이들이 수돗가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윗도리가 젖는 일이 생겼다. 그 바람에 아들의 가슴을 보게 된 몇몇 아이들이 또 놀렸다고 했다.

"엄마, 빨리 수술해주세요."

아들은 감정을 추스른 후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우선 운동부터 더 열심히 하자. 당장은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안 들어가면 스무 살 넘어서 꼭 수술해줄게."

의사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아들뿐만 아니라 여성형 유방으로 고민하는 청소년이나 성인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과거에도 여성형 유방이 없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그 사례가 더 많아지고 있다고. 스테로이드 부작용, 비만, 약물남용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단다. 이런 원인으로 성장기 혈청 내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안드로겐의 불균형으로 가슴이 과다 발육하게 된다는 거다.

여성형 유방이라도 열에 아홉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자연스럽게 남성형 유방 모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그러나 나머지 10%는 성장이 끝나도 여성형 유방 형태가 남아있고 계속해서 커지기도 한단다.

그럴 땐 외과적 수술로 제거하는 방법밖엔 없단다. 그냥 둬도 건강에는 해가 되지 않지만 정서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아들만 해도 친구들의 놀림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

아들도 어렸을 적 모세기관지염을 앓아 스테로이드제 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잦은 잔병치레로, 그때그때 먹은 약의 종류와 양은 헤아리기도 어렵다. 게다가 몸도 비만이었다. 이 모든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아 아들의 가슴을 볼 때마다 미안해진다.

가슴은 여전하지만 노력하는 아들, 엄마는 간절히 바랍니다

꾸준한 운동덕분인지 현재 중3인 아들은 비만에서 벗어나 키 176cm에 70kg의 보통 체격을 가진 사춘기 청소년이 되었다.
 꾸준한 운동덕분인지 현재 중3인 아들은 비만에서 벗어나 키 176cm에 70kg의 보통 체격을 가진 사춘기 청소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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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운동덕분인지 현재 중3인 아들은 비만에서 벗어나 키 176cm에 70kg의 보통 체격을 가진 사춘기 청소년이 되었다. 가슴은 어떻냐고? 줄어들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가슴은 아직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엄마, 저 헬스해서 가슴을 근육으로 만들래요."

얼마 전 아들은 헬스를 하겠다고 했다. 근력운동을 하면 좀 더 빨리 좋아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하고 싶어서 하는 운동이라 그런지, 가라고 하기도 전에 먼저 간다. 주변에선 중학생이 벌써 무슨 근력운동이냐고 하지만 아들은 꿈쩍도 않는다. 집에서도 틈틈이 팔 굽혀 펴기를 하고 난 후 거울 앞에 서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엄마, 근데 운동해도 가슴이 들어가지 않으면 수술해 주셔야해요. 꼭이요!"

나에게 다짐을 받은 아들은 오늘도 자신의 몸과 싸우기 위해 헬스장으로 향한다.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수술하지 않고도 좋아지기를 간절히 빈다.


태그:#비만, #여성형유방, #스테로이드, #약물남용,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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