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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수기임태랑 묘소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정만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
 일본인 수기임태랑 묘소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정만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
ⓒ 곽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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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같은 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25일 오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 자격으로 대구공정여행A스토리(이사장 김두현)의 '공정여행으로 대구여행 떠나기' 해설을 수행했다. 일행은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수성못둑의 이상화 시비, 수성못 산책로, 일본인 수기임태랑 묘소, 그리고 단군성전을 걸어서 답사했다.

자연스레 해설의 요지는 '수성못이 지금 모습이 된 데에는 일본인 수기임태랑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 그의 묘소가 못 인근에 있으며, 수성들판은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태동된 지리적 배경이다'가 되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가 선 이유

그러나 해설을 하면서 상당 부분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부정적 비판으로 기울어진 해설 내용은 듣는 답사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쾌한 여가 시간을 즐기기 위해 온 이들의 마음을 해설자가 무겁게 하면 예의가 아닐 것이다.

수성못 답사에서 제일 먼저 지적할 것은 이상화 시비 주변에 시인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대한 안내판이 없다는 점이다. 그 대신, 일본인 수기임태랑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엉뚱한 안내판이 서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 바로 옆 안내판이 이상화에 대해서는 전혀 안내를 하지 않고 일본인 수기임태랑만 언급하고 있는 것은 큰 잘못이다. 수성못 조성에 일정 역할을 한 일본인 이야기와, 이곳이 한국문학사의 걸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태동지라는 사실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극히 일부 답사자들처럼 시비 뒷면까지 꼼꼼하게 읽지 않는 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가 왜 이곳에 세워져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수성못둑(두산동 주민자치센터 뒤편)에 세워진 상화 시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새겨져 있다.
 수성못둑(두산동 주민자치센터 뒤편)에 세워진 상화 시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새겨져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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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안내판은 수기임태랑이 '수성못을 축조한'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수성못은 그가 축조한 것일까? 인정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수성못으로 추정되는 '둔동제'가 세종 때의 <경상도지리지>에 이미 등장하는 등 원래 이곳에 못이 있었다는 견해가 많다.

그뿐이 아니다. 이상화 시비를 떠나 수기임태랑 묘소로 가는 도중의 오리배 승선장 인근에서 눈길을 끄는 시기 미상의 사진 한 장을 볼 수 있다. 이 사진은 수성못이 밭을 메워 축조된 게 아니라 본래 있던 못을 키웠다는 걸 짐작하게 한다. 사진을 보면, 둥글게 난 못둑 아래로 물이 가득하다. 즉, 못둑이 물 가운데에 축조된 것이다. 수기임태랑이 밭을 파서 처음으로 수성못을 조성했다면 이런 사진은 만들어질 수가 없다.

수성못을 일본인 새로 만들었다?

또 수성못이 지금과 같은 형상으로 바뀐 것이 수기임태랑 혼자의 힘으로 된 일도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보탰다. 안내판의 '수성못을 축조한'이라는 표현은 수기임태랑이 혼자서 수성못을 '창조'했다는 뜻이므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부적절한 기록일 뿐이다.  

'수성 들판의 농업 용수 수성못'이라는 해설이 붙은 수성못의 옛날 사진. 찍은 때가 밝혀져 있지 않아 분명한 촬영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못둑 왼쪽으로도 물이 가득 들어차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 물이 많이 고여 있던 곳의 중간에 둑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수성못 오리배 승선장쪽 갤러리 전시장에 수성구청이 게시한 것이다)
 '수성 들판의 농업 용수 수성못'이라는 해설이 붙은 수성못의 옛날 사진. 찍은 때가 밝혀져 있지 않아 분명한 촬영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못둑 왼쪽으로도 물이 가득 들어차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 물이 많이 고여 있던 곳의 중간에 둑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수성못 오리배 승선장쪽 갤러리 전시장에 수성구청이 게시한 것이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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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부착되어 있는 맞은편의 게시판에서도 큰 문제점이 보인다. 조금 전에 본 안내판은 수성못이 1925년에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이번 안내판은 1927년 4월에 수성못이 완공되었다고 말한다.

안내판은 '수성못을 축조한 수기임태랑 공'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공'은 역사적 유래를 가진 극존칭이다. '공경대부'에 흔히 쓰이는 '공'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고사를 살펴볼 때 대략 지금의 국무총리, 부총리를 뜻한다. 경은 장관급, 대부는 고위 관리를 가리킨다. 대부와 더불어 '사대부'를 이루는 사는 하급관리를 지칭한다. 수기임태랑은 일본에서 동장을 역임했는데, '공'이라니?

수기임태랑을 '충무공' 식으로 공경할 수는 없다. 그런데 묘소 앞 안내판 역시 극존칭 일변도이다. '수기임태랑공 묘역' 안내판은 '이 묘소의 주인은 수성못을 축조하고 관리하시던 수기임태랑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은) 수성들을 항상 풍요롭게 하신 분으로서 1939년까지 못을 관리하시다가' 임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역사유적 현장 안내판에 이렇게 '존칭'을 쓴 곳이 또 있을까?

숭모전(김유신 묘역)과 계백 유적지(계백 묘역)에 세워진 안내판은 김유신과 계백에 대해 전혀 존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숭모전(김유신 묘역)과 계백 유적지(계백 묘역)에 세워진 안내판은 김유신과 계백에 대해 전혀 존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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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묘역인 숭무전 안내판에는 '김유신은 가야국 시조 김수로왕의 13세 손으로 신라 진평왕 17년(595) 만노군 태수 김서현의 아들로 태어났다'라고 적혀 있다. 어디에 존칭이 있는가.

전(傳)계백 묘역의 황산벌 전투 안내판에는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 5만여 명은 탄현을 넘어 황산벌로 진군하였다. 계백은 스스로 가족의 목숨을 거두고 비장한 각오로 출전, 황산벌에 먼저 도착하여 세 곳의 진영을 구축하였다'고 적혀 있다. 여기에도 존칭은 없다.  한국 역사유적지의 그 어떤 영웅도 받지 못하는 극존칭의 예우를 수성못의 수기임태랑만 받고 있는 것이다.

극존칭에 '공' 칭호까지...

수성못 공사에는 총독부 1만1000원, 도청 2만 원, 대구부 4만 원의 예산, 동양척식주식회사의 6만2500원 차입금이 들어갔다고 한다.(1927년 9월 3일 자 <동아일보>) 조선총독부와 일제 관청,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자금을 대어 완공한 수성못 공사를 앞장서서 이끈 사람이 바로 수기임태랑이다. 총독부 등은 무엇 때문에 수성못 공사를 했을까? 한국의 백성들을 위해서?
  
그러므로 수기임태랑을 찬양하는 글이 수성못 일대에 난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식민지 시대의 수성못 확장 공사 때 수성수리조합 부이사장이었던 일본인 수기임태랑의 묘가 본인의 원에 따라 이곳에 조성되었다' 정도의 안내판이면 충분하다.

그가 대구 발전에 기여했다고 말하는 것은 일제 시대가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오늘이 가능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단군 성전
 단군 성전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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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전은 수성관광호텔을 지나 지산동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가 '뉴욕뉴욕'이라는 식당 앞에서 우회전하면 답사할 수 있다. 자동차로 1분 거리이지만 인적이 드물어 흡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울창한 녹음과 청량한 공기가 일품이다.

성전을 향하면서 걱정에 잠긴다. 사실 향교 대성전과 서원 사당을 찾아보면 하나같이 문을 철통으로 잠그어 일반인의 참배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자기들만 모시겠다는 극단적인 폐쇄성이다. 그렇지만 단군성전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공연한 기우에 빠졌던 답답함이 창공에 뜬 구름처럼 환하게 풀어진다.

다만, 단군성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액자 하나가 '옥의 티'처럼 두드러졌다. '民族精氣(민족정기)' 네 글자를 쓴 이가 '大統領 李承晩(대통령 이승만)'이다. 물론 친필도 아닌 복사본이겠지만, 반민특위 강제 해산, 친일파 재중용 등의 이력을 자랑(?)하는 이승만이 '민족정기' 네 글자를 남겨도 되는 인물인가하는 의문이다. 당연히 이곳에는 단군성전에 합당한 인물이 남긴 일필휘지를 액자에 담아서 걸어야 하리라.

대구 두산동 단군성전 내부에 걸려 있는, "민족정기"를 부르짖는 이승만 휘호
 대구 두산동 단군성전 내부에 걸려 있는, "민족정기"를 부르짖는 이승만 휘호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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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수기임태랑, #단군성전, #수성못, #대구공정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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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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