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3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중부전선에서 육군 제6사단 청성부대 장병이 철책을 점검하고 있다.
 13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중부전선에서 육군 제6사단 청성부대 장병이 철책을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쓰기에 앞서 전제할 게 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군 복무 기간에 있었던 개인적인 경험을 기초로 한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부분 가야만 하는 군대에 굳이 '개인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동료로서 같은 사건을 겪어도 각자가 당시에 겪은 환경과 계급에 따라 확연한 기억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짬밥(군복무 기간이 길어질수록)'이 좀 쌓이면 바로 옆에서 자던 전우가 말라리아에 걸려 국군 병원으로 이송되거나 가장 친한 후임이 실탄을 분실해 영창에 가는 황당한 일들이 때때로 벌어진다. 침상을 바로 옆에 두고도 그렇게 운명이 갈린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개인적인 경험이다. 부대마다 병과마다 환경이 다른 만큼 모든 군 생활에 적용할 수 없고 따라서 개인의 기억을 모두에게 일반화 할 순 없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군대가 업무와 사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조직이라는 공통된 특징 때문이다.

다른 이들과 같이 수개월을 함께 생활했다는 경험만큼은 모든 예비역들이 같다. 24시간 내내 같이 먹고, 자고 삽질하며 지내다보면 서로 정이든 미움이든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결국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대부분은 인간관계에서 싹튼다.

특히 GOP에서는 늦여름 열대야마냥 치덕치덕 부대끼는 삶이 휴일도 없이 반복된다. 면회도, 외박도,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는, 삶의 낙이라곤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이동식 PX'뿐인 곳에서 병사들이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각자 '썰'을 푸는 것뿐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 같이 한 달만 근무를 서게 되면 생활관 내에 사는 동료들의 인생을 낱낱이 알 수 있다. 그 인생을 수없이 듣고 또 듣는다는 지겨움 속에서 하루가 간다. 과거의 여자 얘기도, 사회 있을 때의 무용담도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가장 불행한 케이스, GOP 투입 직전에 온 전입자

그렇게 열 명, 스무 명의 삶이 치덕치덕 엉키는 사이에 외부를 향해 쌓은 울타리는 알게 모르게 높아져간다. 영창을 갔다가 우리 쪽 부대로 전입한 병사들에게 그 울타리는 특히 높았다. 내가 있던 부대에선 이런 친구들을 흔히 '옆치기'라 불렀다(타 부대의 경우 다른 명칭으로 불렀을 수도 있고, 이런 명칭이 없는 부대도 있다).

가장 불행한 케이스는 GOP 투입 직전에 전입을 온 '병장 옆치기'다. GOP 투입 한 달 전부터는 모두가 눈, 코 뜰 새 없이 투입 훈련을 받고 물자를 확보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러다 보면, 당연히 내무 생활은 뒷전으로 밀린다. 새로 들어온 옆치기는 당연히 소대원들로부터 자연스레 멀어질 수밖에 없고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GOP 투입이 임박할수록 옆치기들은 중대한 기로에 선다. 후방에 잔류하지 않고 GOP로 올라가면 분대 단위로 생활하는 소초 특성상 따돌림이 더 심해질지 모른다. 후방에 남아있으면 교대하는 부대에 재배치되면서 두 번 옆치기가 된다. 교대를 위해 전방에서 후방으로 내려온 일병과 상병들 역시 후방에 홀로 남겨진 병장을 대접해줄 리 없다. 결국 두세 번에 걸쳐 차별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시의 정도는 심해진다. 그 끝은 하극상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병사들끼리는 흔히 '먹혔다'고 표현한다.

지난 21일 GOP에서 탈영한 임아무개 병장은 GOP투입 직전인 지난 1월 현 부대로 전입했다. 그가 어떤 경위로 동료들을 쏘고 탈영했는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옆치기'로서 그의 앞에 세워졌을 높은 울타리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유추가 가능하다.

21일 오후 동부전선 최전방 GOP에서 초병이 동료 병사들을 향해 소총을 난사한 뒤 무장 탈영을 하는 사고가 발생해 강원도 고성 일대에 진돗개 '하나'가 발령 된 가운데, 22일 오후 사건 현장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의 한 민통선 출입 통문에서 확성기를 단 군용 차량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날 군은 총기 난사 후 도주중인 임모 병장을 추적 체포하기 위해 임모 병장의 아버지의 음성을 녹음해 차량과 헬리콥터에 탑재한 확성기를 이용해 방송했다.
▲ 탈영 초병 설득할 확성기 설치한 군 차량들 21일 오후 동부전선 최전방 GOP에서 초병이 동료 병사들을 향해 소총을 난사한 뒤 무장 탈영을 하는 사고가 발생해 강원도 고성 일대에 진돗개 '하나'가 발령 된 가운데, 22일 오후 사건 현장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의 한 민통선 출입 통문에서 확성기를 단 군용 차량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날 군은 총기 난사 후 도주중인 임모 병장을 추적 체포하기 위해 임모 병장의 아버지의 음성을 녹음해 차량과 헬리콥터에 탑재한 확성기를 이용해 방송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관심병사 판정을 내리는 일련의 과정들이 대부분 지휘관의 직관에 맡겨진다는 것이다. 일선 지휘관이 정신과 의사가 아니건만 적게는 20명, 많게는 120명이 넘는 이들의 정신 상태를 지레 짐작해 투입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현실. 사실 야전에서 B급 관심병사는 형식상의 관리대상이라 봐도 좋을 만큼 사회성에 문제가 없는 케이스로 취급된다. 보통 직접적인 자살 징후를 보이는 경우만을 A급으로 분류하는데, 이 경우 육군본부에서 내려준 자살 징후 매뉴얼이 그나마 이러한 판단을 돕는다.

허나 이 매뉴얼도 임시방편일 뿐, 부대 차원에서 병사들의 심리 상태에 관해 전문가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병사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니 투입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 투입되고 투입 돼도 괜찮은 사람이 정작 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소대장이 임 병장에게 부분대장을 맡긴 걸 보면 굳이 놓고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정도로 적응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개연성이 높다. 이걸 순전히 지휘관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까. 아무리 뛰어난 지휘관이라도 정신과 의사까지 될 순 없다. 

상부가 지침을 내린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이쯤 되니 사건이 수습되고 언론에서 보도될 내용들이 떠오른다. '이 모든 게 군 기강의 해이 때문이다', '폭압적인 징병제의 폐단 때문이다' 등등. 아마 군 당국이 내놓는 해결책은 이보다 더 볼만할 것이다.

군 기강의 확립, 징벌적 훈련 편성, 모병제 전환, 군인 노조 설립. 이념적인 뜬구름은 치우고 각론을 보자. GOP사단에선 대개 전출이나 후방 잔류를 택한 병사들이 따돌림 1순위가 된다. 특히 GOP투입 바로 전 대대에 배치된 병사의 경우 군 생활에서 완전히 낙오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심할 경우 군 생활 동안 세 번 이상 타 부대를 떠돌기도 한다.

이건 결국 인간의 문제다. 세상 어디에도 완전무결한 조직은 없다. 민간 조직에서조차 타자를 향한 부조리가 날을 세우는 경우를 흔히 목격한다. 옆치기의 문제도 결국은 무리지어 사는 인간이라면 한 번쯤 느끼거나 당할 법한 차별과 관계의 문제다. 인간의 심오한 본성을 들먹여야 할지도 모를 이런 사안에 상부가 지침을 내린다고 바뀔 수 있을까. 지휘관은 보지 못하는 병사들의 세계가 있기 마련이다. 보다 기술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에서는 군사심리학이 심리학의 하위 분야가 아닌 독자적인 학술적 영역으로 구축됐다.

미 육군의 군 심리전문가 양성 과정은 고도의 전문성 배양을 목표로 한다. 실제로 선발인원의 상당수가 4년제 심리학 학사학위 소지자, 또는 그 이상의 임상심리 전공자다. 이는 그대로 실전에 적용된다. 선발 후에는 전장에 새로 투입하는 병사들에 대한 지원 업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적극적인 권한이 부여된다. 덕분에 미 육군은 전장 투입을 앞둔 병사들의 신상과 정신 상태를 수시로 파악하고 관리하는 게 가능해졌다. 물론 한국에도 군 상담가가 있다. 그 존재를 화장실 소변기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현 상황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 무의미한 가정이라도 하지 않으면 불행은 또 반복될 것이다. GOP 투입 전에 심리전문가가 전출 및 잔류 병력들의 심리상태를 한 번이라도 점검할 수만 있었다면 상황이 지금처럼 악화됐을까. 언론 보도에 나오지 않는 비극들이 지금도 육군본부 사고사례집에 켜켜이 쌓여간다. 이미 터져버린 일들을 두고 한숨을 쉬는 일들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까. 답은 명확한데 질문은 여전히 계속된다.


태그:#GOP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