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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세상네트워크 빈곤층건강권사업단에서는 <오마이뉴스>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건강권에 대한 실태를 살펴보는 '가난한 사람들도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라는 주제로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편집자말]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이 건강을 누리고 필요할 경우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권리를 건강보험이라는 사회보험으로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또 경제적 수준을 고려하여 가난한 이들에게는 공공부조인 의료급여로 보장하고 있다. 제도적으로 모든 국민이 의료보장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아름답지 않다.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과 의료급여(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포함)의 까다로운 수급조건 때문에 두 제도 사이에 '거대한 의료사각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 사각지대에 포함되어 있는 이들은 대체로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저소득층이다. 그럼에도 의료급여에 포함되지 못해 의료 이용에 제약을 받고 있는 이들이 많고, 보험료를 내지 못해 건강보험 자격이 정지되는 생계형 체납자도 다수다.

자녀의 급식 통장까지 압류당하는 건강보험 체납자의 현실

건강보험료체납자 집단민원신청 기자회견
 건강보험료체납자 집단민원신청 기자회견
ⓒ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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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거주하는 최아무개씨는 작은 카센터를 운영하다 빚이 늘어나 파산신청을 했다. 이후 소득이 없지만 매달 내야하는 건강보험료와 그동안 내지 못한 보험료를 합쳐 현재 170만 원 정도 체납한 상태다.

"파산한 지 얼마 안 되었고 다른 부채로 인하여 도시가스, 전기요금 등등 기본적인 것도 내기 힘든 상황입니다. 날마다 독촉장 속에 살고 있고, 어머니는 장애 1급에다 저 또한 만성질환으로 병원에 자주 가야 되는데 보험료가 체납되어 부당이득금이 발생할까봐 아파도 병원에 못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위 사례처럼 2008년 기준으로 급여 제한을 받고 있는 건강보험 체납자는 전체 지역가입자 712만 세대 중 200만 세대로, 모두 병원 이용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건강보험과 의료급여,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거대한 의료사각지대가 제도의 구조적 문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례 하나를 더 들어보려고 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김아무개(48)씨는 두 딸과 담도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남편을 대신하여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김씨가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버는 돈은 한 달에 80만 원 남짓. 큰 딸이 이번 달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번 50만 원을 생계비에 보태고 있다.

"한 달에 130만 원으로 네 식구가 겨우 목숨만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남편은 돈 때문에 치료도 거부한 상태입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그 고통을 혼자 참고 있습니다. 그런데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체납된 보험료 때문에 고등학생 딸의 급식 통장까지 압류해버렸습니다."

이렇듯 현재 건강보험 체납 가구의 대부분은 연 소득이 1000만 원 미만인 저소득층이다. 이들이 아파서 병원에 갈 경우, 높은 의료비 부담으로 인해 오히려 의료급여 수급자보다 소득이 더 낮아진다. 의료비가 빈곤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마저 체납되면 이들은 병원 문턱을 밟아보기도 전에 스스로 치료를 포기하게 된다.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로 의료사각지대는 점점 더 넓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장기체납자에 대한 건강보험 체납분에 대한 결손처분(구체적으로 확정된 조세 채권이 일정한 사유의 발생 또는 존재로 징수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그 납세 의무를 소멸시키는 징세관서의 처분)을 진행하고 있지만, 체납자들에 대한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을 이유로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장기체납자 중 89%가 연 소득 500만 원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고, 체납액이 100만 원 이상이거나 2년 이상 체납이 지속되는 장기체납자들 대부분은 불안정한 일자리, 소득이 전혀 없는 빈곤층이다. 많은 체납자들이 대부분 건강보험료를 낼 경제적 형편이 되지 못하고 소득 자체가 없는 경우도 다반사다. 또 위 사례처럼 소득이 매우 적어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생활비를 해결하고 나면 사실상 다른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하루를 살기에도 힘겨운 이들에게 체납보험료는 적은 돈이 아니다. 100만 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가족들과 살아간다고 상상해보라. 불안정한 일자리, 어떤 방법으로도 갚을 수 없는 빚 등이 이들을 짓누르고 있는데 건강보험료 체납은 이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사회안전망이 미약하여 이들이 빠르게 빈곤으로 추락하고 있는 동안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권에 대한 포기 아닌 포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건강보험료 체납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료사각지대건강권보장연대 기자회견
 의료사각지대건강권보장연대 기자회견
ⓒ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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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건강보험체납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일까? 바로 '병원 이용 제한'이다. 물론 체납자가 아파서 병원을 이용하는 시점에는 아무런 제재가 없다. 그러나 병원 이용 이후 건강보험에서 부정수급으로 밝혀질 경우 건강보험 급여로 지원받는 치료비 일체를 다시 환수 조치하고 있다. 이때문에 체납자들은 병원이용이 사실상 제한되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건강보험공단의 태도이다. 현재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체납액 해결만을 독촉하고 체납액을 갚지 못할 경우, 체납액을 받기 위해 소득과 재산이 있는 가족의 재산을 가압류하거나 통장거래를 중지시키기도 한다.

건강보험 체납액은 결손처분이 되지 않는 한 끝까지 빚이 된다. 파산신청을 하더라도 건강보험체납액은 변제가 되지 않아 체납자들의 빈곤 탈출을 저해하고 있다.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보호해야 할 공단이 오히려 악덕 채무자가 되어 이들의 사회생활과 취업 및 자활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공단은 전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특히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건강보험 체납자라고 하여 건강권을 침해당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빈곤층, 결손 처분 확대해야

건강보험 체납자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빈곤층이다. 이들에게 체납의 고통을 지게 하는 것은 이들의 빈곤 탈출을 정부가 막는 것이나 다름없다. 죽을 때까지 빚으로 남는 과도한 체납액은 체납자의 삶을 더 빈곤하게 만든다. 이들에 대한 결손 처분을 확대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체납자들은 지속적으로 보험료가 체납되어 100만 원이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결손처분이 된다 해도 또 다시 장기 체납자의 삶으로 돌아오게 된다. 결국 체납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결손처분과 동시에 이들을 의료급여 수급자로 자격전환 하는 것이다. 빈곤의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해지고 있고 사각지대 문제 또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아무런 제도적 도움 없이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그냥 방관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들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 나가야한다. 비수급 빈곤층에 대한 다각적인 의료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건강보험제도가 국민의 건강보장 제도의 기능을 다하면서 사회적 환경에 맞게 유지되도록 건강보험 가입자의 계층을 좀 더 세분화하여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의료안전망을 촘촘히 짜고 건강보험과 의료급여가 만드는 의료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정책적 개선을 강구해야 한다.


태그:#건강세상네트워크, #빈곤층, #의료급여, #체납자,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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