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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한밤중 갑자기 잠에서 깼다. '이 녀석 또 잠 설치나 보다'라고 생각하기엔 짜증 섞인 울음소리가 오늘따라 날카롭게 들린다.

"재원아 왜?"하며 아이 몸을 일으키려 아이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었을 뿐인데 이미 내 몸이 느낀다.

'이 녀석이 지금 고열이 나고 있다.'

40도까지 오른 아이, 울음소리가 비명소리로 들리다

새벽에 고열이 난 아이. 난 출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새벽에 고열이 난 아이. 난 출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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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나케 체온계를 아이 한 쪽 귀 구멍에 가져다 대었다. 너무 심하진 않기를. 하지만 이미 열은 40도였다. 오랜만에 연휴를 즐기다 출근을 해서인지 더욱 천근만근이었던 몸이었다. 잠자리에 들어서는 아이 옆에 잠을 자면서 아기의 뒤척임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이 녀석은 몇 시간 전부터 이런 열에 시달린 걸까. 눈물이 핑 돌았다. 우는 녀석의 옷을 벗기고 미지근한 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닦으며 해열제를 먹였다. 수건이 닿을 때마다 아이는 이전에 들어본 적 없는 찢어질 듯한 소리로 울어댄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응애, 응애가 아니라 '아악'하는 비명으로 들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119에 전화해 응급의료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연결된 직원은 일단 응급실에 가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별 반 다르지 않은 처리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니 해열제를 먹이고 옷을 벗겨두고 물수건을 대주고 있다면 좀 더 기다려 보라고 했다. 한 두 시간이 지나서도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그 때 응급실로 가라고.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계속 나에게 설명을 하지만 온통 내 청신경은 아이 울음소리에 가 있었다. 아가야, 제발 열 떨어지거라. 떨어지거라. 애원하며. 다행히 2시간 뒤 아이는 열이 잡혔다. 37.2도. 열이 떨어졌음에도 흐느끼는 아이를 보며 또 다시 일을 다니고 있는 내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복직을 하고 저녁 늦게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찾을 때마다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듯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로 엉금엉금 기어온다.

그리고 종일 그리웠을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내 다리를 꼭 붙잡는다. 내가 복직한 이후 아이는 어리광이 늘었다. 엄마에 대한 집착도 늘었다. 품에 안기면 내려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서러워 몇 번이고 눈물을 훔쳤는지 모른다. 그래도 이게 아이를 위한 길이고, 먼 훗날 내 인생에 대한 만족과 행복을 위한 길이라며 다음 날 아침이면 아이를 다시 어린이집에 맡긴다. "저녁 7시에 찾으러 올게"라고 말하곤 어린이집 문을 닫아버리는 난 참 매몰찬 엄마다.

매일 아침과 저녁, 자책과 자위를 반복하고, 사랑스럽지만 귀찮기도한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보낸 한 달여 남짓. 고열에 시달리다 잠에 빠진 녀석을 바라보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건강히 잘 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 괜히 애를 이 고생을 시키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치며 운다. 그러면 신랑은 집에서 키워도 아플 아이들은 다 아프다며 위로를 했다.

새벽 4시. 머릿속은 엉망이었다.

'이제 2시간 30분 후면 나는 또 다시 출근 준비를 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회사에 가야 한다. 아니 가야 할까? 애가 이렇게 아픈데. 친정 엄마 시어머니 모두 일을 나가시니 부탁할 곳도 없고. 일단 열이 떨어졌고 별 이상 없어 보이니 맡기는 게 옳을까? 무슨 소리야. 당연히 열이 있다는 건 어딘가 이상이 있다는 건데 병원에 들쳐 업고 달려가야지. 하지만 이제 복직한 지 겨우 한 달 되었는데. 벌써 아이 때문에 연차를 쓰면 '애 있는 엄마들은 어쩔 수 없어 라는 소릴 들을 텐데.'

옆에서 잠든 남편과 아이를 번갈아 보았다. 같이 일을 하고 있지만 아이 아빠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어제처럼 출근을 하고 어제처럼 업무를 보고 어제처럼 퇴근을 하고 나에게 묻겠지. "애는 어때?"라고.

비번인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죄인이 되다

'워킹맘의 아침' 2월의 어느 아침,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기기 위해 바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워킹맘의 아침' 2월의 어느 아침,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기기 위해 바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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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가 되어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해보니 다행히 오늘 비번이라 하셨다. 출근길, 아이를 안고 친정으로 가 죄송하지만 아이를 부탁한다고 말씀드리고 아이를 안겨드렸다. 일단 엄마에게 부탁했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엄마는 무슨 죄로 쉬는 날 아이를 봐주고 나는 일도 손에 안잡히면서 이렇게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지. 내가 오늘 제대로 업무는 마칠 수나 있을지. 초조하게 친정엄마의 전화를 기다렸다. 아이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면 왜 열이 났는지 알려주신다고 했으니.

오후 3시가 넘어서 걸려온 친정엄마의 전화는 아이가 목감기에 걸려 열이 났었다고 하며 약을 지어왔으니 시간 맞춰 잘 먹이면 될거라 했다. 지금은 밥도 잘 먹고, 잘 놀고 있으니 걱정 말고 일 잘 보고 오라고. 한시름 놓았지만 아이를 보기 전까지 답답한 마음은 여지없이 이어졌다. 이 녀석은 지금 날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까. 내가 이렇게 아픈데 곁에 있어주지도 않는 엄마를 얼마나 서운해할까.

평소 같으면 웃어 넘겼을 상사의 19금 유머, 평소라면 속으로 한번 시원하게 욕하고 넘겼을 상사의 질타, 짜증나는 관계와의 부딪힘. 이 모든 게 오늘 따라 힘들었다. 직장맘의 고충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를 느끼며 하루를 보냈다. 그나마 오늘 일이 많지 않으니 망정이지, 일까지 많은 날이었으면 아마 일이 손에는 안 잡히고, 마감은 다가오고, 퇴근 시간에 맞춰 아이를 보러 가지도 못하고 또 어린이집에 전화해서 "오늘은 8시까지 좀 부탁 드립니다. 애 아빠 혹은 친정엄마가 찾으러 갈 거예요"하고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을 거다. 정말 나는 이 생활을 해야 하나. 할 수 있을까. 정말 주변의 말처럼 '나 죽었소'하며 5년만 버티면 되나.

혹자들은 '엄마들 돈 욕심이 애 인생 망친다'고 할런지도 모른다. 자기가 조금 아껴쓰면 될 것을 허영심에 돈벌면서 애만 고생 시킨다고. 그런데 정말 그건 아니다. 남편 혼자 벌어서는 당장 오르는 전셋값을 채우기도 급급하고, 아이에겐 별로 대단한 걸 해주지도 않고 그저 먹이고 입힐 뿐인데도 한 달에 아이 앞으로만 생활비가 50만 원 가량 든다.

그리고 직장맘의 행복감은 아이가 어릴 때는 말도 안 되게 떨어져 있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증가된다던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이 시기만 잘 버티면 경력 단절 없이 끝까지 일할 수 있을 거라고. 나중에 아이가 원하는 곳에 돈을 쓸 수 있게 모아둘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일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아이가 아픈 날, 아이가 엄마를 보면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하며 달려드는 날, 가끔 엄마를 보자마자 잘 놀다가도 울음을 터뜨리는 날이면 내가 생각했던 내 인생계획, 내 삶의 목표, 내 꿈 이런 것 따위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이런 마음에 아마 난 내일도, 모레도, 쭉 '죄인 아닌 죄인' 같은 엄마로 지낼 것 같다. '이제 1525일만 버티면 된다, 1524일, 1523일......버티면 된다'라는 다짐과 함께.

세상은 엄마도 일을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살 수 없게 되었는데, 출산은 장려한다. 30평 안팎의 집에 아이 스무 명을 넣어두고 그 안에서 아이를 봐 줄 테니 나가서 일을 하라고 한다. 그나마 그 서른 평 안팎의 집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나같은 엄마는 복 받은 거란다.

하루하루가 딜레마의 연속이다. 정부는 일하는 엄마들을 위한 정책,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정책을 내놓는다고 바쁘다. 정책이 있고, 매뉴얼이 있고, 제안이 있으면 무엇할까. 관리 감독, 정책 유지, 실행 피드백은 없는 세상에서 나같은 죄인 엄마는 늘어날 텐데.

둘째 생각은 있냐는 동료의 질문에 정말 단호하게 "아니"라 답한다. 아픈 내 아이를 위해 마음 편히 연차도 못 쓰는 한심스런 엄마를 둔 가엾은 아이가 이 땅에 둘이나 되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태그:#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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