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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내를 위해 늘 기도해주고 계시다는 일본교회의 목사님을 찾아 인사를 드리고 찍은 기념사진. 양쪽에서 나와 친구의 부축을 받고 서서 찍은 참 보기 드문 귀한 사진!
▲ 멀리서도 응원을 해주는 분 아픈 아내를 위해 늘 기도해주고 계시다는 일본교회의 목사님을 찾아 인사를 드리고 찍은 기념사진. 양쪽에서 나와 친구의 부축을 받고 서서 찍은 참 보기 드문 귀한 사진!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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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됩니다!"
"예? 왜요? 우린 3년 가까이 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명절에도 하루밖에 외박을 안 하곤 했는데, 3박 4일 그 정도도 안 되나요?"
"입원 중 외박은 최대 72시간을 넘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재활병원은 다들 주말이나 연휴 때는 치료도 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1박 2일씩 집에 다녀오기도 한다. 어차피 병원에서 그냥 침대에 누운 채 천장만 쳐다보고 있거나, 알아서 가까운 바깥을 들락거리며 시간 때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무 걱정도 안 했는데 최대 허용시간에 걸렸다.

"벌써 비행기 예약에 지불까지 끝났는데…."
"만약 꼭 그래야 한다면 퇴원을 하세요. 그리고 다시 입원을 하시는 방법으로 하세요."
"그래도 되나요?"
"예, 하지만 2주, 14일은 지나야 같은 병원으로 재입원이 가능합니다. 인정되는 기준이 그래서요."
"그건 곤란해요. 갈 곳도 없고, 그동안 치료도 안 했다간 몸이 굳을 텐데."

결국 환불수수료를 수십만 원(일행 3명 모두를 동시에 취소해야 했다) 물어내고 예약을 취소하고 2박 3일로 다시 예약했다. 떠나기로 약속한 4월 1일을 불과 3일 앞두고…. 그것도 결국은 퇴원 처리로 했다. 국내 여행과는 다르게 외국으로 나가는 경우는 무조건 퇴원 처리 된다는 걸 나중에야 알려줬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몰랐다면서.

장기 입원환자로 산다는 건 참 많은 경우가 불편하다. 주거생활의 불편이야 기본이고 각종 우편물 수령도 불편하고, 가족 친척의 경조사도 불참이 태반이다. 그러다보니 남들도 아예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하기 일쑤다. 하도 제외하고 진행하다보니 그렇게 고정관념이 되어도 할 말이 없다. 다 우리 잘못이지 누구를 야속하다 탓할까.

일본에 초대한 친구... 정말 여행은 터무니없는 꿈일까

저 헬기가 물을 뿌리러 가는 산 뒤쪽에 다 타버린 대형버스가 있었다. 가변차선으로 세워진 버스의 불이 산으로 옮겨 붙어 산불은 올라가고 있었고, 이 정체로 출국예상시간에서 30분이 늦어져 속이 새카맣게 탔다.
▲ 김포공항 가는 길의 화재사고 저 헬기가 물을 뿌리러 가는 산 뒤쪽에 다 타버린 대형버스가 있었다. 가변차선으로 세워진 버스의 불이 산으로 옮겨 붙어 산불은 올라가고 있었고, 이 정체로 출국예상시간에서 30분이 늦어져 속이 새카맣게 탔다.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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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 차가 꼼짝 못하지?"
"그러게, 평일이고 점심시간 직전인데."
"벌써 30분 가까이 서 있잖아. 인터넷 검색 좀 해봐.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오산 부근'으로."
"버스에 화재가 났다네?"

말 끝나기가 무섭게 저만치 앞 산 위로 검은 연기가 하늘을 자욱하게 덮으면서 오르고 있다. 헬기가 두 대, 세 대 오가고, 연신 물인지 화학약품인지를 뿌리고 있다.

"산불까지 났나?"
"큰일 났다. 비행기 출국수속 시간 늦게 생겼는데…."
"오늘 못 가게 하려는 하늘의 뜻일까?"

대형버스가 전소될 만큼 큰 화재였다. 사람들은 고속도로 주변에 내려 모여 있고, 버스는 굵은 철재 뼈대를 남기고 홀랑 탄 채로 연기를 내고 있었다. 그 불이 산으로 옮겨 붙어 산불을 진화하느라 헬기가 연신 오가고, 난리도 아니었다. 늦어지는 바람에 우리 가슴속도 다 타고 있었다.

무사히 기내에 올라탄 후 안도의 숨을 쉬면서 일행과 인증샷을 찍었다. 일본에서 기다리는 아내의 친구에게 무사히 출발 소식을 알리기 위해! 지나간 우여곡절 불안했던 마음을 털어버리면서!
▲ 우여곡절 끝 비행기 탑승 무사히 기내에 올라탄 후 안도의 숨을 쉬면서 일행과 인증샷을 찍었다. 일본에서 기다리는 아내의 친구에게 무사히 출발 소식을 알리기 위해! 지나간 우여곡절 불안했던 마음을 털어버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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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딱 그 말대로 뛰고 서두르고, 간신히 비행기에 타고 나니 땀으로 온몸이 축축해졌다. 이럴 때면 거동도 못하는 아픈 아내는 더 장애물이 되었다. 성한 사람이라면 같이 가방 들고 뛰어가기라도 할 텐데, 장애인이 장애물이 되다니.

"우리 이제 갈 수 있는 거 맞지?"
"그럼!"
"다행이다. 왜 자꾸 꼬이고 벽이 가로막는지 속상해서 다 포기해버릴까 하고 속으로 몇 번이나 생각했었거든."

아내도 나도, 퍼져버린 몸과는 다르게 마음은 좀 들뜨고 있었다. 왜 안 그럴까? 한 달쯤 전 일본 사는 아내의 친구가 와서 좀 쉬었다가 가라고 말했을 때, 터무니없는 꿈이라고 아내는 기운 빠져 시무룩했고, 나는 '가면 돼지 뭘!'이라고 호기롭게 위로를 했다. 그리곤 아내는 생전 처음 여권을 만들었고 비행기편을 예약했고, 뒤로 하루하루 손꼽으며 조마조마 했었다. 혹시나 또 병의 증상이 나빠지거나 하면 말짱 헛일이 되어 더 우울해질테니, 제발 그런 일 없기를 빌고 빌었다.

온천에서 머리도 못 감았지만... 아내는 기뻐했다

초대해준 일본친구 부부의 침실을 양보(?)받아서 잘 자고난 아내. 가져간 병원 환자복을 입은채 소변주머니를 늘어뜨리고도 좋아하고 있다. 오늘 입고 다닐 옷을 친구가 주었는데 어느 것이 좋을지 고르면서! 여자들은 언제나 입고 치장하는 순간에는 행복해지는가보다.
▲ 치바현에서 하룻밤 초대해준 일본친구 부부의 침실을 양보(?)받아서 잘 자고난 아내. 가져간 병원 환자복을 입은채 소변주머니를 늘어뜨리고도 좋아하고 있다. 오늘 입고 다닐 옷을 친구가 주었는데 어느 것이 좋을지 고르면서! 여자들은 언제나 입고 치장하는 순간에는 행복해지는가보다.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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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도착했다. 공항으로 마중 나와준 아내 친구의 차를 타고 집이 있는 치바현으로 갔다. 아담하고 마치 카페처럼 분위기 있는 전통 일본풍 집이었다. 동행한 또 다른 한국 친구는 가져온 선물을 풀어놓았고 거실에서 모두 밝은 기분으로 웃으며 만남의 행복을 느꼈다.

2박 3일 동안 아내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일어나고 차로 이동하고, 아내는 좀 힘들 만한 거동도 기쁜 표정으로 잘 참으며 움직여주었다. 아내의 친구는 일본의 3대 온천이라는 쿠사츠 온천을 예약하고 우리를 데려갔다. 물론 아내는 다른 일행들이 온천을 두 번 세 번 들어가고 나오는 동안 침대에 누워 있기만 했다. 심지어 온천탕에서만 씻을 수 있게 해놓은 구조 때문에 방에서는 이틀 동안 머리도 감지 못하는 말도 안 되는 경험도 했지만! 다행히 식사가 맛있어서 아내한테 위로가 됐다.

"나 많이 어지럽고 힘들어."
"잠시만 참아, 좀 누울 곳을 찾아볼게!"

장거리 이동으로 녹초가 된 몸을 푸느라 간간이 눕히고 주무르고, 가져간 약이 모자라 남의 약까지 얻어먹기도 했다. 그러다 아내는 귀국길 하네다 공항에서 잠시 까무러쳤다. 긴 대기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했다. 급히 장애인화장실을 찾아 들어가니 작은 침상이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20분이 넘도록 누이고 다리를 높이 올리고 마사지를 했다.

초대해준 아내의 친구와 온천물에는 발도 못담가본 채 돌아왔지만 대신 음식으로 대접받고 아쉬움을 달래는 자리.
▲ 온천에서 밥만 먹기 초대해준 아내의 친구와 온천물에는 발도 못담가본 채 돌아왔지만 대신 음식으로 대접받고 아쉬움을 달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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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좀 회복하여 비행기에 올랐다. 두 시간 정도의 비행 내내 아내는 다리의 통증을 호소했다. 혈액순환은 되지 않고, 누울 수는 없는 좌석구조 때문에 달리 길이 없었다. 보다 못한 여승무원들이 지나가면서 "뭐 도와드릴 것은 없나요?"라며 안타까이 묻기도 했다. 방법이 따로 있을 리 없다. 가방을 바닥에 놓고 밟아 높이를 높였지만 금세 또 힘들어했다. 결국은 두 다리를 내 무릎에 올리고 내내 주물러서 혈액순환을 시키며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멀리는 가기 힘드시겠어요?"
"예, 아무래도…."

내리는 길에 승무원이 위로한다고 하는 말에 나는 한 계단만큼은 낮아진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다시는 어디를 가나봐라"
"좀 지나면 또 잊어먹고 '가자!' 그러겠지 뭐~."

혼잣말처럼 했는데 들렸는지 아내가 대답했다. 하긴, 언제는 뭐 편하고 자연스럽게 다닌 적 많았나? 국내라고 다를 것도 없었고, 가까운 집에 갈 때조차 비가 오기라도 하면 어떤 때는 등에 업고 올라가야 했다. 휠체어로 미끄러운 언덕길을 갈 수 없어서.

"신이여! 제게 더 이상의 복은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네다 공항 안 ‘에도소거리’ 에서 아내는 소바 한 그릇을 먹고 눈 쇼핑만 했다.
다시 올지는 건강한 사람에 비해 몇 배는 더 기약할 수 없는 희망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쉬움을 느끼면서.
▲ 하네다 공항 에도거리 구경 하네다 공항 안 ‘에도소거리’ 에서 아내는 소바 한 그릇을 먹고 눈 쇼핑만 했다. 다시 올지는 건강한 사람에 비해 몇 배는 더 기약할 수 없는 희망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쉬움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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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나이 들어 업을 힘도 없어지면 아내는 외출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다 포기하고 창문 밖만 내다보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넘겨야 하나?'

쓸데없을지 모를 먼훗날의 근심이 가까이 휙 다가온다. 그건 아마도 시간이 아무리 멀리 있어도 가상이 아니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일 게다. 병원 가까운 큰아이 자취방에 도착하니 새벽 두 시가 넘었다. 내내 내리던 비는 조금씩 그쳐가고 있었지만 내 맘속의 빗소리는 아직도 그치지 않았다. 밝게 햇살 뜨는 날은 언제나 올까?

화장실에 앉아 몰려오는 피로를 참으며 일을 보는데 문득 일본 쿠사츠 온천에서 아내가 배변을 하던 일이 생각났다. 잘 설치된 비데에서 30분 넘도록 씨름하면서, 한국과 다른 방식의 비데기능에 재미있어 했다. 어차피 힘든 과정은 마찬가지지만.

그렇게 아내는 배변 한번 하는 것도 괴롭고 고통스럽다. 소변도 옷 속에 주머니를 감춰 달고 다니며 봐야 하고, 버릴 때는 냄새를 감수하며 화장실까지 가야 했다. 이동할 때는 계단 서너 개만 있어도 장정 몇 명이 들어 옮겨주지 않는 한 포기하는 게 나았다. 버스 오르내릴 때는 내가 업었다. 이 모든 일의 불편함을 아내는 몇 년째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 좋은 지위를 준다고 해도 어느 누가 이 자유로운 건강과 바꿀까? 제정신이라면, 나처럼 곁에서 지켜보면서 간접으로라도 경험해본 후라면. 그런데 그렇게 억만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좋은 건강'을 나는 이미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미, 빠진 것 없이! 불편한 이들이 천금같이 바라는 그 자유로운 행보를 가능케 하는 건강을, 숨 쉬고, 걷고, 뛰고, 계단을 오르고, 대소변을 원할 때 마음대로 보는 건강을.

'신이여! 제게 더 이상의 복은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디 이렇게 이미 받은 행운과 복들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누리고 살게만 해주십시오!'

대기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지쳐 쓰러진 아내, 하네다 공항의 장애인화장실은 거의 호텔수준이었다. 온갖 종류별 세면도기와 부속 받침대가 설치된 넓은 공간 등. 이곳에서 아내는 긴급 마사지로 휴식하면서 회복을 하고 다시 비행기로 들어갔다.
▲ 기어이 쓰러진 아내 대기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지쳐 쓰러진 아내, 하네다 공항의 장애인화장실은 거의 호텔수준이었다. 온갖 종류별 세면도기와 부속 받침대가 설치된 넓은 공간 등. 이곳에서 아내는 긴급 마사지로 휴식하면서 회복을 하고 다시 비행기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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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봄과 함께 하는 4월 초순의 간병일기입니다.



태그:#일본여행, #희귀난치병, #쿠사츠, #소변주머니, #치바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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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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