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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의 삼성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의 삼성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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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빌딩 40층 미래전략실. 이인용 사장(커뮤니케이션팀)의 표정은 약간 상기돼 있었다. 기자와 마주한 그는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 삼성이 내놓은 새로운 신입사원 채용 이야기 때문이었다. '삼성고시가 없어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특정기업 채용에서 '고시'라는 말 자체가 이상하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이 사장은 기자에게 '20만 명'이라는 숫자와 '사회적 비용'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신입사원 채용 방식을 바꾸게 된 취지와 의도를 설명하는 데 애를 썼다. 그리고 13일 만에 그는 다시 언론 앞에 섰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또 그가 발표한 삼성의 새로운 채용방식 역시 없던 일이 됐다. 그는 "이 정도까지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총장추천이 핵심 아닌데..." 지역·여성차별 논란 확산되자 없던 일로

삼성의 신입사원 채용의 핵심은 서류전형의 부활이다. 매년 20만 명에 달하는 입사 필기시험 응시자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었다. 전국 200개 대학을 직접 찾아 인재를 뽑고, 총장에게 학생 추천권을 줘 '숨어있는' 인재를 찾겠다는 것이었다.

논란은 그때부터 예견됐다. 특히 대학총장 추천권이 마치 삼성 입사로 간주되면서 누리꾼 사이에서 논란이 커졌다. 삼성이 대학에 추천 인원을 할당하는 것을 두고 '대학 자율성 침해'와 '대학 줄세우기' 등의 비판이 일었다.

삼성 내부에서도 총장추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그룹 관계자는 "총장추천제가 나왔을 때 찬반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서류전형의 한 가지 경우의 수일 뿐 핵심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자칫 총장 추천만으로 삼성입사가 결정되는 것처럼 비칠 것에 대한 우려가 컸다"며 "하지만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고 덧붙였다.

그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들'은 삼성의 대학별 추천 할당 인원이 공개되면서부터였다. 특정 대학의 인원과 지역, 여성 비율 등이 연결되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시민사회뿐만 아니었다. 대학사회까지 등을 돌렸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삼성 채용제도를 정식으로 다루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민주당 등 야당과 호남지역의 자치단체장 그리고 의회까지 나섰다. '지역 차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채용제도 바꿔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사진은 지난해 12월 2일 서울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사장단 인사를 발표할 때 모습.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사진은 지난해 12월 2일 서울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사장단 인사를 발표할 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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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미래전략실은 주말부터 비상이 걸렸다. 2005년 이건희 회장의 고려대 명예박사 학위 수여로 불거진 '삼성공화국' 논란이 재현될까 고민스러웠다. 삼성 일부에서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다. "삼성이 하는 것에 너무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것이다. 이어 "신입사원의 70%가 지방대와 여성·저소득층 출신"이라며 "국내 어느 대기업도 하지 않는 채용방식을 유지해 오고 있다"고도 했다. 볼멘소리였지만 하소연이었다.

27일 저녁,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답답하다"고 했다(관련기사 : "'삼성고시' 대안 내놓은건데... 우수인력 영·호남 안 가린다"). '채용방식 변경을 검토하느냐'고 묻자, 그는 곧장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로서는'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변경을) 검토하지는 않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그룹 미래전략실에서는 더는 여론을 거스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어 그룹 내 최고위층에 '신입사원 채용 전면 유보'라는 카드를 보고했다. 

총장추천제뿐만 아니라 서류전형 도입 자체도 무산됐다.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28일 이인용 사장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는 "어떤 제도든 취지가 좋다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어 "채용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며 "따로 시한을 두지 않고 연구·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의 신입사원 채용을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됐다. 취업준비생들은 다시 예전처럼 삼성 필기시험(SSAT)과 면접을 보면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홍역에 따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까. 우리 사회에 남겨진 과제이기도 하다.


태그:#삼성, #신입사원 채용, #총장추천제, #이인용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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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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