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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담 석상에서 미국에 반하는 '베팅'을 하는 것은 절대 좋은 베팅이 아니며, 미국은 한국에 베팅하는 것을 계속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이 구설수에 올랐다. 문제가 되자 미국 측은 한미동맹에 대한 변함없는 의지를 확인하는 말이며 한중관계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는 미국에서 흔히 쓰는 구어체이기도 하고, 패권 하락을 의심하는 이들에게 미국은 침체하지 않을 것이므로 잘못 베팅하지 말라는 뜻으로 최근 종종 사용되는 표현인 것도 사실이다. 또한 한중관계가 이명박 정부에 비해 개선되었다지만 중국에 베팅하지 말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이번 설화사건에는 언론의 과장이 있다. 더욱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발표로 인해 한중관계가 다소 껄끄러워진 상황에서 미국의 부통령이 그런 발언까지 할 유인은 크게 없었다.

 

바이든 '설화 사건',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그렇다고 해서 이런 발언이 전혀 무의미하며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으로만 치부할 경우 놓치게 되는 몇 가지 지점들이 있다.

 

우선 아무리 관용적인 표현이라 하더라도 공개회담에서 할 정도로 미국이 자신의 패권하락과 중국의 부상을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재확인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반복적인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실효성과 유용성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향후 10년간 국방비 5000억 달러를 삭감해야 하는 재정압박 속에서 아시아로의 회귀가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부호가 달린다.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의 오랜 전쟁이 마무리됨으로써 아시아로 돌릴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생긴 것은 맞지만, 중동의 안정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알 수 없다. 또한 중동의 전략적 가치를 생각할 때 과연 아시아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치고 올라오는 중국을 내버려두기도 쉽지 않다. 결국 워싱턴이 생각하는 해법은 중동에서 직접적이고 대규모의 군사행동을 배제하고 협상을 통한 해결을 선호하되, 개입하더라도 최소한의 개입만 한다는 소위 '가벼운 발자국 외교(light-foot print diplomacy)'를, 아시아에는 중국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국들에게 아웃소싱하는 전략을 택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아시아 전략이 대중봉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부상이 미국에게는 분명 큰 도전이고 위협이 될 수 있지만, 오늘날 국익증가의 수단으로서 전쟁의 효용가치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과, 미중의 높은 경제적 상호의존도를 고려할 때 반드시 패권의 '세력전이(power shift)'가 충돌로 간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의 '간보기', 초조한 일본

 

시진핑이 내세운 '중국의 꿈(中國夢)'과 미국의 아시아 전략이 충돌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현재는 봉쇄(containment)와 포용(engagement)을 모두 품고 있는 이중전략으로 봐야 한다. 중국의 신형대국론과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실체를 확정하지 못한 채 서로의 의도와 주변흐름을 탐색하는 중이다.

 

시쳇말로 '간보기' 상황에서 일본의 행보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국력의 지속적인 침체를 겪고 있다. 심각한 경제 불황은 20년을 훌쩍 넘기고 있고,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여파는 미국이 당한 9·11에 버금가는 충격이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반면에 중국은 무섭게 성장하며 2010년 일본의 국내총생산을 추월해 세계2위로 올라섰다. 중국의 가파른 국방비 증액과 첨단무기 개발은 물론이고,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발사의 성공 역시 일본은 중대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를 의탁해온 미국의 하락은 일본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일본은 지금의 중국을 1930년대의 자신, 즉 군국주의를 닮았다고 여기므로 미국 입장과는 달리 중국의 의도를 시간을 두고 탐색할 이유와 여유가 없다. 당장 센카쿠를 둘러싼 영토 문제에서 보여준 강경한 행보는 중국의 위협이 일본에게는 다가올 수도 있는 미래가 아니라 이미 닥친 현실이라는 인식을 강화했다.

 

일본 정부는 현재 안보에 대한 2가지 결정적 위협을 '공세적(assertive) 중국'과 '예측불가의(unpredictable)의 북한'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대책은 미일동맹 강화와 자체 군비증강인데, 이 둘은 서로 연동된다. 즉, 미국이 아시아로의 회귀전략을 미일동맹 강화를 통해 구체화하고 있고, 일본은 이에 편승해 보통국가화를 적극 추진하는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을 위해 일본이 부담을 기꺼이 지겠다고 함으로써 양국의 전략이 상호보합성을 가진다. 그런데 오바마를 포함해 미정부당국자들이 아시아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언급하지만 일본은 동맹방기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떨칠 수 없기 때문에 미일동맹은 물론이고 자체군비도 강화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일본의 전략이 최대효과를 발휘하기 위한 외부조건은 아무래도 미중의 갈등관계일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대중봉쇄와 포용 사이에서 선택을 미루고 있는 상태에서 일본은 미국이 전자의 방향으로 기울게 만드는 촉매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0월 초에 있었던 미일 외교 및 국방장관회담은 그런 의미에서 적잖은 함의를 가진다. 회담에서 집단자위권과 센카쿠열도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인한 아베 정부는 곧바로 후속조치에 나섰다. 올해 연말까지 국내법과 제도에 대한 정비를 완료하고, 내년 하반기까지는 집단자위권을 포함해서 변화된 일본의 역할을 담아서 미일 안보가이드라인의 개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일본의 보통국가화의 또 다른 핵심조치라고 할 수 있는 국가안보회의(NSC)를 창설했으며, 정부가 특정비밀로 정하면 누설할 경우 처벌하는 특별정보보호법도 논란 가운데 통과되었다.

 

워싱턴은 일본이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어렵게 하는 불필요한 민족주의에 대하여 비판적이다. 또 민주당의 이념 및 정서상으로 역사문제나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몰역사적 태도에 불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시아 전략에 있어 일본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앞서면서 보통국가화를 적극 지원하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미국의 대일본정책을 항상 국방부가 주도해왔던 것도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다.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은 국방부가 주도하고 있으며, 군사동맹에 관련된 어젠다가 지배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일본전문가 카렐 울페렌은 보다 구체적으로는 하와이에 본부를 둔 미국 태평양사령부가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을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이 중국 봉쇄한다? 성급한 분석

 


지난 11월 23일 중국이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자 미국은 지역안정을 위협하는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행위로 규정하며 곧바로 전략폭격기 B-52를 띄우는 등 무력시위로 대응했다. 중국이 설정한 구역이 자신들과 겹치게 된 한국과 일본도 크게 반발하면서 중국과 맞서는 구도를 형성했다. 우발적 충돌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긴장고조는 미국패권의 침체와 중국의 부상이라는 세력전이가 빚어내는 갈등의 전초전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막으려는 미국과 막히지 않겠다는 중국의 기싸움이다.

 

이번 사태는 미국이 일본 집단자위권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해 공식적으로 지지한 것을 두고 중국이 대중봉쇄의도로 해석해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대응한 것이다. 특히 중국정부 내의 군부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적극 반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긴장이 고조되자 다시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미국도 수위조절에 나서며 오히려 한국과 일본을 달래는 모양새다.

 

앞으로 10년간 중국을 이끌 시진핑 정부가 제시한 신형대국론은 지난 6월 첫 미중정상회담에서 긍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었다. 몇 가지 쟁점현안에도 불구하고 향후 양국이 협력관계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의 신형대국론은 이전 정권들의 조심스런 행보에 비해 적극적이고 또 때로는 공격적인 측면까지 보인다. 특히 자신의 앞마당으로 간주하는 아시아에서만큼은 미국에게 밀릴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중국의 신형대국론은 미국이 자신의 핵심이익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중국도 미국의 글로벌 패권에는 정면도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핵심이익에 대한 양국의 속내가 다르다는 점이다. 영토 문제와 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는 중국이 생각하는 핵심이익이지만, 미국으로선 중국이 말하는 핵심이익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곧 미국의 아시아에서 가졌던 영향력을 상실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수용하기 곤란하다.

 

앞으로 미중은 상당기간 이런 강온양면의 방식을 통해 상대의 의도와 능력을 테스트할 것이다. 반복하지만 최근에 진행된 일련의 미일동맹 강화를 두고 미국이 중국봉쇄로 방향을 틀었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분석이다. 아직은 대중협력과 경쟁을 병행한다는 전략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보기도 어렵다. 미국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일본의 국방력 증강과 동맹으로서의 적극적인 분담을 환영하지만,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고 대립하는 것은 우려한다.

 

그런데 미국의 이러한 의도에는 또 다른 장애물이 있는데, 그것은 동북아 역내국들이 공통적으로 국내정치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는 것이다. 신생정권들로서 권력기반을 공고화해야 하는 것과 더불어 동북아의 세력전이가 가져다주는 불안정성이 합쳐져서 각국의 강경한 대외정책을 추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도 자신의 의도대로 관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준형님은 한동대학교에서 국제정치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미중관계, #신형대국론, #아시아로 회귀, #카디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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