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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신 동년배끼리 양심은 팔지 맙시다"
▲ 23차 시국선언 집회현장 "나이 드신 동년배끼리 양심은 팔지 맙시다"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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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화이팅', "안보를 지키기 위해 왔다"
▲ 종북반대 집회현장 '대한민국 화이팅', "안보를 지키기 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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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신 동년배끼리 양심은 팔지 맙시다."
"우리는 나라 안보 위협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 나왔다."

7일 오후,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총체적 대선개입 및 박근혜 정부의 수사방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사회 시국회의'가 서울 시청역 광장에서 주최한 23차 범국민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난 박종철(58)씨는 작심한 듯 말을 이었다. '길 건너 종북반대 집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어찌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동원돼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들 또한 같은 시대를 살아온 동년배 아니냐"며 "결국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박씨의 목이 금세 메었다.

같은 시각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반국가 종북세력 척결 16차 국민대회'에 참석한 김문성(가명·60대)씨는 "제대로 된 목소리 전하러 여기까지 왔다"고 밝혔다. '극단적인 발언과 행동에 대해 비판이 많다'는 기자의 물음에 "비판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 아니냐"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울분이 가득찬 목소리였다.

다른 의견이 공존하는 곳이 민주주의다. 그런 점에서 지난 1년, 서울 광장을 중심으로 벌어진 '시국선언집회'와 '종북반대집회'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온전히 드러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진보와 보수가 12차선 대로를 사이에 두고 목소리만 높였을 뿐, 간극은 좁히지 못했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서로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매듭부터 살펴야 했다. 무엇이 이들을 나누고 가른 것인지 알아야 했다. 이날 밤, 우리가 시청 대로를 분주히 오간 까닭이다.

우리가 보온병 7개에 커피 담은 이유

직접 내린 커피가 얼어버린 마음을 녹여주길 바랐다.
▲ 보온병에 커피 담으며 직접 내린 커피가 얼어버린 마음을 녹여주길 바랐다.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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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못난 글씨로 문구도 적었다
▲ 커피 건네기 위해 10년 만에 못난 글씨로 문구도 적었다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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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한가득 커피 담은 보온병과 컵이 있다. 지난 7일 오후 5시 풍경.
▲ 여기서부터 출발 가방 한가득 커피 담은 보온병과 컵이 있다. 지난 7일 오후 5시 풍경.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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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이 문제였다. 기성 언론은 지극히 파괴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에만 집중했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진짜 목소리가 배제됐다.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어떻게'라는 방법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추운 겨울'과 '커피'를 연결시키기까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때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리터짜리 보온병 7개를 마련했다. 일반 종이컵으로 80잔을 나눌 수 있는 양이었다. 미리 구입한 공정무역 커피로 더욱 의미를 다졌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선명한 메시지를 담기위해 스케치북도 준비했다.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어 상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토요일 오후 2시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 모여 2시간 동안 커피를 내렸다. 정성 다해 '공짜 커피 = 비싼 이야기'라는 피켓도 만들었다.

한 시간 만에 커피 품절, '학보사 기자'라 거짓말 한 이유

커피를 건네니 확실히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왔다. 시국선언 집회 현장에서.
▲ 커피 건네며 커피를 건네니 확실히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왔다. 시국선언 집회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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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커피 한 잔이 큰 역할을 했다.
▲ 종북반대 집회 현장 이날 커피 한 잔이 큰 역할을 했다.
ⓒ 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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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서 서울시청까지 지하철 2호선 외선순환을 타고 올라갔다. 집회 시작 두 시간 전, 서울 광장으로 이어지는 시청역 7번 출구는 이미 경찰들로 가득 찼다. 서울광장과 대한문을 잇는 횡단보도도 마찬가지였다. 경찰 200여 명이 뭉쳐 있었다.

그 틈으로 시민들이 힘겹게 움직이고 있었다. 광장 크리스마스트리 근처에서 미리 준비한 팻말을 들고 섰다. 꺼내기 무섭게 스스로를 '노영동 검정바위'라 밝힌 한 시민이 다가왔다. 그는 커피 한 잔 건네 받고 말을 보탰다.

"오늘 12시 20분부터 서울역에 모였습니다. 물대포 맞고, 빨갱이 XX들 모였다고 욕먹고…."

그는 식어버린 몸을 커피로 달래며 씁쓸하게 웃었다. 서울광장 대로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두 개의 집회에 대해 그는 "불량 언론이 만든 폐해가 이런 분열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의 표정에 짙은 아쉬움이 배었다.

같은 시각 동화면세점 앞. 23차 촛불 집회가 열리는 반대편에서는 재경향우회 회원 및 보수단체 1000여 명이 반종북집회를 진행했다. 재밌는 사실은 취재를 위해 "<오마이뉴스>에 기사 쓰고 있다"고 말하자 대부분이 인터뷰를 거부했다. '종북신문'이라며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대학 학보사'에서 왔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학생증'을 보여달라는 말이 나왔다. 다행히 일행 중 한 명이 대학원생이었다. 그가 학생증을 보이자, "박 대통령 후배고만"이란 말이 들렸다. 순식간에 팽팽했던 긴장이 누그러졌다. 날씨 덕분에 커피를 권할 때 마다하는 사람이 없었다.

양쪽에서 이야기를 들은 뒤, 시청역 트리 근처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열심히 건넸는데도 남아있는 보온병이 4통이나 됐다. 한데 모아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주최 측에서 미리 준비한 커피로 생각해 "촛불은 어디서 받을 수 있냐"는 질문도 받았다.

조심스레 자신을 군인이라 밝힌 20대 여성은 "군복 입은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자기 이익을 위해 군복이 저런 식으로 이용되는 건 아니라고 본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않았다. 마지막 50여 잔의 커피는 20분 만에 동이 났다.

자리를 깔자 20분 만에 커피 80잔이 동났다
▲ 시청역 끝자락에서 자리를 깔자 20분 만에 커피 80잔이 동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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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반목을 풀 수 있다. 그것이 우선이다.
▲ 스케치북에 담은 메시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반목을 풀 수 있다. 그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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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9시 30분, 시청역 집회는 특별한 사고 없이 종료됐다. 취재를 마치고 다 같이 머리를 맞댔다. 커피 들고 이야기 들은 각자의 소회를 나눴다.

종북반대집회를 집중 취재한 옥기원(29)씨는 "한 마디로 그들 또한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연 그들이 극단으로 몰아간 대상이 누구인가"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이 기존 언론에서 그려놓은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에 적잖이 놀란 모습이었다.

이홍찬(30)씨 역시 현실과 언론에 비춰진 실재는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며, "국론이 예상보다 심각하게 분열돼 있다"고 말했다.

사진기를 들고 양쪽 집회를 모두 스케치한 김민화(31)씨도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극렬한 음성에 비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많은 시민들의 목소리는 작았다"고 했다. 덧붙여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간극의 원인이 소통 부재임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어쩌면 겨울 내내 우리가 보온병 들고 계속 시청을 돌아다녀야 할 이유기도 했다.


태그:#시국선언, #종북, #서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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