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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세상의 모든 권력을 가졌고, 그 권력을 맘껏 휘두르며 살아온 왕이 있다. 그런데 그 왕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주위 사람들 모두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본인 역시 시시각각 쇠약해지는 자신의 상태를 모를 리 없다. 다만 믿고 싶지 않을 뿐. 아니, 차마 놓을 수 없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일지도 모르겠다.

포스터
▲ 연극 <왕 죽어가다> 포스터
ⓒ 극단 동네방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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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왕 죽어가다>는 제목 그대로 죽어가는 왕과 그를 둘러싼 두 왕비와 신하(주치의)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대놓고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웃음과 함께 버무려내는 바람에 그다지 무겁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볼 수 있다.

죽음을 가운데 놓고 각기 다른 생각과 의견으로 갈등하는 사람들은 먼 나라 다른 시대의 사람도 아니고, 무대 위에서만 볼 수 있는 연극 속 인물도 아니다. 바로 이 땅에 발 디딘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자신이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왕. 알면서 회피하는 것이라며 코 앞에 닥친 죽음과 대면하라고 밀어붙이는 첫째 왕비.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으로는 희망을 말하는 둘째 왕비. 누구보다 정확하게 환자의 상태를 알면서도 왕의 비위를 맞추는 신하.

죽음 앞에 선 인간 대부분의 모습일 것이다. 왕은 수시로 울고, 화내고, 부인하고, 도망가고, 원망하고, 한탄하고, 망상에 사로잡히고, 여전히 힘있는 체하고, 마치 죽음을 이겨 넘어설 듯 하다가도 살고 싶다며 무릎을 꿇고 애원한다.

두 왕비는 죽음을 앞둔 사람을 향한, 혹은 죽음에 그 자체에 대한 우리 자신의 양가감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진실과 대면해야 한다, 그것만이 삶의 마지막을 품위있게 만들어준다. 아니다,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도록 용기를 가져야 한다. 비록 거짓일지라도 위안이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있는 것 아닌가.

아무리 몸부림치며 거부해도 마지막 시간은 어김 없이 다가오고, 더는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돼 휠체어에 몸을 기댄 왕은 그 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무심코 지나쳐 왔는지, 놓쳐버렸는지 한탄한다.  

이제 정말 끝이 왔다. 결국 왕은 어느 누구와도 동행할 수 없는 길로 걸음을 옮겨놓는다. 눈부신 왕관과 왕홀과 겹겹이 입고 있던 화려한 옷을 모두 벗어버린 맨몸으로.

'죽음을 매일 5분씩 준비했어야 한다'며 비난을 하고, 외면하지 말고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매몰차게 밀어붙이는 첫째 왕비의 말이 옳긴 하지만 어디 우리들 마음이 그런가. 일상에 허덕이는 우리 삶이 어디 그런가. 나 역시 죽음준비교육 강사로 매일 죽음과 죽음준비를 강조하고 있지만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연극이 필요한 것이리라. 우리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삶 속에서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비록 공연장을 떠난 잠시 후면 잊어버릴지라도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니 고마울 뿐이다.

죽음은 늘 이렇게 우리가 쉽게 지나쳐버리는 것들과 놓치고 있는 것들을 헤아려 볼 수 있게 해주면서 결국 삶을 들여다보게 만들어준다.

덧붙이는 글 | 연극 <왕 죽어가다> (원작 : 외젠 이오네스코, 각색 : 김덕수, 연출 : 유환민 / 출연 : 김종태, 이형훈, 정다움, 최희진) ~ 12월 15일까지,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CY씨어터



태그:#왕 죽어가다, #죽음, #죽음준비, #웰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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