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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 전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같은 고엽제 전우로서 전우 여러분께 편지를 드리게 됐습니다. 오랜 전부터 많이 망설여온 일인데, 덧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계속 미룰 수만은 없을 듯해 오늘 이렇게 공개편지를 드립니다.

저는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충남남도지부 태안군지회 소속 회원입니다. 2006년 태안군지회를 창립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홍보위원장 직책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고엽제회원으로서 충실히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갖가지 행사나 모임에도 적극 참여해왔고, 전국 행사나 도지부 행사에도 여러 번 참석했습니다.

저는 1970년 9월 제17제대로 파월을 했고, 백마사단 도깨비연대 제1대대 1중대 전투병으로 투이호아 근처 홈바 산 아래 전술기지와 대대본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1971년 10월 귀국했습니다. 홈바산과 사례오산, 쑤이까이와 망망계곡 등의 정글을 누볐고, 단용강 늪지대에서 모기떼와 많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전장의 추억

1970년 12월 주월사령부의 '독수리작전'이 개시되어 망망계곡으로 투입되기 위해 치누크 헬기장에서 헬기 탑승을 기다리며 찍은 사진
▲ 작전 투입 1970년 12월 주월사령부의 '독수리작전'이 개시되어 망망계곡으로 투입되기 위해 치누크 헬기장에서 헬기 탑승을 기다리며 찍은 사진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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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번은 마을작전을 하던 중 폐허가 된 마을을 보기도 했습니다. 불에 타고 허물어진 집들과 시커멓게 그을린 파인애플 나무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지요. 나중에 들은 얘긴데, 우리 한국군(해병 청룡부대)가 베트콩 소탕작전을 벌이면서 마을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수많은 주민들의 시신이 단용강에 떠다니다가 바다로 쓸려가기도 하고, 강가 갈대밭에 걸리기도 했다지요. 폐허가 된 마을 풍경을 내 눈으로 보고, 그 끔찍한 참상을 내 귀로 들으면서, 내전을 겪는 약소국의 실체를 확인하며 절절히 가슴 아파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한 나라가 월남과 월맹, 남북으로 갈려 전쟁을 하게 되고, 외국 군대들이 들어옴으로써 빚어지는 참상들을 보고 들으면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 아픔은 절절했습니다.

원래는 캄란만의 투이호아 지역에 주둔했던 해병 청룡부대가 북쪽 다낭시와 인접한 추라이 지역으로 이동한 데에는 청룡부대에 대한 투이호아 지역 주민들의 공포감도 많이 작용했다지요. 해병대의 빨간 명찰을 보기만 해도 주민들이 몸을 피하고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요. 그리하여 1966년 육군 백마부대가 청룡부대의 주둔지였던 투이호아 지역에 들어가서 맨 먼저 한 일이 대민사업이었다고 합니다.

1948년생인 저는 올해 만 65세, 노인 연령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파월 전우들 사이에서는 거의 막내에 속합니다. 전우들 대부분이 저보다 연장자고, 선배들입니다. 그래서 고엽제전우회 모임 자리에서 많이 조심하곤 합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고 함부로 나서는 일 없이 선배 전우들 앞에서 예의를 지키려고 신경을 쓰곤 하지요.

모임 자리에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베트남 전장에서의 추억들도 많이 소개되는데, 고생담과 무용담들 속에는 창피하고 슬픈 이야기들도 더러 있지요. 술 한 잔 나누다보면 더욱 스스럼없이 나오는 그 이야기들을 지면에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술자리에서는 누구나 부담 없이 토로했던 결코 자랑스럽지 않은 이야기들을 지면으로 옮기게 되면 부작용도 많이 생겨나겠지요?

그래서 과거의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하고, 고엽제전우회라는 단체가 안고 있는 오늘의 기이한 문제들에 대해서 몇 말씀 드릴까 합니다. 모임 자리에서는 하나같이 온순하고 정다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함께 나누시는 분들이니 제가 그냥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겠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고엽제전우회

2007년 6월 30일 태안군고엽제전우회 창립1돌 기념식에서 전우회원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하나같이 노병들의 모습인데, 그때로부터 벌써 6년이 흘렀다.
▲ 애국가 제창 2007년 6월 30일 태안군고엽제전우회 창립1돌 기념식에서 전우회원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하나같이 노병들의 모습인데, 그때로부터 벌써 6년이 흘렀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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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 고엽제 전우의 회원 전우들에 대해서 조금은 연민과도 같은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러는 차출에 의해서 파월을 하신 분들도 있지만 대개는 목숨을 걸고 자원을 해서 베트남 전장을 가셨던 분들입니다. 또 자유민주주의니 세계평화니 하는 거창한 가치 지향을 안고 전쟁터에 뛰어든 분들도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그 시절의 우리나라의 경제사정과 관련해 파월 지원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했습니다. 그 시절의 보편적인 '가난'이 파월 지원의 이유 중 하나였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받는 전투수당 중 1/3의 금액만 개인 몫으로 받았고, 2/3가량은 국가에 헌납했습니다. 그 돈으로 정부는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등 산업발전의 기반을 닦았지요. 그 사실을 파월 전우들 모두가 잘 알기에, 우리 모두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관련하여 일종의 자부심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미국의 종용에 의해서 남의 나라 전쟁터에 뛰어든 것이 100%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 파월장병들이 피와 목숨을 바쳐 조국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사실은 모든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찍이 '베트남참전전우회'를 만들었고, 베트남 전장에 살포된 고엽제에 의한 후유증들이 나타나면서 자구책의 일환으로 '고엽제전우회'를 결성했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사는 전우들도 많아서 제게 고엽제전우회는 연민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한시적인 단체이기 때문에 느끼는 연민도 있습니다. 해마다 인원이 줄기만 하고 보충은 되지 않기에 언젠가는 소멸이 되고 말 운명이기도 때문입니다. 점점 인원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지레 적막감 같은 것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영구히 존속되는 단체가 아니고 언젠가는 소멸하고 말 한시적인 단체이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명예, 고엽제전우회의 위상을 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영구히 존속하는 단체라면 한 시절의 시행착오나 오도 같은 것을 바로잡고 명예를 회생시킬 수 있는 기회도 옵니다. 하지만 한시적인 단체는 덧없는 세월 속에서 명예로운 흔적을 남길 기회도 갖지 못하고 오욕을 안은 채 티끌처럼 사라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한국군의 파월 사실이 기록으로 남는 것처럼 고엽제전우회의 이름은 역사에 남게 됩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해야 좀 더 명예로운 이름으로 남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고엽제전우회의 진짜 명예를 생각합시다

2007년 6월 19일 대전 청송수련원에서 열린 한나라당의 '정책비전대회' 행사에 고엽제전우회원들이 동원되기도 했다. 고엽제전우회는 일찍부터 특정 정치권과 밀착된 관계를 유지해왔다.
▲ 한나라당 행사 참석 2007년 6월 19일 대전 청송수련원에서 열린 한나라당의 '정책비전대회' 행사에 고엽제전우회원들이 동원되기도 했다. 고엽제전우회는 일찍부터 특정 정치권과 밀착된 관계를 유지해왔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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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 고엽제전우회가 이른바 보수단체로 부각되고, 보수단체들의 선봉에 선 것처럼 이런저런 일에 나서서 거칠게 행동하는 것을 우려의 눈으로 봅니다. '보수단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일말의 의구심을 갖습니다. '보수'(保守)라는 것에 대한 개념들이 명확한지도 저로서는 의문입니다. 무엇을 보수할 것인지, 보수할 만한 것을 보수하겠다는 것인지, 보수의 목표가 불명확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말들을 하시겠지만, 자칫하면 친일 매국세력을 수호하려는 것일 수도 있고, 독재세력을 수호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부정부패를 수호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혼동에 빠져들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수호하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라면, 민주주의의 기본과 정신을 잘 이해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베트남 전장에 가서 목숨 걸고 싸웠던 것은, 그 당시에는 명확히 헤아리지 못했더라도, 민주주의라는 명분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뜻과 가치를 우리는 명확히 헤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행동이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것인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침해하고 훼방하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고엽제전우회나 베트남참전전우회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전장에 나갔고, 대한민국의 명예를 위해 존재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떤 특정한 정파에 속한 단체가 아닙니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마크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마크
ⓒ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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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애국심 때문에 어떤 행동들을 하시고,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앞에 내세우시지만 자칫하면 일개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되기 쉽습니다. 특정 정파나 정권이 국가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특정 정파를 초월해야 합니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위해 전장에 나갔던 용사들답게 우리는 매사에 가볍게 처신하지 말고 의연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식과 손자 또래들로부터 어른 대접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노년 세월을 살고 있습니다. 거의 막내에 해당하는 저도 법적으로 노인연령에 접어들었습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다 노인이 되지만, 노인이 된다고 해서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른이 돼야 합니다. 우리는 조국과 민주주의를 위해 전장에 나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답게 의연하고 묵직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일개 정파의 선발대가 돼 우르르 몰려가서 거칠게 행동하는 것은 '우리'답지 않은 일입니다. 이는 고엽제전우회의 전체 회원들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전우회의 상층부가 특정 정파와 밀착해 전우회 전체를 좌지우지하며 명예를 실추시키는 게 아닌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거듭 말합니다. 우리 고엽제전우회는 대한민국과 민주주의, 또 전체 회원들의 명예를 생각해야 합니다. 보수라는 이름을 내걸고 보수하지 말아야 할 것들, 수호해서는 안 될 것들을 수호하기 위해 우리의 명예를 실추시켜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태그:#고엽제전우회, #베트남참전전우회, #보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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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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