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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정원 가이드북> 겉표지
 <텃밭정원 가이드북> 겉표지
ⓒ 그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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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름이면 친정어머니는 콩밭의 열무를 뚝뚝 잘라 넣은 후 나박나박 썬 무와 매운 고추를 다져 넣어 끓인 강된장을 넣어 쓱쓱 밥을 비벼주시곤 했다. 크고 굵게 자란 열무인데도 억세지 않았다. 아니,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부드러웠던 열무는 굵기 때문인지 마지막 한 숟갈을 먹을 때까지 숨이 하나도 죽지 않고 꼿꼿했다. 그래서 살캉살캉 씹는 맛이 좋았다.

열무가 다 자랐다 싶으면 성큼성큼 뽑은 열무를 단을 지어 10분 남짓 거리에 있는 읍내로 가져가 팔기도 했는데, 그리 오래지 않아 빈손으로 오시곤 했다. 그리고 이래저래 마주치는 동네 아줌마들에게 "입맛이 없어 열무 뚝뚝 분질러 넣고 된장으로 쓱쓱 비벼 먹었더니 밥맛이 도네!"라며 뽑아다 먹어보라는 엄마의 권유에 상대방의 얼굴이 밝아지곤 했다. 아마 짐작컨대 어른들에게 콩밭에 심은 열무는 맛있는 열무로 통했지 싶다.

크고 굵어 억셀 것 같은데 어떻게 이리 부드럽지? 갸웃거리는 내게 친정어머니는 "콩밭에 심은 열무라 부드럽다"고 하셨다. 해마다 여름날이면 엄마의 열무강된장비빔밥을 먹으며 아마도 콩잎의 그늘이 열무를 부드럽게 하는 것이리라 지레짐작하곤 했다.

여하간 '열무 때문에 콩이 부실하다'와 같은 푸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아마도 콩에게도 열무는 이로운 작물이었을 것 같다. 아니 최소한 해로운 작물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런데 콩의 무엇이 열무를 그리 부드럽게 자라게 했을까. 정말 콩의 넓은 잎 때문에 열무가 부드럽게 자라는 건가?

궁금해 한 적은 있으나 그 이유를 정확하게 몰랐던,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잊고 있었던 것들이 <텃밭정원 가이드북>(그물코 펴냄)의 '섞어짓기' 편을 읽노라니 새록새록 떠올랐다.

'고등어무조림의 무를 고등어보다 좋아하게 되면 진짜 어른"이라는 말이 있다. 이미 오래전에 어른이 된 나는 이십 년 넘게 고등어조림을 즐겨 해먹고 있다. 순전 고등어와 양념에 조려진 무 때문이다. 고등어와 무는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란다. 무를 맛있게 먹는 방법에 이 둘을 섞어 조리는 것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음식관련 전문가들은 이처럼 잘 맞는 재료들을 묶어 궁합이 맞는 음식이라 소개하기도 한다.

고등어와 무, 소고기와 배 등처럼 궁합이 잘 맞는 음식과 잘 맞지 않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궁합이 잘 맞아 섞어 지으면 병충해를 막아주거나 잘 자라게 서로 도와주는 농작물들이 있고, 그 반대로 서로에게 해로운 작물들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됐다.

시금치와 대파를 섞어지으면.
■ 시금치에 생기는 해충은 대파를 싫어하고, 대파에 생기는 해충은 시금치를 싫어한다.
■ 시금치의 초산 농도가 낮아져 샐러드로도 먹을 수 있다.
■ 시금치는 쌍떡잎식물이고 대파는 외떡잎식물이기 때문에 서로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다르고, 뿌리 주변에 사는 미생물 종류도 달라 영양분 경쟁을 하지 않는다.
■ 시금치는 그늘을 좋아하고 대파는 햇빛을 좋아하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살릴 수 있다.
- <텃밭 정원 가이드북> '섞어짓기'에서

<텃밭정원 가이드북>은 최근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관심이 더욱 커진 텃밭 가꾸기에 필요한 것들을 알려주는 책이다.

책에 의하면 함께 심으면 서로 잘 자라게 해주는 대파와 시금치는 궁합이 맞는 작물. 오이와 호박도 시금치처럼 대파와 섞어 지으면 좋은 점이 훨씬 많은 작물들이다. 오이를 같은 곳에 해마다 심으면 '넝쿨쪼김병'이 생겨 오이를 키울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대파와 함께 심으면 대파나 양파 등의 뿌리에 주로 사는 '버크홀테리아 글라디올리'라는 미생물이 병원균을 막아주어 병해를 줄일 수 있다. 또, 해충도 덜 오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오이와 대파 둘 다 뿌리에서 배설물을 땅속으로 내보내는데, 대파의 배설물은 오이가 분해해서 쓰고 오이의 배설물은 대파가 분해해서 쓰면서 서로 잘 자라게 해준단다. 호박의 병충해도 대파가 막아준다.

오이는 우리들 밥상에 오르는 것을 비롯하여 널리 쓰이며, 대파는 일 년 내내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요긴하게 쓰이는 양념 채소인지라 주말농장이나 텃밭에서 빠뜨리지 않고 심는 작물이기도 하다. 호박과 시금치 역시 서민들의 밥상에 자주 오르기 때문인지 텃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작물들이다. 이왕 심는 거 이처럼 가까이 어울려 심으면 서로 좋은 작물들끼리 심어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이 좋겠다. 

시골 출신이라 논과 밭을 늘 보고 자랐기 때문인지 책을 읽는 내내 부모님이 일구던 밭의 풍경들이 그림처럼 펼쳐지곤 했다. 그러고 보면 수박 밭가에는 해마다 옥수수가 심어졌고, 고구마 가까이에는 콩을 드문드문 심으시곤 했다. 책에 의하면 이들 역사 섞어 지으면 도움이 되는 작물들이다.

쌍떡잎식물인 수박과 외떡잎식물인 옥수수가 각각 다른 미생물들을 자라게 해 땅속 미생물들이 다양해지는 데다가 뿌리를 내리는 정도가 달라 양분 경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콩은 질소를 고정시킨다. 그리하여 고구마를 잘 자라게 한다고 한다. 아마도 청소년기 자주 먹었던 콩밭의 열무가 씨를 뿌렸는가 싶게 금세 자라고, 유독 부드러웠던 이유는 콩의 이런 작용 때문 아니었을까.

양분만 넉넉하면 이처럼 심는 것도 좋을.
 양분만 넉넉하면 이처럼 심는 것도 좋을.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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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밭정원.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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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밭정원
 도심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밭정원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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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정원 가이드북>은 생활공간 속의 자투리땅을 이용해 텃밭을 만들고, 이처럼 만든 까닭에 좁을 수밖에 없는 텃밭정원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작물 선택과 작물재배 방법들을 알려주는 책이다. 책은 이들 작물 외에 섞어 지으면 좋은 작물들과 반대로 해로운 작물 수십 종을 조목조목 알려준다.

벽돌을 이용한 텃밭이나 나무틀을 이용한 텃밭, 재활용포대나 크기가 다양한 화분, 작아져 못 신게 된 아이의 장화를 이용한 텃밭, 건물의 벽에 붙여 만든 텃밭이나 아이들과 함께 꾸미는 텃밭 등 책은 다양한 형태의 텃밭 만드는 법을 사진을 곁들여 알려준다. 씨앗 얻는 것부터 모종 키워 심어 가꿀 때 필요한 것들을 속속들이 알려줌은 물론이다.

쇠뜨기풀로 만드는 자연농약
① 풀이 한창 무성해지면 쇠뜨기를 뿌리째 혹은 잎들을 뜯어 모은다. ②고무 통에 쇠뜨기를 넣고, 자작하게 잠길 정도로 물을 붓는다.③쇠뜨기가 가벼워서 물에 뜨지만 상관없고, 신경이 쓰이면 돌멩이 등으로 눌러 놓는다. ④뚜껑을 덮고 그늘진 곳에 둔다. ⑤3~4일쯤 지나면 물 색깔이 약간 변하면서, 썩은 냄새가 나기도 한다. ⑥7~15일 정도 지나면 물 색깔이 점점 검게 변한다. ⑦물뿌리개나 분무기로 채소에 뿌려주면 된다.

손쉽게 만드는 벌레잡이 통
제조방법 1):식초+설탕+쌀뜨물  제조방법  2):식초+설탕+기름
일일이 벌레를 잡지 않아도 벌레를 유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빈 페트병에 식초와 설탕, 쌀뜨물이나 기름을 섞어 새콤달콤하게 만든다. 페트병으로 벌레들이 모여들 수 있도록 구멍을 두군데 정도 내주면 끝이다. 새콤달콤한 것들을 좋아하는 벌레들이 금세 모여든다. 들어가는 구멍을 살짝만 벌려놓기 때문에, 일단 들어가면 나가기가 쉽지 않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페트병이 효자노릇을 단단히 하는 셈이다.
-<텃밭정원 가이드북>에서

게다가 이처럼 우리 몸에 해롭지 않은 자연농약이나 비료 등을 만드는 방법들과 쓰임새 등까지 알려준다.

결혼 이후 단독주택에서만 살아 그간 화분에 상추 몇 포기나 부추, 매운 고추 몇 그루씩을 심어 자투리공간에 놓아 키우며 거둬먹곤 했었다. 그런데 매번 고추가 좀 여유 있게 열릴까 싶으면 어느 순간 하얗게 꼬이는 진딧물 때문에 노심초사, 속상하곤 했다. 이처럼 서너 포기 심은 고추에 진딧물이 꼬일 경우, 대책이 없다. 당연히 살충제 생각은 하지 못한다. 누군가 담뱃재를 물에 희석해 뿌려보라고 해 해봤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아마도 나처럼 화분 등에 심어 가까이 두고 찌개 끓일 때 몇 개씩 따먹자고 심어봤던 사람들 중에는 진딧물 때문에 속상해 했던 사람들이 많으리라.

책에는 고맙게도 이처럼 늦은 봄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쇠뜨기를 이용한 자연농약 만들기와 벌레잡이 유인통 만들기가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는 가까이 심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잘 자라게 할 뿐더러 병해충까지 막아주는 작물 수십 가지의 실례를 알려 주는데다가, 이처럼 우리 몸은 물론 자연에도 아무런 해가 없는 자연 그대로의 방법으로 농사짓는 법들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적극 활용했으면'의 바람이 있는 그런 책이다.

덧붙이는 글 | <텃밭정원 가이드북> |오도 (지은이) | 김시용 (사진) | 그물코 | 2013-09-10 | 15000원



텃밭정원 가이드북

오도 지음, 김시용 사진, 그물코(2013)


태그:#텃밭정원, #주말농장, #걸어다니는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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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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