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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에 있는 축령산 휴양림. 조림왕 임종국 선생이 가꾼 인공숲이다. 최근엔 치유의 숲으로 각광받고 있다.
 전남 장성에 있는 축령산 휴양림. 조림왕 임종국 선생이 가꾼 인공숲이다. 최근엔 치유의 숲으로 각광받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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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정말 뜨겁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밖에 나다니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다. 짜증나는 소식도 많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대한 국정조사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NLL 논란도 점입가경이다. 전 국정원장은 개인비리로 구속됐다. 금풍과 향응 제공에 성접대 등 공직자와 정치인의 크고 작은 부정부패도 끊이지 않는 요즘이다.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아곡 박수량(1491∼1554) 선생이다. 선생은 조선시대 청백리(淸白吏)였다. 성종 22년 1491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선생은 38년 동안 고위 공직자이면서 정치인으로 살았다. 이렇게 오랜 세월 고위 관직을 지내면서도 뇌물을 받지 않았다. 접대는커녕 술 한 잔도 얻어 마시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까지 청백리의 표상이 됐다.

박수량 선생을 만나러 전남 장성으로 간다. 장성에는 박수량 선생 외에도 또 한 명의 청백리였던 지지당 송흠 선생도 있다. 청백리는 아니지만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축령산을 푸른 숲을 가꾼 조림왕 춘원 임종국 선생도 있다. 봉건제도에 맞서 만민평등의 기치를 내걸고 이상국을 건설한 의적 홍길동도 있다. 8년째 주인 없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신촌마을의 양심가게도 있다. 이른바 청렴벨트다.

전남 장성에 있는 필암서원. 호남 유학의 거물인 하서 김인후 선생을 배향하고 있다.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서원 가운데 하나다.
 전남 장성에 있는 필암서원. 호남 유학의 거물인 하서 김인후 선생을 배향하고 있다.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서원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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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황룡전적지 기념탑. 동학농민군이 처음으로 관군을 격파했던 곳에 세워져 있다.
 동학농민혁명 황룡전적지 기념탑. 동학농민군이 처음으로 관군을 격파했던 곳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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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청렴벨트는 백비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장성읍에서 가면 필암서원을 거쳐 동학농민전쟁 격전지, 홍길동테마파크, 백비, 축령산휴양림 코스가 일반적이다. 백비를 중심으로 모두 자동차로 20여분 거리에 위치하며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필암서원은 장성군 황룡면에 있다. 호남 유학의 거두였던 하서 김인후(1510∼1560) 선생과 그의 제자인 고암 양자징을 배향하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도 피해를 보지 않아서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서원이다. 여기서 가볍게 몸을 풀며 청렴벨트 답사를 시작하는 게 좋다.

동학농민전쟁 격전지는 필암서원에서 홍길동테마파크로 가는 길 왼편에 자리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상징이 된 죽창 모형의 기념탑이 보인다. 이곳은 1894년 4월 반봉건 반외세를 기치로 일어선 동학농민군이 처음으로 관군을 격파했던 전적지다. 당시 총알받이로 썼던 장태(대를 원통형으로 엮고 그 속에 짚을 넣어 만든 것)를 굴리는 모습도 조각돼 있다.

이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이 승리하면서 관군보다 먼저 전주를 점령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러 지역에 집강소를 설치하며 역사상 유례없는 농민통치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장성 황룡전적지는 이렇게 동학농민혁명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장성 홍길동테마파크. 서자로 태어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공원이다.
 장성 홍길동테마파크. 서자로 태어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공원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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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홍길동테마파크. 홍길동이 이끈 활빈당원들이 생활했던 산채와 망루, 의적의집 등이 재현돼 있다.
 장성 홍길동테마파크. 홍길동이 이끈 활빈당원들이 생활했던 산채와 망루, 의적의집 등이 재현돼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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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테마파크는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아치실마을에 조성돼 있다. 허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의적 홍길동의 생가가 고증을 거쳐 복원돼 있다. 전시관도 따로 마련돼 있다. 전시관에서는 홍길동이 실존인물이었음을 뒷받침해주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자료를 볼 수 있다. 세상의 차별과 불의를 견딜 수 없어 집을 떠나 의적이 된 홍길동의 일대기도 엿볼 수 있다. 홍길동이 이끈 활빈당원들이 생활했던 산채와 망루, 의적의집을 재현한 산채 체험장도 있다.

박수량 선생의 백비(白碑)는 홍길동테마파크에서 자동차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다.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마을 뒷산에 있다. 이 백비가 알려지기 시작한 게 최근이다. 백비는 아곡 박수량 선생의 묘비이며 청백리의 상징이다.

비석에는 고인의 이름과 업적 등이 새겨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백비에는 고인의 이름과 직위는 물론 그럴싸한 업적 한 줄도 새겨져 있지 않다. 직사각형의 대리석 위에 호패 형태의 비신만 올렸을 뿐이다. 크기는 일반적인 비석과 비슷하다. 그래서 백비다.

박수량 선생의 백비로 가는 길.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뒷산에 자리하고 있다.
 박수량 선생의 백비로 가는 길. 전남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뒷산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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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량 선생의 묘와 백비. 청백리의 상징이 돼 있다. 최근엔 청렴을 다짐하려는 공직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박수량 선생의 묘와 백비. 청백리의 상징이 돼 있다. 최근엔 청렴을 다짐하려는 공직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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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비의 주인공인 박수량 선생은 24살 때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고부군수, 병조참지, 동부승지, 호조참판, 예조참판, 형조참판, 우참찬, 좌참찬, 호조판서 등 당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시쳇말로 왕위만 빼고 요직이란 요직은 다 거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살아 청백리로 불렸다.

선생이 얼마나 청빈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명종 임금이 그의 청빈한 삶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듣고 암행어사를 두 차례나 보냈다. 하지만 그때마다 변변한 집 한 채 없이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선생은 눈을 감는 순간에도 묘를 크게 쓰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 것을 유언했다고 한다.

선생이 세상을 떴는데도 장례 치를 비용이 없어서 유가족이 고민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이 사실을 안 명종이 장례 비용을 지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비석으로 쓸 만한 돌 하나를 하사했다.

청백리의 상징이 된 박수량 선생의 백비. 크기는 일반적인 비석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비석에는 고인의 이름과 직위는 물론 그럴싸한 업적 한 줄도 새겨져 있지 않다.
 청백리의 상징이 된 박수량 선생의 백비. 크기는 일반적인 비석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비석에는 고인의 이름과 직위는 물론 그럴싸한 업적 한 줄도 새겨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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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에다 새삼스럽게 그의 청백한 삶을 쓴다는 것이 오히려 그의 청렴을 잘못 아는 결과가 될지 모른다"면서 "비문 없이 그대로 세우라"는 말과 함께. 어설픈 글로 비문을 새기는 게 오히려 선생의 생애에 누(累)가 되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다. 보잘것없는 공이나 직위일지라도 크게 치장하는 게 요즘, 이름 하나 남기지 않은 백비가 더 귀하게 다가온다.

축령산도 여기서 가깝다. 백비에서 추암마을이 지척이다. 축령산휴양림은 장성군 서삼면 추암리에서 모암리를 거쳐 북일면 문암리까지 펼쳐져 있다. 축령산 편백숲길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의 앞자리에 서 있다. 산림청과 (사)생명의숲에 의해 미래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에 첫 번째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렇게 귀한 숲을 가꾸기 위해 애쓰신 분이 춘원 임종국 선생이다.

하늘로 쭉쭉 뻗은 장성 축령산의 편백나무. 한국전쟁 직후부터 춘원 임종국 선생이 심고 가꾼 것이다. 지금은 숲을 이뤄 온국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하늘로 쭉쭉 뻗은 장성 축령산의 편백나무. 한국전쟁 직후부터 춘원 임종국 선생이 심고 가꾼 것이다. 지금은 숲을 이뤄 온국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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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령산을 푸른 숲으로 가꾸는데 일생을 바친 춘원 임종국 선생의 조림공적비. 장성 축령산휴양림에 세워져 있다.
 축령산을 푸른 숲으로 가꾸는데 일생을 바친 춘원 임종국 선생의 조림공적비. 장성 축령산휴양림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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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국 선생은 일찍이 숲의 가치를 알고 1956년부터 황무지였던 축령산에 나무를 심었다. 당시는 멀쩡한 나무까지도 베어 땔감으로 쓰던 때였던지라 임업에 대한 그의 투자는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그럼에도 선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날마다 나무를 돌보고 숲을 가꾸는 데만 신경을 썼다. 가뭄이 들었을 때엔 가족까지 나서 물지게를 지고 산길을 오르내렸다.

선생은 이렇게 숲을 가꾸면서 재산을 다 날린 것도 부족해서 빚까지 안게 됐다. 더 이상 빚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숲을 다른 사람한테 넘겼다. 그리고 1987년 세상을 떠났다. 이 숲을 나중에 산림청이 사들였고 지금은 국유지로 관리되고 있다.

이 축령산을 한 바퀴 도는 19㎞의 둘레길도 있다. 예닐곱 시간 정도 걸린다. 일반적으로 산책로는 마을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모암마을에서 우물터와 편백쉼터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코스를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추암마을과 문암마을, 금곡마을에서 각각 출발해서 싸목싸목 거닐 수 있는 길도 있다. 어느 쪽으로 가든지 축령산과 편백숲의 매력을 맛볼 수 있다.

장성 축령산 숲길.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우거진 숲길 사이를 뉘엿뉘엿 걷다보면 어느새 자연치유를 실감할 수 있다.
 장성 축령산 숲길.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우거진 숲길 사이를 뉘엿뉘엿 걷다보면 어느새 자연치유를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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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장성나들목으로 나가 상무대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타고 제2황룡교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필암서원과 홍길동테마파크, 박수량 백비, 축령산휴양림으로 가는 도로가 있다.



태그:#백비, #축령산, #홍길동테마파크, #청백리, #박수량 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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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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