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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고 아름다운 재료, 나무

한 그루의 나무가 제법 쓰임새 있는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옛날에는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어서 시집보낼 때 장롱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가구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가구를 골라 사는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장롱을 만들 만큼 나무를 키가 자란 나무를 베어 장롱을 만드는 것 또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드는 일인가.

린다이링과 잔야란이 함께 쓴 책 <나무를 닮아가다>의 부제는 '나무를 품은 목공 장인 16인의 풍경'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책을 보면 나무를 심는 사람, 나무를 가꾸는 사람과 더불어 자신의 손으로 나무를 이용해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나무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나무 장난감에서 목조 주택까지

<나무를 닮아가다> 표지
 <나무를 닮아가다> 표지
ⓒ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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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 '나무 장난감'에서는 소제목 그대로 나무로 만드는 작은 장난감이나 악기 등을 만드는 장인과 그들의 생활공간을 엿볼 수 있다. 2부 '나무 의자'에서는 나무로 여러 가지 가구를 만드는 프로 목공예인과 프로를 뺨치는 아마추어가 함께 소개된다. 3부 '나무 집'에서는 목조주택을 만든 사람과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나무를 닮아가다>에는 목공예 장인 16인의 작품들과 그들의 생활공간이 선명한 도판으로 들어가 있어서 한눈에 목공예 작업에 빠져들게 된다.

두 필자의 목공예에 대한 사랑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장인들의 엄격함과 푸근함이 동시에 감지된다.

목공 장인들이 전하는 삶의 지혜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되고 있는 무명수(無名樹) 작업실의 리원슝(李文雄) 장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작업실 이름마저 '이름 없는 나무'라고 지었을 만큼 이름 없는 나무들을 사랑한다.

"시장에서 값어치가 나가는 나무는 연필 향나무·티크·전나무·삼나무·호두나무 등 겨우 몇 종에 불과합니다. 사실 '잡목'이라고 하는 것들도 저마다의 아름다움과 특징을 지니고 있거든요."(본문 12쪽)

리원슝은 그렇게 이름 없는 나무들로 숟가락부터 장부 맞춤법을 이용한 목조주택까지를 만들고 있다.

나무를 이용해 새·집·나무 등의 작은 장난감을 만드는 라오잔(老詹)은 초등학교 교사다. 학교와 가정에 충실하지만 틈틈이 남는 시간에 목공을 한다. 타이완에서 매우 높은 인기를 누리는 목공예 작가이지만 그는 매우 겸손하다.

"나는 조각을 할 줄 모르며 기교면에서는 수준 미달이다. 그저 자유롭고 싶다. 그저 나무를 사랑하자고 말하고 싶다."(본문 35쪽)

클래식 기타를 만드는 저우중디(周仲棣)는 미국 유학 생활을 할 때 학교에서 악기 제작을 교양으로 배웠다. 그는 클래식 기타 제작에 깊이 빠져들어 에스파냐의 악기 명인 호세 로마니요스의 제자가 됐다. 현재 그는 타이완에서 으뜸가는 클래식 기타 제작자다. 그는 기타를 '숲'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를 들어보자.

"기타 하나를 만드는 데 10여 종의 목재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저는 기타를 종종 숲에 비유하곤 하지요. 앞판은 흑단, 뒤판은 로즈우드 그리고 패턴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목재를 사용해요. 나무의 원산지도 제각각이지요. 마다가스카르·알프스·히말라야·유고슬라비아·인도·브라질…."(본문 44쪽)

리원슝 장인이 만든 나무 숟가락과 받침대
 리원슝 장인이 만든 나무 숟가락과 받침대
ⓒ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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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 장난감을 만들면서 어린이들에게 목공 수업을 하는 다빙(大炳)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원목공예를 배우는 것이 곧 인생을 배우는 것임을 알려준다.

"이 일을 30년 넘게 해온 저도 잠시 부주의하면 제 손을 때릴 수 있어요. 그러나 때가 되면 울지 않겠지요. 또 때가 되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인생에서 맞고 틀린 것은 없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저 자기 일에 성실하다면 그걸로 살아나갈 수 있겠지요."(본문 59쪽)

동그란 과자 모양의 의자를 만드는 우이원(吳宣紋)은 나무의 촉감과 여운 그리고 땀흘려 일하는 느낌이 좋아서 원목공예를 직업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기 직업의 정직성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집안에서 듣고 자란 돈에 대한 가치관 때문인지, 원목공예는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접 만질 수 있는 것이 진실하다고 느껴거든요. 그렇지만 이 일이 돈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적어도 제가 사용할 수는 있겠지요."(본문 116쪽)

경목공에서부터 가구 만들기를 거쳐 이 책이 다다르는 지점은 나무로 집짓기, 즉 목조주택 만들기다. 타이완의 유명한 조경 디자이너인 랴오황우(廖煌武)가 만든 목조가옥은 공원을 방불케 한다. 이 책의 두 필자는 그 집을 '나무 사이와 연못 위, 원목의 비밀기지'라 이름 붙였다. 나무가 빼곡이 들어차고 물이 흐르고 비밀스런 공간이 여기저기 박혀 있는 집. 누구라도 그곳에 살고 싶은 집이다.

"연못이 있으니 새가 날아들고 반딧불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곤충들이 모여드는 걸 보면 생태환경이 갖추어졌다는 걸 알 수 있지요." (본문 195쪽)

목공예를 하지 못하더라도 읽을 만한 이유

<나무를 닮아가다>에는 위에 소개된 장인들 말고도 아주 매력적인 '나무를 닮은' 사람들이 소개돼 있다. 또한 그들의 푸근하고 아름다운 작업 공간도 선명한 도판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목공예 작업은 참으로 멋이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손재주가 없어서 쉽사리 목공예 작업을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또한 전원 속의 목조주택은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나 역시 지금의 형편상 꿈만 꿀 수 있지 그런 집에서 살기란 남의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정직한 사람들의 건강한 자긍심을 배울 수 있었다. 담긴 장인들의 육성에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온 이들의 남다른 긍지가 느껴졌고, 그 삶에서 나온 평범하지만 진실한 지혜가 있었다. 바로 그것이 목공예를 직접 하지 못하더라도 이 책을 읽을 만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 린다이링, 잔야란 지음, 이은미 옮김, <나무를 닮아가다>, 다빈치, 2013. 5. 15. 값 22,000원.



나무를 닮아가다 - 나무를 품은 목공 장인 16인의 풍경

린다이링.잔야란 지음, 이은미 옮김, 다빈치(2013)


태그:#나무를 닮아가다, #서평, #린다이링, #잔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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