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8시 뉴스>에 등장한 문재인 캠프의 프롬프터

SBS <8시 뉴스>에 등장한 문재인 캠프의 프롬프터 ⓒ SBS


'토론의 달인'이란 불리던 오바마도 '기술'에 너무 의존했었나 봅니다. 취임 후 연설에 프롬프터(prompter, 출연자가 카메라를 보며 원고를 읽게 해주는 장치)를 즐겨 사용하던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 측으로부터 "프롬프터가 고장 나면 어떡하나?" "짐 싸서 시카고로 떠날 때 프롬프터는 잊지 말고 챙겨라"는 공격을 받아야 했으니까요.

이 프롬프터는 잘 읽어야 효과를 보는 겁니다. 오기가 난 자막을 그대로 읽었다간 성능 좋은 신형 프롬프터를 욕되게 하고, '글씨도 못 읽느냐'며 비아냥을 들으며 자질론에 휩싸이기 십상이니까요. '인혁당'을 '민혁당'으로 읽어 역사관 논란에 기름을 부었던 박근혜 후보의 '인혁당 사건' 기자회견이 대표적인 예겠지요. 기술이 가져다준 양날의 검이라 하기엔 웃지 못할 해프닝이지만요.  

헌데 이 프롬프터 역시 '있는 집'과 '없는 집'은 확연히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같은 대선 후보인데도 말이지요. 안철수 후보의 사퇴 후폭풍이 가시지 않았던 지난 25일, SBS <8시 뉴스>의 카메라에 우연히 포착된 박근혜·문재인 캠프 내 상반된 프롬프터가 바로 그랬습니다. 한 마디로, '기술의 품격'이 달랐다고나 할까요.

 박근혜 후보 얼굴 우편으로 보이는 투명 프롬프터

박근혜 후보 얼굴 우편으로 보이는 투명 프롬프터 ⓒ SBS


오바마·안철수·박근혜가 애용했던 투명 프롬프터, 문재인 후보는 왜?

'인혁당 기자회견'부터 대중들에게 알려진 투명 프롬프터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당시 미국 TV에 자주 등장하며 친숙해졌지요. 원래 능변가였던 오바마 대통령 역시 이 프롬프터의 편리함을 적극 활용하면서 연설의 달인이랑 호칭을 재확인했고요. 여하튼 이러한 최신 기술의 도입이야말로 미디어 정치가 보편화한 현대 선거전에서 정치인의 세련된 이미지를 강화시켜줄 수 있는 편리한 도구이지요.

그런데….그런데 말입니다. <8시 뉴스> 카메라가 기자회견장을 훑자, 기자석 맨 뒤편에 떡하니 서 있는 초대형 LED TV가 잡히더란 말이지요. 박근혜 후보 얼굴을 가릴 듯한 기세로 자리를 잡고 선 박근혜 캠프의 투명 프롬프터보다 어찌나 처절하게 초라해 보이던지.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은 어찌하라고, 문재인 후보와 프롬프터 사이의 거리도 꽤나 멀어 보였습니다.

200억을 모았다는 문재인 펀드는 어디다 쓸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더군요. 그 사이 안철수 후보의 대선출마 기자회견장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한 매체로부터 <'프롬프터·지미집' 등 안철수 출마선언에 등장>이란 헤드를 달게 만든 것으로 모자라 유력 보수지가 이례적으로 "안 원장 앞에는 투명한 유리판에 원고를 보여주는 프롬프터가 설치돼 있었다"고 언급한 그 기자회견 말이지요.

자, 그러니까 투명 프롬프터의 상징성은 꽤 넓고 적확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기술, 새로운 세대와 접속할 정치인이란 이미지 말이지요. 그건 싸이의 <강남스타일> '말춤'을 춘다고 해서 절대 얻을 수 없는 이미지입니다. '민혁당'과 같은 결정적 실수를 탄생시킬 만큼 적응이 덜 됐던 박근혜 캠프가 투명 프롬프터를 계속 고수해온 것도 안철수 후보의 젊은 이미지에 밀리지 않기 위한 전략이었을 테고요.

헌데,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있는 집'에 대한 지원사격 말이지요. 투명 프롬프터가 아니었다면 굳이 잡지 않아도 될 문재인 캠프의 프롬프터를 잡은 SBS의 카메라처럼 음으로 양으로 계속되고 있는 방송과 언론의 편들기 전략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차이가 나도 너~무 나고 있어요.

 방송기자토론회 당시 상반된 조명 효과

방송기자토론회 당시 상반된 조명 효과 ⓒ 노종면 기자 트위터


도를 넘은 방송사의 지원 사격과 이미지 정치의 역습  

지난 19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진성준 대변인은 "MBC의 박근혜 띄우기, 편들기가 도를 넘었다"는 논평을 냈습니다. "MBC 지분 30%를 지닌 정수장학회의 실제 주인인 박근혜 후보의 눈치 보는 수준을 넘어 편파보도, 편파방송을 일삼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진 대변인이 예를 든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보면, 지난 7일 단일화 합의 보도 당시 MBC <뉴스데스크>는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의 단일화에 대한 비난을 단일화 보도보다 앞에 배치했죠. '팩트'보다 그에 대한 비난을 먼저 보도하는 기형적인 뉴스배치인 셈이죠. 전두환 대통령이 무조건 1번 자리 메인이었던 '땡전 뉴스'가 따로 없었습니다. MBC는 13일 <시사만평> 공직자 성 추문 관련 보도에서 "높은 자리는 다 여자만 맡으면 되잖아"라는 발언으로 의도성을 솔직히 드러내기도 했지요.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가 현실화된 방송도 있었습니다. 지난 22일 오전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였죠. 이날 토론회에선 문재인․안철수 후보 토론회 당시에 없었던 후광 조명이 과하게 연출돼 심히 부자연스러운 화면이 전국에 생중계됐죠. 트위터에선 "가히 히틀러식 후광"이란 비판이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대본과 연출 논란을 낳은 26일 박근혜 후보의 '단독토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원사격의 선두에 선 MBC는 지난 21일 열린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토론 당시엔 무자막을 위시해 아무런 효과도 주지 않아 빈축을 샀지요. 반면 MBC는 면접 형식을 빈 '단독토론' 중계에서는 각종 자막과 웅장한 음악까지 삽입하는 열의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MBC < PD수첩 > 서정문 PD가 "똑같은 토론중계 너무 다른 디테일"이라 꼬집고 나섰을까요.

자, 신형 프롬프터가 필요한 이유는 사실 이 '지원사격'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땡전 뉴스 시절의 보도 행태도 모자라 조명과 자막을 동원해 '여자 대통령' 이미지를 스스로 완성하고 있는 방송사의 편파성 말입니다.

토론회도 대본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된 박근혜 후보가 애용하는 투명 프롬프터 따위는 필요 없을지 모른다고요? 방송사가 도와주지 않는 이미지 정치의 역습을 막기 위해 문재인 캠프 역시 백방으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초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이번 대선에서 투표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 단 한 표의 선택을 위해서라도 말이지요.

그러니, 더 추워지기 전에 아버님댁 보일러와 함께 문재인 캠프에 신형 프롬프터 하나 놔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MBC의 대선후보토론회를 비교 분석해 보니 이렇게 다르다.

MBC의 대선후보토론회를 비교 분석해 보니 이렇게 다르다. ⓒ 서정문 PD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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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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