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승승장구 우리말>
 <승승장구 우리말>
ⓒ 푸른길

관련사진보기

지난 2개월 동안 한 고등학교 선생님을 매일 만났다. 일 때문이었다. 나는 그 선생님과 일하는 틈틈 요즘 청소년들 이야기나 교육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는데, 어느날 아이들의 말 씀씀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 선생님에 의하면 요즘 아이들은 어휘력이 많이 부족하단다. 청소년이 늘 접하는 컴퓨터나 핸드폰, 미디어 관련 말들은 너무나 잘 알지만 우리들이 기본적으로, 당연하게 알고 있는 말(단어)은 모르는 경우가 많단다. '청중'이나 '후임' '전보' 같은 말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많아 교과 내용을 설명하다 당황한 적도 있단다.

한편, '버까(가)' 혹은 '버까(가)충' '버정' '플카' '장미단추' '먹튀' 등, 아이들과 늘 부대끼는 선생님들조차 언뜻 알아듣기 힘든 말이 아이들 사이에 금방 생겨나 큰 어려움 없이 통용되다가 사라지기 일쑤란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혹은 조롱은 아닌지, 대수롭지 않은 뜻인지 판단이 쉽지 않아 난감할 때도 많단다. 

그런데 이는 그 선생님만의 경험에 불과할까. 또한 청소년들만의 문제일까. 청소년들에게만 말을 제대로 쓰라고 할 수 있을까. 아쉽고 안타깝게도 거리를 걷다보면 틀린 간판도 많고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듣다보면, 국어학자가 아닌 일반인인 내가 보기에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른들도 많다. 나 또한 자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이고.

<승승장구 우리말>(푸른길 펴냄)은 청소년들의 이런 말 씀씀이나 우리말이 처한 현실을 염려한 현직 중·고등학교 국어선생님들이 똘똘 뭉쳐 쓴 우리말 문제집이다.

'속으로'가 맞을까 '안으로'가 맞을까

11. 오늘 아침 대신 사과를 먹다가 (속/안)에 든 벌레까지 먹었다.
12. 지하철이 긴 터널(속으로/안으로)들어갔다.
13. 극장이 너무 어두워서 마치 동굴(속/안)에 들어가는 것 같다.

맞춤과 알짬: 안과 속의 문제인데요. '터널 안, 사흘 안'처럼 안은 2차원 한 방향으로 진행하는 의미를 포함하죠. 그런데 속은 '사과 속, 바다 속, 호박 속, 땅속'처럼 3차원 공간을 의미합니다.(<승승장구 우리말>중에서)

'속으로'가 맞을까 '안으로'가 맞을까. 둘 다 어떤 공간을 의미하는 만큼 쓰고 싶은 대로 써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쓰임은 이처럼 다르다. 그러니 그에 맞게 써야 맞을뿐더러 훨씬 실감 있는 말이 된다.

목숨과 생명, 참가와 참여, 세계와 세상, 재연과 재현, 결제와 결재, 배상과 보상, 구분과 구별, 감지와 인지, 빨리와 일찍, 좇다와 쫓다, 껍질과 껍데기, 들판과 벌판, 칭찬과 칭송.

'안과 속'처럼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기 쉬워 같이 써도 될 거라 생각하기 쉬운 단어(말) 들 중 일부다. 실제로 이들이 구별 없이, 적절치 못하게 쓰이는 경우도 많다.

'목숨'은 동물, 특히 사람에게 쓰이는데, 의지나 가치판단 등이 개입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명은 두루 쓰이기는 해도 의지나 가치판단이 개입하기 어렵죠.

'세상'이 '세계'보다 추상적인 삶의 공간을 가리키죠. '세계'는 '세상'보다 구체적인 영역을 의미할 경우에 사용한답니다.

'참가'는 일회적인 행사나 집회, 전쟁 등에 나아가는 것을 말하죠. '참여'는 공적인 일 등에 꾸준히 관여해 도움을 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빨리'는 속도와 관련되고 '일찍'은 시간과 관련되죠.
(<승승장구 우리말> 중에서)

<승승장구 우리말>은 1회에 18~20문항의 60회 문제풀이로 돼 있는데, 문제를 푼 다음 뒤쪽의 '맞춤과 알짬'을 통해 답을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그런데 그냥 답만 알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이처럼 보충설명을 해줌으로써 우리말 실력을 다질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안과 속'처럼 우리들이 일상에서 구별하지 않고 쓰는 '목숨과 생명' '참가와 참여' '세계와 세상'과 같은 말들은 위에 인용한 '안과 속' 관련 문제처럼 연이어 실음으로써 독자들이 문제를 풀면서 그 차이를 직접 알게 했다. 그러니 이해가 쉬울 수밖에 없다.

이 문제집을 풀기 전까지 '구분'과 '구별'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써왔다. 또, '터널 안으로'가 맞는데, '터널 속으로'라고 쓰는 등 '안과 속'을 구분하지도, 구별하지도 못한 것 같다. 또, '빨리'와 '일찍'의 차이를 모른 채 내키는 대로, 습관대로 쓰고 있는 것 같다.

나만 그럴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 같다. 문제들을 풀며 드문드문 검색을 해보니 나처럼 '터널 속으로'라고 쓴 기사들도 보이고, 출근길에 지하철서 헤어지는 아들에게 한 엄마가 "오늘은 친구들과 헤매고 다니지 말고 집에 빨리 들어 와라"고 하는 걸 보면.

'나시'의 우리말 표현은 무엇일까요

- 고구려 유민이라고 알려진 태국 라후 족의 문장 '너흐래 나게 라웨요'는 현재 우리말로 무슨 의미일까?
(ㄱ)너는 나에요. (ㄴ)너 내게 라면 줘야 해. (ㄷ)넉살이 뭐나게 좋아요. (ㄹ)너희는 나에게 와요.

- 다음 중 북한어 '가두여성'의 의미를 뜻하는 말은?
(ㄱ)윤락녀 (ㄴ)가정주부 (ㄷ)여성 운전자 (ㄹ)여성 환경미화원 

- 여름이 되면 옷들이 다 짧아집니다. 치마도 그렇지만 상의도 눈에 띄게 짧아지는데요. 흔히 소매 없는 옷을 나시라고 하지요. 이것은 일본어의 소데나시(袖無, そでなし)'의 줄임말입니다. 우리말로 무엇이라고 할까요? 소매 없는 옷이라!

- 이것으로 못 만드는 게 없죠. 이것으로 집을 만들고 가구도 만듭니다. 젓가락, 숟가락, 가면, 책걸상, 심지어 불도 만들죠. 게다가 관세음보살 앞에도 이것이 있다죠.

(<승승장구 우리말>중에서)

책 속 문제 일부다. 흔히 우리말 관련 서적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설명이나 복잡한 문법 설명 등을 떠올리기 쉽다. 그리하여 지레 질려하거나 우리말에 대한 애정이나 제대로 말하자는 소명감 등 때문에 구입한 책이건만 얼마 읽지 않고 던져두기 십상이다.

<승승장구 우리말>은 이제까지 나온 우리말 관련 책들의 이런 단점을 '문제풀이' 방식으로 극복한 책이다. 그런데 문제가 재미없으면 말짱 도루묵 꼴이 될 것이다.

현직 교사로 우리말 관련 다양한 활동을 해온 저자들은 ▲중·고등학교 교과서 속 어휘들을 기본문제로 ▲사자성어 ▲속담이나 고사 ▲네모 칸에 들어갈 수 있는 공통적인 말 ▲위 인용문제들처럼 지식(상식) 등을 쌓으면서 우리말 공부도 할 수 있는 문제, 문학속의 말이나 옛 풍습과 옛 물건 등에 해당하는 말 ▲북한말과 사투리 ▲역사와 시사문제 관련 말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 오가는 ㅋㅋㅋ나 OTL, 4U, 20000, 통장 등과 같은 말이나 신조어들 ▲요즘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다코야키'와 같은 외래어 등 다양한 분야의 말들을 간추려 문제를 출제함으로써 문제를 풀어가며 우리말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런지라 우리말 실력을 쌓는 것이 이 책의 우선 목적이지만, 덤으로 다양한 상식을 쌓기에도 좋겠다 싶다.

위에 인용한 문제의 정답은 '(ㄹ)너희는 나에게 와요' '(ㄴ)가정주부' '?' '나무'다. 세 번째 답은 생략. 그간 많은 사람들이 말해왔기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쳐지지 않는 것은 습관 때문, 올해는 꼭 습관이 (되도록) 3번의 답을 여러 차례 말해보시도록.

덧붙이는 글 | <승승장구 우리말> (조규붕·김상규·서경원·손정필·김도균 공저| 푸른길 | 2012.04 | 1만4000원)



승승장구 우리말

김상규 외 지음, 푸른길(2012)


태그:#우리말, #문제집, #어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