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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대학원 수업에서 애플과 삼성의 스마트폰 개발 방식을 통해 미국 사회와 한국 사회의 거버넌스, 즉 어떤 일의 수행 방식 또는 규제 체계 등을 추론할 수 있다는 취지의 강의를 들었다. 애플이 사용자, 기술자, 디자이너 등이 수평적 네트워크를 통해 상호 작용하면서, 기술 혁신을 이루어낸 반면, 삼성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직적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였는데, 이러한 기업 문화를 통해 그 기업이 속한 사회의 거버넌스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스마트폰을 둘러싼 다양한 그룹이 대등한 관계 속에서 서로 견제하고 대립하는 과정을 겪으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미국과 뛰어난 기술 전문가 그룹이 홀로 성과를 내는 한국. 과연 무엇이 두 나라의 거버넌스 구조를 다르게 하는 것일까, 그리고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전문가 그룹만으로 기술 혁신이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지 연구가 필요하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직업병 탓인지, 교육계의 현재 거버넌스 구조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요 근래 학교의 환경위생관리자로 지정된 선생님들께 연락을 받고 있다. 우울증 직전의 선생님들. 학교보건법 제3조 이하에 따르면, 환경위생관리자는 학교의 시설관리를 총괄하는 담당자로, 학교장은 교직원 중에 환경위생관리자를 정하도록 하고 있다. 또 교육감은 각 학교의 환경위생관리자에게 지속적인 시설관리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세계사의 줄기를 가르는 큰 역사적 사건도 그렇지만, 세세한 일상의 역사는 더욱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때가 많다.

2005년 새집 증후군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서, 『다중이용시설공기질관리법』을 제정하여,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실내 공기질 등의 관리를 환경부로 통합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이 때, 교과부와 노동부가 제외되었는데, 노동부는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전문가가 각 사업장에 배치되어 관리하고 있으므로, 환경부 통합이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교과부는 인력 등 인프라가 없었으면서도, 아이들이 환경에 예민하므로 관리 기준이 높아야 한다며 교과부 단독 관리를 주장했다.

수평적 네트워크 거버넌스의 미비로 교사가 시설관리자로 내몰리고 있다
▲ 부처별 실내공기질 관리 현황 수평적 네트워크 거버넌스의 미비로 교사가 시설관리자로 내몰리고 있다
ⓒ 김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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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교과부는 규칙 제정권을 앞세워 학교보건법 시행규칙을 개정한다. 학교장이 학교의 소속 직원 중에서 환경위생관리자를 지정하여 시설관리를 총괄하도록 한 것. 그런데, 일부 학교에서 직원에는 교원도 포함되는 것이라면서, 학교보건법이 개정된 것이니 보건교사가 시설관리를 담당해야 한다는 황당한 법해석을 앞세우며, 보건교사를 시설관리자로 지정하기 시작했고, 보건교사가 없는 학교는 교직 경력이 낮은 여교사나 신규 교사를 시설관리자로 지정해, 교육감에게 시설관리 교육을 받도록 했다.

한편 17대 국회에서는 초중등교육법 등 교육 관련법에서는 교원과 직원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으며, 교원을 직원으로 해석하여 시설관리자로 내모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있고, 이미 학교에서 직원이 시설관리를 담당해오고 있으므로, 직원이 있는데도 시설관리를 총괄하는 환경위생관리자로 교사를 지정하는 것은 업무 혼선만 빚는 등 법치행정에 어긋난다며 국정감사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질타가 이어졌다.

논란이 증폭되는 중에 교사들은 실내공기질 등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도록, 줄곧 지역사회,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하는 학교 환경 통합 관리의 모델을 만들어 나가자고 주장해왔지만, 여기저기서 묵살되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논란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귀결되었다.

국회가 법률 제정의 입법권을 가지고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는 틈을 타, 교과부가 다시 학교보건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였는데, 이번에는 아예 환경위생관리자 지정 대상을 "직원"에서 "교직원"으로 넓혔다. 덕분에 다시 학교에서는 개정된 학교보건법 시행규칙을 근거로, 교사를 시설관리의 총책임자인 환경위생관리자로 지정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교사들은 또 다시 교육 연수가 아니라 시설 교육을 받게 되었다.

시설관리에 실내공기질 관리가 덧붙여져 환경위생관리라는 새로운 용어가 탄생되었다.
▲ 환경위생관리자의 본질 시설관리에 실내공기질 관리가 덧붙여져 환경위생관리라는 새로운 용어가 탄생되었다.
ⓒ 김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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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교사들의 헌신적인(?) 시설관리가 실제 학교의 실내공기질 등의 개선으로 이어지면 좋으련만, 이조차도 소원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매년 전국의 1만여 개 학교가 연 1회 이상 석면 등 실내공기질을 측정하고 있는데, 측정 용역비가 보통 50만 원 정도니, 얼추 계산해도 연간 50억 이상이 실내공기질 측정에 쓰이고 있는 셈. 그런데 실내공기질 측정 결과 기준에서 초과되면, 그 대책은 오직 "창문열기"다.

종합하면 시설을 담당하는 직원이 있는데도 굳이 교사들을 시설관리자로 둔갑시켜 시설관리 전문 교육까지 시행하는 동시에, 매년 연간 50억을 쏟아 부으면서도 결국은 창문열기에만 열을 올리는 형국인 것이다.

학교 실내공기질 개선을 위한 일련의 정책 결정 과정 속에는 교사의 의견을 수렴하는 수평적 네트워크로 구성된 거버넌스가 작동될 틈이 전혀 없었다. 대신 교과부는 시행규칙 제․개정에만 열을 올렸고, 학교의 교육활동을 지원해야할 교육감은 교육의 핵심 주체인 교사에게 시설관리 교육을 실시하는 데 대한 어떤 의구심도 품지 않았다. 일부 학교장은 업무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은 채 법령에 따라 학생들을 교육할 직무를 지닌 교사들을 시설관리자로 내몰았다.

교원의 업무를 경감하고, 학교 교육의 다양성과 혁신을 가져오겠다는 교과부와 민선 교육감, 일을 안 하려고 한다며 교사를 시설관리자로 내모는 학교장들께, 그리고 지금도 열심히 선거 운동하시는 국회의원 후보들과 각 정당 관계자들께 묻고 싶다. 촌극을 되풀이하는 과정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서,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며 상호작용하는 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려는 노력 없이 과연 그대들께서 꿈꾸는 교육 혁신이 가능할 수 있는지 말이다. 잔인한 4월, 마음이 병들어가는 선생님들을 바라보기가 괴롭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학교보건법, #환경위생관리자, #실내공기질, #학교 시설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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