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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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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의 구두.
 송경동 시인의 구두.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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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낡은 랜드로바 한 켤레. 한 장의 사진 속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의 오른쪽 발뒤꿈치가 구겨져 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싸움 때 포클레인 위에서 실족해 다친 상처가 아물지 않은 탓이다. 불과 두 달여 전 그는 기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출소하면 제일 먼저 반짝반짝 깨끗하게 닦은 구두를 신고 두 발로 천천히 웃으면서 걸어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출소하자마자 이 랜드로바를 신고 절룩거리면서 한진중공업 노조원들과 하룻밤을 지샜다. 그 다음날은 유성기업 노조원들과, 그리고 쌍용차 지부에서 1박2일을 한 뒤에야 집에 들어가 골아떨어졌다. 그리고 이번 주 중으로 용산참사 현장에서 재발한 목디스크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가야 한다. "시는 온몸으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던 김수영 시인의 말처럼, 그는 이 시대 우울한 노동의 서정시를 온몸으로 써내려가고 있다.

온몸으로 써내려간 그의 서정시

'희망버스 기획자' 송경동 시인과의 낮술.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309일 만에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던 날 기자와 잡았던 술 약속은 세 달여가 흐른 뒤인 지난 13일에야 지켜졌다. 칼국수와 파전을 안주삼아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자 그의 얼굴은 금세 불그스레해졌다. 그리고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정리해고라는 절망의 바이러스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쌍용차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21명이 죽었습니다. 한 공장에서 쫓겨난 해고 노동자들도 그들처럼 삶의 골방에 갇혀있거나 벼랑 끝에 서 있겠지요.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은 슬로건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구제역보다 더 끔찍한 전염병입니다."

그렇다면 김진숙을 살린 희망버스 불씨는 왜 쌍용차로 옮겨붙지 못한 것일까? 85호 크레인으로 향했던 수많은 희망버스 승객들은 왜 쌍용차행 버스에 탑승하지 않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공안탄압입니다. 5차까지 이어진 희망버스 행렬을 막기 위해 총 360여 개 중대가 움직였다고 합니다. 매번 7000~8000명의 공권력을 풀어서 압박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손잡고 왔다가 사진이 찍혀서 소환조사를 받은 사람이 240여 명에 달합니다. 또 200여 명이 추가 조사 대상자입니다. 저도 풀려나긴 했지만 거주지 제한에 묶여 있습니다. 쌍용차에 대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저도 이런데 일반인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우리 모두 크레인 위에 서 있다

하지만 그는 "희망버스를 시작할 때 '우리는 모두 각자의 크레인 위에 서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했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가 나와 별개가 아니라는 연대의식이 생겼다"면서 "공안탄압 등으로 900만 명의 비정규직을 고립시키는 구조가 문제지만, 이미 한차례 승리를 경험했기 때문에 희망버스의 운전대는 이미 쌍용차로 돌려졌다"고 강조했다. 

"희망이 승리한다." 그가 지난 9일 부산구치소 문을 나오면서 외친 말이다. 실제로 그는 "여러 개의 혐의가 덧씌워진 '전문시위꾼'인 내가 보석으로 출소한 것도 그렇고, 빈 공약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최근 새누리당조차도 재벌규제와 일자리 문제 등에 대한 획기적인 대안을 내놓겠다고 말하는 형국"이라며 "희망버스를 시작할 때처럼 막막하기도 하지만 쌍용차와 재능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고통의 연대'는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나치 독일 치하 때 쓰여진 시 한 편을 소개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아무도 항의해줄 이가 남아있지 않았다
- <그들이 처음왔을 때> 마르틴 니묄러

감옥에서 나비를 꿈꾼다

송경동 시인.
 송경동 시인.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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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희망버스를 기획한 이유이자, 지금 당장 쌍용차로 희망버스의 핸들을 돌려 씽씽 달려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특히 희망버스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 근거는 이렇다.

"희망버스를 처음 기획한 곳은 거리였습니다. 2008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기륭전자 투쟁을 사회 각계각층에서 도왔습니다. 동이오토 비정규직들, 해고된 뒤 5년째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도와주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리고 용산참사 연대의 현장. 희망버스는 내가 기획한 게 아니고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획한 것입니다. 한편으로 희망버스는 안전한 일자리를 찾는 전쟁같은 시대가 기획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어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후보자들이 정봉주법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데,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김진숙법"이라며 "살인적인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나아가 노동자들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동영 의원 등 많은 야권인사들이 희망버스에 탑승했는데, 열악한 노동의 현실이 바뀔 수 있도록 법 제·개정 등을 통해 진정성을 보여달라는 주문이다. 

지난해 6월 김진숙 지도위원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58일째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고공농성 중인 가운데, '희망버스'를 기획했던 송경동 시인이 한진중공업 조합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지난해 6월 김진숙 지도위원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58일째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고공농성 중인 가운데, '희망버스'를 기획했던 송경동 시인이 한진중공업 조합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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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근 펴낸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실천문학사 출간) 서문에서 자신이 감옥에 갇힌 상황을 이렇게 밝혔다. 

"새도 둥지를 틀지 않는 35미터 철골 구조물 위에서 309일을 살다 내려와야 하는 새로운 인류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슬프고 가혹한 일도 '승리'라고 눈물 콧물 찍찍 흘려야 하는 우리, 가파른 삶들을 생각하면 별 힘든 일도 아니다. 지금도 전쟁같은 밤일을 치러야하는 무수한 노동하는 삶들, 최소한의 존재 조건도 얻지못한 채 '비정규직'이라는 신종 노예의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는 900만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특별히 가혹한 일도 아니다.(중략)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는 어쩔 수 없다는 이 시대의 감옥에서, 모든 억압과 좌절의 감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오르는 꿈을 꿔본다."

독일의 유명한 저항시인 베를톨트 브레히트는 나치시대를 일컬어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그는 "서정시는 마음의 울림이고, 투쟁과 저항의 정신도 서정"이라면서 "평화로운 서정시를 간직할 수 없게 만드는 이 시대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남주 시인의 말처럼 한 편의 나약한 시가 불의한 세력들을 응징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면 더한 영광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와 막걸리 한통을 비우고 식당문을 나서려는 데 낡은 랜드로바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노동의 기름 때에 절은 것일까? 구두약을 칠한 것도 아닌데 반짝반짝 빛났다. 그는 오늘도 그 신발을 신고 쌍용차 1000일 현장을 누비며 희망을 찾아다닐 것이다. 아니, 그 자체가 희망의 근거이기도 하다. 


태그:#송경동, #희망버스,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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