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 배움터 송년회 있는데 꼭 오세요."울산노동자배움터 양준석 대표가 전화를 했습니다. 12월 30일 금요일 오후 5시, 일 마치고 일산동에서 양정 배움터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배움터 사무실은 양정동 현대자동차 정문과 구정문 사이에 있습니다. 도착하니 떡과 두부김치, 술이 책상 위에 차려져 있었습니다. 배움터 회원이 20여 명 모여서 이야기 나누며 차려진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주로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이라 사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세진중공업에서 일어난 산재사고 이야기 들었나요?"모인 사람들은 주로 세진중공업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세진중공업은 울산 온산공단 내에 있는 4000여 명 규모의 대기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인 사람 중엔 세진중공업 사내하청에 취직하여 몇 년간 다니다 사표를 낸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사람은 세진에 다니고 있는 직장동료와 전화 통화를 하였다고 합니다.
"세진중공업은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죠. 이번에 사고가 난 곳은 4200톤이나 나가는 대형 블럭 안에서였습니다. 블록 안에 가스가 누출되고 있는 것도 모르고 구라인딩 작업을 시작하면서 불똥이 튀어 가스가 폭발한 것입니다. 작업자의 안전작업을 위해 블록안에 투입되기전 사전 가스누출 검사를 해야하는데 하지않고 그냥 투입시킨 것입니다. 그런 위험한 작업공간은 항시 안전작업을 위한 사전조치를 취한 후 작업자를 들여 보내야 하는데 하청업체는 그럴만한 여력이 못됩니다. 우선 빨리빨리 작업 마무리를 위해 안전작업 관리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죠."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 여러 사람이 중공업 하청에 다니거나 다니다 그만 둔 경우여서 이번 폭발사고 경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새해를 앞두고 하청노동자들이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뭐라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그 사람들 중 몇몇은 2011년 12월 31일 토요일 아침 세진중공업 앞에서 선전전이라도 하자면서 뜻을 모았고 저도 같이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2012년을 하루 앞둔 12월 31일 토요일 이른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저는 약속 장소로 가서 그사람들과 함께 차를 타고 울산 온산공단 내 세진중공업으로 달렸습니다. 5시 50분경 출발한 차량이 세진중공업에 도착한 시각을 보니 6시 40분쯤 되었습니다. 모두 5공장까지 있는데 그 중 본관이 있는 정문 앞으로 차를 몰고 들어 갔습니다. 온산 공단은 일반 주택은 찾아 볼 수 없고 대형 공장들만 빼곡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간 사람들은 모두 4명이었고 승용차 한 대가 더 왔는데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에서도 2명이 와서 모두 6명이 선전전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미리 준비해간 현수막을 펼치고 방송차량을 통해 방송준비를 하였습니다. 6시 40분이 넘자 세진중공업 회사 버스가 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곳은 주택가와 멀리 떨어진 관계로 오토바이나 승용차로 출퇴근하거나 회사에서 제공하는 출퇴근 버스로 출근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현수막과 피켓을 펴놓고 서있자 경비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습니다. 잠시후 야간 당직을 하고 있던 관리자 한 명이 오더니 "집회신고를 하고 나느냐"며 물어 오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출근하시는 세진중공업 노동자 여러분. 어제 오전 9시경 공장 내 블록 하나에서 폭발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4명의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연말을 이틀 앞두고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세진중공업에 다녔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사고는 12월 30일 금요일 오전 9시경 일어 났다고 합니다. 폭발사고가 나고 연기가 솟아 오르자 회사 관리자는 119에 신고 했다고 합니다. 119 차량이 10여 대 넘게 와서 블록으로 물을 퍼붓더라는 것입니다.
"일단 사고가 나면 119 요원들이 배기가스부터 빼내고나서 방독면 쓰고 들어가 작업자 생사확인부터 해야 하는게 순서 아닌가요? 혹시,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119가 오자마자 블록 안으로 물부터 퍼부어 넣었다네요. 오전 9시경 사고가 났는데 시신 수습이 오후 2시경에 이루어졌다 합니다. 물을 얼마나 많이 퍼부어 넣었으면 오후 2시까지 물을 빼냈겠습니까? 4200톤급 대형 블록안에 물을 퍼부어 넣었으니 얼마나 많이 물이 들어갔겠습니까?"옆에 있던 다른 사람도 이야기 했습니다.
"어제 사고후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왔었다 합니다. 중대사고나면 작업을 중단시키고 안전교육을 먼저 시키는게 순서인데 현장은 잘 돌아 갔다고 합니다. 근로감독관이 무엇하러 왔는지 모르겠습니다."그 블록안엔 5명이 한 조가 되어 작업을 실시했다고 합니다. 그 중 한 사람은 마침 사고시간에 맞춰 자재를 가지러 가는 바람에 사고를 모면했다고 합니다. 이미 언론을 통해 밝혀진 사망 노동자는 김영도(52), 유동훈(32), 현욱일(37), 유지훈(27) 4명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중 한사람은 중국 교포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합니다.
"세진중공업은 현대중공업에 블록을 만들어 납품하는 회사입니다. 이 안에 직영이 300여 명 밖에 안되고 하청 작업자가 4000여 명이나 됩니다. 관리자 빼고 대부분 현장 작업자는 하청소속이라고 보면 됩니다. 노조도 없고, 이곳엔 주 5일제도 없지요. 작업자가 안전하게 작업에 임하도록 안전관리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안전관리 시스템이 전혀 이루어 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로지 물량을 빨리 납품 시키는데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중대사고가 안 일어 날 수 없는 겁니다."세진중공업 사내하청에 2년을 다녔다는 한 노동자가 말했습니다. 저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을 보여주며 경비실 옆에 서있던 회사 관리자에게 사고 경위를 이야기 해달라 했습니다.
"저도 언론에 보도된 내용 외에는 모릅니다. 지금 조사중에 있습니다."회사쪽 관리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전 7시 20분이 지나자 버스는 더이상 오지 않았습니다. 간혹 오토바이나 승용차로 출근하는 노동자들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중 두세 사람에게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물어 보았으나 모두 손사래만 치고 서둘러 출근 할 뿐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30분 쯤 우리는 선전전을 중단하고 아침을 먹으러 갔습니다. 거기서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현미향 사무국장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말합니다.
"4명중 한사람은 중국교포라네요. 그리고 2명은 이미 회사와 합의 했다네요. 회사가 이 일에 대해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거 같아요. 영안실은 울산병원 이랍니다."아침을 함께 먹은 후 저는 집으로 왔습니다. 전태일 열사 분신 40주기가 넘었고, 87년 노동자 대 항쟁이 일어난지 25년째 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노동자는 노동법에도 있는 노동조합이 없는 일터가 너무도 많습니다. 아직도 노동자는 다치지 않고 일 할 권리가 없는 걸까요? 아직도 노동자는 죽지 않고 일 할 권리가 없는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연말연시라고 들떠 있는 2011년 12월 마지막 날, 저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습니다.
2011년 연말을 이틀 앞두고 산재사망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