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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때 고지보다 더 힘든 매일 계단과의 싸움

철모 아래 날카로운 눈빛 아래 굳게 다문 입술, 카빈소총을 잡은 양손엔 거친 땀방울이 흐르는 젋은 병사의 어깨엔 전우들과 나눌 식량과 진지를 지킬 박격포를 메고 고지를 오른다. 밤이면 들려오는 피리소리, 잠시의 휴식도 가지지 못한 병사는 어둠 속을 향해 총을 쏘아댄다.

그리고 마침내 전쟁이 시작된지 3년하고도 1달 2일이 지난 1953년 7월 27일 밤10시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은 젊은 병사들은 두려움 속에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는다.

어제 저녁에만 해도 서로 총을 쏘아대던 양쪽의 병사들은 삐쭉이 서로를 바라보며 씁쓸한 웃음을 짓고, 이내 철모를 벗어던지고 총을 놓아둔 채 서로 안부를 묻는다.

"전쟁이 끝난거지?"
"동무들 전쟁이 끝났수다."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죽이기 위해 악착같이 싸웠던 3년여의 시간은 '전쟁이 끝났다'는 말에 순간 사라지고, '살았다'는 안도감에 서로 손을 맞잡았다.

"이거 C레이션이라고 맛있는 건데 한번 먹어보게."
"거 이제 먹을 걱정이 없는데...이거 내가 아끼던 건데 가지라우."
......

1953년 7월 27일 밤10시 휴전이 선언되고 지금 도라산역 근처의 장단 고랑포에서 있었던 대한민국 해병대와 북한인민군, 중공군과의 대화다.

물론 이런 대화가 실제로 오간 것은 아니다.

앞줄 가운데 앉은 이가 김정식 회장
▲ 기념촬영 앞줄 가운데 앉은 이가 김정식 회장
ⓒ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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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해병대로 전투에 참가했던 김정식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여주군지회장님이 했을 것 같은 대화를 기자가 상상해 본 것이다.

휴전이 알려진 후 1953년 7월 28일부터 29일까지 전쟁의 목적도 모르던 젊은 병사들은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에 서로 선물을 주면서 '전쟁이 끝난 것'을 축하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내 휴전선이라는 이름의 경계선이 만들어지면서 잠시의 평화는 곧 치열한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 것이 안타깝다는 노병들.

평균나이가 80~90세인 노병들 중 일부는 신체적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여주군지회의 김덕배 고문은 "6.25참전유공자회는 10년 안에 없어질 조직이여. 하나 둘 죽어가는 날만 기다리는 노인들 이니까"라며 "여주군에 608명인데 10년 뒤엔 몇 명이나 남겠어?"라며 사회의 무관심에 서운함을 나타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죽음을 각오하고 총을 들고 전장으로 나섰던 젊은이의 검은 머리는 파뿌리가 됐고, 카빈소총과 식량에 박격포를 지고 높은 언덕을 날아다니던 몸은 이제 지팡이에 의존하여 간신히 걸음을 뗀다.

경기도 여주군 6.25참전유공자회
▲ 간판 경기도 여주군 6.25참전유공자회
ⓒ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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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군에 거주하는 610여 명의 노병들, 여주군청 담당부서의 말로도 610여 명에 불과한 '6.25참전유공자'들의 중심이 되는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여주군지회 사무실이 자리한 곳은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홍문리 74-91번지다.

처음 주소만 가지고 찾아가는 사람은 절대 사무실을 찾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주소는 여주읍노인회 사무실의 주소로 입구로 들어간 본들 1층은 여주읍경로당이고 2층은 여주군노인취업지원센터가 있기 때문이다.

주소의 건물 옆 여주군민회관 사이의 골목길로 들어가면 생뚱맞게 쇠파이프에 걸린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여주군지회'라는 나무간판, 그리고 그 간판을 안내삼아 철제계단을 오르면 그 위에 사무실이 있다.

매일 80~90대의 노병들이 전투처럼 오르내린다
▲ 45계단 매일 80~90대의 노병들이 전투처럼 오르내린다
ⓒ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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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여주읍노인회의 2층건물의 위에 조립식패널로 사무실을 만들고 뒤쪽에 간신히 철제계단을 만들어 3층 높이를 오르내리도록 만든 것이다. 평탄한 도로도 걷기 어려운 노인들이 사무실로 쓰기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45개, 기자가 계단을 오르내리며 두 번을 세어 본 계단의 개수는 45개다. 40대 후반의 기자도 오르 내리기 힘든 이 계단을 매일 오르내렸을 어르신들을 생각하니 숨이차다고 헉헉거렸던 내가 너무도 부끄럽다.

여주군 6.25참전유공자회의 노병들은 매월 25일에 여주읍에서 거리청소 활동을 한다
▲ 거리청소 여주군 6.25참전유공자회의 노병들은 매월 25일에 여주읍에서 거리청소 활동을 한다
ⓒ 여주군 6.25참전유공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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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목숨을 걸고 싸운 이들에 대한 대접인가?
이런 나라에서 어떤 이가 나라가 위중할 때 몸을 바칠 것 인가?

여주군에도 미끈한 보훈복지회관(상이군경회, 전몰유족회, 전몰미망인회, 무공수훈자회가 사용)과 향군회관(재향군인회 사용)이 있다.

일반 상가를 빌려 쓰는 고엽제전우회와 군민회관 반지하를 쓰는 베트남참전전우회의 구성원보다 더 나이가 많은 6.25참전 노병들은 매일 위태로운 45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2층 옥상에 조립식 패널로 지은 가건물이 노병들의 쉼터다
▲ 사무실 2층 옥상에 조립식 패널로 지은 가건물이 노병들의 쉼터다
ⓒ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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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회장은 "그나마 사무실이라도 있으니 전우들과 만날 자리가 된다"며 "김춘석 군수가 나중에 노인회관을 지으면 사무실을 옮겨주겠다고 약속했다"며 한 자락 희망을 내 비친다.

해병대 21기로 군대에 갔다는 김정식 회장은 임진강과 중부전서 노루고지, 장단고랑포 전투 등에 참전했다고 한다.

"내가 58개월 복무했거든, 그런데 큰아들과 둘째아들 그리고 손자 둘도 해병대에 갔어요"라는 김정식 회장은 3대가 해병대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여주읍 영월루공원의 6.25참전 기념비의 대한민국과 UN군 16개국 국기가 훼쇤되어 바꿔달고 있다
▲ 국기교체 여주읍 영월루공원의 6.25참전 기념비의 대한민국과 UN군 16개국 국기가 훼쇤되어 바꿔달고 있다
ⓒ 여주군 6.25참전유공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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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별 회의를 할 때마다 회원의 부음을 전해야한다는 노병들.

국가보훈처의 통계를 보면 6.25참전유공자는 현재 18만2천23명으로 이들 대부분이 80~90여세의 고령자로 일부는 신체적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여주군의 6.25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는 국가보훈처에서 매월 12만 원의 참전명예수당과 여주군에서 분기별 9만 원(월 3만 원)의 명예수당이 지급되고, 보훈병원 진료시 60%감면, 일반)병원 10~50%감면, 국립호국원 안장지원과 고궁 등10종류의 입장료를 감면해주고 있다.

6.25참전 용사들 중 일부는 정부로부터 복지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생활고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어 더욱 안타깝다는 김정식 회장은 자체적으로 생활이 어려운 전우를 돕기 위해 '6.25후원회'를 만들었다.

김정식 회장이 110만 원을 출연해서 시작된 '6,25후원회' 기금은 임원과 회원 중에 그나마 생활이 조금 넉넉한 노병들이 10~100여만 원을 출연하여, 생활이 어려운 전우들의 생활을 보살피고 있다.

포성이 멎은 60여 년이 지난 오늘 지금 우리사회가 '무상급식'과 '반값등록금' 등 복지확대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늙은 6.25참전 노병들의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사이 지금도 경기도 여주군의 노병들은 매일 아슬아슬한 마흔다섯 계단을 오르내리는 전투를 이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남한강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여주군, #6.25, #참전용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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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에서 지역신문 일을 하는 시골기자 입니다. 지역의 사람과 역사, 문화에 대해 탐구하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이런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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