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머리가 된 수컷이 예전 우두머리의 유전자를 타고난 새끼들을 모두 죽여 버리는 유아살해는 일부 원숭이 사회의 특징이다. 신세계 원숭이에 속하는 짖는원숭이의 경우, 유아 사망의 40퍼센트 이상이 수컷의 유아살해 때문이다. 짖는원숭이란 이름은 자신의 영토를 방어하고자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서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특이한 습성 때문에 붙여졌다.
짖는원숭이 암컷이 새끼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새끼들 역시 어미에게 바짝 붙어살고 싶어 발버둥치지만 우두머리 수컷에 힘이 달리니 별 수 없다. 권력을 쟁취한 새 우두머리 수컷은 이전 우두머리 수컷의 새끼들을 모두 죽임으로써 수유 중인 암컷들을 임신 가능 상태로 유도해 제 유전자를 퍼뜨린다.
부계 중심의 사회에서는 우두머리 수컷이 무리 안의 짝짓기를 독점하는지라 투쟁에서 이기는 것은 무리를 지배하는 정복행위나 다름없다. 힘겨루기에서 밀린 수컷들도, '어떤 수컷이 우두머리가 되느냐, 얼마나 자주 우두머리가 바뀌는가'에 새끼의 성장 여부를 맡길 수밖에 없는 암컷들도 대장의 처분에 어쩔 수 없이 그저 순응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그런데 짝짓기 기회를 빼앗긴 수컷들 또한 제 유전자를 후세에 퍼뜨리려는 강한 본능이 있기 때문에 그대로 물러서지 않고 잠재된 본능을 누른 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우두머리 수컷이 늙어 힘이 빠지면 젊은 수컷이 그동안 쌓은 힘으로 우열경쟁을 벌인다. 이렇게 우두머리가 바뀔 때마다 유아살해는 되풀이 된다.
그렇다고 모든 원숭이 사회에서 유아살해가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구세계 원숭이에 속하는 붉은콜로부스 암컷은 수컷과 몸 크기에서 차이가 별로 없는데, 이들은 여럿이 힘을 모아 반란을 일으켜 유아살해를 막는가 하면 새로운 대장 수컷을 몰아내기도 한다. 또 어떤 원숭이들은 치밀함 미인계를 써서 수컷을 유혹, 키우고 있는 새끼를 보호하기도 한다.
암컷의 몸 크기가 수컷의 반이나 3분의 1밖에 안 되는 올리브바분이 그렇다. 작은 몸집의 올리브바분 암컷은 한껏 매력을 보이며 사납고 거친 수컷으로부터 제 새끼를 지키고 새로운 수컷과 무난하게 무리를 유지한다. 올리브바분은 발정기에 이른 암컷의 엉덩이가 빨갛게 부풀어 오르는 정도가 원숭이를 통틀어 가장 두드러지는 종이다. 수컷은 엉덩이가 많이 부풀어 오르는 암컷에게 매력을 더 느낀다. 이런 암컷이 새끼를 가질 확률이 더 높다. 그래서 차츰 짝짓기 준비 신호가 뚜렷한 암컷의 유전자가 우세하게 되었다. 올리브바분 무리에서 유아살해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중략)엉덩이의 피부색 변화는 특히 유인원을 포함한 몇몇 구세계 원숭이 암컷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이들 암컷은 발정기에 들어가면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배란을 한다. 이때 생식기 피부가 혈액량의 증가로 부풀어 오르면서 두드러져 보이고 밝은 홍색을 띤다. 엉덩이 피부에 변화가 일어나면 냄새를 풍기게 된다. 이 냄새를 맡고 발개진 엉덩이를 본 수컷은 흥분하게 되고, 그 암컷에게 여느 때와 다른 친절을 베푼다. -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원숭이들의 유아살해는 환경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진화한 결과겠지만 짖는원숭이처럼 권력을 잡는 순간 대대적인 유전자 물갈이를 하는 것보다 붉은콜로부스처럼 협력하거나 올리브바분처럼 미인계를 써서 유전자 평화를 유지하는 사회가 훨씬 바람직해 보인다. 유전자가 다양할수록 건강한 유전자가 많은 만큼 건강한 사회라는 것은 새삼스런 설명이다.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는데 5년 마다 대통령이 바뀌고 그에 따라 어지간한 요직의 사람들을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물갈이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적재적소에 따른 능력이 아닌 어느 줄에 섰는가에 따라 능력이 좌지우지 되는 것을 보다보면 일부 원숭이 사회의 유아살해, 즉 유전적 물갈이가 떠오르곤 한다.
언뜻 보기에 강력한 우두머리가 살벌하게 조직을 지배하면 그 기세에 눌려 순탄하게 위계질서가 잡힐 것 같지만 천만에! 거짓 평화가 숨죽인 채 잠시 펼쳐질 뿐이다. 권불십년이라고 부하 수컷들이 힘을 기른 다음 여차하면 싸움 걸 기회를 노리고 그렇게 승자는 끝없이 바뀌기 때문이다. 원숭이 사회뿐이랴. 인간 사회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 아니던가.
'오염된 먹이는 씻어 먹는다. 고구마는 민물보다 짠물에 씻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사투리를 쓴다. 상대의 생각을 읽고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 먹이활동만이 아니라 오락으로도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일본원숭이 수컷은 가정적이다.' 이런 특징들을 가진 일본원숭이도 유아살해를 하지 않는다. 일본원숭이는 우두머리 수컷이 짝짓기를 모두 독점하지 않고 다른 수컷들에게 짝짓기 자유를 허용함으로써 우두머리 수컷을 놓고 벌이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지양하기도 한다. 이들은 한발 나아가 저희의 미래가 새끼들에게 있다는 듯이 제 새끼뿐 아니라 남의 새끼도 돌보고, 암컷뿐 아니라 수컷도 육아에 정성을 다한다. 새끼들이 제대로 먹는지, 튼튼한지, 살면서 알아야 할 것을 배우고 있는지 등은 일본 원숭이 사회 전체의 관심사다.
권력을 이용해서 상대를 지배하고 복종시키려 하지 않고 가진 자의 여유가 아량으로 나타나는 점이 일본원숭이 번영의 핵심으로 보인다. …새끼가 태어나면 좀 더 자란 것은 동생을 위해 어미로부터 독립을 한다. 어미는 안쓰러운 마음 때문인지 어린 것에게 털 고르기를 비롯한 여러 행동으로 애정을 표시하면서 관계를 유지하여 한다. 이처럼 배려하는 마음은 부정적 에너지를 없앤다. 핍박받고 소외되는 일이 없으니 복수혈전의 빌미가 있을 리 없다. 충분한 사랑을 받아 마음의 바탕이 튼튼하면 쉽게 포기하거나 낙담하지 않는 법이다. 일본원숭이는 조직운영과 갈등 해결법도 남다르다. 무조건 경쟁을 배제한 채 일사불란하게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쌍방향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상명하복이 아니라 강자의 배려가 있다. -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부키 펴냄)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꿋꿋하고 묵묵하게 이겨내고 살아남은 동물들 이야기다.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동물들은 치타, 줄기러기, 낙타, 고래, 박쥐, 캥거루, 일본원숭이, 코끼리. 이들 여덟 동물들의 진화의 비밀들을 자세하게 들려준다. 책을 통해 이들 동물들의 다양한 생태 특성들을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다.
이 책의 두드러진 장점 중 하나는 동물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생활과 연결 지어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새끼를 주머니에 넣어 기르는 캥거루를 통해 과잉보호가 자식의 앞날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달릴 줄 알지만 달리지 않고 사막의 열기를 묵묵하게 견뎌내는 낙타를 통해 혹독한 환경을 이겨낸 삶의 진정한 가치와 필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한국은행이 발표(5월 25일)한 '1·4분기 중 가계신용'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금융회사의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등의 '판매신용'을 합한 가계신용 잔액은 801조4000억 원. 가계빚이 처음으로 800조원을 넘어서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2011년 현재 우리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쉽게 알 수 있다 하겠다.
이처럼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워낙 힘든 시절을 살아내기 때문일까? 가진 자가 그저 움켜쥐지 않고 배려하고 베풀면서 매서운 바람과 혹한의 추위를 함께 이겨내는 일본원숭이 이야기가 특별하게 와 닿는 것은.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
▲치타 얼굴에는 왜 까만 줄이 있을까? ▲줄기러기들은 왜 해발 8000m의 에베레스트를 넘을까? ▲낙타는 왜 생물들에게 중요한 물이 부족한 사막으로 갔을까?▲박쥐는 왜 거꾸로 매달려 살까?▲박쥐는 훌륭한 바나나 농사꾼?▲열대림의 싹 반절 이상은 박쥐가 퍼뜨린 것?▲아시아코끼리와 아프리카 코끼리의 다른 점들은?▲캥거루가 주머니에서 새끼를 기르는 말 못할 사정은?▲낙타의 몸에는 다중온도조절장치가 있다? ▲치타는 대부분 싱글이다. 왜? ▲쌍봉낙타와 단봉낙타는 어떻게 다를까 ▲고래는 모두 돌고래처럼 똑똑할까 ▲캥거루는 임신주기를 사정에 따라 조절한다?▲암컷 코끼리는 폐경 후 20년을 더 산다. - 책에서 정리 |
흔히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들은 처음부터, 늘 그곳에 있어 온 듯하다. 그런데 낙타는 원래 현재 낙타가 전혀 살지 않는 북아메리카에서 살았으며 게다가 오직 그곳에서만 번성했던 동물이란다.
바다를 떠나 살 수 없는 고래는 원래는 육지에서 살았던 발굽동물이었단다. 이들이 왜 처음 살았던 곳을 등지고 사막과 바다를 택했는지, 이제까지 흔하게 알려진 이야기에 그 숨은 이야기들까지 들려주는지라 이 책은 흥미진진하다.
또한 한 동물의 두드러진 특성이나 일부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그 동물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수천 만 년에 걸친 변화(진화)까지 넓고 깊게, 그리고 워낙 자세하게 다루는지라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동물 외에 또 다른 동물들을 이처럼 다루는 책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 이 책만큼은 누구에게 주지 않고 두고두고 참고하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박스기사 참고)
덧붙이는 글 |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 최형선 지음| 부키 | 2011.03.25| 값:14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