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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을 조사하는 것이 (잠시 침묵) 그 다음 대사가 뭐였지, 아~ 헷갈리네(웃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산이요, 산!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기다려주기 때문이지요. (중략) 덧없다는 것은 머지않아 사라질 위험에 놓인다는 것이요"

 

연극 '어린왕자' 막바지 리허설에서 고남석 연수구청장은 대본을 까먹은 듯 연신 '헷갈리네'를 연발하면서도 표정이나 말투, 자연스런 복장까지 어느새 전문 배우 못지않은 열정을 발산하고 있었다.

 

극단 MIR(연출가 이재상)이 주관하고 인천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 자선 연극 '어린왕자(26일 오후 3시, 7시 공연)'의 리허설이 한참 열리고 있는 부평아트센터 지하 2층 연극 연습실을 24일 오후 찾아갔다. 연습실 바깥에는 보좌관들이 맹훈련 중인 인천시장과 구청장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연습실 안에는 극단 MIR의 배우들과 이재상 연출가, 배우 송옥숙, 그리고 송영길 시장과 구청장들이 실제 연극을 하는 것처럼 열띤 연기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송 시장은 먼저 와서 배역 소화를 끝냈는지 느긋하게 앉아서 구청장들이 하는 연기를 보며 연신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어 등장한 사업가와 장사꾼 역의 배진교 남동구청장은 멋쩍어 하면서도 나름의 열정을 보여주려는 듯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대사도 거의 틀리지 않았으며 자연스런 무대 매너와 애드리브(=즉흥 연기)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었다.

 

배 구청장은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연극은 처음 해보는 거라 많이 긴장된다. 하지만 처음보다는 시간이 지나니까 또 금방 적응이 되는 것 같아 신기하다"며 "물론 여러 행정일도 많고 시간도 내기가 힘들었지만, 시장과 구청장들이 함께 모여 연극으로 소통도 하고 더불어 사는 정을 교감한다는 것 자체가 참 좋은 시도이고 즐거운 경험인 것 같다. 무엇보다 전문 연기자와 조금씩 호흡을 맞춰가면서 어떤 부분을 완성해가는 것을 겪어보니 시민과의 소통도 이런 식으로 겸손하게 해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감회가 남달랐다"고 말했다.

 

배 구청장에 이어 등장한 조택상 동구청장은 점등인 역을 맡아 아직 몸에 배지 못한 연기를 끌어올리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양복도 채 벗지 못할 정도로 또 다른 업무로 인해 바로 나가야했던 상황이기에, 조금은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내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잠을 실컷 자는 것이다.(웃음) 잠 좀 자고 싶다~"

 

묘한 감정이입의 대사였을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연극을 꼭 완성하겠다는 일념으로 모인 시장과 다른 구청장들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크게 대사를 외치며 조 구청장은 이내 자리를 뜨고 말았다.

 

세 번째로 등장한 주정뱅이와 뱀 역의 박우섭 남구청장. 박 구청장은 대학 연극반 출신인 데다 극단 '연우무대' 창립회원으로 남다른 배우 기질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노련한 표정으로 연습임에도 좌중을 압도할 정도의 힘을 발산하며 연기에 몰두했다.

 

"지구가 참 아름다운 별이구나. 너(=어린왕자)는 이 삭막한 지구에서 살기엔 너무 약해"

 

아름다운 별과 삭막한 지구라는 묘한 대립적 감정을 잘 표현한 박 구청장은 인터뷰에서 "30년 만에 서는 연극 무대라 떨리기도 하면서도 옛날 청춘시절 그리움이 묻어나 마음이 들뜨고 기분이 좋다"라고 한 뒤 "어린왕자가 전해주는 동화적 의미에 남다른 가치를 교감하며 나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된 것 같다. 항상 이런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민들과 함께 상생의 행정을 구현해나갈 것이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사막 여우 역의 홍미영 부평구청장은 헐레벌떡 연습 무대로 뛰어 들어가다 연출가에 한 마디 듣기도 했다. "지금 아니고, 좀 있다가 들어가셔야 되는데" 그때서야 홍 구청장이 "아이, 내가 항상 이렇다니까.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한지. 호호(웃음)"라고 답하자 송옥숙 배우 등 연기를 보고 있던 이들이 배꼽을 잡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너에게 난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지.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해지는 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이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이 세상 하나뿐인 여우가 되는 거지···."

 

홍 구청장은 연습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순수하지 못하다는 인식의 정치와 행정이 연극 활동을 통해 보다 따뜻하고 감성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이번 무대를 함께 시도하기에 이르렀다"며 "우리 주위에서 쉽게 잘 볼 수 있는 부분도 때론 위치 때문에 무심코 지나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세심함과 배려 깊음을 배우게 돼 나름 얻은 게 더 많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또한 홍 구청장은 "눈이 아닌 가슴으로 보는 혜안과 참고 견뎌낼 줄 아는 인간관계의 미학을 새삼 깨닫게 됐다"며 "어린왕자에 나오는 다양한 역할들이 결국 우리의 인생세계와 별반 다를 것이 없음을 느꼈다. 또, 다른 구청장들과 시장님과 이런 문화적 교감을 통해 형식적 회의에서는 얻을 수 없는 따스함과 배려의 정을 공감할 수 있었다. 개발논리에 치우친 행정보다는 문화복지를 통해 예술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주민들에게 더욱 많은 문화 나눔 혜택이 돌아가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총 연기 지도를 맡은 배우 송옥숙씨는 "전문 배우가 아니라 걱정도 많이 했지만, 발상 자체가 아주 신선해 선뜻 제의에 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열정도 대단하고 대사도 애써 외우고 오는 배려에 저 또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며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이만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더 잘하려는 욕심도 있었지만 나름 진지하게 임해주시는 그분들의 노력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 같다. 모두 수고 많이 하셨다"고 소감을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연극 어린왕자, #시장 구청장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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