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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손만 잡고 잘게, 정말 약속 할게
오빠 그런 사람 아냐, 딱 한번 믿어줘
어떻게 공들여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 동안 쏟아 부은 내 정성이 얼만데
여기서 물러서면 남자체면이 뭐가 돼

사랑한단 말이야, 같이 있잔 말이야
나쁜 짓 안 할 테니까
오빤 잠든 네 숨소리도 듣고 싶었어, 정말로
내 꿈꾸며 잘지, 너무나도 궁금했어

아침에 맨 얼굴도 보고 싶었어
정말, 그래서 이러는 거야 (promise you)

빨리 전화해, 친구 집이라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지나가다 누가 보면
내가 널 억지로 이러는 줄 알겠네
우리 둘이 연인이라 이마에 써 붙이고
다녀야만 하겠네

피곤해서 그래, 당췌 술이 안 깨
오빠 그럴 정신없어, 딱 한번 믿어줘
아 내가 딴 맘먹고 이러는 게 아닌데, 어…
내가 네 입장이라도 너 같았을 텐데, 어…

(중략)

동해물이 마르고 또 백두산이 닳도록
너만을 사랑할게
하지만 나 오늘은 하늘에 맹세컨대
네 손만 잡고 잘게

정말 내 여자가 될 때 까지
가슴에 손을 얹고, 내 이름 석 잘 걸고
널 사랑할게, 평생 지켜줄게
오늘부터 영원까지
(출처 : Ready'O (레디오) - 손만 잡고 잘게 (Single) 2007.05.31)

혹시 이 노래의 가사가 확 와 닿지는 않는가? 슬며시 웃음이 나오며 공감이 간다면 지금 이 시간도 작업에 몰두하고 계실 늑대(?)이거나 얼마 전까지 만해도 늑대였을 가능성은 100%다. 남자가 사랑을 할 때는 목숨을 다하지만 단 한 가지 못 지키는 것, '오빠 못 믿어? 손만 잡고 잘게….'

그렇다, 내게도 그 '못 지킬 약속'은 예외가 아니었다. 외환위기가 불러온 IMF 체제로 전국이 떠들썩했던 1997년 겨울. 하지만 거리는 여전히 꽃다운 청춘남녀들로 힘이 넘쳤다. 당시 회사의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두 살 연하의 최OO. 몇 달을 가까이서 지켜보니 외모는 물론 성격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온갖 감언이설로 '너는 내 여자'라고 꼬시기에는 너무 소심하고 반듯한 게 문제였다.

'나는 낭만을 사랑한다'는 그녀는, 그러나 낭만적인 사랑에는 숙맥이었다.

'그래, 연애는 장난이 아니다. 바로 전쟁인 것이다.'

한 치의 빈틈없는 치밀한 전략과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승리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역시, 호시탐탐 접근하는 나를 그녀도 그다지 싫지는 않은 기색이다. 그러나 연애대첩은 계속 빗나간다. 남들이 낚아 채기 전에 잽싸게 나서서 온갖 넉살과 감언이설을 이용해도 요동조차 없다. 다른 여직원에게 접근하여 그녀로 하여금 질투심을 유발시켜도 눈 하나 끔쩍 않는다.

역시 방법은 있었다. 마침내, 그녀를 술친구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엔 함께 술 한잔씩 하면 얘기도 잘 통하니깐 좋을 거라고 접근했다(실제로, 나는 진짜 술 잘 마시는 여자는 싫어한다). 이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호프집을 들러서 귀가하는 패턴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사실, 그녀랑 술 마시는 목적은 순전히 진도 나가기 위한 목적이었다. 드디어 기회는 왔다. 어느 날, 부서 회식이 끝나고 단둘이 남게 된 나는 기어코 그녀를 근처 호프집으로 모신다. 그녀의 술기운을 어느 정도 확인한 내가 제안한다.

"아, 피곤해, 잠깐 쉬었다(?) 가자. 오늘따라 피곤한데다 술 한 잔 했더니 너무 힘들어…. 나, 조금만 쉴게. 아휴, 걱정말래두... 손만 잡고 있을게."

이윽고 그녀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못 믿어? 그럼 가!"라고 다그친다(이하 심의상 생략). 내숭을 떨었지만 평소에 흠모하는 남직원의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 붕붕 날아갈 듯 행복했지 않았겠는가. 그런 그녀에게 무슨 사기극을 못하랴. 남자의 혀, 실로 무섭고 무서운 무기가 아니겠는가.

'손만 잡고 잘게...' 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공언하는 늑대의 유혹을 알고도 속은 것인지 정말 모르고 속은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여보, 그래도 너무 매도하지는 마시라. 그래도 그 늑대가 지금은 한 여성을 위해 '당신만을 사랑해'를 외치며 살아가는 순정파 남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내 휴대전화 최근 통화목록. '여두목전화왔다'는 무서운 아내의 애칭(?)이다.
 내 휴대전화 최근 통화목록. '여두목전화왔다'는 무서운 아내의 애칭(?)이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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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번의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인해 나는 10여년간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물론, 꼼짝없이 잡혀 살고 있다. 오죽하면 나의 휴대전화 저장번호 1번이 '여두목전화왔다'일까. 주위에서는 "상냥하고 예쁜 마누라 둔 걸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내뱉지만, 집에만 돌아오면 조폭으로 변신하는 그녀의 실체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키지 못할 약속은 결코 하지 마시라. '손만 잡고 잘게' 요즘에도 이 말을 믿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바보다. 자려면 그냥 자지 왜 귀찮게 손을 잡고 자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라. '손도 잡고 잘게'라고….

잠깐 속일 수는 있지만, 아주 속일 수는 없다.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그녀를 속일 수는 없다. 책임질 줄 아는 남자는 사랑을 해도 함부로 가벼운 사랑을 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면 반드시 책임도 진다.

'조폭마누라'보다 더 두려울지라도, 좋아하는 라면을 결코 안 줄지라도, 몸무게가 50kg가 넘을지라도 뭐니 뭐니 해도 내 아내가 최고다. 여보, 이제는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할게. 다 이해하니까 이제 말해봐. 시어머니한테는 절대 비밀 보장할게!(?)

덧붙이는 글 | [지키지 못할 맹세 왜 했어?] 응모글



태그:#지키지못할맹세, #손만잡고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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