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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경제자유구역은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 개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허황된 망상에 사로잡힌 개발론자들에게 경고한다. 원주민의 숨통만 조이는 황해경제자유구역을 당장 해제하라."

 

황해경제자유구역 아산시 인주지구 주민들의 반발움직임이 조직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1일(수) 20여 명의 각 마을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황해경제구역지구지정에 대해 만장일치로 반대 입장을 정리했다.

 

이어 황해경제자유구역 인주지구 반대 주민대책위원회(위원장 김금섭)를 구성해 마을대표 30명의 반대서명을 받아 12일(목) 복기왕 아산시장을 방문해 전달한 후 지구지정 해제를 위해 아산시가 적극 나설 것을 요구했다.

 

또 지난 주말(14~15일) 이틀간 황해경제자유구역 지구에 포함되는 500여 명의 주민서명을 받아 16일(월) 복기왕 시장의 출근시간에 맞춰 전달하며, 지역주민들의 반대의지를 전했다.

 

이들은 아산시, 충남도, 지식경제부, 국회 등에 보내는 탄원서를 통해 "황해경제자유구역 인주지구는 2008년 5월6일 지구지정 이후 2년간 아무런 시행절차 없이 주민들에 대한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며 "그동안 지켜 본 결과 사업시행에 대한 전망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감수할 수 없어 주민의 뜻을 모아 지구지정 해제를 요구하게 됐다"고 밝혔다.

 

반대대책위 김재길 사무국장은 "황해경제자유구역 지정 이후 실시된 행위제한은 지역주민들에게는 사망선고와 다를 바 없었다. 창고 하나 지을 수 없고, 나무 한 그루 마음대로 심을 수조차 없다. 또 농촌에 부채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빚을 갚기 위해 땅을 내놔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이같은 행위제한이 앞으로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막연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사는 주민들의 삶이 저당잡힌 셈이다"라고 비판했다.

 

반대대책위는 지구지정해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생존권 사수 차원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역공동체·우량농지·환경·문화 송두리째 매장"

 

황해경제자유구역은 충남도와 경기도가 함께 시행하는 사업으로, 충남도 당진군, 아산시, 서산시, 경기도 평택시와 화성시에 걸쳐 총 5개 지구 5505만㎡에서 추진하고 있다.

 

수용인구는 9만6000세대 23만명 수준이며 사업비는 총 7조4000여 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사업은 2008~2025년까지 3단계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며, 경제자유구역 안에 첨단산업생산·국제물류·관광·연구단지를 조성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황해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약 45조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15조5000억 원의 부가가치와 함께 28만 명이상의 고용 창출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총 5개 지구 중 인주지구 조성비용은 8687억 원과 인프라구축비용 1837억 원 등 총 1조524억 원의 사업비가 소요될 예정이다. 사업목표년도까지는 17년이라는 기간이 계획돼 있다.

 

황해경제자유구역 아산 인주지구는 공세3리, 신성리, 걸매리, 밀두1리, 밀두2리, 문방1리, 문방2리, 문방3리, 문방4리, 대음1리, 금성리, 해암1리, 도흥1리, 관암1리, 관암2리, 냉정리 등 1303만㎡(394만평)가 지정됐다.

 

간척지로 형성된 기름진 논과 밭 등 우량농지가 65% 이상을 차지하고, 인주면 전 지역을 아우른다. 이 중에는 ▷밭 122만3000㎡(37만평) ▷논 727만3000㎡(220만평) ▷임야 307만4000㎡(93만평) ▷대지 33만1000㎡(10만평)가 포함된다.

 

이곳에는 자연발생마을로 구성된 1584가구 3534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이 중 2500여 명의 주민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지역공동체·우량농지·환경·문화 등의 붕괴에 대한 우려는 이미 아산신도시 1~2단계에서 보았듯이 현실이다. 그 중 가장 큰 현안은 행위제한에 따른 재산권이나 생존권의 피해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또 수용될 지역주민들의 생계와 이주대책 등도 막연하다. 아산신도시 개발사업에서 경험한 것처럼 영세자영업자, 임차농민, 세입자, 일정소득이 없는 노년층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현실을 반영한 보상여부는 불투명하다.

 

수용지역 대부분 주민들이 실업자 상태가 되는 것도 문제다. 수용지역의 적지 않은 주민들이 도시 자영업자나 노동자들과 생존경쟁관계를 형성해 새로운 도시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2008년 4월18일 건축법, 토지이용규제 기본법 등에 따라 인주지구는 이미 각종 허가 제한지역으로 지정고시 된 상태다.

 

아산시민모임 김지훈 사무국장은 "인주지역 농민들의 생존권과 인주지역에서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는 주민들의 행복추구권이 2년 전부터 제한받고 있으며, 지금당장 생활에도 상당한 위축을 받고 있다"며 "아산시는 정확한 실태파악과 함께 주민들과의 꾸준한 대화를 통해 황해경제자유구역문제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한기형씨(공세리)는 "인주지구 대부분이 우량농지다. 식량산업의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가 될 수도 있는데, 우량농지를 크게 훼손하며 골프장과 위락시설, 공장과 맞바꾼다면 심각한 문제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에서 계획된 것이라면 농지는 최소화 돼야 한다"며 "개발비용이 적게 들고, 땅값 싼 곳만을 고르다 보니 광활한 평지와 우량농지가 대거 포함된 것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도 비판…"사업 실효성 재검토해야"

 

황해경제자유구역 당진 송악지구 사업자인 당진테크노폴리스(주)의 대주주인 한화그룹이 지난 6월29일 사실상 사업포기를 선언했다. 또 지식경제부는 낮은 외국인 투자유치율 등의 이유를 들어 황해경제자유구역에 대한 사업면적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

 

진보신당 충남도당은 "황해경제자유구역 사업의 실패는 충남도와 해당 시군의 예산낭비, 사업지구 내에 토지가 포함된 주민들의 피해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정 해제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그러나 그 동안 충남도는 뻔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업을 억지로 끌고 오다가 오늘의 사태를 맞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정경자 전 아산시의원은 "황해경제자유구역은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사업이었다. 사업예산의 95%를 외자유치로 충당한다는 계획인데 절대 불가능하다. 주민피해를 최소화하고 아산시와 충남의 미래를 위해서는 지구지정을 당장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황해경제자유구역의 지난 2년간 외자유치는 올해 목표인 4억 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2억달러에 불과하다. MOU(양해각서) 체결 역시 6건에 그치는 등 투자 실적이 미약하다. 양해각서는 투자계약과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어 이들 기업이 실제 투자할지도 불투명하다.

 

주민피해도 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에 토지가 포함된 주민들은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하면서 보상도 못 받고 재산권 행사도 못하는 등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임광웅 전 아산시의원은 "황해경제자유구역에 포함된 대부분 주민들은 지정을 해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2008년 지구지정 당시부터 이 모든 상황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정책입안자들은 이제부터라도 지역의 목소리나 원주민들의 고통에 대해 귀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충남시국회의도 황해경제자유구역의 실패는 인천·부산·광양의 자유경제구역 사례에서 충분히 예견됐다고 밝혔다.

 

충남시국회의는 "경제자유구역 중 가장 빠르다는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지난 2002년 조성된 후 지난 4월까지 외국인 투자신고(FDI)가 이뤄져 실제 들어온 금액은 7억2782만달러에 불과했다. 이 같은 금액은 그동안 대외적으로 발표된 외국인 총투자금액 67억3790만달러의 10.8%에 불과한 것이다. 또 기존 체결된 42건의 MOU 중 실제 계약으로 이어진 것은 19건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며 황해경제자유구역 사업을 비관했다.

 

사회공공성 파괴도 지적…"아산시가 주도적으로 입장정리 나서야"

 

애초부터 경제자유구역은 외국자본의 이윤보장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사회공공성을 크게 후퇴시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충남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진보정당들은 황해경제자유구역이 사회공공성을 크게 후퇴시킬 뿐만 아니라 사업성도 낮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해왔다.

 

아산시민모임 김지훈 사무국장은 "경제자유구역은 외국자본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근로기준법에 명시한 연월차휴가 폐지, 주휴의 무급화, 파견제 확대, 노동3권 제약, 장애인·고령자 의무고용 회피 등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심지어 외국 교육자본의 진출허용, 의료·법률 등 사회적 서비스의 공공성 포기 등의 내용도 담겨 있다"며 "노동자,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며 공교육과 공공의료를 후퇴시킬 우려가 높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업타당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마구잡이식으로 지정한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인천, 부산, 광양 등 기존 3곳의 경제자유구역에 새로 황해, 새만금, 대구경북 등 3개의 경제자유구역이 추가 지정됐고 수 십 개의 외국인투자지역에 자유무역지대까지 서로 출혈경쟁을 치르다보니 사업 전망도 안갯속이다.

 

지난해 세계금융 위기는 외자유치의 가능성을 더욱 떨어뜨렸다. 정부는 실적이 우수한 구역에 국비를 차등지원하고, 장기간 부진한 구역은 지정 해제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산시민모임 김지훈 사무국장은 "황해경제자유구역은 아직 보상이나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는 곧 투자비용이 크지 않다는 말이다. 지금이라도 지정을 철회하면 막대한 예산낭비를 막을 수 있다"며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져 밑 빠진 독에 물 붓 듯 끝없는 예산낭비의 악순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기왕 아산시장은 취임 이후 투자대비 효율성 분석을 통해 사업의 지속성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아산시가 황해경제자유구역에 대한 결론을 어떻게 내릴지도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충남시사신문>과 생활정보신문 <교차로>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황해경제자유구역, #아산시, #인주지구, #우량농지, #수용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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