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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수길 벚꽃 터널.
 대청호수길 벚꽃 터널.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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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수길에 꽃비가 내리고 있다. 이제 겨우 꽃이 피나 했더니 어느새 꽃이 지고 있다. 그나마 예년보다 더 매서워진 꽃샘추위 탓에 한 발 더디게 핀 꽃이었다. 그런데 그 꽃이 한나절 비가 오고 다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아무래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던지 서둘러 발길을 되돌리는 모양새다. 새로 피어나야 할 꽃들마저 움츠러드는 판인데, 이미 정염을 다한 꽃들이 무슨 수로 이 추위를 견디랴.

벚꽃비 날리는 길.
 벚꽃비 날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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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 때마다 하얀 꽃잎이 아스팔트 도로 위로 화르르 쏟아져 내린다. 바람에 날려 떨어질 때는 꽃비더니, 검은 아스팔트 위에 점점이 뿌려져서는 새하얀 꽃눈이 되어 있다. 어쩔 수 없이 꽃눈을 부드럽게 밟고 지나간다. 그 느낌, 정말 황송하다.

대청호수길에 이렇게 벚꽃이 지고 있다. 이제 이 길의 화려하기 짝이 없는 벚꽃 터널과도 당분간은 작별이다. 하지만 벚꽃이 지면서 봄은 한층 더 무르익고 있다. 대청호수 파란 물이 산자락을 촉촉이 적시면서, 물가에 가까이 늘어선 나무들이 그 어느 때보다 싱그러운 빛을 내뿜고 있다. 한창 물이 오르고 있는 나뭇잎들이 새살이 돋는 듯 순한 빛깔이다. 어리고 여린 잎들이, 아직 푸른 빛보다는 맑은 물빛이 더 강해서인지 연록색 투명한 빛깔을 띠고 있다.

이맘때는 이 나뭇잎들이 여느 꽃잎만큼이나 아름답다. 그렇게 대청호수길에는 지금 연록색 나뭇잎들이 세상 가득 열심히 봄물을 퍼 올리고 있다. 날씨가 아무리 심술을 부려도 봄은 그렇듯 밝은 모습으로 조용히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대청댐 가는 길. 금강 얕은 물에 발을 담그고 서 있는 나무들.
 대청댐 가는 길. 금강 얕은 물에 발을 담그고 서 있는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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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를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 호수처럼 평화로운 마을들

대청호수길은 대전 시내에서 옥천으로 넘어가는 4번 국도변에서 시작된다. 세천유원지 못 미처 8차선 넓은 길 옆구리에 실핏줄 같이 좁은 이차선 도로가 살짝 붙어 있다. 이 도로가 호숫가를 따라 대청댐까지 이어지는 대청호수길이다. 도로가, 구불구불한 호숫가를 따라가며 이제 막 푸른 잎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산자락을 이리 저리 굽어 돈다.

그 길 위에서 내려다보는 호수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파란 물이 붉은 색 산허리를 슬쩍 감싸고 있다. 물 건너 첩첩이 쌓인 산들이 물 위에 떠 있는 섬처럼 잔잔하다. 마치 남해 한려수도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그 파란 호수가 잠을 자는 것처럼 고요하다. 명경지수라고 했던가? 한 점 수묵화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들뜨고 어지러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기 좋은 풍경이다.

대청호수길에서 바라다본 대청호. 먼 산이 안개에 가려 아스라하다.
 대청호수길에서 바라다본 대청호. 먼 산이 안개에 가려 아스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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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은 때때로 대청호수길에서 벗어나, 호숫가 마을 안길로 파고든다. 대청호수길이 차도인 것에 반해, 마을 안길은 농로에 가깝다. 호숫가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경운기를 끌고 지나다니는 길이라 사람 사는 풍경이 좀 더 가깝게 다가온다. 그 길가에 봄나물이 돋아나는지 나들이 복장을 한 사람들이 산자락을 누비고 다니며 나물을 캐고 있다.

이곳 마을들은 대청댐이 금강 줄기를 가로막기 전에는 도로조차 제대로 닦이지 않은 오지의 산골마을들이었다. 그런데 대청댐이 들어서면서 격세지변을 맞아 졸지에 '강변마을'이 되고 말았다. 산골마을이 강변마을이 되었어도, 마을 모습은 여전히 예전의 산골마을을 닮아 있다. 물론, 그나마 수몰 위기를 벗어난 마을들 이야기다.

대청호수길 길가 마을 앞에서 내려다본 대청호.
 대청호수길 길가 마을 앞에서 내려다본 대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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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들이 지금은 행정구역상 대전이라는 대도시 안에 포함이 되어 있다. 산골마을이 강변마을로, 강변마을이 다시 도시로 편입이 되는 엄청난 변화를 겪은 셈이다. 그런데도 이곳 마을들은 여전히 도시와는 완연히 다른 형태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비록 마을 앞으로 시멘트 도로가 놓이기는 했지만, 그 길 중에는 여태 마을버스조차 오가지 않는 길도 있다. 설령 버스가 오가는 큰 길이라고 해도 보통 한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도시 문패를 달았어도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궁벽진 산골 오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논의 물꼬를 트고 있는 농부. 푸른 물이 돋는 나무와 파란 호수.
 논의 물꼬를 트고 있는 농부. 푸른 물이 돋는 나무와 파란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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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사람들은 예전처럼 산비탈을 깎아 농사를 짓고 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그들이 일군 다랑논에 산 위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그득하다. 그 논에 삽을 들고서 물꼬를 트고 있는 농부가 호수를 배경으로 서 있다. 호숫가에서 봄을 맞이하는 농부의 뒷모습이 듬직하다. 그 모습이 지극히 평화롭다. 이곳에 와서 비로소 산골 농부의 삶이 호수를 닮았다는 걸 알게 된다. 여느 강변마을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강변마을들이 도시 사람들이 한때의 유희를 즐기고 떠나는 곳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세태가 그런데도 이곳의 마을들은 그런 풍조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마을들이 지금 이대로의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해주기를 바란다면, 너무 현실을 무시한 생각일까?

냉천 자전거길(2코스). 시멘트가 깔린 농로. 차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폭이다.
 냉천 자전거길(2코스). 시멘트가 깔린 농로. 차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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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지정 '3개 자전거코스'를 돌아보다

금강변 대청공원 산책로(호반길 1코스).
 금강변 대청공원 산책로(호반길 1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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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를 중심으로, 주변 산줄기와 호숫가를 따라 얼기설기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만들어져 있다. 대전시는 최근에 대청호 주변에 산책로(대청호반길)와 자전거길을 조성했다고 발표했다.

시가 조성한 정식 산책로는 14개 코스 59km이고, 자전거길은 3개 코스 27km이다. 대전시는 앞으로 이 지역에 '대청호 생태탐방로 조성사업'이라는 이름으로 3년간 45억원의 국비를 투입할 예정이다.

대전시는 이곳에 산책로와 자전거길을 지정하면서, 필요 이상의 개발은 자제했다. 실제 자전거길 중 3코스를 제외한 1, 2코스는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길에다 이정표만 새로 설치한 형태다. 따라서 이 길을 찾아갈 때는 아스팔트 곱게 깔린 매끈한 자전거도로를 연상해서는 안 된다. 1코스는 산길에 가까운 비포장 흙길이고, 2코스는 시멘트 깔린 호숫가 농로를 그대로 이용했다.

대청호 대청공원 잔디밭으로 소풍을 나온 아이들. 멀리 보이는 것이 대청댐.
 대청호 대청공원 잔디밭으로 소풍을 나온 아이들. 멀리 보이는 것이 대청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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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샘마을 앞. 자전거길과 산책로를 가리키는 이정표. 파란색이 자전거길, 주황색이 산책로.
 찬샘마을 앞. 자전거길과 산책로를 가리키는 이정표. 파란색이 자전거길, 주황색이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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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코스 모두 찬샘마을(대전시 직동)을 기점으로 한다. 1코스(부수동 자전거길)는 산악자전거를 타고 가는 게 좋다. 이 길은 경운기나 트럭 같은 자동차들이 오간 흔적이 심하다.

길바닥이 패인 곳이 많아 일반 자전거로는 접근하기 어렵다. 코스 길이는 약 7km. 들어갈수록 점점 더 깊은 숲속이다. 길이는 짧지만, 노면이 좋지 않아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

2코스(냉천 자전거길)는 꽤 낭만적인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찬샘마을을 뒤로 돌아가는 길이다. 호숫가를 따라 난 시멘트 길이 가느다랗고 길게 이어진다. 찬샘마을 뒤쪽 길가 정자(찬샘정)에서 내려다보는 호수 풍경이 절경이다. 코스 길이는 약 15km. 한두 군데 비교적 긴 언덕이 있지만, 운동 삼아 오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가볍다.

이 길 중간에 '관동묘려'로 들어가는 샛길이 있다. 개인적으로, 2코스에서는 이 샛길에서 보게 되는 호숫가 풍광이 가장 뛰어나다는 생각이다. 비록 관동묘려에서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지만, 오고 가면서 보는 풍경이 충분히 그런 고생을 할 만한 가치가 있다.

공사중인 자전거길 3코스.
 공사중인 자전거길 3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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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에 외딴집이 하나 나오는데 그곳이 관동묘려다. 관동묘려는 대전광역시문화재자료 제37호로, '쌍청당 송유의 어머니 류씨부인의 묘 아래에 제향을 지내기 위해 지어 놓은 재실'이라는 설명이다.

3코스(신상동 자전거길)는 흥진마을(대전시 신상동)에서 시작된다. 이 길은 자전거코스로 지정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호숫가를 빙 돌아가는 흙길이었다.

지금은 그 길에 차량 통행 차단기를 설치하고, 자갈을 까는 등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코스 길이는 약 5km. 현재는 공사 중이라, 공사가 끝난 연후에나 출입이 가능하다.

신상동 자전거길 입구에 시민공용자전거 '타슈'가 10대 가량 비치되어 있고, 찬샘마을에는 20대 가량이 비치되어 있어 언제든지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다.

벚꽃이 지고 있는 대청호수길.
 벚꽃이 지고 있는 대청호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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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 안내판. 노란색 선이 대청호수길. 초록색은 자전거길 1코스, 빨간색은 자전거길 2코스, 파란색은 자전거길 3코스. 1) 4번 국도 대청호수길 입구, 2) 마산동 마을회관 앞 '냉천길'로 들어가는 갈림길, 3) 찬샘마을, 4) 대청댐, 5) 관동묘려, 6) 신상동
 대청호 안내판. 노란색 선이 대청호수길. 초록색은 자전거길 1코스, 빨간색은 자전거길 2코스, 파란색은 자전거길 3코스. 1) 4번 국도 대청호수길 입구, 2) 마산동 마을회관 앞 '냉천길'로 들어가는 갈림길, 3) 찬샘마을, 4) 대청댐, 5) 관동묘려, 6) 신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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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대청호는 지난 22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대청호, #대청호반길, #벚꽃, #자전거,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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