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은 순국선열을 기리는 3.1절이자, 필자가 사는 군산시 나포면 '면민의 날' 선포식을 하는 날이기도 하다. 3.1절을 면민의 날로 정하다니 새롭게 느껴졌다. 마을 어른의 말에 의하면 해방 이후 8월15일에 행사를 치러왔다고 한다.

면사무소 앞, 시내버스 정류장 부근에 내걸린 나포 면민의 날 선포식을 알리는 현수막.
 면사무소 앞, 시내버스 정류장 부근에 내걸린 나포 면민의 날 선포식을 알리는 현수막.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나포면 역사는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에 대한제국을 강점한 일제는 수탈을 위한 도시를 만들고 행정구역 개편에 착수하는데 그 과정에서 임피군 북삼·하북면을 통합, 1914년 3월1일에 '나포면'이 탄생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8월15일을 면민의 날로 정하고 마을 대항 축구시합과 윷놀이 등으로 마을 화합을 다져왔는데, 경기만 하니까 분위기가 딱딱하다는 의견이 많아 10여 년 전부터는 풍물패와 노래자랑을 곁들여 마을 주민들이 하나 되는 한마당 잔치로 면민의 날을 기념해왔다고.

그런데 8월15일이 농번기이고 혹서기여서 행사 진행에 따른 사고발생 우려 등으로 변경 필요성이 대두되어 2009년 9월3일 주민대표들이 전체회의를 열어 나포면 개청 96주년을 맞는 3월1일을 '면민의 날'로 지정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신학기 초등학교에서 사용될 새 국어 교과서에서 3·1독립 만세운동의 상징인물 유관순 열사 전기문을 뺀다고 하는데, 지방 소도시 그것도 작은 농촌 면 단위 마을은 3.1절을 면민의 날로 선포하다니 정신 나간 사람이 누구인지 헷갈렸다.

제91주년을 맞는 3.1절 아침

작년 8월15일 주민화합 한마당 행사를 마치고 9월에 주민대표들이 모여 면민의 날을 3월1일로 변경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다르게 느껴졌다. 해서 현장을 취재하고 싶어 메모해두었다가 집을 나섰는데, 행사 시작 한참 전인데도 주민들이 우산을 받고 면사무소로 모여들고 있었다.

면민의 날 선포식에 참석하기 위해 우산을 받고 면사무소로 향하는 면민들
 면민의 날 선포식에 참석하기 위해 우산을 받고 면사무소로 향하는 면민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제91주년 3·1절은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내렸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무시하고, 일제 부역 세력과 손잡은 이승만 정권 출범(1948년)일을 '건국절'로 삼으려는 이명박 정권의 몰상식한 행위를 하늘에서 지켜보는 순국선열들의 통곡처럼 느껴졌다.

'건국절' 변경은 거족적으로 궐기하여 자유와 독립을 선언한 3.1운동은 물론, 민족사에 빛나는 항일독립투쟁사는 단절되고, 일제 부역자들에게 건국 공로를 인정하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자초하는 꼴이어서 비통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1919년)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항일독립만세 운동이 기폭제가 되어 항일독립투사들이 중국 상해에 모여 1919년 4월11일에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하고 임시로 수립한 정부를 말한다.

3.1운동은 일제의 탄압에 맞선 민족 지도자들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탑골공원을 비롯한 전국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이었다. 특히 해외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은 국내 백성에게 독립의지를 고취시키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남 아세아 국가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나포 '면민의 날' 선포식 풍경

선포식 마지막에 하영태 전 면장과 조부철 시의원이 나와 만세삼창을 선창하고 있다.
 선포식 마지막에 하영태 전 면장과 조부철 시의원이 나와 만세삼창을 선창하고 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선포식은 오전 11시에 열렸는데, 최승호 나포 체육회 수석 부회장은 경과보고에서 "주민자치위원회, 이장 협의회, 체육회, 부녀회 등 주민대표 전체회의에서 지정한 면민의 날 선포식을 통해 면민이 하나 되어 단결과 화합으로 50만 국제관광 기업도시 군산건설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주민을 대표해서 나온 김윤진 주민자치위원장이 "나포면 개청 96주년이자 3.1운동 91주년을 맞은 오늘, 우리 주민은 새로운 면민의 날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면민의 단결과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에 우리 나포면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여 새만금시대의 일익을 담당하기 위하여 3월1일을 나포 '면민의 날'로 선포합니다."라고 선포하자 힘찬 박수와 함성이 터지기도.

장남수 나포 면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장남수 나포 면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장남수 면장은 기념사에서 독립운동의 시발점인 3.1운동 기념일에 나포 면민의 날 선포식을 하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면서 나포면이 개청 되고 5년 후 3.1운동이 일어난 것을 보면 나포면과 3.1운동은 필연의 관계라 아니할 수 없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장 면장은 어둡고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찾고자 독립만세를 외쳤던 조상님의 정신은 나포 면민의 정신이었으며 그 정신으로 자랑스러운 고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산업화에 밀려 발전이 늦어진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이어받아 발전해나가자고 역설했다. 

군산시 구암동산 3.1운동 기념관 광장에서 열린 '군산 3.5만세시위 재현 거리행진 행사'에 참석하고 왔다는 문동신 시장은 3·1절을 택해 면민의 날을 선포하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하고 축하한다며, 1910년 8월22일 일제와 강제병합을 인정하는 조약에 도장을 찍은 치욕스런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라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문 시장은 면민의 날 선포의 중요한 의미는 나포 면민이 화합하고, 나아가 군산시 27개 읍·면·동이 화합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가(家)화만사성'에서 한 단계 높은 30만 시민이 함께하는 '시(市)화 만사성'을 이루어 100년 만에 찾아온 발전의 호기를 다 함께 노력해서 완성하자고 당부했다. 

3.1절을 기념하고, 면민의 날 선포를 자축하는 의미로 거행된 만세삼창에서 하영태(72세) 전 시의원은 목숨을 걸고 독립만세를 외쳤던 3.1운동 기념일에 면민의 날을 선포하게 된 것을 뜻있게 생각한다면서 "3.1정신 계승하여 세계 속에 우뚝 선 대한민국 만세!", "50만 국제관광 기업도시 만들어가는 군산시 만세!", "화합과 단결로 새롭게 발전하는 나포면 만세!"를 힘차게 선창했고, 두 손에 태극기를 든 주민들은 강당이 떠나가도록 '만세!'를 외쳤다. 

"울고 왔다, 울고 가는 마을이었어!"

선포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면사무소 뒤편에 있는 '게이트볼장'으로 이동해 오찬을 겸한 주민 화합의 시간을 가졌는데, 비는 줄기차게 내렸지만, 실내는 반가운 인사가 오가면서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일제강점기에 겪었던 고생과 해방 후 나포면에 대해 설명하는 조용주(좌), 황종규(우) 할아버지
 일제강점기에 겪었던 고생과 해방 후 나포면에 대해 설명하는 조용주(좌), 황종규(우) 할아버지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연세가 지긋하게 보이는 황종규(80세), 조용주(80세) 할아버지가 눈에 띄기에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황 할아버지에게 "나포에서 몇 년 사셨어요?"라고 물었더니 "여태까지 살었어, 여태까지."라고만 했다. 해서 "언제부터인데요?"라고 재차 물으니까, 옆에 있던 조 할아버지가 허허 웃으면서 "주곡리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었지. 나허고 소학교 동창이거든"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럼 언제부터 나포 면민의 날 행사를 해왔고, 두 분은 언제부터 참석하셨나요?

황 할아버지- "해방되고 8월15일에 혔는디 확실한 연도는 잘 모르겠네. 하여간 나는 시합에 나가지는 못 허고 참관인으로 나갔지, 구경만 하러 댕겼응게. 그리도 나포면이 10개 면(面) 중에 가장 온순허고 순탄혀서 시청 직원이나 순경이 면사무소나 지서로 발령 받으믄 수양허러 온다고 헐 정도로 사람들이 순헌디여."

조 할아버지- "나포면은 울고 왔다가 울고 나가는 마을이라고 허는 사람들이 많였지, 그 얘기는 그만치 사람들이 정이 많고 온순허다는 뜻이지. 처음이는 오지로 알고 울고 왔다가 갈적으는 정들어서 서운헌게 울고 간다 이말여. 지금잉게 차들이 많지만, 그 옛날에는 차들이 없어서 산골짝이나 마찬가지였지. 그러니께 저기 가믄 '숯가마'가 많였던 '숯 골'도 있잖여."

나포면 주곡리에서 태어나 고향을 한 번도 뜨지 않았다는 두 분은 일제 때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는 하지 않고 산으로 소나무 가지를 치러 다니고, 운동장에 콩을 심던 얘기도 들려주었다. 해서 3·1절에는 뭐가 가장 많이 생각나시느냐고 물었다.

황 할아버지- "3·1절에는 유관순이 젤 많이 생각나지, 우리 세대는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난세에 살었어. 일제 때 핍박받고, 대동아전쟁('태평양 전쟁'을 일제가 이르던 말) 한참 때는 산으로 솔나무 가지치기를 허러 댕겼지. 거기에서 왜놈들이 전쟁에 쓰는 송진기름이 나오거든."

조 할아버지- "어렸을 때 노력동원 나댕기고 혔으믄 무던 허지 뭐, 그때가 젤 생각나.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때 소나무 가지를 한 짐씩 짊어지고 저 장상리까지 걸어갔지, 일제가 전쟁 때 쓸라고, 기름공장을 지어놨었거든. 운동장에는 군인들이 먹을 콩도 심고 혔응게, 거기다가 가마니도 짜고 새끼도 꽈야 혔으니 무슨 공부를 혔겄어."

일제의 핍박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다는 두 할아버지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이명박 정권 나리들은 시대에 앞서가니까 3·1운동을 상징하는 유관순을 교과서에서 삭제하고, 나포 면민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시골뜨기들이어서 3·1절을 면민의 날로 선포하고 마을의 단합과 화합을 다짐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와 한겨레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3.1절 , #군산시 나포면, #면민의 날 선포식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