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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자오(老赵, 赵本山)는 나이 쉰이 넘은 농민으로 4년 넘게 고향을 떠나 션전(深圳)에서 공장 일을 하며 살고 있다. 멀리 충칭(重庆)에서 온 친구 라오류(老刘, 洪启文)와 공장에서 만나 외로움을 달래며 벗이 되었고 누가 먼저 죽든지 시체라도 고향에 데려다 주기로 약속을 한다. 어느 날 친구가 죽자 약속을 지키기 위해 먼 길을 떠나며 영화 <낙엽귀근>은 시작된다.

로드무비의 형식이지만 그 느낌은 사뭇 진지하면서도 코믹하다. 유머러스 하면서도 진솔한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주인공 라오자오와 그들이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삶과 갈등을 풀어내는 영화다. 서민의 삶이 진하게 묻어나며 고뇌와 아픔이 절절하게 배어 나오는 슬픈 코미디다.

주인공역을 맡은 자오번산(赵本山)은 중국에서 '샤오싱(笑星)'이라 불린다. 웃음을 주는 별이라는 뜻으로 중국 최고의 코미디 배우라는 찬사이기도 하다. 얼굴이 웃기게 생겨서도 아니고 몸짓이 어눌해서도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 왜 그에게 '최고의 배우'라는 극찬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완벽한 연기를 보여준다.

죽은 친구를 취객으로 위장해 버스를 탔다. 그를 묻어주기 위한 수천킬로미터에 이르는 고향으로의 로드무비가 시작된다.
 죽은 친구를 취객으로 위장해 버스를 탔다. 그를 묻어주기 위한 수천킬로미터에 이르는 고향으로의 로드무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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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고향에 묻어주기 위한 기나긴 여정

라오자오는 죽은 친구를 술 주정뱅이로 위장해 버스 옆자리에 자는 척 앉히고 충칭으로 향하는 도중에 불행히도 강도(匪徒, 郭德纲)를 만난다. 차례차례 승객들의 금품을 빼앗던 강도가 드디어 라오자오의 좌석까지 다가왔다. '내 돈은 다 줄 수 있지만 친구의 돈은 안 된다'고 하며 그 이유를 말한다.

친구가 죽어 사장이 준 위로금 5천 위안을 가지고 고향에 묻어주러 가는 길이라고 하자 강도는 감동해 "뤄예구이건(落叶归根), 루투웨이안(入土为安)"이라 말한다. '낙엽은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 흙이 돼 안식을 얻는다'는 뜻이지만 '멀리 고향을 떠났던 사람은 죽어서 고향에 묻혀야 평안을 얻는다'는 의미다. 강도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는 행동이야말로 바로 살아있는 정의'라고 하며 승객들에게서 빼앗은 돈 전부를 라오자오에게 건네준다.

강도조차 감동했건만 빼앗긴 돈을 모두 되찾아간 승객들은 곧바로 시체의 승차를 거부한다. 라오자오는 친구를 등에 업고 길 한가운데서 내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하염없이 길을 걷는다.

사고가 난 것처럼 위장해 지나가는 차량을 얻어타려고 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고가 난 것처럼 위장해 지나가는 차량을 얻어타려고 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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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 차를 얻어 타려 하지만 쉽지 않다. 사고로 쓰러진 척 위장해 맘씨 좋은 아저씨의 트랙터를 얻어 타고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병원 앞에서는 그대로 몰래 도망칠 수밖에 없다. 밤이 되자 여인숙 침대 하나에 친구와 함께 묵는다. 마침 충칭으로 가는 운전사가 있어 태워달라고 부탁하지만 거절 당한다. 아침이 되자 자신의 돈을 도둑 맞은 것을 알게 되지만 시체를 짊어지고 있는 처지여서 경찰을 부르지도 못한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어쩔 수 없는 라오자오가 안쓰러워 보인 트럭운전사(卡车司机, 胡军)는 웬일인지 시체인 줄 알면서도 트럭에 태워준다. 신나게 달리는 트럭에서 심심하던 차에 라오자오는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갑자기 트럭운전사가 사납게 돌변해 노래를 부르지 마라고 하더니 뜻밖에 통곡을 한다.

몇 년 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아가씨가 바로 그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가 돼 그녀와 함께 결혼하기 위해 30만km를 달리며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가슴 속 아픔을 억누르고 살아가는데 노래를 들으니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났던 것. 그는 순정파였던 것이다.

라오자오는 울부짖는 트럭운전사에게 앞으로 또 30만km를 더 달리며 그녀를 찾아보라고 용기를 준다. '목숨까지도 왔다 갔다 하는 게 바로 사랑이란 것'이라고 위로한다. 죽고 싶어하던 트럭운전사는 다시 의욕을 되찾지만, 가는 방향이 달라지게 돼 서로 헤어지게 된다.

친구를 논 한가운데 허수아비로 위장하고 상려 행렬를 따라간다. 밤 늦게 돌아와 어둠 속에서 친구를 다시 찾느라 고생을 한다.
 친구를 논 한가운데 허수아비로 위장하고 상려 행렬를 따라간다. 밤 늦게 돌아와 어둠 속에서 친구를 다시 찾느라 고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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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친구를 등에 업고 길을 재촉하는데 상여 행렬을 만난다. 밥을 얻어먹기 위해 친구를 허수아비로 위장해 논 가운데 세워 두고 상가에 가서 목 놓아 운다. 허겁지겁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 있는 라오자오 앞에 관 속에 누웠던 노인(年老者, 午马)이 갑자기 나타난다.

노인은 부인도 자식도 없이 외로이 살아온 고독한 처지다. 자신이 죽은 후 상가가 너무 외로울 듯싶어 돈을 주고 사람들을 사서 미리 살아 생전에 장례를 치르는 것이라고 한다. 둘은 서로의 처지를 달래며 술잔을 기울인다. 노인의 도움으로 부패하기 시작한 친구에게 약을 바르고 관에 넣은 다음 수레에 싣고 나니 끌고 가기 비교적 편하다.

수레를 끌고 가는데 소가 끄는 수레가 옆으로 지나간다. 공연히 알 수 없는 경쟁심이 발동해 소를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며 언덕을 달린다. 이때 여행자(旅行者, 夏雨)가 나타나 뒤에서 밀어주며 힘내라고 격려한다. 결국 소가 끄는 마차를 이기고 언덕을 올라간다.

소달구지와 달리기 경쟁을 하다가 젊은 여행자를 만나게 된다.
 소달구지와 달리기 경쟁을 하다가 젊은 여행자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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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와 함께 커피 한 잔을 끓여 마시며 잠시 여유를 부린다. 평범한 젊은이인 여행자는 28세 생일날까지 시장(西藏, 티베트)에 꼭 도착해 자신의 삶에 새로운 동기를 만들고 싶어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젊은이를 보니 라오자오도 다시 힘이 생긴다.

다시 수레를 끌고 길을 재촉한다. 내리막 길에서 그만 속도를 주체하지 못해 넘어지고 수레와 관은 산산조각이 난다. 다시 친구를 업고 가다가 사고로 못 쓰게 된 트럭의 타이어를 얻는다. 커다란 타이어 안에 친구를 눕히고 끈으로 묶어 안전하게 만들고 서서히 굴리니 제법 편리하다. 그런데 또 내리막길이다.

친구의 시체를 타이어 안에 넣고 길을 걸어가고 있다.
 친구의 시체를 타이어 안에 넣고 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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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는 타이어는 결국 길을 벗어나 굴러 떨어지고 만다. 타이어 밖으로 친구의 발이 튀어나왔다. '산 사람이었다면 아마 뼈도 추리지 못했을 거야'라며 친구에게 말을 건넨다. 친구를 다시 등에 업고 길을 걷기 시작한다.

친구의 돈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5천위엔 중 일부를 사용해 차를 빌어 고향에 빨리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다. 우선 배가 고파 한 음식점에서 고기와 생선을 먹었는데 무려 600위엔이나 나온다. 바가지를 쓴 것이다. 라오자오는 깡패들에게 협박을 당해 할 수 없이 친구의 돈에서 값을 치르고 나온다. 그런데 다시 쫓아온 무허가음식점주인(黑店老板, 刘金山)은 위조지폐라고 다시 협박한다. 그럴 리 없다고 모든 돈을 다 꺼내 확인해 본다. 결국 양심적이라 믿고 고맙게까지 생각했던 공장 사장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친구를 묻어주고 자살을 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실패하게 된다.
 친구를 묻어주고 자살을 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실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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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생각에 라오자오는 친구를 묻어주기로 결심한다. 땅을 파고 길이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누워보는 순간 심신이 너무나 평안했다. '함께 가자 친구야' 라며 돌을 매달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끝나고 기절한다.

깨어보니 벌들이 날아다닌다. 양봉업자(养蜂人, 郭涛)가 구해준 것이다. 양봉업자는 사고로 얼굴에 화상을 입은 부인(妻子, 陈颖), 어린 아들과 살아가고 있었다. 양봉을 하며 부인을 위해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은둔하며 살아가지만 마음은 아주 행복하다고 한다. 양봉업자는 세상에 못 이겨낼 일은 없다고 말하며 죽지 말라고 한다. 라오자오는 양봉업자의 도움으로 다시 마을로 내려오게 된다.

밤이 늦어 도착한 어느 마을에서 고향의 친숙한 사투리 억양이 들린다. 미용사(发廊妹, 张笛)가 홀로 타지에 와서 살고 있었던 것. 신분증도 보여줘 안심시키고 사연도 얘기하면서 친구 얼굴에 화장을 해주길 부탁한다. 아가씨는 고향의 억양을 듣고는 흔쾌히 믿어 준다.

산사람처럼 친구 얼굴을 화장하고 나오자 미용사를 사랑하는 젊은경찰과 만난다. 경찰을 호의를 베풀어 그를 차에 태워준다.
 산사람처럼 친구 얼굴을 화장하고 나오자 미용사를 사랑하는 젊은경찰과 만난다. 경찰을 호의를 베풀어 그를 차에 태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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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녀를 좋아하는 젊은경찰(年轻警员, 廖凡)이 순찰을 핑계로 미용실을 찾아온다. 라오자오의 얼굴에 불안과 긴장이 역력하자 경찰은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이때 미용사가 고향 삼촌이라고 둘러대며 안심시킨다. 친구의 화장까지 해준 착한 미용사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정말 삼촌이 된 마음으로 걱정을 해준다. 다시 길을 가는데 순찰 도는 경찰을 다시 만난다.

경찰은 좋아하는 아가씨의 고향 친척이니 잘해주고 싶은 마음에 역까지 태워주겠다 한다. 친구를 술 취해 쓰러진 것으로 위장한 뒤 경찰차를 타고 가며 미용사에 대한 그의 진심을 확인한다. 미용사 아가씨에게 진심으로 고백하고 지켜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다시 배가 고픈 라오자오는 친구를 건설용 시멘트 안에 눕히고 헌혈을 시도하지만 B형 간염을 앓았던 병력 때문에 거부 당한다. 이때 매혈하면 500위엔을 주겠다는 유혹에 선뜻 따라 나선다. 비위생적이고 노숙자투성이인 공간에서 매혈을 위해 온 한 중년여인(中年妇女, 宋丹丹)을 만난다. 그녀는 3개월마다 매혈을 해 아들의 대학공부를 시키고 있다.

매혈을 시도하다가 구호센터에 잡혀와 우연히 만난 노숙자 중년여인과 솽황이라는 공연을 하고 있다. 이렇게 둘은 서로의 아픈 현실을 위로하게 된다.
 매혈을 시도하다가 구호센터에 잡혀와 우연히 만난 노숙자 중년여인과 솽황이라는 공연을 하고 있다. 이렇게 둘은 서로의 아픈 현실을 위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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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단속반의 급습으로 구호센터로 이송되고 식사와 샤워, 그리고 장기자랑도 한다. 고향에도 보내준다고 한다. 잠시나마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라오자오는 중년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둘은 장기자랑에서 중년여인이 책상에 앉고 그 뒤에서 라오자오가 연기에 맞춰 말을 하는 솽황(双簧) 연기를 한다. 솽황은 청나라 말기 서태후가 즐겼다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한 사람이 무대에서 립싱크를 하면 뒤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만담을 하는 곡예(曲艺)이다.

중국 최고의 코미디여배우이기도 한 쑹단단(宋丹丹)과 자오번산(赵本山)은 실제 최고의 단짝배우로 상황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중추절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심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서민들의 아픔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연기를 통해 둘은 서로에게 애잔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라오자오는 대학생 아들을 위해 노숙자 생활을 하며 오로지 아들의 졸업만을 위해 희생하는 이 여인에게 감동한다. 친구를 고향에 묻고 돌아오는 길에 만나러 올 테니 기다려 달라고 한다. 노숙자 여인 역시 라오자오의 착한 마음씨가 마음에 들었고 주머니에서 400위엔을 꺼내준다.

6세대 감독 장양의 2007년도 작품 <낙엽귀근>의 포스터!
 6세대 감독 장양의 2007년도 작품 <낙엽귀근>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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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건설 인부들의 트럭 등을 이리저리 옮겨 타며 멀고 먼 충칭에 도착한다. 죽은 친구의 고향 마을이 코 앞인데 낙석으로 도로가 막혀 있다. 무너져 있는 바위 사이로 친구를 업고 가다가 그만 쓰러지고 만다.

깨어보니 병원이고, 경찰은 이미 시체까지 부검한 상태였다. 사연을 들은 늙은경찰(老警员, 孙海英)은 마음은 알겠지만 시체를 옮기는 것은 위법이며 화장한 뒤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결국 친구를 화장해 유골 함에 담아 고향집으로 찾아가지만, 댐 건설로 고향마을이 수몰돼 주민들은 모두 이주한 상태다. 그러다 친구의 집 쓰러진 대문에 적혀있는 이사간 집 주소를 발견한다. 그후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며 이들의 길고 긴 여행이 끝이 난다.

라오자오는 길 위에서 수많은 서민들을 만난다. 그들과 함께 하며 때론 힘을 얻고, 때론 그들에게 용기를 주기도 한다. 이 영화는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 자체에 삶의 의미가 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서민들의 인간미와 회귀 본능에 관한 아름다운 장편

중국 최고의 코미디배우 자오번산(赵本山)은 순박하고 마음씨 좋은 라오자오를 통해, 서민적인 인간미를 온 몸으로 표현해 내는 데 성공했다. 6세대 젊은 감독 장양(张扬)은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모티브로 서민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회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코미디이지만 결코 우습거나 가볍지 않다. 오히려 씁쓸한 웃음 뒤에 숨어있는 따뜻한 인간미는 관객들에게 감동과 조용한 눈물을 전달한다. 그렇기에 중국 내에서 전국적으로 흥행하지 않았나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13억과의대화 www.youyue.co.kr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중국영화, #6세대, #자오번산, #장양, #낙엽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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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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