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입 수학능력 시험이 끝나고 이제 다음달에 수능 성적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가채점 후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넣을 것을 고민하면서 한창 정시 입시전략을 짤 때죠. 가군, 나군, 다군에 각각 한 군데씩 원서를 넣되, 한 곳은 소신지원, 나머지 두 곳은 보통 안정지원을 하죠. 그런데 매년 이맘때면 학부모를 긴장시키게 하는 것이 있어요. 바로 고등학교 교문앞에 대문짝만하게 붙여놓은 명문대 합격 현수막이에요. 수시에 붙은 합격자들을 써놓은 현수막인데, 학생들을 격려하기보다 사실 학교 자랑이죠.

수시에 합격하지 못한 고3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학교 정문앞에 붙여진 대학 합격 현수막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까요?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부럽다', '나도 열심히 했으니 정시에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 '저런걸 왜 붙여놓고 사람 샘나게 하나?' 등 여러가지죠. 요즘은 학교마다 수시합격자 경쟁이 붙은 건지 필자가 사는 곳의 모든 고등학교가 합격 현수막으로 교문 주변을 도배하고 있어요. 어디 학교 뿐인가요? 학교 주변 학원가는 학교보다 더 많은 합격 인원을 붙여놓고 최고 학원이라 선전하지요.

명문대 합격 현수막에 이름이 붙지 않은 학생들은 소외감, 더 나아가 열등감, 자괴감마저 느끼지 않을까?
▲ 분당 신도시 고등학교에 나붙은 현수막 명문대 합격 현수막에 이름이 붙지 않은 학생들은 소외감, 더 나아가 열등감, 자괴감마저 느끼지 않을까?
ⓒ 한현자

관련사진보기


서울대 ○○명, 연세대 ○○명, 고려대 ○○ 명 등 스카이(SKY) 대학은 물론 명문대학이 차례대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딸을 학교에 태워다주기 때문에 매일 보게되는데, 정시지원을 하는 고3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이 현수막이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닙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이런 생각도 드네요. '누구집 자식들은 어찌 저렇게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턱 하니 붙나? 부럽다 부러워' 물론 딸에게 이런 내색을 하지는 않습니다. 남들보다 내신성적이 좋지 않아 수시보다 정시지원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눈길을 두지 않으려 해도 자꾸 눈이 가네요. 학부모인지라 부러움 반, 시샘 반이죠.

명문대 합격 현수막을 보고 씁쓸한 것은 수시 1차 합격생들이 마치 최종 합격된 것처럼 버젓이 현수막에 이름이 걸린다는 것이죠. 물론 재수생들까지 모두 조사해서 이름이 걸리는데, 재수생이라는 표시는 하지 않아요. 그런데 합격자 현수막 때문에 본의 아니게 피해자도 생기고 있어요.

딸의 친구도 명문대 수시 1차에 합격해서 현수막에 이름이 걸렸습니다. 최종 합격은 오는 12월 9일 수능 발표 후 수능 1등급이 2개인 조건부 합격인데요, 수능을 평소보다 잘 보지 못해 불합격할 것 같은데 이름이 걸려 부담스럽다네요. 친구들은 평소 실력으로 봐서 당연히 합격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떨어지면 본의 아니게 현수막에 이름이 걸려 정신적으로 피해를 보는 거지요. 이런 거 학교에서는 전혀 감안하지 않나봐요.

그러면 고등학교 정문에 매년 명문대 합격 현수막이 붙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학교로서는 자랑거리가 될 수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대다수 학생들에게는 명문대 지상주의를 심어주게 되어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인생이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성교육, 전인교육 등 공교육이 표방하는 교육목표를 깡그리 부정하는 것으로 '성적 지상주의'를 불러오게 되죠. 좋은 대학에 갔다고 해서 모두 다 성공하는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단 명문대 합격을 축하해주는 현수막은 '명문대가 곧 성공이다'는 잘못된 생각을 학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심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서울권 대학의 중상위권 대학부터 합격자 이름을 붙여놓기 때문에 대학을 서열화시킨다는 겁니다. 어느 대학이 명문대고, 그 다음 상위권, 중상위권까지 알아서 정해버리죠. 공부를 잘해서 서울에 있는 명문대를 갈 실력이지만 등록금 문제, 장래 직업성을 고려해 지방대를 간 학생들의 이름은 붙지 않아요. 심지어 서울에 중상위권 대학을 갈 실력인데, 지방대 간다고 하면 말리는 학교도 있지 않나요?

명문대 현수막에 자기 자녀 이름이 걸리지 않은 것에 대한 열등감의 시선, 혹은 시샘인가?
▲ 고등학교 정문에 나붙은 명문대 합격 현수막 명문대 현수막에 자기 자녀 이름이 걸리지 않은 것에 대한 열등감의 시선, 혹은 시샘인가?
ⓒ 한현자

관련사진보기


물론 친구가 좋은 대학에 합격한 것을 축하해줘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학교로서도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고 백번 양보해도 축하를 받는 학생은 극소수라는 것입니다. 그 학생들은 본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결과죠. 혹자들이 얘기하듯 명문대 합격 현수막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열등감에서 오는 시선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다수 학생들이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명문대에 합격한 0.1 소수를 위해 대다수 학생들이 명문대에 대한 소외감, 더 나아가 열등감, 자괴감마저 느낄 수 있는 명문대 합격 현수막은 득보다 실(失)이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데, 딸을 비롯해 요즘의 학생들은 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아요. 오직 대학을 가야만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고 대학에 실패하면 인생의 낙오자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수능 가채점 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없게된 딸의 친구들은 벌써부터 재수를 생각하고 있다네요. 우스갯소리로 서울약대(서울에서 약간 떨어진 대학)를 가지 못하고 서울상대(서울에서 상당히 떨어진 대학)를 갈 바에야 차라리 재수하겠다는 거예요. 미래에 내가 하고 싶은 일, 직업을 고려하지 않고 대학 간판만 보고 학교를 선택하는 건데요, 이렇다보니 점점 더 대학 실업자만 양산하는게 아닌가요?

명문대 합격자 현수막을 교문에 붙이는 것은 매년 입시철의 풍속도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공교육 현장에서 치열한 입시경쟁에서 승리한 학생들의 이름을 마치 개선장군처럼 이름을 내걸게 되면 그 현수막에 이름이 걸리지 않은 대다수 학생들은 루저(패배자)로 몰고 가는 건 아닌지요?  아니면 명문대 현수막에 자기 자녀 이름이 걸리지 않은 것에 대한 열등감의 시선, 혹은 시샘인가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에도 송고되었습니다.



태그:#명문대학, #서울대, #수학능력시험, #고등학교, #루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