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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쓰기에 맛들인(?) 때는 시골 삶과 함께였다. 누구는 신춘문예 당선이나 소설 집필 등을 이유로 한적하고 외딴 시골에 집을 얻어서 산다고들 했다. 나는 시골의 삶이 영감을 주어서 글을 쓰게 하였다는 것이 달랐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 그것은 '오마이뉴스'와 함께였다. 내가 쓴 글이 청탁이나 당선을 통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에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이, 일기 형식으로 글을 '보존'해오던 나로서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물론 지금도 허점투성이지만 그때의 글들을 읽어보면 다시 쓰고 싶어진다. 많지도 않았지만 기사로 채택된 적도 드물었던 시기였다. 편집국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곧 기회가 왔다. 다음해 마을 간사로 취업하면서 스스로 편집까지 하게 되었다. 마을 간사가 할 일중 중요한 하나가 '마을신문' 제작이었다. 기사를 쓰고 손보고 배치하고 프린트하는 일인 신문사의 '사주'가 된 것이었다. 물론 명목상 이장을 포함한 마을 간부들이 발행인이었지만 단 한 줄의 기사제보나 편집의 간섭이 없었으니 신문 제작의 모든 것은 내 맘이었다.

 

60여 세대가 읽거나 보는(글을 읽지 못하는 분들이 꽤 있어서 사진의 비율이 현저하게 높았다) 마을신문은 격월 또는 4개월만에 나올 때도 있었다. 내용도 단 4페이지에 불과했다. 신문이 나왔을때 A3를 반으로 접은 한 장짜리(?) 신문을 들고 동네를 도는 날이면 그렇게 긴장이 되었다. 비판적인 기사는 없이 마을 동정과 행정사업에 관한 정보가 전부였다.

집집마다 돌리는 신문을 받아들이는 주민들의 '표정'이 나에겐 '숙제'로 남았다. 그냥 한쪽에 치워놓고는 잘 가라는 분, 신문은 보지도 않고 들어와 커피나 한잔 하라는 분들이 많았다. 비오는 날이 제일 좋았는데 거의 모든 마을 분들을 직접 만나서 신문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밥때에는 밥을 얻어먹고 술 마실 땐 술을 얻어먹었다.


자신의 사진이라도 실리면 주변 분들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사고 겸연쩍어 하는 모습이 그렇게 순박할 수 없었다. 그런 모습들도 사진기로 찍지만 그때 감정과 느낌이 살지 않아 스스로 사진 기술을 한탄하기도 했다. 1년 동안 6호의 신문을 내면서 마을에 들어와 10년 넘게 사신 분보다 더 많은 인맥을 쌓았다. 지속적이지 못해 인맥이라기보다 안면이라는 것이 낫겠다.


작년 집짓기동안 손을 놓았다가 올해 수목원 다니면서 공부할 시간이 늘고 자연스레 글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진안신문>에 주기적으로 기고를 하고 '오마이뉴스'엔 서평을 올리기 시작했다. 서평을 쓰면 책이 많이 들어올 것이라는 개인적 욕심을 가지고 쓰기 시작했는데 읽지 못하는 책에 요즘은 욕심을 줄여서 받는 책의 양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 익히기 시작했다. 매주 마감을 끝내고 여유 시간이 생기는 날이면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국립중앙도서관으로 향했다. 회사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였다. 정기간행물실에 비치된 각종 신문들을 뒤지며 종일 '공부'했다. 모범이 될 만한 신문 편집의 다양한 실물을 가급적 많이 보려고 노력했다. 6개월여간 매주 1회씩 국립중앙도서관을 드나들었다. 일간지든 주간지든 그럴싸해 보이는 지면 편집이라면 모방하거나 응용해 써먹었다. 그렇게 흉내내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이를 조금씩 극복하면서 지면을 꾸미는 노하우를 심화시켜 나갔다. 소설 지망생이 훌륭한 소설가의 문장을 수백 번 베껴 써가며 연습하듯 말이다.'-고경태, <유혹하는 에디터> 본문 중


매번 기사가 되지는 못했다. 초기엔 기사로서의 기본도 갖추지 못해서 수거된 적이 많았고 근래에 책을 많이 읽으면서 글쓰기 실력도 조금씩 늘어서 기사가 되는 비율이 높아진 것뿐이다. 초창기엔 설령 기사가 되더라도 엄청나게 수정되어 오른 기사를 보고, 이건 내 글이 아니라 편집기자의 기사구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제목은 물론이고 부제와 기사의 머리말과 마무리까지 바뀌어 나오는 것을 보고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내 글과 그 분야 기사로 올라온 글들을 비교해보고 매일 읽는 신문의 기사들을 꼼꼼히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글과 사진의 배치, 제목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제일 고민되는 일이 되었다.


제목이 잘 뽑힌 날은 기사채택률이 높았다. 물론 제목보다는 기사 내용이 독창적이고 읽을 만한 이슈가 담겨야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기사가 될 만한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판단이 적중하기라도 하면 다음 기사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기자 또는 기고가로서 읽는 <유혹하는 에디터-고경태 기자의 색깔있는 편집노하우>는 글쓰기에 대한 성의와 열의를 부추긴다. 편집에 대한 이해가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그리고 제목은 어떻게 붙여줘야 편집이 쉬워질지를 가늠하게 하기 때문이다.


'글을 줄이기 위해선 중심부를 살리고 주변부를 죽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장들 속에서 중요한 내용과 사소한 내용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중요한 것을 남기고, 사소한 것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게 옥석을 가리며 핵심을 정제하는 작업은 결국 헤드라인을 뽑는 과정과 비슷하다.'-같은 책, 본문 중

 

저자 고경태는 '한겨레'에서 13년간 편집을 한 경험을 사례와 함께 자신의 카피와 제목을 자가 분석하고 편집을 꿈꾸는 이들에게 친절한 조언을 가득 담았다. 쉽고 재미있게 쓰여서 누구나 읽을 만하며 나 같은 '편집' 초짜에게도 '아하, 그래'하고 쉴 새 없이 맞장구 칠 내용들이 가득했다.


'재미'를 편집인의 사명이라 생각하는 저자의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포털메인에서 제공하는 뉴스의 헤드라인들은 온통 '낚시질'이다. 지나치게 유혹하는 제목에 낚여서 기사를 읽고 나면 허탈하고 짜증이 밀려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요즘은 선정적이며 자극적인 카피보다는 '진중하고 우직한 단어의 조합'을 클릭하게 된다. 물론, 재미있고 참신한 제목에 손이 가는 것은 당연하고 기사에 대한 궁금증도 극대화된다.

 

편집자의 역할은 읽게 만드는 것이다. 때로는 좋은 기사를 가려내고 이 내용을 압축해서 짧고 굵게 표현하는 일.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읽게 되고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만한 '특종'을 만드는 것이 사명임은 부인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유혹하는 에디터/ 고경태/ 한겨레출판/ 15,000원


유혹하는 에디터 - 고경태 기자의 색깔 있는 편집 노하우

고경태 지음, 한겨레출판(2009)


태그:#편집국, #데스크, #기사편집, #기사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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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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