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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6월 26일 경교장(京橋莊)에 울린 '총성'은 정확히 1년 후 "38선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과 독립이 없고 자주와 민주도 없다. 어찌 그뿐이랴. 대중의 기아가 있고, 가정의 이산이 있고, 동족의 상잔까지 있게 되는 것이"라고 했던 백범 선생 말처럼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드는 서막 중 하나였다.

 

'만약'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총성이 울리지 않았다면 1950년 6월 25일은 역사 속에서 민족상잔으로 '기억'되지 않고, 그저 역사 속에 흘러갔던 어느 한 날이었을지 모른다.

 

백범이 간지 오늘(26일)로 60년이 되었다. 그 때 그 현장에 있었고, 1948년 4월 백범 선생과 함께 38선을 넘었던 선우진 선생은 생전에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라고 했었다. 

 

어디 선우진 선생 한 명 뿐이겠는가. 그를 아직도 못 잡아 먹어 안달인 사람들이 많고, 좌파로 매도하며, 5만원권과 함께 발행되어야 했던 10만원권 발행이 무기한 연기된 2009년 6월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 부끄러움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오늘 1992년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 선생이 엮은 <패배한 암살>은 백범을 죽음으로 이끈 세력이 누구인지 밝히고자 하는 산물이었다.

 

<패배한 암살>은 백범 선생 암살 관계를 다룬 글 가운데 비교적 충실한 내용과 각종 자료와 증언을 중심으로 김삼웅 선생 외 14명이 쓴 글을 제1부 해방정국과 민족노선의 좌절, 제2부 백범 암살의 전개과정, 제3부 백범 암살의 배후, 제4부 누구를 위한 반역인가로 엮었다.

 

그들은 백범 암살을 한 개인의 죽음으로 보지 않는다. 해방정국의 치열한 노선 싸움과 거대한 정치적 음모는 결국 백범을 암살로 몰아갔고, 백범을 암살한 자들은 한 사람을 살해한 '살해범'이 아니라 민족 반역자로 단죄하고 있다.

 

김구와 이승만에 대해 수많은 평가가 있겠지만 '백범 선생과 우남 노선의 갈등'을 쓴 이원모(미주 백범기념사업회장)-1992년 나온 책이라 당시 직책을 그대로 씀-는 백범 선생과 이승만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자칭 '대통령' 이승만과 임시정부 수위를 자청한 사람 김구"라 평하면서 이렇게 썼다.

 

이승만 대통령 집권 때 남산에 높여 세웠던 그의 동상이 4.19 혁명 때 학생들에 의해 넘어뜨려졌는데, 남산 그 지역에 국민의 이름으로 동양 최대의 백범 김구 선생 동상이 세워진 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28쪽)

 

이토록 다른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그를 암살한 마지막 배후로 지목되었지만 그 잘난 '물증'이 없어 아직도 역사는 그를 단죄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서거하자 온 나라는 통곡했다. 많은 통곡이 있지만 <패배한 암살>에 실린 독립투사 박동엽 선생( 전 대광고 교감)은 '백범 김구 선생 참변 목격기'에서 이렇게 썼다.

 

"선생님! 정몽주 쓰러질 때 누가 보았는지, 사육신 넘어질 때 누가 울었는지 저는 모르옵니다. 그러나 님이 쓰러질 때 이 못난 동수(冬秀)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하늘도 몸부림치고 땅도 눈물 피눈물 뿌리던 그 날! 겨레의 장자를 끊는 비통한 통곡소리 산을 뒤덮던 그 날 !독재자의 앞잡이들은 '좌익계열에서 통곡대를 조작하였다'고 조작하여 전주와 담벼락마다 위협과 공갈로 무시무시한 포고물을 붙여서 참지 못하여 터지는 울음소리마저 붕해 놓았다는 것입니다"(155쪽)

 

백범 때도 통곡을 조작했다고 한다. 민족을 반역한 그들과 민주주의를 훼손한 이가 60년을 사이에 두고 어찌 이리 닮았는가. 백범을 지우기 바빴던 이들이 다시 부활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늘이 울었고, 땅도 피눈물을 쏟았다. 백범 암살은 숱한 이들 마음 속에 비통함으로 자리잡았고, 백범을 보낼 수 없었다. 이승만 정권은 이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오늘 누구처럼.

 

백범 암살자는 안두희이다. 하지만 그는 총만 쐈을 뿐 그는 진짜 암살자가 아니다. 백범을 죽이라고 명한 마지막 결정권자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가 누구일까? 김삼웅 전 관장은 '백범 암살과 이승만' 글에서 이승만에게 많은 혐의점이 있다고 밝히지만 '혐의점'일 뿐이다. 그는 17년 전에 이렇게 바랐다.

 

국회가 국정조사권 발동이나 청문회를 열어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 이 땅의 건국사를 바로잡아야 국가의 기틀이 바로 서게 된다.(259쪽)

 

그 바람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회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밝힌 것 하나 없다. 60년이 되었는데, 김구 선생을 다들 존경한다면서, 민족 지도자라 추앙하면서 그를 죽음으로 이끈 진범을 찾는 일을 하지 않는다. 17년 전에는 안두희가 살아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김구 선생 추모와 함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백범 암살자 마지막 진범을 찾아 단죄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패배하지 않았다. 1949년 6월 26일 총성은 백범을 패배로 이끈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에게 우뚝한 바위와 모진 비바람을 막아주는 민족 지도자로 마음에 새겼다.<패배한 암살>이 던지는 의미이다.

덧붙이는 글 | <패배한 암살> 김삼웅 엮음 ㅣ 학민사 펴냄 ㅣ 7,000원


패배한 암살 - 학민글밭 55

김삼웅, 학민사(1992)


태그:#백범, #암살,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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