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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 워킹>은 영화 제목이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반골 톰 로빈스가 감독하고 그의 아내 수잔 세런든과 연기파 배우 숀펜이 열연했다. 영화 제목 <데드맨 워킹>은 사형수가 형장으로 가는 걸음을 뜻하는 말인 것 같다.

이 영화는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보다 미묘하고 깊이 있는 어떤 모순 현실을 보이려 한 듯하다. 이 영화는  죽음을 담보로 사람을 실컷 후회하고 회개하게 만들어 놓은 연후에 결국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죽이는 일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를 질의한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이 <데드맨 워킹>을 연상케 한다. 공화당의 부시나 민주당의 오바마나 대북정책에 관한 한 별반 다를 바가 없음이 확인되고 있다. 미국인들은 시종일관 김정일과 북한정권을 '악의 축'으로 몰며 일종의 '사형수'로 만들려 했다. 그래서 그들이 사형수가 되어 죽음의 공포 앞에서 후회와 회개의 모습을 보이게 만든 연후에 형을 집행하든지 말든지 하겠다는 시나리오를 대북정책으로 견지해 온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자기들이 형을 집행하는 '인류의 공권력'인양 행세해 왔다. 그렇다면 미국에게 북한은 체포해야 할 범죄자에 불과하다. 미국의 대북회담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에게 핵 포기와 동시에 종전협상에 서명하고 북미수교를 해 주겠다고 분명히 말했었다.

하지만 부시에 이어 등장한 오바마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실천하려는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는 번번이 국무장관 힐러리의 대북 강경 발언을 방치했다. 이는 미국이란 나라의 대외정책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서 별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역사적으로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덜 호전적이었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

북한 핵실험 이유,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2차 핵실험을 실시한 지난 5월 25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열리고 있다.
 북한이 2차 핵실험을 실시한 지난 5월 25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열리고 있다.
ⓒ 사진제공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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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남북관계는 암울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10년 동안이나 공들여 쌓아온 '남북'화해 금자탑'을 이명박 정부가 불과 1년 반 만에 거의 부숴버리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은 2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남측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선언했으며 유엔 안보리의 초강경 대북제제 결의안이 타결되었다.

이 결의안은 1차 핵실험 때보다 한층 강화된 제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결의안에는 공해상에서의 북한 선박 검색 및 대북 금융 제제 등이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그 정당성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가뜩이나 경제적, 심리적으로 내몰리고 있는 북한을 더욱 호전적으로 만들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북한이 왜 핵 개발을 했는지 차분히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1차 핵실험은 부시의 대북 적대정책과 금융제재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당시 부시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북한에 대한 금융제제를 강화하면서 북한을 위조화폐범으로 몰아붙이는 등 대북 강경 일변도로 치달았다. 언어학자 촘스키는 미국이 한국전쟁 때 북한에 저지른 악행 때문에 북한을 바로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를 비롯한 6개 지역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부시의 대외정책에 대한 내외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었고 공화당은 중간선거에서 참패했다. 부시는 북한에 금융제재를 풀 테니 6자회담에 나오라고 유인했다. 북한은 6자회담에 나갔다. 하지만 부시는 금융제제 문제를 기습적으로 6자회담의 안건에서 제외해 버렸다.

이어서 부시는 2006년 9월 노무현과 한미정상회담을 열었다. 회담의 핵심의제는 북한에 대한 공동입장을 합의하는 것이었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일관된 요구는 자신들을 '정상국가'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개인으로 치면 사람으로 대접해 달라는 것이었다. 북한은 미국에 경제제재를 풀어줄 것과 북미수교를 원한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던 차였다.

노무현은 부시에게 대북제제 자제를 요청했지만 부시는 이를 무시했다. 그런데 9월 14일 한미 정상간 비공개로 합의되었던 사항이 10월 들어서야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 내용은 북한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북한이 달러 위조범을 처벌하고 범행 장비를 인도하면 마카오 BDA은행 계좌 중에서 미국이 판단하여 합법적인 것만 풀어주겠다. 그리고 원자로 가동을 중단한다면 힐 차관보를 북한에 보내주겠다.(한미 정상회담 합의사항 중 핵심 발췌)

이것이 이른바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당시 북한은 달러 위조 사실을 부인하고 있었다. 부인하고 있는 일에 증거도 대지 않으며 범인을 잡아 처벌하고 범행 장비를 인도하라는 요구는 북한으로서는 애초부터 수용 불가한 일이었다.

북의 핵실험 예고 발표가 난 것은 이 합의문이 세상에 알려진 직후였다. 그렇기에 북 핵실험은 미국만이 막을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미국은 북한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이나 남아공보다 명분상 떳떳하게 핵실험을 하게 만든 셈이다. 북한은 핵실험일을 국경일로 선포해 호들갑을 떨었던 파키스탄보다 단연 의연하게 일을 치렀다. 당시 평양거리는 차분하고 평화로웠다고 전해졌다.

통역 다그치면서까지 얻어낸 북미평화협정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호주를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7일 오후 시드니 시내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만나 남북정상회담과 북핵, 6자회담 문제등을 논의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호주를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7일 오후 시드니 시내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만나 남북정상회담과 북핵, 6자회담 문제등을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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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힘이 작용하는 국제정세라 해도 그것 역시 인간이 해 나가는 일이다. 원폭은 물론 수폭시험까지 다 한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은 이성과 논리의 빈곤을 은밀히 스스로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1030번이나 핵실험을 한 미국은 더할 것이다. 미국이 대통령의 최종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시점에 전쟁을 선택한 예는 없었다.

2006년 말 미국은 북한에 아주 획기적인 제안을 했다. 부시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 '한국전쟁 종료'를 선언하고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방안은 한국과 북한과 미국 3자가 함께 종전 문서에 서명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이것은 2007년 9월에 열린 부시-노무현 회담에서 또 한 차례 확인되었다. 당시 노무현이 통역을 다그치면서까지 부시로부터 평화협정이라는 말을 얻어낸 일화는 유명하다. 그때로 돌아가 본다.

부시= 북한이 핵을 불능화한다면 한국전을 종결하고 북미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습니다.
노무현= 각하께서 조금 전에 말씀하실 때에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말씀을 빠뜨리신 것 같습니다.
부시= 북한 지도자 김정일한테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일이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핵무기와 핵개발 계획들을 포기해야만 미국은 평화조약에 서명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이나 한국 국민들은 그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부시= (약간 답답하다는 듯이) 더 이상 분명하게 이야기할 게 없습니다. 대통령 각하(Mr. President). 우리는 한국전쟁을 끝낼 날만을 몹시 기대(look forward to)하고 있습니다. 땡큐, 써."
[관련기사] 노무현-부시 대화가 어색했던 까닭은...

부시보다 낫다는 오바마, 발상 전환하라

지난 4월 2일 오후 'G20 정상회의'에 참석차 런던을 방문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 대통령이 '런던 엑셀 센터'에서 만나 30분간 '미니 정상회담'을 했다.
 지난 4월 2일 오후 'G20 정상회의'에 참석차 런던을 방문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 대통령이 '런던 엑셀 센터'에서 만나 30분간 '미니 정상회담'을 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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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취임 이후 직전 대통령인 부시가 해 놓은 대북 공약을 철저히 무시하는 쪽으로 일관했다. 이것은 마치 이명박 대통령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해 놓았던 6·15와 10·4선언을 무시한 처사나 비슷한 일이었다. 그 결과 북한으로서는 미국과 남한 양자 모두에게 약속을 파기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다음 일은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북한은 로켓발사를 단행했고 이를 유엔이 비합법적인 처사로 규정하자 2차 핵실험을 예고했고, 예고대로 최근에 핵실험을 단행했던 것이다. 

먼저 오바마는 부시가 해 놓은 대북 공약을 지켜야 한다. 또한 한국 정부는 대북관계에 일관된 지침을 세우고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베트남 지도자 호치민은 '변화하되 일관한다'는 기조를 평생 유지했다고 한다. 사람이건 나라건 일관성을 유지할 때만이 타인의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세에 편승하여 기회주의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영원히 미국의 진정한 동의를 얻기 힘들 것이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미국을 혐오하면서도 또한 가장 절실히 미국을 원하는 나라기도 하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소망하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대북제재를 취소하고 북미불가침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이런 난제들이 풀린 연후에라야 북미수교가 이루어질 수 있을 터이다. 물론 북한은 이 과정의 어느 시점에서 핵을 완전 동결 내지는 폐기해야 할 것이다.

미국 국민들은 미국이 한국에서 한 일을 잘 모르고 있다. 그들이 아는 것은 고작해야 한국전쟁 때 유엔군을 파견해 준 일이다. 한국과 미국이 첫 번째 맺은 조약은 1882년의 조미통상조약이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국은 조선에서의 이권을 일본 수준으로 취하다가 데프트·카스라 밀약으로 한미 간 조약마저 파기했다. 또한 미국은 운산금광을 비롯하여 식민지 조선에서 엄청난 이권을 챙겼다. 주지하듯이 한민족 분단의 책임은 최소 50% 이상이 미국에 있다. 또한 미국은 한반도를 냉전의 무대로 삼아 이용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속성으로 보아 이번 미국이 주도한 유엔 안보리 제재의 성공 가능성은 아주 희박해 보인다. 기실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는 미국이 '데드맨 워킹'의 행보를 멈추어야 이룰 수가 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데드맨워킹'을 중단해야 한다. 북한 정권을 더 이상 '사형수'로 묶어 두어서는 안 된다. 오바마는 북한에 대한 '데드 맨 워킹'을 '세이브 맨 워킹'으로 바꾸어 부시보다 평화주의자임을 보여주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전쟁과 사람>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북미평화협정, #6`15선언, #핵실험,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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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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