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연민이 아니다. 분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분향소로 달려간 국민들의 감정이다. 국민들은 알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집착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를. 왜 그토록 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자산이라 치부되었던 도덕성에 흠집 내고자 했던가를.

지금 이 순간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측근들에게 적용되었던 비리혐의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동기의 불순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단지 노무현 지지자들만의 비통함이 아니라, 이 정부에 저항했던 모든 이들의 분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반노무현' 프레임... 그들이 만든 '수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 앞에서 농업인들이 보낸 화환 속 '문조' 뒤로 노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이 보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 앞에서 농업인들이 보낸 화환 속 '문조' 뒤로 노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왜 임기가 끝난 전직 대통령을 정부와 여당은 그토록 괴롭혔을까? 단지 비리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도덕성에 비춰본다면 이런 주장이 크게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집권 후에도 이 나라 극우세력들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노무현의 이미지를 부여잡고 여전히 싸움박질 해왔다.

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친북 좌파'로 의도적인 낙인찍기를 끊임없이 시도했다. 친북이라는 것이 '용인할 수 없는 절대악'의 동의어처럼 사용되는 이 나라에서 노무현 전 정부가 친북좌파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은 상식으로도 알 수 있다. 더구나 그는 우파의 정치적 신념인 신자유주의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한미 FTA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극우세력이 그를 친북좌파로 규정한 것은 멍청해서도, 적대적 감정에 휩싸여서도 아니다. 치밀하게 계산된 정치 전략이었다. 노무현 정부를 친북좌파로 규정함으로써 아직도 건재한 반북이데올로기를 동원해 노무현 정부를 견제하는 동시에, 극우로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중도, 혹은 중도보수 정도로 위치 이동하려 했다. 

반면, 노무현 정부에 대한 전통적 민중운동진영, 즉 진짜 좌파의 비판은 '좌파, 혹은 진보 내부의 논쟁' 정도로 치부되었다. 민중운동진영의 문제제기가 국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서가 아니라 진보 내부의 분란으로 비치면서 그들의 호소는 영향력을 잃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즉 진보적 시각과 보수적 시각에서 모두 진행되었지만 결론은 하나로 귀결됐다. '반노무현'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친북좌파 낙인찍기라는 단순한 프레임 전략을 통해 노무현 정부에 대한 모든 비판을 대변하는 양 자임했던 극우세력들은 '반노무현' 프레임을 등에 업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노무현 프레임'에 갇힌 정부여당

집권하자마자 거대한 촛불저항에 마주한 정부와 집권여당은, 새로운 배후를 찾지 못하는 답답함 속에서 과거 자신들이 만든 '수괴'를 다시 불러들였다. 자신의 인기가 추락함과 동시에 오히려 퇴임 이후 인기가 치솟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며 자신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따라 세상을 해석했다.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이 10일 저녁 서울 세종로네거리, 태평로, 청계광장을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가득 채운 가운데 열린 뒤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이 10일 저녁 서울 세종로네거리, 태평로, 청계광장을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가득 채운 가운데 열린 뒤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공안정국이 되살아났고, 친북좌파가 아닌 착한 국민들은 결코 이런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를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떠벌렸다. 가스통과 라이터는 괜찮지만 촛불은 흉기라는 이상한 판단의 종착점은 친북좌파의 수괴, 노무현의 정치적 생명을 단절시키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촛불시위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거나, 촛불시위 이후 여전히 반MB 투쟁을 일구어가고 있는 이들이 노사모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우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는가 반대했는가 역시 중요하지 않았다. 정권은 촛불을 위시한 저항세력을 겨냥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택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 나라 극우들에 의해 '만들어진 수괴'로 여전히 존재했다.

만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과 소통을 단절하고 해외로 골프나 치러 다녔다면, 이런 '노무현 죽이기'가 진행되었을까? 어느 소설가처럼 '이명박은 중도'라고 떠벌리며 해외순방에 사이좋게 동행했다면, 그가 검찰에 갈 일이 있었을까?

난데없는 화해론, 내용이 없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그려왔던 최상의 시나리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중 앞에서 철저히 무너지는 것이었다. 그에게 굴욕을 줌으로써 그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굴욕과 좌절감을 안기고, 그놈이 그놈이라는 냉소를 확산시켜 저항의 잠재력을 뿌리뽑고자 했을 것이다. 한국 정치가 이명박과 노무현의 대결구도로만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 아래에서, 퇴임 후 오히려 인기가 치솟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해 '이명박 이외의 대안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기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그런 시나리오를 거부했다. 평생을 승부사로 살아온 정치인 노무현은 스스로 죽음으로써,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 정부여당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모든 이가 충격과 비통함에 휩싸여 추모행렬에 동참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벌써부터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설레발이 나온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2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1976년에 노 전 대통령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 보여주면서 "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깊은 감회에 젖었고 정치가 팍팍하지 않고 화해, 평화의 길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2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1976년에 노 전 대통령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 보여주면서 "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깊은 감회에 젖었고 정치가 팍팍하지 않고 화해, 평화의 길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전여옥 의원은 24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인터넷 위에서 왜곡적인 선동을 한다면 대한민국 정치 문화의 불행은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우리 모두는 '화해'와 화합, '하나 됨'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강성이라는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도 "이제 한국의 정치가 투쟁이 아니라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언급했고, 정몽준 최고위원 역시 "이 비극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이 추구한 국민화합과도 배치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27일 안상수 원내대표는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이것을 정치적으로 잘못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어서 이를 변질시키고 소요사태가 일어나게 될까 봐 정말 걱정"이고 본심을 드러냈다.

이런 반응은 그들의 심리상태와 사고방식을 드러내 준다. 그들은 알고 있다. 이 문제가 단순 비리사건이 아니라 원래부터 정치적인 문제였으며, 그의 서거 또한 정치 의제화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악선전이 서서히 퍼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말하는 화해와 국민화합은 곧 나타날 대중저항에 대한 두려움의 반영일 뿐, 아무런 내용도 담고 있지 않다.

벌써부터 정부여당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주간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겉으로는 국민화합을 이야기하면서도 북핵실험을 빌미로 PSI 전면참여를 선언하고 강경한 대북정책을 밀어 붙이고 있다는 것은, 향후 나타날 대중저항을 국가적 위기상황을 가공해 대응하겠다는 것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물론 PSI 참여 여부는 북한의 지난 인공위성 발사 직후에서도 나타난 대응방안이지만, 지금의 PSI 전면참여엔 정국 돌파 성격이 가미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것은 향후 북을 둘러싼 국제환경의 변화와 상관없이, 지금의 국면이 안정될 때까지 대북강경정책을 시도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

이제는 은밀하지도 않은 극우세력 간 카르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언론도 나섰다. 특정 정치인의 조문반대 시도에 대한 악의적인 사설들을 쏟아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이들이 벌이는 온갖 돌발상황을 이슈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무현의 서거 이후 눈에 띄는 정치행동이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정치적 이용'에 대한 거부감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저항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이 담겨 있다.

국민통합? 그럼 미디어법과 마스크착용금지법 철회되나

이런 상황에서 시민단체들은 25일 시국모임을 열고 향후 대책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분향소로 시청광장을 개방할 것과 국민통합을 방향으로 한 국정쇄신을 정부에 요구했다. 또한 6월 2일에는 "정치보복과 갈등, 분열이 양산되고 있는 작금의 정치 상황에 대해 진단하고,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의 쇄신과 국민통합 방안"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묻는다. 지금의 정부여당에 국민통합을 요구하는 것이 어떤 현실성이 있는가? 과연 국민통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만일 그것이, 지금 정부와 여당의 행태를 그대로 인정하고 적대적인 감정을 거두라는 것이라면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말하는 화해나 화합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25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분향소 주변과 서울광장을 여전히 차벽으로 에워싼 경찰의 '조문 방해'가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25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분향소 주변과 서울광장을 여전히 차벽으로 에워싼 경찰의 '조문 방해'가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만일 정부가 일방적 독주를 멈추고, 수많은 정부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라면 과연 그것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없는 국민통합은 아무런 메시지도, 아무런 실천적 의미도 없다.

국민들의 심정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지난 1년 동안 똑똑히 확인한 바다. 우리가 아무리 국민통합을 내세워도 다음달 임시국회에 상정 예정인 미디어법과 마스크착용금지법 등이 철회될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용산 철거민 살인문제와 화물연대 투쟁이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전국적 추모열기에도 불법시위 가능성을 운운하며 서울광장을 끝까지 봉쇄하는 태도 앞에서 기본적인 '의사표출'이나마 제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가?

1987년 6.29 선언이 정부의 타협책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강제한 것은 국민의 통합요구가 아니었다. 6월항쟁이라는 전국민적 저항만이 부족하나마 정부의 양보를 강제할 수 있었다. 설령 국민통합이라는 것이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현실화할 방법은 범국민적 저항 외에는 없다.

실현 가능성도 없고 실체도 없는 국민통합을 제안하는 순간, 정당한 저항마저 '국민통합을 가로막는다'는 저들의 공세에 집중포화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촛불을 비롯한 용산철거민 살인 문제, 화물연대 문제 등은 '정당한 주장'이 아니라 국민화해를 위해 양보해야 할 어떤 것으로 치부될 것이며, 이것을 거부하는 자는 또 다른 '수괴'로 만들어질 것이다. 결국 그들이 말하는 화해와 통합은 일방적 지배에 대한 무저항적 수용일 뿐이다. 

진정한 화합을 원한다면

확실히 하자. 지금 필요한 건 국민통합에 대한 요구가 아니다. 국민통합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어떨지는 몰라도, 그 비슷한 것이라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저항이다. 언론의 독립과 생존권 보장, 주권자로서 지위 보장 등 우리가 외쳤던 것들은 허구적 통합을 위한 타협거리가 아니다.

모호한 통합요구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실질적인 반MB전선을 확대, 강화,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제까지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규탄과 이에 대한 정당, 시민사회의 연대를 이야기해왔지만 기껏해야 부분적인 후보단일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87년 6월항쟁을 이끌었던 국민운동본부의 뒤를 잇겠다던 민생민주국민회의가 만들어졌지만 정책담론 생산과 캠페인 수준의 활동에만 머물렀을 뿐이다.

24일 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덕수궁앞에서 촛불을 든 한 추모객이 서울광장을 원천봉쇄한 경찰들앞에 서 있다.
 24일 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덕수궁앞에서 촛불을 든 한 추모객이 서울광장을 원천봉쇄한 경찰들앞에 서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실질적인 저항을 보장할 수 있는 반MB전선이 구축되어야 한다. 주권자로서 국민이 광장에서 밀려나 아무런 주장도 외칠 수 없는 현실에서는 집단지성이든, 리더십 없는 운동이든 존재할 공간은 없다. 반MB의 틀 속에 동의하는 모든 이의 힘을 결집시키고, 저항을 위한 전략적, 전술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저항이 반MB의 구도에서 멈춰버린다면 '과거로 회귀' 이상의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반MB 운동은 저항을 전개함과 동시에 과거에도 풀지 못했던 다양한 민주주의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반MB를 중심으로 한 저항을 시도하면서도 반MB 전선에 머물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가 수행해야 할 '이중과제'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긍정적 가치를 통해 그를 뛰어넘는 일이다.

실질적으로 강화된 반MB연대는 외적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폭정에 저항하면서도, 연대 내적으로는 새로운 대안체제를 모색하는 이중전략이 필요하다. 그 틀 속에서 다시는 용산철거민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박종태 열사처럼 노동현실에 분노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 수괴로 가공되어 죽음을 강요당하지 않는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 진정한 국민통합은 이러한 새로운 가치들이 배제되지 않고, 공정하게 보장된 정치적 공론장에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을 때나 제기될 수 있는 문제다.

우리는 화합을 원한다. 철거민의 신세로 죽어나가지 않고, 노사관계로 자살하지 않고, 등록금 납부 대신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화합을 원한다. 권력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운 언론과 사법을 원하며, 토건이 아닌 진정한 생태를 원한다. 저항의 수괴를 가공하고, 몽둥이로 무장한 경찰 앞에 강요된 화해를 거부하기 위해, 진정한 화해와 화합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허구적 화해와 국민통합에 저항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손우정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연구원입니다. 이기사는 새사연 홈페이지(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노무현, #반MB, #국민통합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2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